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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를 만나다] “사랑만이 진리를 깨닫는다”
아우구스티노의 저작 탐방에 나서며
히포 주교관의 서재
“서기 398년 11월 13일. 그날 밤에도 히포의 부두에서는 고기잡이배들이 뱃머리를 맞부딪치는 품이 흡사 입맞춤을 하는 모습이었다.
여기는 주교관, 수도원다운 품위를 갖춘 널따란 저택. 나이 마흔쯤 되는 수도자 한 사람이 자기 방에서 등잔에 기름을 넣고 있었다. 밤에 글을 쓰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손가락으로 양피지 낱장을 하나 집어 필사상 위에다 손바닥으로 쓰다듬듯이 눌러서 폈다.
그의 문장은 시위를 떠난 살촉 같은 느낌을 자주 주었다.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 하고 싶은 바를 하라!’ 짤막한 몇 마디는 대장간 화덕에서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불똥처럼 작열하는 것이었고 그 화덕은 결코 식을 줄을 모르는 것같았다.”
크레모나 신부의 「성 아우구스티누스傳」(성염 역, 바오로딸, 1992년) 첫 대목이다. 그리스도교 교부들 가운데 가장 방대한 저작을 남긴 아우구스티노의 저술 활동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필자도 이 위대한 교부가 라틴어로 써놓은 그 많은 저서들 가운데 일부나마 우리 독자들에게 옮겨놓는 일에다 여생을 바치고 있지만, 그의 저서는 실로 방대하다.
세례 전후에는 그리스 로마 철학의 주제들을 소화시키려는 대화편들이 집필되고, 이어서 마니교와의 논쟁서들이 나타나며 후기에는 펠라기우스파와 은총론을 다투게 된다.
성서 연구서들은 말할 것도 없다. 단행본만도 100권이 넘는다. 「강론집」과 「시편 강해」와 「서간집」도 엄청난 분량이다.
아우렐리오 아우구스티노(Aurelius Augustinus), 그는 서기 354년(11월 3일) 당시 로마의 북아프리카 식민지 누미디아(지금의 리비아) 타가스테에서 그 지방의 관리 파트리키우스와 독실한 그리스도 신자인 어머니 모니카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정치사의 한 기적으로 꼽히는 ‘로마제국’ 말기, 문화사적으로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문화가 쇠퇴하고 붕괴하는 역사적 시점에서 그는 고전문학과 철학을 배웠고, 수사학 교수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당대에 풍미하던 사상계를 거의 섭렵하였다.
그 방랑은 영혼의 한없는 갈증을 풀어줄 만한 진리를 찾아가는 길이었고, 그가 신봉하던 마니교도들에게 충동질받아 울고불고 매달리는 어머니를 카르타고 항구에 속여서 떼어놓고 로마로, 밀라노로 출세 길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 386년 밀라노에서 “집어라! 읽어라!(Tolle! Lege!)”라는 전설적인 동요를 들으면서 깨달음을 얻고 그리스도교로 입문하여 이듬해 부활절에 성 암브로시오 주교에게서 세례를 받는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는 “가장 위대한 신학자, 사목자와 신비가, 참으로 모든 교부들에게 공통되는 자질을 갖춘 빛나는 모범”(바오로 6세 교황)을 얻게 된다.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인류의 위대한 사상가들을 열거하면서 “근원에서 사유하는 철학자” 셋을 꼽는다면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노 그리고 칸트라고 하였는데, 오늘날 ‘유럽연합’으로 구체화한 서구문화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는 두 강줄기에 자리 잡고 있다면,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두 강이 합류하는 양수리에 해당한다.
그런데 철학서적을 읽을 적에 많은 독자가 느끼듯이, 지혜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글이 워낙 사변적이고 난해하여 아무리 지성을 비추는 밝은 빛이 거기서 비쳐 나오더라도 형광등의 차가운 불빛을 접하는 느낌이다.
그와 달리 교부 아우구스티노의 생애를 한마디로 간추린다면, 소설체로 엮어진 다른 전기의 제목 그대로 “한없이 타오르는 불길”(루이 드 월 지음, 조철웅 역, 가톨릭출판사, 1993년)이었다. 새빨간 혀를 넘실거리면서 무서운 기세로 열을 내뿜는 불꽃이었다. 그의 삶은 애오라지 진리에 대한 열애였다고 할만하다.
그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진리를 찾아내려는 사랑에 사로잡혀 있다.”고 단언한다. 그의 나이 열여섯 살 고향을 떠나 카르타고로 갈 적부터 진리에 대해 골수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느꼈다. 더구나 그 진리를 막연한 추상적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고 혼신으로 사랑할 인격체로 여기면서 “당신한테로 우리를 만드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안달입니다.”(「고백록」 1.1.1)라는 고백을 한다.
그러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그 진리를 발견하였을 때에 그는 “이제 당신만을 사랑하니 … 저는 당신만을 섬길 각오가 되어 있나이다.” 하고 선언하였고, 그의 나이 33세에 행한 이 언약을 그는 이후 44년간 수도자, 성직자, 영성가요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남김없이 충실하게 실천에 옮겼다.
그때부터 여생을 두고 끊임없이 되뇌던 저 탄식, “오, 진리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토록 오래고 그토록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고백록」 10.27.38)라는 글귀는 아우구스티노의 철학적 유언이 되었다. 어느 연인이 상대방에게서 이런 고백을 듣는다면 정녕 행복하리라.
인간이라는 심연
그의 초기 대화편 「독백」에는 이성과 아우구스티노 사이에 이런 대담이 오간다. “무엇을 알고 싶은가?” “하느님과 영혼을 알고 싶다.”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가?” “전혀, 아무것도 없다”(1.2.7). 본인도 “인간이란 그 자체가 크나큰 심연”(「고백록」 4.14.22)이라고 고백했지만, 이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우구스티노의 평생의 과제가 되었다. 그에게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었으므로, 모상인 인간을 알면 원형인 하느님, 그토록 신묘한 삼위일체의 신비를 알 수 있고, 동시에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야만 인생의 수수께끼가 풀린다는 신념이 생겼다.
