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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RPG의 등장인물이나 사건은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비하 및 조롱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이를 통해 불쾌감을 느끼게 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립니다.
이 RPG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회사 또는 단체, 그 밖에 모든 명칭 그리고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 같은 예도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이 RPG는 실제 존재하는 국제적 역학관계를 찬양 또는 비판하거나 특정한 사상, 이념, 정치 체제, 인권 탄압과 폭압적 정치 질서를 옹호, 미화하거나 찬양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0. 이름(한국어 명칭) :조석중(趙石中) 플레이어 :NPC 취급 성별 :남성 생년월일 :1909년 3월 4일 모국어 :한국어 구사 가능 언어 :일본어, 중국어 소속 정파 :인민공화당 직위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배경: 강원도 삼척군(현 동해시) 출신의 조석중은 몇 안 되는 강원도 출신의 수재로 일본 유학을 거쳐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공황과 겹쳐 파멸적인 상황이었던 조선 농업을 목격한 조석중은 일본 유학 당시 접한 사회주의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열심히 공부한 것은 아니었던 조석중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전준한-전진한의 협동조합 운동에 가담하였습니다. 그러나 1933년 전준한의 협동조합이 처참하게 해산되자 조석중은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습니다. 삼척으로 돌아온 조석중은 그의 고향이 탄광, 화력발전소 등 일제의 공업 중심지가 되어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조석중은 마치 반성한 척 총독부에 반성문을 제출하고 삼척개발 주식회사에 많은 돈을 투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밀리에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유도했고,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오기섭, 허성택을 비롯한 노동조합 중심주의자들과 자본가 출신의 조석중은 친해지지 못했습니다. 여운형의 중도마르크스주의 그룹은 너무나 순진하게만 느껴졌죠. 오직 당 자체보다 노동자 그룹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재유-이관술 그룹만이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공산당에 제대로 가담하기도 전에 일제는 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자금을 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었고, 협동조합 해산 당시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알고 있었던 조석중은 목숨 걸고 중국으로 망명하였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조석중은 김원봉의 민족혁명당을 지지하는 위치로써 광복군에 가담, 재정 담당 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좌익적인 사고방식은 여러 번 마찰을 일으켰고, 1945년 광복을 맞이하자 조석중은 결국 임시정부와 결별하고 독자적으로 조선에 귀국하였습니다. 조석중이 조선으로 귀환했을 때, 지식인이나 자본가 지인들은 모조리 변절해 있었고, 심지어 이들은 한국민주당이란 이름으로 공개적인 정당 활동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이관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석중은 38선을 넘어 월북하고 말았습니다. 노동조합을 부정하고 어느 정도의 국가 주도 시장경제를 지지하면서도, 또 조선노동당이 아니라 인민위원회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 조석중은 '인민민주주의 국가', 즉 민족적 자본가와 지식인이 노동자와 농민과 손잡는 국가의 경제계획을 짜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조석중은 소련군의 공장 기계 약탈을 반대하는 것을 시작으로 때로는 김일성을 지지하다가도 때로는 반대하다가 6.25전쟁에 반대하며 대표적인 밉상이 되었습니다. 국토완정론과 같은 극단적인 사상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화요파의 상업상 장시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두봉, 내각부수상 홍명희 등도 미국의 개입을 우려하여 반대하는 가운데, 조선인민군 총사령 최용건이 '만약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이 잘못되면 일성 동지만 날아가는 건 아닐 것이다'라는 말하고 민족보위상에서 전격 사퇴하였습니다. 이 와중 조석중은 거의 유일하게 '남조선으로 간 동지들도 한둘이 아닌데 일제가 물러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동족상잔'이냐고 발언했다가 자신의 자리였던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에서 좌천되어 여러 곳을 전전하였고, 오직 허가이의 강등 이후 조석중의 행정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 장시우의 요구로 숙청되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이때 성공한 것이라고는 이관술을 숙청에서 보호한 것이었죠. 그러나 김일성의 추가 공세 직전 평양에 홀연히 나타난 김단야는 그의 처지를 바꿀 예정이었습니다…. 