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8일 사순 제1주일 창세기 9,8-15 1베드로 3,18-22 마르코 1,12-15
-소형섭 아우구스티노 신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재의 수요일에 머리에 재를 받으며 신부님으로부터 듣는 권고입니다.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하던, 예수회의 앤토니 드 멜로(Anthony de mello) 신부는 이러한 글을 남겼습니다. 어떤 구두쇠가 수많은 돈을 저축해 놓고 가장 좋은 투자법을 결정하기 전에 일 년 동안 즐기기로 하였답니다. 그렇게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는데, 갑자기 죽음의 사자(使者)가 나타나 그의 목숨을 거두어 가려 하였습니다. 부자는 조금만 더 살게 해 달라고 사정사정을 해 보았지만 통할 리가 없었습니다. 급기야 “사흘만 더 살게 해 주면 제가 가진 재산의 반을 드리겠습니다.”라고 간청하여도 사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부자를 세게 잡아당기기 시작했습니다. 다급해진 부자는 “하루만 말미를 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그러면 제가 일생 동안 벌어 놓은 돈 전부를 드리겠습니다.”라고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사자는 여전히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부자는 겨우 단 하나의 허락을 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길 수 있는 짧은 시간을 얻은 것입니다. “이 메모를 발견하는 사람은 보시오. 어느 정도 살 만하다면 재산을 모으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남을 위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시오. 나는 엄청난 돈을 모았지만 그 걸로는 단 한 시간도 살 수가 없었습니다.” 앤토니 신부는 덧붙입니다. “백만장자가 죽으면 사람들은 묻는다. 재산을 얼마나 남겼을까? 대답은 물론 전부이다. 사실, 그가 남긴 재산은 남긴 게 아니라, 가지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다는 것’. 또, ‘우리 자신이 먼지이며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어디에서 온 존재이며,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를 깨닫고, 그 마지막 때를 미리 헤아려보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됩니다. 그 마지막 때는 앞서 소개한 부자의 이야기처럼 이 땅의 물질적인 것, 악착같이 모으고 베풀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때일 것입니다. 먼지인 존재가 다시 먼지로 돌아가는데 무엇을 더 챙겨갈 수 있을까요?
결국, 회개 즉, 하느님께로 방향을 돌리는 삶은 먼지 같은 존재인 우리들이 끝까지 움켜쥐고 누리고 즐길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참으로 가치 있고 필요한 일에 마음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가치를 세상의 가치보다 우선시하며, 죽어서도 가져갈 수 있고, 하느님 앞에 내어놓고 자랑도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지금부터 챙겨놓는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사순 시기는 바로 이런 회개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머리에 재를 얹으며 들은 이 말씀, 또 오늘 예수님을 통해 다시 우리에게 선포된 이 말씀이 사순 시기 동안 여러분들 일상의 등불이 되길 바랍니다.
대구대교구 소형섭 아우구스티노 신부 2024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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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8일 사순 제1주일 창세기 9,8-15 1베드로 3,18-22 마르코 1,12-15
- 최혁순 요셉 신부
갈등
갈등(葛藤)이란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 을 의미한다. 여기서 갈(葛)은 ‘칡 갈’ 자를 쓰며 등(藤)은 ‘등나무 등’ 자를 쓴다. ‘갈등’ 의 의미는 덩굴 식물인 칡과 등나무의 특징에서 유래한다. 대부분의 덩굴 식물은 오른쪽으로 회전하면서 주변에 의지한다. 하지만 등나무는 왼쪽으로 회전하면서 성장하기에 칡과 등나무가 만나면 서로의 숨을 막게 되는 악연이 되는 것이다. 이 ‘갈등’ 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갈’ 의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아니면 ‘등’ 의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 우리는 회개와 참회의 생활을 통해 예수님의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사순 첫 주간을 지내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허무의 광야에서 사탄의 목소리를 통해 유혹의 갈등을 겪으신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시며, 과감하게 자신을 포기하시어 갈등을 풀어내신다. 사순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매일의 삶 안에서 예수님처럼 많은 유혹 속에 ‘갈등’ 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신앙의 갈등은 우리의 힘으로 풀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뜻에 맡기지 않으면 우리는 더욱더 조여지는 갈등의 유혹에 머물 수밖에 없다. 즉, 나 스스로 신앙의 힘을 빼지 않으면 우리는 거룩한 사순 시기를 살면서도 갈등의 유혹에 더욱더 조여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한쪽의 힘을 풀지 않으면 절대 풀 수 없는 ‘갈등’ 속에서 힘을 내려놓는 사람이 먼저 ‘나’ 일 때, 우리는 신앙의 갈등도 풀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 하신 이 말씀도 내가 걸어가는 그 길에서 돌아서서 예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이다. 즉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맡겨야 이 세상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의 판단과 뜻이 옳다고 주장하여 갈등하는 신앙의 모습에서 이제 내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삶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 사순 시기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유혹의 ‘갈등’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춘천교구 최혁순 요셉 신부 2024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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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일 창세기 9,8-15 1베드로 3,18-22 마르코 1,12-15
- 서철완 세례자 요한 신부
선택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우리의 주위에는 반대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 많이 있습니다.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 빛과 어둠, 사랑과 미움 등등. 좋은 것들만 존재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현실에서 왜 우리에게 시련과 시험이라는 과제를 안겨주는 것일까요? 사실 부정적인 것은 하느님께서 만들어 내신 개념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사람이 하느님께 돌아서면 하느님과 반대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개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하느님을 선택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분명 하느님께서 유익한 것을 줄 것이라는 진리 혹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인간에게는 보호본능이 있어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선택하게 되어 있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문제는 바로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이해된다는 점이죠. 곧 인간은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이 나에게 정말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을 하고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이 인간만의 식별을 통해 그것이 나에게 시련과 어려움을 안겨준다면 인간은 하느님을 선택하지 않게 됩니다. 이로써 어리석은 인간은 하느님께 등을 돌리게 되어 부정적인 것들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죄이고, 그 죄가 점점 무거워지면 인간에게 돌이킬 수 없는 극한의 어둠이 닥치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을 보려 해도 볼 수 없는 상황이 인간에게 펼쳐지게 됩니다. 분명 하느님께서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는데, 눈앞의 시련 때문에 인간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과연 어떠한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왔는가?’라는 판단기준에 대한 문제가 생깁니다. 판단기준이 흐려지는 이유는 하느님의 것을 가리는 유혹이라는 걸림돌 때문입니다. 이 유혹을 잘 바라보고 잘 선택한 이가 바로 복음에서 소개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유혹을 이기셨나요? 복음에는 간략하게 소개되지만, 마태오복음 4장을 보면, 좀 더 자세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과 마음을 헤아림으로써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하느님의 말씀과 마음을 이성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 안에 담아 두셨습니다. 때문에, 유혹이 다가 와도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금세 알아차리고 곧바로 하느님의 것을 선택하셨죠.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자세를 본받아 우리의 신앙의 자세를 고쳐 세우는 데에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보통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은총은 바로 알아보기가 힘듭니다. 그 형태가 좋은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고, 시련과 힘듦으로 보이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이 가득하신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인간의 나약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를 배웁니다. 우리는 매우 나약한 존재이지만,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이 있기에 소중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이점을 마음속에 간직하여 하느님을 선택함으로써, 선이 충만한 우리 자신이 되도록 한 주간 동안 노력해 봅시다.
전주교구 서철완 세례자 요한 신부 2024년 2월 1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