철학자 누구나 진리를 추구하겠지만 진리가 인간 존재 전체를 세차게 끌어당기는 중력임을 아우구스티노만큼 생생하게 감지한 사상가도 보기 드물다. “물체는 제 중심 무게에 따라서 제자리로 기웁니다. 나의 중심은 나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어디로 이끌리든 그리로 내가 끌려갑니다”(「고백록」 13.9.10).
여기서 그리스 철학 전통과 아우구스티노가 선도하는 그리스도교 철학의 갈림길이 생긴다. 그리스인들은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하였다.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진리를 아는 이는 그를 알고 그를 아는 이는 영원을 압니다. 사랑이 그를 압니다.”(「고백록」 7.10.16)라는 깨달음, 곧 “사랑이 진리를 안다(Caritas novit veritatem).”는 위대한 인식론적 명제를 만들어냈다. 사랑하면 진실이 보인다!
뒷날 마르크스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진리가 보인다.”라고 설파하였고,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뜻에서 20세기의 가톨릭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을 사회교리의 근간으로 채택하였다.
이토록 진리의 연인으로서 살아간 위대한 교부의 저서들 가운데 필자가 번역을 마친 작품들을 독자들과 함께 읽어보는 기회가 주어져서 좋다. 교부의 삼부작에 해당하는 「고백록」, 「신국론」, 「삼위일체론」 같은 대작들은 물론 초기 대화편들도 펴서 함께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우구스티노를 만나다] ‘그리스도교 철학’의 탄생
카시키아쿰 대화편
구세사의 웅장한 산맥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봉을 가운데 두고 저편 구약시대에는 모세라는 웅장한 봉우리가 자리 잡고 이쪽 신약시대에는 바오로라는 영봉이 우뚝 솟아있다. 그리고 바오로에 이어서 뻗어내리기 시작하는 그리스도교 산줄기에 단연 뛰어난 영봉은 성 아우구스티노다.
진리의 갈증
아우구스티노는 나이 열여섯 살에 고향을 떠나 카르타고로 가서 수사학을 공부하는데 학교에서도 급장이 되고, 카르타고 극시 경연대회에서 장원을 하여 총독에게 월계관을 받아 쓸 만큼 출중한 재능을 보였다. 또 그 나이에 그곳에서 사귄 여자와 동거를 시작하고 이듬해에는 아들을 낳아 ‘하느님께 받은 자(아데오다투스)’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어머니 모니카는 훗날 15년간이나 아들 수발을 해준 이 여자를 기어코 아프리카로 쫓아 보내고 양가집 열두 살 처녀와 아들을 약혼시키면서도 이 손자만은 끔찍이 귀여워한다.)
그 지경에서도 아우구스티노는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라는 철학서를 혼자서 읽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혼자서 독학하는 등 진리에 대해 타고난 그리움을 느꼈다.
“오, 진리여, 진리여! 저 사람들이 당신을 외칠 적에, 그렇게도 흔하게 그렇게도 다채롭게, 때로는 소리로만 때로는 많고도 커다란 책자로 당신을 말소리로 드러낼 때에, 내 영혼의 골수가 얼마나 당신을 속으로 사무치게 그리워했습니까!”(「고백록」 3. 6. 10)
정녕 그에게 진리는 학습하는 무엇이 아니라 날마다 먹고 마시는 음식이었으며, 그는 직업적으로 철학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철학을 살았고, 진리를 따진 것이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였다!
“인간은 그 목적에 이르지 못하는 한 완성을 볼 수 없습니다. 그 목적이란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있습니다”(「아카데미아 학파 반박」 1. 3. 9).
카시키아쿰의 은둔과 사색
진리에 대한 이러한 열애는 청년으로 하여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교 성경을 뒤지게 만들었으나 불가타 라틴어의 소박한 성서 문체는 수사학으로 세련된 그의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열아홉 살에 마니교에 빠져 10여 년을 헤매고 수많은 지인들을 마니교로 끌어들인다. 마니교의 주선으로 생활의 터전을 로마로 옮기고, 마니교의 추천으로 밀라노 황실의 수사학 교수직에까지 오른 그가 사상 전환을 하고 그리스도교로 입교하는 계기를 발견한 것은 플라톤의 철학, 특히 플로티누스의 저서를 읽으면서였다.
388년 가을, 아우구스티노는 로마 제국의 황실 수사학 교수직을 돌연 사임하고 밀라노 근교의 카시키아쿰이라는 동네로 물러가 은둔생활을 하면서 이듬해 부활절에 있을 세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상당수의 식솔과 문하생들이 그와 함께 머물렀다. 모처럼의 여가를 즐기는 중에 아우구스티노는 종종 문하생들과 한자리에 모여 여태 자기 지성을 고뇌하게 만들어왔던 철학 주제들을 하나씩 꺼내 토론을 벌였고 속기사를 불러 토론한 내용을 기록하여 책으로 만들어 남겼다.
그렇게 마련된 아우구스티노의 「대화편」이 중요한 것은 그리스 - 로마의 헬레니즘과 신구약 성경을 맥으로 이어온 헤브라이즘이 여기서 합류하여 중세와 근대로 이어오는 ‘그리스도교 사상’으로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는,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의 철학과 문학의 최후의 대가요 가장 위대한 라틴 사상가”를 얻는 순간이기도 했다.
철학사에서 ‘아우구스티노의 대화편’이라고 일컫는 작품들(필자가 원문 번역과 주해를 최근에 마쳤다.)은 「아카데미아 학파 반박」, 「행복한 삶」, 「질서론」, 「독백」, 「영혼 불멸」, 「영혼의 크기」, 「자유의지론」, 「교사론」 등 여덟 책이다. 이렇게 정리한 철학사상을 수년 뒤 한 권으로 정리한 교본이, ‘아우구스티노의 철학소전(哲學小典)’으로 부르는 「참된 종교」(성염 역, 분도출판사, 2011년[수정판])이다.
