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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긴 알겠는데
글로 잘 표현이 안된다 ㅠ
몸한테 잘해주면 된다는거 아닌가?
좋은거 먹이고 운동도 시키고....
말은 쉽다 ㅠ
2.
"다른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과,
인생에는 자신만이 연주할 수 있는 악보가 주어지고,
그것을 어떻게 무엇으로 연주하는지는 개인 각자에 달린 문제라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한동일 <라틴어 수업>
위에 글은 한동일 교수의 강의를 들은 학생이 쓴 감사편지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날 좋아하는건
기적이다.
기적에 감사해야 한다
3.
도시락·샌드위치·삼각김밥 같은 편의점 간편식을 가장 많이 사먹는 이들은 ?
역시나 2,30대 젊은 청춘들이었다
젊은 세대가 몰려 있는곳에서
집중적으로 팔려 나갔다
그중 서울 가산동은 샌드위치(1위), 삼각김밥(1위), 라면(1위), 도시락(2위), 커피(2위) 등 간편식을 가장 많이 소비한 곳으로 꼽혔는데
이곳은 IT 기업들이 몰려있는 서울디지털산단이 자리한 곳으로, 산업단지 중에서도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이다.
그외 다른지역도 젊은 세대가 밀집한 대학가 부근이거나 산업단지였다.
편의점을 애용하는
우리 큰애를 비롯해
이 땅의 모든 청춘들에게
진심으로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4.
인천 소래습지생태공원에 있는
소래 염전을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소래 염전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일본이 소금을 만들어서 인천항을 통해 가져갈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소금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이 염전은 1996년 폐쇄됐다가 소래습지생태공원이 조성되면서 염전 체험장으로 다시 부활했다.
거대한 수묵화 한점을 보는 느낌이다
5.
사람의 근육은 25세 이후 해마다 0.5~1%씩
자연적으로 줄어든다.
그나마 하루 2000보를 걸어야
이 정도로 근 손실을 막을 수 있다.
만약 다리가 골절돼 전혀 운동을
못 하면 단 1주일 만에 몸 전체 근육의 10%가 사라진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진다.
10% 근육 손실을 원래 상태로 복구하려면 영양·운동·재활을
꼼꼼히 해도 무려 반년이 걸린다.
죽을때까지 근육을 지켜야 된다...
사는 동안 지켜야 할게 너무나 많다
6.
충북 청주반려동물보호센터에서 유기견들이 철창에 매달려
밖을 내다보고 있다.
매년 여름휴가철이면 피서지에 반려동물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유기동물 숫자가 증가한다.
청주반려동물보호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8월에는 유기된 반려동물 191마리가 이 센터에 들어왔다.
올해는 이달 들어 49마리가
버려진 채 발견됐다.
슬프고
밉다.....
7.
[그림이 있는 아침]
단원 김홍도(1745~1806?)
‘추성부도’ 56 x 214 cm 1805作
‘추성부도’는 김홍도의 그림 중 연도(1805년)가 확인되는
마지막 작품으로
중국 송대(宋代) 구양수
(歐陽修, 1007년 ∼ 1072년)가 지은 ‘추성부(秋聲賦)’를
단원 김홍도(1745년 ∼ 1806년?)가 그림으로 그려낸 시의도
(詩意圖)이다.
그림의 추성부의 내용중
아래 부분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어둑한 깊은 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앙상한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그 소리에 놀란 선비가
“동자야,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나가서 보고 오너라” 하니,
동자가 대답했다.
“별과 달은 희고 맑고 은하수는 하늘에 있는데,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습니다. 소리는 나뭇가지 사이에 있습니다.”
선비가 말하였다.
“아, 슬프다.
이것이 가을의 소리로다!”>
시도 그림도 둘다 짠하다....
8.
[이 아침의 詩]
광해군의 칠언시
風吹飛雨過城頭
궂은비와 거센 바람은
성벽 위를 지나가고
瘴氣薰陰百尺樓
습기를 품은 역한 공기가
백 척 누각에 가득하네
滄海怒濤來薄暮
성난 파도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다에 날은 어두워지고
碧山愁色帶淸秋
푸른 산 슬픈 빛에는
싸늘한 가을 기운이 배어있네
歸心厭見王孫草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왕손초(차나무)에 맺혀 있고
客夢頻驚帝子洲
나그네 꿈속의 제주도는
번번이 잠을 깨우네
故國存亡消息斷
고국의 존망은 소식조차 끊어진 지 이미 오래고
烟波江上臥孤舟
자욱한 안개 낀 강 위엔
빈 배만 홀로 떠 있네
1637년 음력 6월 6일 광해군은
귀양지인 제주도에 도착했다.
이때 광해군은 인생무상을 느껴
시 한 수를 지었는데
이 시가 세상 밖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죽은 후였다.
광해군은 제주도에서 4년간 살다가 1641년 음력 7월 1일, 67세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권력을 잡고 왕위에서 보낸15년보다
유배지에서 보낸 19년이란 세월이 그에게는 인생의 무상함이 가슴에 깊이 새겨진 듯하다.
광해군의 죽음이 조정에 알려진 날은 9일이 지난 7월 10일이다. 《인조실록》에는 광해군의 장례를 두고 인조와 조정 신하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인조는 예를 갖춰 광해군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고 싶었지만, 신하들은 광해군이 폐위된 인물이자 폭군이기 때문에 국장으로 치를 수 없다고 진언하였다. 그 결과 인조는 신하들의 뜻에 따라 3일 동안 조회만 열지 않았다.
이 시는 《인조실록》 1641년 음력 7월 10일 자에 실린 것이다. 《광해군일기》가 아닌 《인조실록》에 광해군의 시가 기록된 이유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광해군이 강화도 교동에서 제주도로 유배지를 옮길 때 사관이 그의 시를 듣고 《인조실록》에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할수 없는
광해군의 마음이 느껴진다
먹먹하다...
9.
오늘의 날씨입니다
10.
재미로 보는 오늘의 운세입니다
당연함이 사실은 기적이라는걸
느낄수 있는 오늘 되십시오
오늘 신문은 여기까지 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