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면 지도
2. 위치 및 環境
1) 입지조건: 해변 산악마을
2) 거 리: 군청소재지에서 남쪽으로 23km,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9km
3) 위 치: 동쪽으로는 바다(득량면), 남쪽-上鉢, 北쪽-安良村,西豊吉
3. 風水地理的境
1) 형국의 이름과 由來
마을 좌우로는 성처럼 싸고 있고 뒤로는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며 좌측 성벽처럼 있는 도투거지山이 상발산 1, 2번지 山의 형국은 소(牛)가 업드려 있는 형국으로 산윗쪽이 남산개라 하여 남산로 불리다 군내에서는 수심이 어느 곳 보다 깊고 위치가 좋아 왜정시대에 군사 요충지 (군량출하)로 사용하려고 모든 준비 (도로개설 등)를 해두고 포구로 명명 남포(南浦)라고 불리어 왔다. 마을 앞 200m 지점에 호롱등 처럼 아름다운 600~700坪 정도의 섬이 위치하고 하루 2회 모세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현재 교통이 좋아져 낚시꾼들과 상춘객으로 분비고 있다.
<국제영화제 출품작 영화「축제」촬영>
이 마을은 예로부터 경치가 수려해 보는 사람마다 감탄한 곳이다. 이번 영화 촬영장소로 결정, 촬영하게 된 것도 수려한 경치때문이다. 원작자(장홍 회친면 진목리 출신 작가)이 청준(56)의 작품을 육상효(32)의 시나리오로 태홍영화사의 국내중견 감독 임권택 (57) 감 독이 작품화 하여 남포리의 수려한 경치를 배경삼고, 1995년 10월1일부터 촬영, '96년 봄 에나 개봉될 예정이다.
3) 고문서 보유실태
소유자 : 박길웅
芝菴 朴而達(1527~1591)
芝菴公遺稿集 1
芝菴公 遺稿集中에서 발췌함
<倂州故鄕>
讀罷彖經立晚凉
十年住事一滄桑
住來眼慣湖山面
不是他鄉是故鄉
<타향이 정이들어>
읽던책 덮어 놓고 곰곰히 생각하니
지나간 십 년 사(事)가 꿈결 같구려
머물러 살다보니 이고장에 정이들어
타관인 장흥땅이 정이 들었네
<家奴解放>
億昔南來到此州
同行只是一蒼頭
十年勞苦難忘意
特復其身使不无
<종을 풀어주다>
고향을 떠나 이 고장에 올때에 단봇짐 짊어지고 하인하나 따라왔지.
十年間 고생한 일 하도 가엾어 종의 신분 풀어주어 원한없게 하였노라
4) 마을의 문화재 현황(유형, 무형 포함)
1719년 소등섬 (마을앞)에 당제를 모시게 되었다. 동기는 동리유지의 꿈에 녹의 홍상의 색시가 소등섬을 자기 안식처로 하여 제사를 지내주면 마을의 모든 재앙을 막아주겠다고 하여 의논끝에 정월대보름날 5시부터 7시 사이에 아주 엄숙히 모신다.
5) 역사유적
晩性 金三奉 功蹟: 용산동국민학교 교사를 현위치로 이전할때 부지 1,000평을 희사
하였음으로 그 공을 찬양하고 기리기 위해 학구민 일동이 건립하였다.