“내가 속는다면 나는 존재한다”
「아카데미아 학파 반박」은 마니교를 빠져나오자마자 그를 방황케 했던 회의론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면 철학적 구도적 노력은 다 헛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뒷날 “내가 속는다면 나는 존재한다(si fallor, sum).”라는 유명한 명제로 간추려진다.
그리고 인간은 권위(하느님의 계시)와 오성의 탐구(철학)로, 곧 신앙과 이성으로 진리에 도달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면서도 “이해하기 위하여 믿어라!(crede, ut intellegas!)”는 외침을 일평생 지속한다. 이 교부 덕분에 가톨릭교회에는 철학과 신학을 한데 종합하는 전통이 만들어졌다.
「행복한 삶」은 진리를 찾는 탐구만으로도 행복한가, 진리를 획득해야만 행복한가를 토론하는데 “참된 철학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verus philosophus amator dei)”라는 명제로 정립된다. 진리이신 하느님을 향유하는 사람만이 진정 행복하므로, 그는 사색과 종교를 결합시킬 줄 모르는 철학은 호기심에 불과하다고 지탄한다.
그리고 창조주 하느님이 만유와 역사를 섭리하시는 분이라는 신학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질서론」이다. 고대부터 제기한 ‘선악이원론’에 맞서는 그리스도교적 해법이 처음 시도되며, 인생과 자연계에서 경험하는 ‘무질서’의 원천과 책임 문제가 토론된다. 참지혜는 세계의 진선미를 관조하면서 그 원형이신 하느님께 동화하는 일, 결국 “하느님과 함께 있음(esse cum deo)”이라고 귀결된다.
「독백」은 “하느님과 영혼을 알고 싶다.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라는 문답으로 시작하여 “밖으로 나가지 말라! 그대 안으로 돌아오라! 그대 안에 진리께서 거하신다.”는 선언으로 끝난다. 아우구스티노를 실존철학의 원조라고 부르는 까닭도 이 책에 있다. 영혼이 섬세한 물질인가, 아니면 불멸하는 영인가 하는 토론과 영혼이 신체와 어떻게 결합해 있는가 하는 고전적인 토론이 「영혼 불멸」과 「영혼의 위대함(크기)」에 담겨있다. 인간이 죽음으로 소멸한다면 모든 종교는 일거에 붕괴된다.
위대한 지성 아우구스티노는 “나에게 순결과 절제를 주소서. 그러나 지금은 말고.”(「고백록」 8. 7. 17)라고 실토할 만큼 일평생 죄악의 문제로 고민하면서도, “복수의 하느님이자 동시에 자비의 샘이시여, 당신께서는 당신의 도망자들의 등 뒤를 바싹 쫓아가시면서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를 당신께 돌이키십니다.”(「고백록」 4. 4. 7)라고 수긍할 정도로 ‘하늘 사냥개’의 추격과 기어코 자기의 항복을 받아내고 마는 은총의 위력을 절감하였다.
그가 만유는 선한 하느님의 선한 창조물이라면서 이원론을 극복하고, 악의 출처를 인간의 선한 자유의지로 규정하고, 세상의 악을 ‘죄악’과 ‘죄벌(고통)’로 나눈 「자유의지론」(성염 역, 분도출판사, 1998년)은 개인적으로도 집단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악을 극복하는 용기를 인류에게 제공하였다. 악이 인간에게서 발생한다면 인간의 노력으로 척결할 희망이 보이는 까닭이다.마지막 대화편 「교사론」은 아우구스티노의 언어철학서인데 덕분에 인류는 왜 하느님이 ‘말씀’으로 인간에게 계시하시는지, 어째서 영원한 말씀이 사람의 살이 되셔야 했는지를 수긍하게 만든다. “우리는 당신의 빛으로 빛을 봅니다(in lumine tuo lumen videmus).”라는, 아우구스티노의 조명설이 여기서 나온다. 인류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기” 때문이다(마태 23,10 참조).
[아우구스티노를 만나다] “달려가거라, 내가 안아 오리라!”
「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
그의 나이 서른둘이던 386년 가을, 아우구스티노는 격렬한 정신적 회오리바람에 휩쓸리고 있었다. 마니교를 청산하고 플라톤 철학에 접하면서 사상적 방황이 잦아들기 시작하였고,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오의 설교를 들으러 다니면서 그리스도교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였다.
“오, 영원한 진리여, 참된 사랑이여, 사랑스러운 영원이여! 당신께서 내 하느님이시니 밤낮으로 당신을 향해 한숨짓습니다.”라는 고백처럼, 언제나 진리를 찾아왔고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이 자기가 찾던 그 진리이심을 깨달은 터에, 그 진리에 온몸으로 헌신하고 싶었다.
「고백록」 제8권에는, 진리를 열애하던 철학자의 심중에서 일던 질풍노도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는 저 안토니오 성인처럼 부귀공명을 일거에 내던지고 사막으로 은둔한 사람의 얘기도 알고 있었다. 최근 밀라노 황실 근위대 장교로 있다가 은둔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의 삶을 보고서 그 자리에서 군복과 속세를 한꺼번에 벗어던진 사람들의 얘기도 들었다.
“저 사내들도 해내고 저 여자들도 해내는 것을 너는 못한다?” “자, 이제는 해야 해. 이제는 해야 해.” 말로는 벌써 하고도 남았지만 실제로 안 되었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내일 또 내일’ 입니까? 왜 지금은 아닙니까? 어째서 바로 이 시각에 내 추루함이 끝장나지 않습니까?”라고 하느님께 넋두리하였다. 하지만 이 하소연에는 “나에게 순결과 절제를 주소서. 그러나 지금은 말고.”라는 저 유명한 기도가 곁들여 있었다.
저 운명의 밤에 밀라노 저택 담 밖에서 들려오던 동요, “집어라! 읽어라!”를 듣고서 성경을 펴 읽던 순간, “평정의 빛이 내 마음에 부어지듯 의혹의 모든 어둠이 흩어져 버렸다.”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는데, 그 성경 역시, 놀랍게도, “음탕과 방탕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라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구절이었다. 그러니까 회심의 마지막 순간 그를 붙잡고 늘어진 것은 사상적 갈등이 아니라 ‘육욕’이라는 실존적 죄악이었다.
