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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무엇 때문에 그리 열심히 삽니까?
사도행전20:22~24
2015년 1월 11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설교: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한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참된 행복을 얻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힘쓰지만 행복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행복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그것 때문에 불행을 맛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자기 옆에 행복이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행복이 저 먼 곳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늘 자기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이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시나요? 재물입니까? 돈입니까? 아니면 명예와 권력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배우자입니까?
부분적으로 맞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그런 것에서 행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것 때문에 불행해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오는 행복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일시적인 행복은 있을 수 있으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불행한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돈 때문에 행복하다면 가난하면 행복이 없나요?
권력과 명예 때문에 행복하다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다 불행한가요? 아닙니다. 돈 없이도 누릴 수 있습니다. 명예와 권력이 없이도 행복은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행복한 사람일까요?
제일 먼저는 자기가 누군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부여한 사명이 무엇이며,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게 베푸시는 은혜를 맛보고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비록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행복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 알아주시면 된다는 믿음 속에서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왜일까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현재 행복하신가요?
혹시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혹시 행복의 도구를 세상에서 찾고 계시지는 않았나요? 돈에서, 또는 사람들에게서 인정받는 것, 아니면 좀 더 편하게 살고 싶어서 힘쓰고 계시지는 않았나요? 그러나 사람의 참 행복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행복은 환경이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사람의 참 행복은 ‘자기가 누구냐?’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이 무엇이냐?’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렇게 살아갈 때’ 누려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그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한 성경들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그는 결혼도 못해본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는 부인도 없고 자식도 없습니다. 더욱이 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말하는 출세도 크게 못해 본 사람입니다. 더욱이 건강도 좋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다가 자기가 하는 일에 반대자들에게 매도 수없이 맞았고 감옥에 갇힌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가정의 행복을 압니까? 자녀의 재롱을 봤겠습니까? 이성과의 뜨거운 사랑을 나누어 보았을까요? 돈을 많이 벌어 돈 맛을 봤겠습니까? 거기다가 건강도 누려보지 못했고 어려서부터 함께 지냈던 유대인들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신자라고 따돌림 받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행복했습니다. 그는 늘 기뻐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사도바울이 행복했던 이유를 오늘 살펴보면서 우리도 그가 누렸던 행복을 누리며 사시는 성도되시길 축원합니다.
1. 그는 자기가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를 확신하며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 말씀 살펴보세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모아놓고 고별사를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 24절에 보면 그는 자기의 달려갈 길, 곧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24절을 다 같이 봅시다.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래서 그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는 겸손과 눈물로 온갖 시험을 참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무릎 쓰고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께 대한 믿음을 전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치 누가 그에게 “너는 왜 사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는 것처럼 분명하고 명확하게 자기의 사명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사십니까? 왜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려고 계십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왜 살고 계시냐고 물으면 그냥 죽지 못해 산다고 대답들을 합니다. 그래서 삶의 목표도 없고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저 살기위해 삽니다. 그러니 사는 것이 힘이 듭니다. 사는 것이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입으로는 행복하다 말은 하는데 실상은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 힘들고 어려우면 쉽게 생명을 포기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는 하는 사람들의 수치가 2013년도 설문통계로 15.6%가 넘었다 합니다. 약 800만 명이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또 재작년도에 자살을 실제로 시도한 사람만 약 10만 명이 넘는다 합니다.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거죠? 사람들이 삶에 의미를 모르는 것입니다. 자살만 아닙니다. 마약에 빠져 살고, 알코올에 중독되어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목적이 뭔지를 모르니 사는 것에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사탄이 우리를 교묘하게 속입니다. “죽으면 끝이다” “죽음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다” 이렇게 속입니다. 아닙니다. 자살은 결코 문제 해결책이 아닙니다. 자살은 영원한 지옥에 갈뿐 아니라 주변에 수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아주 잘못된 사탄의 계략에 넘어간 선택입니다.
또 어떤 이는 자기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준재인데 부모 실수로 자기가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실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연히 태어나거나 쓸데없이 태어나게 한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이기에 하나님이 우리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더 나아가서 모든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날 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아멘하세요.
