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기억하라.
1. 1986년 체르노빌
1986년 4월 26일 금요일 오전 1시 30분, 우크라이나의 프리피야트에서 3km 떨어진 블라디미르 리치 레닌 핵발전소 4호기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 후 크레믈린의 고르바초프는 핵발전소의 사고에 대한 보고는 받았지만, 폭발이나 방사능 오염 등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고르바초프는 원자로가 안전하다고 보고 받았다. 곧 아침이 되자, 프리피야트의 4만3천여 명의 주민들 역시 평소처럼 생활했다. 그들 역시 3km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폭발과 방사능 오염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26일 오후가 되어서야 프리피야트에 소문이 돌았다. 발전소에 화재가 났고, 사망자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거리에 마스크를 쓴 군인들이 나타났다. 당시 군인들을 통제했던 그레베뉴크 대령의 증언에 따르면 입안에서 금속성 신맛을 느꼈다고 한다. 방사성 물질은 맛이 없다고 들었는데, 신맛이 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그는 나중에서야 그것이 방사성 요오드의 맛이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아직까지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고 있었던 그때 군인들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방사선을 측정했다. 26일 오후 프리피야트의 방사선은 평소의 15,000배나 높게 나타났으며, 저녁이 되자 600,000배까지 올라갔다. 군인들은 원자로가 불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기계고장이거나 누군가의 거짓말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방사성 물질은 계속 유출되고 있었지만, 그 다음날인 27일 아침에도 공식 발표는 없었다. 당시 5살이었던 유리 마첸코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는 발전소에서 일하는 직원이었고,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떤 예방조치도 없었고 평소처럼 탁아소에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폭발 후 30시간이 지나서야 프리피야트에 1,000대가 넘는 버스가 도착했고, 27일 오후 2시에서야 군인들이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상은 체르노빌 사고 20년 후에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영된 <체르노빌 전투>라는 다큐멘터리의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이다. 보면서도 내용이 믿기지 않아서, 자꾸만 되돌려서 여러 번을 보았다. 설마! 그렇게 심각한 핵폭발이 벌어졌는데, 소방관들은 아무런 보호 장구도 없이 현장에 투입되어 치사량에 가까운 방사선에 노출되고, 바로 옆 도시의 주민들은 하루 반 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평소처럼 생활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2. 2011년 후쿠시마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났다. 노심냉각장치의 비상전원이 고장 나면서 원자로의 압력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3월 12일 오후 3시 36분 후쿠시마 제 1원전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나 건물 외벽이 뼈대만 남고 날아갔다. 이틀 뒤인 14일 오전 11시 3호기에서도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15일에는 2호기와 4호기에서도 폭발음이 나고 화재가 났다. 체르노빌 사고로부터 25년. 안전하기로 소문난 일본의 원전에서 차례로 수소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2012년 2월, 후쿠시마의 사고로부터 약 11개월이 지났다. 사고는 전혀 수습되지 않았다. 지난 1월 27일 일본 환경성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원전사고 직접 피해지역의 약 3분의 1인 92㎢지역에 대한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는 여의도의 11배에 해당하며, 해당 지역의 방사선량이 50mSv가 넘어 현재의 오염 제거 기술로는 방사선량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기준치인 20mSv 이하로 낮출 수 없다고 한다. 사고 이후 거의 1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방사성 물질은 계속 방출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온갖 정보들을 통제하고 감추고 있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사태의 심각성은 이미 체르노빌의 상황을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이 두 경우를 보면, 인간의 오만과 무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인간은 핵에너지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큰소리 쳤지만, 막상 한순간에 닥친 무시무시한 사고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인간은 멍청하고 나약하기만 했다. 원전 사고의 가장 무서운 점은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방사능 물질로 인한 피해가 매우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점이다. 체르노빌의 경우 25년이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반감기가 각각 29년과 30년인 스트론튬이나 세슘 등은 아직 많이 남아있고, 그 피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러시아에 비해 좁은 영토에,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훨씬 더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3. 2012년 대한민국
만약 우리나라에서 원전사고가 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후쿠시마 원전에서 도쿄까지 거리는 대략 240km이다. 도쿄 시내 곳곳에서 이른바 초고농도 방사능 오염지역인 핫스팟이 발견되고 있다는 소식이 여러 차례 들린다. 우리나라에서 생각해보자. 굴비로 유명한 영광 원전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대략 250km이고, 울진 원전에서 서울까지는 대략 210km이다. 남한에서는 어디 하나라도 사고가 난다면 도망갈 곳조차 없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21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7개를 건설 중이며, 앞으로 6개 이상의 신규원전을 더 지을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시점 원전 숫자로는 세계 5위이며, 원전 밀집도로는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보다 원전이 많은 나라 중에서 미국(쓰리마일), 러시아(체르노빌), 일본(후쿠시마)이 핵폭발을 경험했다. 두렵지 않은가? 언제 우리 차례가 될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수명 30년 남짓의 원전을 폐쇄하면 대략 10만년 이상 안전하게 격리 보관해야 할 사용 후 핵연료가 나온다. 10만년이라니! 그 오랜 시간동안 자연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할 수 있는 기술이 현재 우리에게 있을까? 고작 30년을 쓰기 위해 10만년동안 남을 위험한 쓰레기를 자손들에게 남겨 준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 대목에서 나는 또 한 번 인간의 오만과 무지를 깨닫는다.
작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로 독일, 스위스, 벨기에 등이 탈핵을 선언했다. 우리나라도 핵발전으로부터 벗어나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녹색당이 필요하다. 그런 인식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녹색당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현재 진행 중이다. 작년 10월 30일 창당 발기인대회를 치른 이후 꾸준히 당원을 모집 중이며, 2월 5일 경기녹색당이 창당대회를 치렀고, 12일에는 서울녹색당이 그리고 14일 부산녹색당이 창당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핵발전으로부터 벗어나고, 풀뿌리민주주의를 지향하며, 다양한 소수의 가치를 존중하는 대안적인 정치를 꿈꾸고 있다면 지금 바로 녹색당 창당의 주역이 될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녹색당 가입은 http://kgreens.org 에서 할 수 있다. 녹색당은 현재 정부의 방사능 무대책에 대한 헌법소원을 진행 중이며 1,191명의 국민 원고단을 모아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김원국 / 출판인, 녹색당 당원
※ 노원지역신문 엔미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