“악은 어디서 오는가?”
아우구스티노 같은 명민하고 비판적인 지성이 마니교에서 십 년 넘게 머무적거린 데는 까닭이 있었다. 마니교가 세상이 고해(苦海)인 것도, 본인이 애욕에서 한 걸음도 못 빠져나오는 것도 선의 원리인 하느님께 쐐기를 박으면서 덤비는 악의 원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선악이원론을 가르쳤던 것이다.
“죄를 짓는 것은 우리가 아니고 뭔지 모르지만 우리 안에 있는 다른 본성이 죄를 짓는 것으로 보였고, 그래서 탓이 나에게 없다는 오만을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또 내가 무슨 악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뭔지 모르지만 나와 더불어 있고 그러면서도 내가 아닌 다른 무엇에다 탓을 돌리기를 좋아하였습니다”(「고백록」, 5.10.18).
「자유의지론」(성염 역, 분도출판사, 1998년)은 아우구스티노의 초기 대화편에 속한다. 387년 부활절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오에게 세례를 받고 나서 고향 아프리카의 타가스테로 출발하였는데 전쟁으로 뱃길이 막혀 로마에 머물던 388년경에 고향 친구 에보디우스와 주고받는 대화로 엮어져 있다.
이 책은 “악이 어디서 유래하는가?”라는 주제를 다룬다. 악의 수수께끼를 두고 3천 년에 걸친 서구철학의 어느 누구도 이 책을 넘어서지 못하였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책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제1권은 “악의 장본인이 하느님이 아니신가?” 하고 묻는다. “악은 현세에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런 세계를 만들거나 예방 못한 신은 전능하지 못하다. 신이 전능하여 악을 예방할 수 있었으나 악을 예방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는 전선하지 못하다.”라는 ‘에피쿠로스 딜레마’를 내세우면서, 자신이 저지르는 악행을 면피하려는 간교한 술책을 교부가 분쇄한다.
세인들이 하느님을 피고처럼 몰아세우는 고통과 재앙을 ‘죄벌(poena peccati)’로, 인간이 저지르지 않을 수 있으면서도 저지르는 악행을 ‘죄악(peccatum)’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죄악은 인간이 장본인이고 죄벌은 죄악을 벌하시는 하느님에게서 온다. 그러면 정말 ‘악’이라 부를 만한 것은 ‘죄악’밖에 남지 않는다.
제2권은 “자유의지는 왜 주셨을까, 하느님의 예지로 미루어 인간의 범죄는 필연적인데?”라는 시비를 다룬다. 술이나 성욕을 악용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악하다는 말은 안 되며, 따라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주시지 말았어야 한다는 논리는 안 선다. 자유의지도 사용하기 나름으로 악용될 수도, 선용될 수도 있다. 자유의지의 사용 자체도 자유의지의 처분에 맡겨져 있으므로 자유의지 자체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자유의 악용이라는 위험을 제거할 길이 없다.
“그러면 의지가 하느님을 등지고 작은 선을 향해서 내리는 결단(이 결단이 곧 죄악)이 하느님이 아니고 어디서 기인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다. “솔직히 우린 모른다. 악은 선의 결핍, 곧 무(無)다. 없는 것을 인간은 알 수 없다. 침묵을 들을 수 없고 어둠을 볼 수 없듯이….”
제3권은 본서의 주제대로, 자유의지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며 “악은 피조물의 자유의지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으로서는 세상의 악이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고 자인하거나, 오로지 신이나 운명이나 사회나 타인들의 탓이라며 손을 털 수 있다. 다만, 악이 인간에게서, 누구보다 자기한테서 발원한다고 인정하면 인간은 개인적 집단적 노력으로 악을 청산하는 길에 나설 수 있다. 선악이원론이나 숙명론이 얼마나 간교한 책임회피인지 알 만하다.
“달려가거라, 내가 안아 오리라!”
아우구스티노가 이 책에서 사변적 해답을 찾아냈지만 악은 여전히 신비로 남아 평생에 걸친 그의 탐구과제가 된다. “모든 죄는 당하는 사람보다 행하는 사람을 해친다.”(「교리요강」, 17)는데도 인간은 부단히 죄를 짓는다.
“나는 무엇이 더 나은지 알고 거듭 확인하고서는 결국 더 못한 것을 따르고 만다.” 로마 문인 오비디우스의 자백이다. 바오로 사도마저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라고 실토하지 않았던가?
인간에게 악이 있다는 것은 결국 우주의 불완전을 하느님이 용인하셨다는 의미다. 완전하신 창조주께서 창조물의 불완전을 두고 예견하신 처방은 그럼 무엇일까? 아우구스티노는 이사야서의 한 대목(46,4)에서 해답을 얻는다.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낸다.”
인간 의지의 악용과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겨루는 가운데 달아나는 자기 등 뒤에 대고 하느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렸다. “달려가거라! 내가 안아 오리라. 내가 데려오리라. 거기서 내가 안고 오리라!”(「고백록」, 6.16.26)
여기서 교부는 은총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고 그것이 교부의 인생 말년을 점철하는 ‘펠라기우스 논쟁’으로 이어진다. 선을 행하는 것도 은총이요 선을 하려는 마음을 먹는 것도 은총이요 죄를 죄로 깨닫는 것도 은총이요 뉘우쳐 용서받음도 은총이니, 사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아우구스티노를 만나다] “그대가 사랑을 본다면 그대는 바로 삼위일체를 뵙는다”
「삼위일체론(De Trinitate)」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참 좋아한다. 성인의 글을 자주 인용하고 일반 알현의 기회에 교부의 사상에 대한 연속강연도 하였다. 교황 문장에는 조가비가 그려져 있는데 삼위일체의 신비와 연관된 조가비다.
