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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며 작가인 독일 사람 한스 카로사는 “인생은 만남”이라고 인생에 대해 정의했습니다. 한 마디의 간단한 말이지만 인생에 대해 깊은 의미를 던져줍니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차 안에서, 여러 가게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마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갑니다. 매일 일상이 만남의 연속이고 만남을 통한 일들의 연속입니다. 요즘은 중고거래가 활발해서 중고물품거래 어플을 통해 잠깐 만나는 그런 만남도 있고 어떤 경우는 일생의 획기적인 변환점을 가져다준 놀라운 만남을 갑작스럽게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속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불행해지기도 하는 경험을 합니다. 즉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각자의 운명이 달라질 만큼의 엄청난 만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생이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길을 걷는 사람, 나쁜 사람을 만나 나쁜 길로 걸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좋은 친구, 좋은 옆집 이웃을 만나야 하고 우리 자녀들도 공부도 열심히 할 뿐 아니라 심성이 착한 친구를 만나야 제대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세들어 사는 사람은 좋은 주인을 만나야 하고 집주인은 세입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고용주는 노동자를 잘 만나야 하고 노동자는 사용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흔히 “‘인복’(人福)이 있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정말 우리들은 사람을 잘 만나는 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큰 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학생은 스승을 잘 만나야 하고 스승은 학생을 잘 만나야 합니다. 백성은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하고 지도자는 백성을 잘 만나야 합니다. 인간관계란 여러 만남이기에 이런 만남속에서 서로 잘 되어야 우리는 성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과연 우리가 만나야 할 구세주이신 지, 우리가 기다렸던 메시아이신지를 알아보기 위해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왔습니다. 요한은 특별한 이적을 행하기도 하고 회개를 선포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말씀 사역도 잘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귀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세상 사람들이 요한 자신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고 메시야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 자신의 역할이 메시야가 곧 오실 것을 준비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을 만나야 할 구원받을 백성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를 깨닫게 하기 위해 제자들을 보내 구세주이신지 분명히 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만나 물어보게 하였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도록 외쳤던 세례 요한이라고 할지라도 자신 또한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인생이 무의미한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사람들위에 군림하는 통치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지식인,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유명인이라고 할지라도 참된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의미있는 인생으로 살아가기 위해 구세주, 구원자, 메시야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신 지를 알아보기 위해 세례 요한은 제자를 보내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구세주 예수님, 구원자 예수님을 만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통해 확실히 예수님을 만나고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알아 본 사람 첫째는 예언된 예수님을 기다린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1장 3절입니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며 “예수님 당신이 우리가 기다려왔던 그 분이시냐?”고 물어보게 합니다. 세례 요한이 기다렸던 분은 어떤 분이실까요? 그 분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며 누구나 기다리고 있었던 분이십니다. 그 분이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이미 오실 계획이 알려지신 분이십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 어떤 위대한 인물도 출생하기도 전에 그 사람에 대한 일대기가 미리 기록된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시기 전 이미 오실 것이 예언되었고 이 땅에서 하실 일이 상세히 기록되어 오실 날, 오셔서 행하실 일을 모든 백성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이 창조되어 인간이 타락할 때 구원의 방법으로 이미 예언되었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약 400년 전에 이미 그분에 관한 모든 생애가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태어나실 시기와 장소, 이 땅에 오셔서 겪게 될 고난과 고통, 죽음과 부활까지도 자세하게 예언되어 있고 그 모든 예언들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선지자 미가는 세상을 구할 메시야가 보잘 것 없는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미리 예언했습니다.