특별히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사명이 여러 가지이니 사람 따라 사명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표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기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주님의 길을 평탄케 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포기하는 일로 억울해 하거나 속상해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받은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왜 여러분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그것도 하고 많은 땅 중에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옛날에는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가 민족 증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이 국민교육헌장 외우느라고 고생들 많이 했습니다. 제가 아는 형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군인들도 외우게 했는데 12월 5일 발표되었으니 겨울 아닙니까? 이것을 외우게 하기 위해 팬티만 입히고 차가운 밖에 내보냈답니다. 그리고 와우는 사람만 들어오게 했답니다. 박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나라 발전에 힘쓰자거 강조했지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태어났다고 가르칩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사명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려면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사명입니다. 전도해야하겠다고 생각합니까? 그것도 사명입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싶습니까? 그것도 사명입니다. 선교사를 돕고 있습니까? 그것도 사명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있습니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그것도 사명입니다.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습니까? 찬양을 잘 할 수 있습니까? 성도들을 잘 보살피고 도와 줄 수 있습니까? 그런 것들도 다 사명입니다. 교회에서 성가대로, 교사로, 구역장으로, 강사로……. 그런 모든 일도 막중한 사명입니다.
영국의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어느 날 “사명자가 되자”고 열심히 설교를 했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친 후 어떤 집사님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사명자가 되자고 하셨는데 제 사명은 무엇인가요?” 물었답니다. 설교를 듣고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는데 내사명이 뭔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그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집사님 하루 종일 어떤 일을 하시나요?” 그러자 그가 대답합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빨래하고 음식을 만들고 청소하고 자녀들 9명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이 없답니다. 그러니 내가 뭘 할 수 있나요?”
그러자 목사님이 대답합니다.
“집사님, 집사님은 이미 사명자입니다. 그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기르세요.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사명입니다.” 할렐루야!
결국 그녀는 그 9명 자녀들을 잘 양육했습니다. 그래서 그 9명의 자녀 중에 4명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명은 세계적인 학자가 되었고 또 한명은 영국 경제의 전문가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자녀는 훌륭한 자선 사업가가 되었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면 그것이 곧 사명입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먹고 살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그것을 통해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에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교회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일, 어려운 성도를 세밀하게 보살펴주는 일, 그리고 선교사와 목사님을 위해 날마다 모여 기도하는 일, 이런 모든 일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힘들다고요? 어렵다고요? 바쁘다고요? 그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고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복 주시는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뭔지를 알고 즐거이 그 일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2. 그는 자기 앞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명자에게는 여러 가지 환난과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 때문에 주저 않고 포기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큰 복이 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큰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환난이 있고 고난이 닥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성령에 매임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세요.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앞날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나 성령에 매임을 받아 가는 것입니다. 다른 번역본 성경에는 “성령에 강력한 힘에 이끌려” 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그의 앞길에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입니다. 왜죠? 성령에 매여 이끌려서 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가면 잡히고 고난당하고 할 것이나 그래도 하나님이 이끄시기에 가는 것입니다.