저 어린 천사의 전설처럼, 인간이 저 위대한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하려는 탐구는 조가비만 한 머리로 히포 앞바다의 물을 다 퍼 담으려는 만용처럼 보이더라도, 역시 그 탐구는 “창조주요 구세주인 그분의 은총이 불붙이는”(5.1.2) 작업이라던 교부의 신념, 무릇 진리가 존재함을 발견하면 그 진리가 인간을 변모시키므로 삼위일체 신비를 탐구하는 가운데 사람에게 삼위일체의 모상이 회복되고 쇄신된다는 신념을 교황은 크게 존중하는 듯하다.
“하느님은 하나이시지만 혼자가 아니다”
무려 100권이 넘는 저서 가운데 그 신학적 사색이 가장 원숙하여 「고백록」이나 「신국론」과 더불어 「삼위일체론」은 신학을 논한 성인의 모든 신학서 가운데 단연 최고걸작으로 꼽힌다. 하느님이 계시로 인간을 만나러 오시고 인간이 자기 내면을 성찰하여 자기 안에 새겨진 하느님 모상을 뵙는 길을 분석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또한 아우구스티노의 가장 위대한 인간학 교본이기도 하다. 번역을 생업으로 살아온 필자에게도 이 책의 번역은 평생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 신학을 공부했으면서도 삼위일체를 두고 필자의 가슴에 와 닿는 유일한 말은 “하느님은 하나이시지만 혼자가 아니다.”는 힐라리오 성인의 말씀이었다. 우리가 알아듣든 못하든 하느님께서는 태초부터 당신을 가리켜 ‘우리’라는 말을 쓰셨다. 하느님은 ‘단수’가 아니시고, ‘개인’이 아니시기 때문이리라. 정말 하느님은 복수이시다.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론」에서 저자는 그 거창하고 오묘한 신비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우회로를 썼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따라서 모상을 연구하면 원본을 추정할 수 있으리라. 인간의 지성, 기억, 의지를 하나씩 뜯어보면 신기하게도 반드시 세 잎 클로버 같은 존재구조가 엿보인다. 하느님의 삼위일체도 그런 무엇이리라!” 이것이 본서 후반부(9-15권)의 논지다.
인간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상’
인간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 “성부만의 모상도 아니고 성자만의 모상도 아니며 성령만의 모상도 아니고 삼위일체의 모상으로 인간은 창조되었다.” 그 이유는 인간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만드시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모상으로 만드신”(7.6.12) 까닭이다. 그래서 교부는 인간의 위대함을 삼위일체 하느님이라는 “최고 존재를 받아들이고 참여할 역량(capax dei)”(14.4.6)에 둔다.
그렇기에 인간은 삼위의 모상을 자기 안에 발견하고 구현해야 하며, 인생의 충만한 기쁨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향유하는 데에 있다. 하느님의 아들이 파견받아 사람이 되신 것도 당신의 육화, 죽음, 부활의 신앙을 가짐으로써 인간들이 ‘삼위일체의 관상’에 이르게 돕는 데에 목적이 있다(1.8.16-17). 천국에서 우리가 할 유일한 일은 “끝없이 삼위일체 하나만을 이야기하는 것”(15.28.51)이란다.
우선, “인간의 영혼은 자기를 기억하고 자기를 인식하며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에서 영혼의 삼위일체 구조를 감지하고서, “지성이 하느님을 기억하고 하느님을 인식하며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사실로 건너가면서 자기가 하느님의 모상임을 각성하기에 이른다. 지성, 지성의 자기 인식, 지성의 자기 사랑이라는 삼위(mens, notitia sui, amor sui)를 관찰하면, 그것들이 셋이면서 한 사물, 한 실체, 한 생명을 이룬다는 일체가 파악되고, 그것들이 완전할 경우는 셋이 동등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다음 단계로 교부는 인간 지성의 ‘기억’, ‘오성’, ‘의지’의 삼중구조에서 삼위일체를 파악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특히 교부가 가장 심오하게 분석하는 ‘기억’을 더듬어가면 인간은 일종의 무한자, 하느님 삼위일체에 닿는다. 개념이나 표상으로 “무엇이든 기억에 숨겨져 있다면 그것을 통틀어 어떤 하나로 간주하고, 또 저런 대상들을 상기해 내고 사유하는 지성의 시각 전반을 통틀어 다른 하나로 간주하고, 그리고 이 양자의 결속에 덧붙여 이 양자를 결합시키는 의지를 제3의 요소로 간주하면 셋으로부터 이 전체 하나가 된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11.7.12)
사랑만이 삼위일체를 수긍한다
열다섯 권으로 엮인 이 책의 처음 네 책(1-4권)에서 성경연구를 개진하여 신구약에 실린 삼위의 ‘발현’을 성자와 성령의 ‘파견’이라는 각도에서 상세히 연구한 끝에 성자의 출생과 성령의 발출이라는 신학개념을 정립해 낸다. 영원에서도 성자를 ‘보냄 받은 분’이라고 일컫는 까닭은 말씀이 성부의 입 밖으로 발설되었다는 사실이고, 말씀이 장차 때가 되면 살이 될 분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4.20.27).
성령이 우리에게 선사된 것은 삼위일체에서 그분이 성부와 성자 사이의 ‘선물’이자 ‘사랑’이기 때문이요, 당신이 ‘거룩한 영’이기 때문에 우리를 ‘의화’한다. 이 의화는 하느님 모상, 곧 삼위일체 모상이 “기형으로부터 벗어나 재형성됨”으로 정의된다(15.8.14).
그다음(제5-7권)은 세 위격의 구분에 초점이 간다. “성부가 하느님이고 성자가 하느님이고 성령이 하느님이라면 왜 세 하느님이 아니고 유일한 하느님이신가?”라며 제기되어 온 양식설(樣式說)과 삼신론(三神論)을 둘 다 극복해야 하는 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이용할 경우, 하느님께는 ‘실체’만 있고 ‘우유(偶有)’는 없다. 그런데 하느님께는 실체의 범주에 들지 않지만 또한 우유라 할 수 없는 범주가 하나 있으니 ‘관계’가 그것이다.