小燈섬 堂祭: 장흥에서 23㎞, 용산에서 10km, 上金을 지나 오는길과 남하에서 오는길 이 풍길리에서 합쳐지고 5km쯤 동쪽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늑하고 조용한 어촌마을 이곳 이 남포마을이다. 마을앞 200m쯤 떨어진 바다가운데 길이 100m, 폭 60m 크기의 조금한 바위섬에 노송 10여 그루와 잡목으로 푸르게 우거진 섬이 옛날에는 솥뚜껑 같다해서 소부 덩섬으로 불리우다가 현재는 적은 등불이라 해서 소등섬 (小燈섬)으로 불리는데 이 적은 등불의 의미는 마을앞에서 호롱불처럼 앞일을 훤히 밝혀주어 재앙없이 살아간다해서 그 이름을 부여했다. 그런데 이 섬에 제사 당제를 모시게 된 연유는 지금부터 300~400년전 마을 유지의 꿈에 녹의 홍상의 어여쁜 색시가 나타나 오갈 때 없는 몸이 오니 저 소등섬에 내안 식처를 마련하고 제사를 지내주면 마을에 모든 재앙은 물론 풍농·풍어까지 돕겠다고 하여 하도 기이한 일이라 곧 마을총회를 열고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였드니 모두가 하나같이 모시기로 합의, 음 정월대보름날 밤 5~7시 사이에 모시게 되었다. 그후 본당 할머니의 제사 후 분명 효험이 대단했다. 300~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바다에서 사망한 사람이 없고 호식이 빈번한 시절에 호랑이가 마을에 들어 왔으나 말라 죽었으며 당근처에서 대변을 하던자가 현장에서 즉사했고 6.25후 경찰관이 이런 말을 듣고 총을 쐈으나 불발이 되었다. 제물을 장만하는데 맛을 보던 사람이 입틀어 지는 등 효험이 현저하다. 제사준비와 절차는 다음과 같다.
정월 초닷세날 총회를 열고 제관을 엄선한다. 祭主는 50歲가 넘은 중년이상 부부이며 (이는 임신과 월경을 피하기 위함) 깨끗하고 정성이 많은 사람을 선정한다. 선임된 제주는 (전에는 마을에서 비용일체를, 현재는 어촌계에서 지출한다.) 동구밖에 금줄을 치고 섬과 샛길까지도 금줄을 친다. 이때부터 동리 사람들도 변소, 거름, 빨래등을 일체 하지 못한다. 제주는 문밖 출입을 금하고 집안을 떠나지 않으며 모든 준비를 한다. 제물로는 검은 돼지 1마리와 각종 채소는 일반제물과 같다.
쌀과 나무도 부정하지 않은것으로 사용하며 부정한 사람들과 함께 먹는 우물을 사용하지
12. 민 속
• 민간신앙(동제): 성촌후 300년전 마을유지 꿈에 녹의 홍상의 여인이 소등섬에 자기 제 사를 지내주면 마을 모든 재앙을 막아 주겠다 하여 그후 부터 현재까지 모셔오고 있다. 정 월대보름날 5시부터 7시까지 모시며 제물은 필히 검은 돼지 1마리와 각종 채소등으로 모 신다.
제주는 초열홀부터는 외출을 금하고 용변을 하면 목욕을 하여야 하고 잡인 부정한 사람 과도 접근치 않는다. 제주 내외가 三獻을 하며 祝文은 祝으로 한다. 아울러 갯재를 후에 모시고 30명 농악대는 당할머니 잡수신데 접근을 막기위해 농악 당굿을 치고 제사 끝나면 祭主집으로 돌아와 마당굿을 치고 음복하고 다음날 결산한다.
•기타민간신앙: 1906년代만해도 몇가정은 조상단지 성주단지를 모셔둔 집이 있었으나 현재는 사라지고 없으며 무당집은 없고, 사람이 비명횡사 또는 객사, 젊은 청춘의 죽음에는 시킴굿을 하고 있으며 병자의 병이 끈질기면 점을 보아서 큰굿을 한다. 음력 정월에는 무 당에게 신수점을 보는 풍습도 전해오고 있다.
• 민속놀이: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있었으나 정월보름에 당제 후 마당밟기, 농악놀이가 간혹 행하여 진다.
남포 소등섬
14. 천연기념물
마을 앞 200m 지점에 호롱불 처럼 생겼다 해서 小燈島라 불리는 곳이 수목 울창하고 경치가 좋다.
15. 現住民의 意識構造
비단결처럼 펼쳐진 득량만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살았던 1930~1950년대 까지는
저인망(웃다시배), 연평조기배, 병어홀럼배둥 당시로는 연안어장으로 제법 큰 포구였으며 풍어로 마을사람들이 살기가 좋았다. 남포를 들어서면 따뜻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런데 60년대 이후 큰어장이 하나 둘 폐허되고 어촌을 떠나 겨우 사는 사람들은 몇몇 똑딱선으로 연안어장에 나가 출어하여 근근히 살며 교통 또한 불편하고 어촌으로는 항만시설이 부족하여 불편한 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