결국 어찌되었나요?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들에게 잡힙니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 로마시민권이 있기에 로마황제에게 상소를 합니다. 그냥 얼마든지 풀려날 수 있었는데 일부러 상소합니다. 그래서 로마로 압송되다가 배에 타고 있던 276명을 구원합니다. 그리고 배가 파선되어 상륙한 멜리데 섬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로마에 도착해서 만 2년 동안 마음껏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결국 바울의 꿈은 이루어졌고 하나님의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앞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 이 세상을 떠날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아시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미래를 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그분께 전적으로 맡기고 두려움 없이 사명감당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앞날에 닥칠 고난과 환난이 두렵다고 되돌아서거나 주저앉는다면 그 사람은 결코 복된 삶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해 성탄절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26일에 중국에 백 목사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고민하다가 27일 토요일 기도하는데 성령님이 중국을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행기표를 알아보는데 토요일과 주일이라 월요일 포를 구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전담 여행사 사장님에게 전화 했더니 월요일 오후 비행기로 가능하답니다. 그래서 표를 구했는데 월요일 저희 모친이 심하게 편찮아 병원에 엠브란스가 와서 응급실에 갔다고 입원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중국을 가야 하는데 가야하나 가지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며 기도했습니다. 어머님이 아파서 입원했는데 나는 중국에 뇌출혈로 쓰러진 분을 기도해주러 가야하나...갈등을 심하게 했습니다. 그때 집사람이 한마디 합니다. “걱정 말고 하나님의 일을 하세요.” 그래서 공항으로 달려갔습니다.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 중환자실로 가서 안수를 했습니다. 중국은 가족 한사람이 하루 한번만 면회가 된답니다. 그러나 제가 목사라 하니 들여보내 주었습니다. 들어가 간절히 기도해주고 그다음 날 학교에 가서 두시간 특강하고 오후에 귀국했습니다. 그런데 30일에 귀국했는데 1월 1일 새벽 1시에 소천하셨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해야 했나요?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했더니 백목사가 정말 고마워하며 큰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모세를 보세요.
시내산에서 부름 받았을 때 그는 두려웠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낸다는 말인가요?” “나는 입술이 뻣뻣하여 말할 줄 모릅니다” 라고 사양합니다. 내가 가서 하나님이 나를 보냈다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바로 왕에게 갔을 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이 주어졌기에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왕을 항복시킵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십니다. 하나님이 그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누가하나요? 전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모세가 한 것은 앞길을 맡기고 순종한 것뿐입니다.
여러분! 우리 선교사들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쉽게 도금수 선교사를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왜 고국을 떠나야 할까요? 왜 혼자계신 어머니를 두고 떠나 못살고 어려운 나라에 가서 고생하나요? 왜 의료제도가 잘되어 있는 한국에 살면 좋았을 텐데 왜 그 어려운 나라로 갔나요? “가라”하시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여 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앞길을 주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믿고 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시키신 그 일을 하는 선교사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길에도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고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맡기고 가면 하나님이 형통케 하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제일 겁을 내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 죽으려 하고 자기 생명을 최고로 귀하게 여깁니다. 현대인의 최대의 관심사는 ‘건강’입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합니다.
흔히들 말하잖아요. “돈을 잃으면 절반을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은 것을 잃은 것이나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건강도 사명을 위해 있어야지 그 어떤 것도 사명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24절을 다시 보세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생명보다 사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도바울의 사명자로서의 자세였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가말리엘의 문하생입니다. 그리고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지파 출신이고 더욱이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던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모르고 살았던 때, 스테반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고 교회를 박해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주님이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이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는 하나님은 그의 사명이 뭔지를 ‘아나니아’를 통해서 가르쳐주었습니다. 행9:15절을 보세요.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이 한 구절에서 자기 시명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놀랍게 변했습니다. 그리고 옛날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명이 생명보다 귀하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 아시지요? 여러분 사명이 끝나는 그날이 여러분 죽는 그날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에게 있는 사명이 여러분 생명줄입니다. 그 사명 때문에 여러분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명이 여러분을 살게 하는 양식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수가성에서 전도하던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양식을 얻어 와서 잡수시라고 합니다. 요4:31절 이하를 보세요.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우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 이것이 뭔가요? 사람이 먹을 양식은 밥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말씀’도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주님은 또 다른 양식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뭡니까? 그것이 사명입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이것, 그것은 다름 아닌 사명입니다.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그것, 그것이 나를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니 사명이 생명보다 귀하다고 믿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여러분! 왜 그리 바쁘게 사십니까? 무엇 때문에 그리 열심히 사십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입니까?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서입니까? 그리 열심히 사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을 위해서 그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그 사명을 위해서라면 현재 여러분이 하고 계시는 일만을 열심히 할 것이 아니라 복음 전하는 그 사역에도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우리는 전교인 선교헌신주일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명령하신 복음 선교 사역, 이 시간 여러분의 시간과 마음과 물질이 드려져서 주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많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셨는지, 주님 앞에 서는 날 계산할 때가 있을 것을 믿고 준비하시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통성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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