교부의 말에 “성자는 항상 태어나며, 따로 아들로서 존재하기를 시작한 일이 결코 없다.”는 말로 보아 삼위 간의 이 관계는 상존하는 관계, 또는 ‘실제적 관계’에 해당한다. 또 ‘아버지’라고 언표하는 것과 ‘아들’이라고 언표하는 것은 두 분에게 동시적이고 불변하므로 신적 위격들은 동등하게 영원하다(5.5.6). 아우구스티노 이후, ‘관계’ 개념 없이는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 없게 되었고 서구 신학은 그가 착상한 개념과 용어와 논지를 그대로 구사한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신비를 궁구하는 우리에게 “사랑을 본다면 삼위일체를 뵙는다(vides trinitatem, si caritatem vides).”(8.8.12) 는 말이 격려가 된다. 교부는 이 책에서 인간이 체험하는 온갖 사랑에서 ‘사랑하는 이’, ‘사랑받는 이’, 그리고 ‘사랑’이라는 삼위일체를 보여준다(8.10.14). 모든 사랑에는 반드시 세 주체가 있다. 영원으로부터 당신 품에 아들 곧 말씀을 품고 계시기 때문에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말씀은 무한한 사랑, 곧 성령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신다.
저 젊었던 시절 최후만찬에서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본 일 있는 요한 사도가 아흔 가까운 나이에 일평생 체험한 하느님을 정의하여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했다. 사랑이시라면 누군가를 사랑하셔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실 만하다. 사랑은 서로 다른 주체들 사이에 하나 됨을 조성해 낸다.
인격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남녀로 다르지만 사랑이 깃들면 남녀의 생각과 의지와 취미가 하나 된다. 우리 원조를 창조하시면서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27)고 하느님이 의논하신 데도 까닭이 없지 않다. 교부가 “사랑이신 하느님을 포옹하고 사랑으로 하느님을 포옹하라!”(8.8.12)고 외치는 것도 냉정한 사변이나 신앙만으로는 결코 이해 못하는 것이 삼위일체의 신비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노를 만나다] “당신 창조계의 한몫이 당신을 찬미코자”
「고백록(Confessiones)」
아우구스티노의 수많은 저작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는 인간의 길”로 간주되고 그의 주저로 평가되는 삼부작이 있다. 교부가 자기 개인 인생여정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길을 묘사한 「고백록」, 인류가 구세사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길을 정리한 「신국론(De civitate Dei)」(성염 역, 분도출판사, 2004년), 그리고 하느님이 계시와 육화로 인간을 만나러 오시고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인 자기 내면을 성찰하여 삼위일체 신비를 만나 뵙는 「삼위일체론(De Trinitate)」(성염 역, 분도출판사, 근간)이다.
「고백록」, 진리께 바치는 연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합류시키면서 고중세를 통틀어 가장 많은 저작을 남긴 아우구스티노 본인이 “내 작품 가운데 그 어느 것이 「고백록」보다 더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며 「고백록」을 자기 대표작으로 여긴 만큼, 문학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이 교부의 가장 독창적인 대표작이라 불러 손색이 없다.
성경을 제외하고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혀온 이 책이 고전 최후의 작가의 심미적인 심리기법과 열정적인 기질과 독창적인 문체 덕분에 종교 영역을 넘어 ‘세계문학전집’에 필히 들어가는 고전이 된 것은, 진리를 탐구하는 한 지성의 뜨거운 열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아리스토텔레스나 토마스 아퀴나스, 칸트나 헤겔에게서처럼, 형광등같이 밝고도 차가운 빛을 내는 지성들과는 달리 시뻘건 불꽃으로 넘실거리면서 자신과 타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삼키는 ‘마음의 논리’에 접하게 된다.
「고백록」은 그가 세례 받은 지 11년이 지나 43세에 기록한 글이다. 출생(354년)에서부터 33세의 나이로 개종한 다음 모친 모니카가 오스티아에서 별세하기까지(387년), 다시 말해서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카르타고에서 로마 고전문학과 철학을 배우고, 로마와 당시 제국의 수도 밀라노에서 수사학 교수를 하다 성경의 진리에 접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여정이 담겨있다.
하지만 「고백록」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다. 한 인간의 정신적 여정을 엮은 ‘기도서’다. 일평생 탐구하는 진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면서 그분을 대화자로 삼아서, 그분을 찬미하고 그분께 감사드리는 기도문을 엮고 있다. 「고백록」 13권 가운데 처음 9권까지는 자신의 도덕적 사상적 방황을 회고하고, 10권에서는 현재의 자기 심경을 차분히 정리하고 있으며, 11권부터 끝까지는 창세기를 펴들고 창조신학을 전개한다.
이 책을 쓴 지 25년 뒤 본인이 “나의 「고백록」 13권은 나의 악행과 나의 선행을 들어 의롭고 선하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책이었다.”(「재론고」, 2.6.1)고 회고하는 바 있어, 우아한 시적 문체로 번역본을 펴낸 최민순 신부님은 이 책에 “님 기림”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아우구스티노가 한평생 탐구하던 진리는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온 생애에 걸쳐 사랑을 바칠 인격체였다. 그 진리 앞에서 “당신한테로 향하게 우리를 만드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안달입니다.”(「고백록」, 1.1.1)라는 고백을 바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당초부터 인간 실존을 “신에게 방향 지워진 긴장상태로 신 앞에서 선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하느님과 인간”
아우구스티노의 생애에는 ‘하느님’과 ‘영혼’이 두 주역을 이룬다. 그리고 철학사의 가장 큰 이 두 실재에 그는 누구보다 가까이 갔었다. 자신의 도덕적 부패와 죄상을 참으로 깊이 체험하였으므로 그러한 실존적 한계에서 이런 물음을 던진다. “당신께서는 내게 누구십니까? 내가 당신께 무엇이기에 나더러 당신을 사랑하라고 명하십니까?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께 미미한 불행이라도 됩니까?”(1.5.5)이런 과감한 질문에서 아우구스티노가 듣고 싶은 답변은 오직 한마디였다. “아아! 주 내 하느님, 당신의 자비를 들어, 나에게 당신은 누구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너의 구원이다!’라고. 내가 들을 만하게 말씀해 주십시오”(1.5.5).
