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사의 난 (安史之亂)
**안사의 난**은 755년부터 763년까지 당나라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란으로, 당나라의 역사를 뒤바꾼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반란의 주동자인 **안록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의 성을 따서 '안사의 난'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세계 제국이었던 당나라는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 발생 배경
* **당 현종의 정치 태만:** 당나라의 전성기(개원의 치)를 이끌었던 현종은 통치 후반기에 접어들며 양귀비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 **외척의 발호:** 양귀비의 일가친척인 **양국충**이 재상 자리에 오르며 국정을 농단하고 부패가 극에 달했습니다.
* **절도사 권력의 비대화:** 당나라는 국경 방어를 위해 변방에 군사, 행정, 재정권을 모두 쥐고 있는 막강한 지방관인 **절도사**를 배치했습니다. 그중 안록산은 3개 지역의 절도사를 겸임하며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 **권력 투쟁:** 중앙 권력을 장악한 양국충과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안록산 사이의 권력 투쟁이 심화되었습니다.
### 전개 과정
1. **반란 발발 (755년):** 안록산은 '간신 양국충을 토벌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15만 대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2. **수도 함락과 피난:** 반란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동도 낙양을 점령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국호를 '연(燕)'이라 했습니다. 이어 수도 장안마저 함락되자, 현종은 쓰촨성(촉)으로 피난을 떠나게 됩니다.
3. **양귀비의 죽음:** 피난길에 오른 호위 군사들이 반란의 원인 제공자로 양국충과 양귀비를 지목하며 폭동을 일으켰고, 결국 양국충은 살해되고 현종은 군사들의 압박에 못 이겨 양귀비에게 자결을 명하게 됩니다.
4. **반란군의 내분:** 반란군은 초기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내분에 휩싸였습니다. 안록산이 자신의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당하고, 안경서는 다시 사사명에게, 사사명 역시 자신의 아들 사조의에게 살해당하며 반란군의 결속력이 무너졌습니다.
5. **반란 진압 (763년):** 당나라는 곽도의, 이광필 등의 명장들을 내세우고 위구르(회흘) 제국에 원병을 요청하여 반격을 가했습니다. 결국 반란군이 평정되며 8년에 걸친 전란이 막을 내렸습니다.
### 결과 및 역사적 의의
* **당나라의 쇠퇴:** 오랜 전란으로 국토가 황폐해지고 인구가 급감했으며, 황제의 권위가 크게 실추되었습니다.
* **번진(절도사)의 할거:** 반란 진압 과정에서 공을 세운 장수들이나 항복한 반란군 지휘관들이 각지의 절도사로 임명되면서, 중앙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군벌 세력들이 난립하게 되었습니다.
* **사회 및 경제 체제의 붕괴:** 기존의 토지 제도인 균전제와 조세 제도인 조용조(租庸調), 군사 제도인 부병제가 모두 붕괴되었습니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토지 사유화인 장원제가 발달하고, 재산에 따라 세금을 차등 부과하는 **양세법(兩稅法)**이 도입되는 등 중국 사회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