미가서 5장 2절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스라엘에는 베들레헴이란 마을이 두 곳이 있었는데 이 예언은 그 중에 한 마을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마을은 곧 ‘베들레헴 에브라다’라는 곳으로 다윗의 선조인 헤스론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유다자손 헤스론가문의 종가집이 위치한 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ㄴ니다. 그런데 여러분, 원래 예수님의 육신 부모님인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이 아니라 갈릴리호수가 있는 나사렛에 살았습니다. 나사렛이라는 동네는 이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직선거리로 북쪽으로 약 150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아기 예수를 몸에 임신하고 있었을 때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지경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고향에서 호적등록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때문에 요셉과 정혼했던 마리아는 요셉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성경에 예언된 대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만약 그 때 호적등록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태어났을 것이고 그렇다면 예언에 합당한 분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정확히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 인간 역사까지 관여하셨고 인간의 마음까지 움직이셨습니다.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마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놀랍도록 정확히 움직이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움직입니다. 성경 예언은 반드시 실현되고 완전히 이뤄진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민수기 23장 19절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성경에 예언된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성취된다는 점에서 성경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과연 이 같은 예언의 근원이 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미래의 일을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잠시 후 일어날 일조차도 모르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8장 7절입니다.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이사야 44장 6,7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살아 역사하시고 계심을 우리 모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아시고 과거에 말씀하신 것을 현재에 이뤄주시고 현재에 말씀하시는 것을 미래에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셨고 그 예언대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분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그 분을 믿는 백성을 천국 백성, 구원받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말씀대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게 만듭니다. 우리에게 예언하시고 그 예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은혜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알아 본 사람 둘째는 삶에서 예수님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1장 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게 됩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본 예수님은 말씀 그대로 이 땅에 오신 분이시며 그 분의 능력은 온 천하를 만드시고 다스리시고 귀신을 내어쫓으시고 눈먼 사람들을 보게 하시는 능력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때 예수님의 능력치료를 경험하고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경험하고 우리의 삶을 고치시는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을 고치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흘리시는 보혈은 우리를 구원하셨고 지금도 그 보혈을 통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과 기적을 우리는 인간의 말로 설명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능력과 기적은 어떤 설명으로도 이해가 될 수 없는 신기한 일입니다. 오직 그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 그 보혈의 능력을 체험하는 사람이 그 신비를 깨닫고 진정 참된 구원자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스스로 행할 수 없습니다. 뛰어난 목회자,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하나님의 종도 만약 자기가 어느 순간 능력자가 되어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이 일을 행했다고 말한다면 그는 이단의 괴수요, 사탄마귀의 종이요, 적 그리스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사를 체험하고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때 “나는 아무 능력없고 단지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능력이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나는 단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했을 뿐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바른 목회자, 진정 하나님의 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되어 평생 앉아서 지냈던 장애인을 보며 놀라운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줄 기도를 할 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사도행전 3장 6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내 이름, 내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의 능력, 예수의 이름입니다. 절대 목회자가 ‘능력있는 목사’로 사람들에게 보여질 때 큰 일 날 잘못입니다. 능력은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내게 능력있다’고 ‘난 능력받았다’고 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위치를 가로채는 죄악입니다.
터키에서 처음으로 자동차를 생산했을 때의 일입니다. 터키 역사상 처음으로 자동차를 생산했으니 경제 발전을 증명하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자동차 시승식을 국가적으로 거행하기 위해 국회의사당에서 사람들을 모아 축제를 벌였고 국민이 지켜보게 했습니다. 행사 막바지 씨말 거셀 대통령이 최초의 생산 자동차에 시승하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통령을 태운 터키의 역사상 처음인 자동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박수치며 환호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동차는 300미터쯤 가더니 푸덕푸덕거리며 시동이 꺼졌습니다. 사람들이 달려오고 엔지니어가 차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한참 땀흘리며 차를 살펴보던 자동차 기술자는 일어나 “제가 오늘 너무 흥분한 나머지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시승회는 싱겁게 끝나버렸습니다. 우리들도 간혹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움직이는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인생은 단지 껍질일 뿐입니다. 내 속에 성령의 휘발유,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살아있고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야 우리는 힘있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능력의 주님을 믿고 역사하는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날 때 보혈의 능력, 세상 모든 권세 위에 뛰어나신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진정 예수님의 행하시는 이적이 우리 삶 속에서 상식이 되어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기적이 상식이 되는 고주리교회 성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알아 본 사람 마지막 셋째는 여러 상황속에서 믿음을 갖게 된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1장 5, 6절입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보기 위해 찾아온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행하심을 바로 앞에서 보고 들었습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금까지 행하셨던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중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 이상 더 좋은 교육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책으로도 지식을 배우지만 실제 경험은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방법을 책으로도 배울 수 있습니다. 