그래서 이 글은 독백도 아니고 자기 악행을 열거하는 자백도 아니다. 철학사에서 아우구스티노보다 악의 문제를 깊숙이 사색한 인물이 없었고, 예리한 심안으로 보드랍고 연약하면서도 뿌리 깊이 파괴하는 인간 내면의 와해를 그처럼 생생하게 그려낸 인물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처럼 못된 인간을 너무도 선하게 대하시는 하느님 앞에서는 그의 죄는 자책의 빌미라기보다는 도리어 찬미의 구실이 되었다. “우리의 비참도 우리 위에 내리는 당신의 자비도 한데 고백하여 당신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당신은 우리가 우리 안에서 비참하기를 그만두고 당신 안에서 행복해지는 일을 시작하신 까닭입니다”(11.1.1).
인간의 악행마저도 기실 영원을 향하는 어떤 몸부림임을 깨닫는다면, 그 흉물스러운 죄까지도 구원받을 인간에게는 우리가 성토요일, 저 ‘빛나는 밤’에 노래하는 ‘행복한 죄(o, felix culpa!)’가 된다.
이 교부는 자기의 생애를 들어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찬미한 다음, 우주를 들어 창조주를 찬미하는 “우주찬가”로 옮겨가서, 자기 노랫 가락을 삼라만상의 합창에 합친다. “당신의 업적이 당신을 찬송하여 우리더러 당신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여 당신의 업적이 당신을 찬송하라고 합니다”(13.33.48).
아우구스티노는 세계와 인간을 ‘창조된 존재(esse creatum)’로 확립한 철학자이며, 「고백록」 11-13권에서 창세기에 입각하여 세계의 기원을 논한다.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우리가 보는 것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당신께는 그것들을 당신께서 보시기에 그것들이 존재합니다”(13.38.53). 무(無)로부터의 창조, 창조와 더불어 피조물과 시간이 존재한다는 이론, 선한 하느님이 오로지 선한 사물을 놀이삼아 만드셨다는 창조론의 근간 역시 이 부분에 확립되어 있다.
“님 기림”에서 “우주찬가”로
시간은 실존의 한 차원이기 때문에 인간 의식에 의해서만 파악된다는 이론도 나온다. “만물이 시간으로 인해서 시작과 끝을 갖습니다. … 그것들은 당신에 의해서 무로부터 생겨났으며, 그렇지만 당신에게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것이 아닌 무엇에서, 또는 이전에 존재하던 무엇에서 온 것이 아니고 당신에 의해서 한꺼번에 창조된 질료에서 비롯합니다”(13.33.48).
책을 마치면서 교부는 개개인 삶의 여정과 인류 전체의 역사가 종결되는 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영원한 안식일을 그린다. “주 하느님,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시오.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푸셨으니 정묵의 평화, 안식일의 평화, 저녁 없는 평화를 주십시오”(13.35.50).
로마 제국이 붕괴하는 조짐으로 반달족이 430년 북아프리카 전역을 파괴하고 아우구스티노가 병들어 죽어가던 히포를 포위한 지 석 달째 접어든 8월 28일, “나는, 미련하게도, 모든 것을 다 내 머리로 알아듣고 싶었어.” 하는 한 마디를 남기고서 숨을 거둔다.
그 순간까지 평생을 두고 끊임없이 되뇌던 저 탄식 “오, 진리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토록 오래고 그토록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10.27.38)라던 한숨도 영원으로 날아올랐다.
[아우구스티노를 만나다] 하느님 나라의 초석 : 사회적 사랑
「신국론(De civitate Dei)」
'영원한 로마'의 붕괴
고대세계의 가장 위대한 역사적 경이에 해당하는 로마 제국이 5세기에 들어와 급격한 쇠퇴와 붕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서기 410년 8월 24일 서고트족의 알라리크가 로마를 함락시키고 입성한 다음 대학살과 방화와 약탈을 저지르고 퇴각하는 미증유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영원한 로마(Roma aeterna)’에 대한 제국 신민 전체의 사상적 붕괴가 만연하자 아우구스티노의 지인들은 이 사건을 이념적으로 감당할 만한 저서를 집필해 달라는 부탁을 히포의 주교에게 해온다.
본인도 일찍이 인간 역사의 두 축으로서 ‘하느님 나라’와 ‘지상의 나라’라는 주제를 한 번 다루어보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던 터였으므로, 이 대재앙에 뒤따른 정신적 혼돈을 두고 철학자로서 신학자로서 신비가로서 성찰을 모색한다. 그리하여 15년의 기나긴 세월에 걸쳐 인류지성사의 대작이라 할 「신국론」(성염 역주, 분도출판사, 2004년)을 집필한다. 412년에 집필에 착수하여 427년 조금 전에 마친 것으로 추정된다.
제3천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국이 이른바 ‘9·11 테러’를 당한 후유증으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를 상대로 벌이는 무차별한 군사행동, UN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국제정치와 세계윤리를 완전히 붕괴시켜 버린 그 포학성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인류 지성계의 심각한 번뇌를 염두에 두면, 「신국론」은 현대에도 읽힐 만한 명분이 되고 남는다. 세계문학전집에 이 책이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
‘하느님의 도성(civitas Dei)’을 다룬 「신국론」은 다섯 단원, 22권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1-10권)는 로마 몰락이 그리스도교 탓이라던 로마 지성인들에게 건네는 호교론으로, 그들의 종교와 역사가 정치사회에도, 도덕적 문화에도 불완전했음을 밝혀 보인다.