외국 언어도 책으로 배우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고 정확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시라는 것을 실제적인 사역을 통해 보여 주셨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을 보고 들은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보고 들은 것을 믿은 사람은 더 복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9장 26절입니다.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신앙은 바로 보고 들은 것을 믿고 보고 들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우리가 경험한 것, 우리가 보고 들은 대로 살아가야 참된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윷놀이가 벌어졌습니다. 두 팀을 나누어 노는 데 한 팀이 완승하게 되어 있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습니다. 이기고 있는 팀은 말이 4개째 났고 상대방은 아직 3개도 말판에 올라오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기고 있는 팀은 이제 뭐가 나와도 판이 끝나는 마지막 말이 끝부분에 놓여 있었습니다. 지고 있는 팀에게 윷을 던질 기회가 왔습니다. 윷을 던져야하는 사람이 갑자기 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는 옆에 앉아 있던 어린아이에게 “네가 마지막으로 나를 대신해서 윷을 던져 봐”라고 했습니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그냥 아이가 윷놀이 체험하도록 재미로 윷이나 던져보게 하려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잠깐만요!”라고 하더니 옆방으로 갔습니다. 좀처럼 기다려도 오지 않아 뭐하는 지 그 아이를 찾아 봤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 곳에서 무릎을 꿇고 “주님! 나 보고 윷을 던져 보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나 가능하다고 그러셨잖아요? 이미 끝나 보이는 윷판이지만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이기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끝내고 돌아온 이 아이가 윷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모가 여섯 번 나오고 윷이 또 나왔습니다. 결국 상대방은 말 하나를 남기고 역전 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환경에도 예수님만 의지하는 순수한 믿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냥 예사롭게 본다면 그냥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는 정말 기도했더니 신기하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런 일까지 관여할까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이 아이에게 영적 훈련을 시키시며 믿음의 체험을 하도록 만든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만한 믿음 훈련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하나님을 기대하는 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우리 믿음의 수준이 더 깊어지고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일서 1장 1절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지 말씀해 주셨고 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예수님 당시에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며 보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경험된 믿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보고 들은 것이 우리의 실제 삶 속에 나타나야 합니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정말 신학교 다니기 전까지는 수 많은 기적을 경험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지’ ‘그런 일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주리에 들어올 때 임했던 놀라운 일들과 지금 이 고주리에서 사역하면서 경험하는 것들을 성도들에게, 그리고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이야기 나누면서 정말 신기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관여하시고 역사하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유부단하고 우리는 나약하지만 하나님께서 정말 준비하시고 행하시고 역사하시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우리가 말씀속에서 보고 들은 것, 주변의 신앙인들이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체험한 것들이 거짓이 아니고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 또한 경험했습니다. 그것이 정말 참 신앙인의 복입니다. 우리는 이런 체험을 항상 알리고 이것을 통해 전도하여야 합니다. 사실 구체적 복음제시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실제적인 전도는 내가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간증이 정말 큰 역사를 이루기에 복음과 간증이 잘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전도와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보고 들은 것을 전하며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항상 지닌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2장 15절입니다.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어느 미국 목사님 책에서 읽은 글의 내용입니다. “한 번은 우리 교회를 방문한 부흥사와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부흥사는 명령조로 종업원에게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당황했고,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식사 전에 우리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녀가 보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우리 동네는 작아서 모두들 내가 목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누군가가 나를 알아 볼까봐 두려웠습니다. 부흥사는 방심하고 있던 순간에 기독교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그녀에게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한 번은 내가 글렌이라는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종업원이 실수로 그에게 뜨거운 커피를 엎질렀습니다. 그러자 그는 뜨거운 커피에 데어 펄쩍 뛰면서도 괜찮다며 그녀를 안심시키고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지배인이 세탁비를 지불하겠다고 했을 때, 글렌은 점잖게 받아들이고, 더 이상의 어떤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이 두 그리스도인은 방심하고 있는 순간에 자신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노출시켰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부흥사는 그리스도의 변변치 못한 증인이었지만 글렌은 그리스도를 잘 증거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기적이나 영적 능력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격으로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참 선한 모습, 참 부드러운 그리스도인으로 이 글렌이라는 분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보여 주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열매 맺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보고 들은 대로 믿고 보고 들은 대로 살고 보고 들은 대로 전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종,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정말 그리스도인으로 복 받은 사람이 행하는 놀라운 일입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그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 말씀대로 오실 예수님을 기대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기다렸던 그 분이 맞는 지 옆에서 지켜보며 기적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기적을 보고 들은대로 다시 그 역사를 간증하며 사람들에게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시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항상 말씀속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찾고 다시 오실 재림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말세 중의 말, 세상 끝날에 오로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순결한 신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때 흥청망청 우리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지 말고 주님을 기다리며 우리가 경험했던 예수님, 보고 들은 것을 간증하며 전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 정말 우리 예수님의 거룩한 백성이고 영원한 천국백성으로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