후반부는 인류 역사를 구세사로 관조하면서 하느님의 도성의 역사적 기원(11-14권 : 우주의 창조와 천사의 기원, 천사들의 범죄와 타락, 인간의 창조와 인류의 단일성, 죽음이 죄벌로 의식되는 근거, 인간 의지의 퇴락), 하느님 도성의 역사적 전개(15-18권 : 성경을 역사 문헌으로 간주하여 인류사를 인간 아벨부터 노아 홍수까지, 대홍수부터 아브라함까지, 열왕기 이후로 예언자 시대까지, 그리고 지상 도성의 그리스도 시대로 구분), 하느님 도성의 종말(19-22권: 최고선 문제, 평화의 개념, 최후심판, 그리스도교의 직선적 시간관, 천년왕국설, 총괄갱신과 영원회귀설, 육신 부활과 영원한 지복)을 다룬다.
“두 사랑이 두 도성을 이룬다”
독자는 “국가란 법정의(法正義)에 관한 공통된 인식과 공동의 이해관계로 연합된 결사체”라는 키케로의 정의가 교부 아우구스티노에 의해서 “국민이란 사랑할 대상에 대해서 서로 합의함으로써 한데 뭉친 이성적 존재들”(「신국론」, 19.24)로 발전하는 점에 유념하게 된다.
교부는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떼”(4.4)라고 성토하면서 정치의 궁극목표인 “평화는 정의의 열매”라는 신념을 주창한다. 그러면서도 “참다운 정의는 그리스도께서 창건자요 통치자가 되는 그 공화국에서뿐”(2.21)임을 절감하고서 정의 대신 ‘사랑’이 국민을 구성하고 “두 사랑이 있어 두 도성을 이룬다.”는 교부의 명제에 우리는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인간 실존의 중력인 사랑(11.28)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심원한 본능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인류의 역사에서도 사랑이 이기적 사랑과 위타적 사랑 또는 ‘자기 사랑’과 ‘하느님 사랑’으로 갈라지며 그런 사랑이 인류사의 두 축을 구성한다는 교부의 혜안이 이 책을 관통한다.“두 가지 사랑이 두 도성을 건설했다. 하느님을 멸시하기까지 이르는 자기 사랑이 지상 도성을 만들었고, 자기를 멸시하면서까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천상 도성을 만들었다”(14.28). 다른 저작에서 아우구스티노는 이 두 사랑을 구체화하여 ‘사사로운 사랑(amor privatus)’과 ‘사회적인 사랑(amor socialis)’이라고 명명한다.
“두 사랑이 있으니 하나는 순수하고 하나는 불순하다. 하나는 사회적 사랑이요 하나는 사사로운 사랑이다. 하나는 상위의 도성을 생각하여 공동의 유익에 봉사하는 데 전념하고, 하나는 오만불손한 지배욕에 사로잡혀 공동선마저도 자기 권력 아래 귀속시키려는 용의가 있다. 하나는 하느님께 복속하고 하나는 하느님께 반역한다. 하나는 이웃을 다스려도 이웃의 이익을 생각하여 다스리지만 하나는 자기 이익을 위하여 다스린다. 천사들로부터 시작해서 한 사랑은 선한 자들에게 깃들고 한 사랑은 악한 자들에게 깃들어서 두 도성을 가른다”(「창세기 축자해석」, 11.15.20).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자기 교황직의 기조문서에 해당하는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2005년)에서 이 ‘사회적 사랑’의 실천을 평신도가 수행할 ‘정치활동’이라고 규정한 것은 참으로 뜻깊은 가르침이다.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위하여 일할 직접적인 의무는 평신도들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국민으로서 평신도들은 ‘경제, 사회, 입법, 행정, 문화 등 수없이 많은 여러 분야에서 조직적으로 제도적으로 공동선을 증진시켜야 하는’ 참여 의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 평신도들의 삶 전체와 ‘사회적 사랑’을 실천하는 그들의 정치활동이 언제나 사랑에 젖어들어야 합니다”(29항).
다만 신앙인은 역사적 투신 속에서도 언제나 사회조건 전체에 종말론적 단서를 붙이는 여유를 갖는다. 우주와 인류의 시원에는 창조주 하느님이 계시며, 역사의 도정은 그리스도께서 은총으로 인류와 함께하시며, 역사의 종말에 완성되는 하느님 도성은 “진리를 군주로, 사랑을 법도로, 영원을 척도로 두는 사회”, “진리가 승리자요 거룩함이 품위가 되고 평화가 행복이요 생명은 곧 영원”이리라(2.29.2). 이 원대한 목표를 향해서 신앙인은 ‘지금 여기’에서 역사의 도정을 밟아가고 있다.
“사랑이란 빠르기도 해라”
아우구스티노는 일찍이 자기 철학의 대상을 하느님과 인간으로 규정한 바 있다. 필생의 역작 「신국론」에서도 그는 인간과 세계를 하느님과 연관시켰다. 진정한 지성인은 “하느님에게서 ‘존재의 원인’을 발견하고 ‘인식의 근거’를 찾아내며 ‘삶의 규범’을 얻어내야 마땅하다. 우리 존재가 더 이상 죽음을 모르고 우리의 인식이 더 이상 오류에 떨어지지 않으며 우리의 사랑이 더 이상 좌절하지 않을”(11.28) 실존을 살고 싶은 희망에서였다.
“서기 430년 8월 28일. 그날 히포의 들녘에는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날은 반달족들마저 히포를 에워싼 진영 속에 숨을 죽이고 조용히 머물러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바다는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방파제 가까운 바위 틈새로 물결이 일렁이면서 사람들이 버려둔 배 두 척만이 가벼이 선체를 부딪치고 있었다. 흡사 입맞춤하는 것처럼…”(C. 크레모나, 「성아우구스티노傳」, 성염 역, 바오로딸, 1992년, 366쪽).
반달족이 로마 제국의 북아프리카를 완전히 초토화한 다음 아우구스티노가 주교로 봉직해 온 히포를 포위한 상태에서, 제국 로마가 무너져내리는 굉음을 들으면서 임종을 맞은 교부의 시선은 역사의 종국, 어느 날 온 인류가 맞이할 안식일을 이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의 끝은 저녁이 아닐 것이고 오직 주님의 날, 영원한 이렛날이리라. 그때 우리는 쉬면서 보게 되리라. 보면서 사랑하게 되리라. 사랑하면서 찬미하게 되리라”(2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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