2. 이름 (노어) :아나톨리 레토프 (Анато́лий Летов) 이름 (국어) :비우익 (飛羽翼) 플레이어 :dear0904 성별 :남성 생년월일 :1918년 12월 17일 모국어 : 러시아어 구사가능언어 :조선어 능력치 : 지휘(0)/통솔(0)/인사(2)||회계(0)/행정(1)/탐문(7)||호신(3)/공작(7)/장악(2)||화술(0)/선전(0)/위조(7) 트레잇 : [민족의 태양 앞 이카루스] :아군, 혹은 이 캐릭터를 아군이라 믿는 상대를 대상으로 한 체술 굴림에 +1 [시한부] :장악 굴림에 무조건 +2, 호신 굴림에 무조건 +2 잔여 경험치 : 관리(0)||지혜(0)||체술(0)||매력(0) 소속 정파 :- 직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배경 :남한 대토벌 작전 이래로 연해주로 이주한 의병장의 아들인 레토프는 실향민으로써의 고통을 톡톡히 느낀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일가친척과 함께 고향에서 탈출한 이후로 연해주를 거점에 두고 조선 독립 운동을 지원하며 살았으나, 그러한 생활은 길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연해주 4월 참변 당시에 사망했고, 레토프는 어릴적부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걸 익혀야만 했습니다. 연해주 한인촌의 고려인 학교를 다니며, 어렵사리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던 그는 대숙청을 맞아 자신이 쇼비니스트가 아닌 스탈린과 소련에 충성하는 건강한 애국자라고 공개적인 충성맹세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독소전이 발발하자 최전방에 투입되었고, 다행히 살아남아 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VE를 맞이했습니다. 이제 레토프를 상대로 의심을 푼 상부에서는 레토프에게 조선으로의 파견을 제안했고,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레토프와 김일성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더 강경하면서 민족주의적인 국내파와 친해졌죠. 김일성과 사이가 나빠진 탓에 레토프는 전쟁 동안 개같이 사지란 사지는 오갔지만, 결국 살아남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제부터 그는 그의 아버지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열렬히 투쟁 할 것입니다... 3. 이름(구 명칭, 필요시) : 미야모토 코지로 이름(한국어 명칭) : 이덕삼 플레이어 : 통장 성별 :남성 생년월일 :1924년 2월 4일 모국어 :조선어 구사가능언어 :일본어 능력치 : 지휘(3)/통솔(3)/인사(2)||회계(2)/행정(3)/탐문(3)||호신(2)/공작(0)/장악(7)||화술(3)/선전(3)/위조(0) 트레잇 : [광부의 철권] :대상자 자신이 인지 중인 거짓말을 하는 상대를 대상으로 한 체술 굴림에 +1 잔여 경험치 : 관리(0)||지혜(0)||체술(2)||매력(0) 소속 정파 :정통파 직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및 산하 북남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배경 : 이덕삼은 아버지 이형곤의 삼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힐아버지 대까지 이북에서 알아주던 덕대였던 집안은 일제가 조선을 집어삼키며 같이 시원하게 말아먹혔습니다. 할아버지는 화병으로 타계했고, 그나마 남은 알량한 재산도 할아버지의 차남이던 아버지가 장남에게 전부 빼앗기며 돈 한푼 못건졌죠. 이는 전화위복이 되었는데, 그렇게 아버지가 덕대를 포기하고 광부로 들어서며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을 했고, 그의 삼남이던 덕삼도 아버지를 따라 광부-사회주의 운동가-징용 루트를 타게 되었습니다. 운좋게 살아남은 뒤 고향으로 돌아오고 얼마 안있으니 부르주아에 친일파였던 큰아버지가 총살당하는 장면을 보는 일도 생겼죠. 그리고 조선이 분단될 때 그는 김일성파의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덕삼의 가문은 분명 이북의 광산을 토대로 한 유지가문이었지만, 오히려 그 인맥이 초기 사회주의 확장에 도움이 되었기에 노동당 입장에서도 이덕삼을 부르주아 성분이라고 배척하기보다는 끌어안기로 선택한 것이었죠. 물론 김일성파는 이덕삼에게 그리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이덕삼도 자신이 왜 불렸는지에 대해 잘 모를 지경이었죠. 고향 인민위원회에서 일하던 이덕삼은 전쟁이 발발하자 징병되었습니다. 부사관으로 임관한 그는 꽤나 많은 활약을 펼쳤고, 백마고지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귀향한 뒤에는 전쟁영웅 중 한 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백마고지 전투로 부상을 입어 귀환하고, 이후 군부의 지지와 정통파의 인재 영입에 따라 정통파의 정치인으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을 뻔했습니다. 군인 생활이 의외로 잘 맞았지만 출신기반이자 정치적 힘의 원천은 광산 광부들의 지지와 아버지에게 배워온 부르주아 수준의 지식은 가지고 있었던 이덕삼은 정계에 발을 들이고 얼마 안있어 북한을 현상유지 시키려는, 선군정치화 하려는 정통파와 마찰을 빚기 시작했습니다. 경공업화 및 노동자 복지 우선을 외친 이덕삼은 이내 김일성과 그의 파벌, 그리고 정통파에게 외면을 받아갔고, 조만간 있을 숙청의 시간에 대체자, 즉 다른 전쟁영웅으로 그의 자리를 채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전에 김일성이 먼저 날아갔지만요. 4. 이름(구 명칭, 필요시) : 이석주(李錫周) 이름(한국어 명칭) : 조일봉(祖一鋒) 플레이어 : E.E.샤츠슈나이더 성별 :남성 생년월일 :1920년 10월 11일 모국어 :조선어 구사가능언어 :일본어, 영어(약간) 능력치 : 지휘(2)/통솔(2)/인사(3)||회계(1)/행정(3)/탐문(4)||호신(3)/공작(4)/장악(3)||화술(4)/선전(4)/위조(0) 트레잇 : [번쩍이는 총칼의 빛] :'목적과 의도가 타인에게 공개되었고, 자신이 대상이 아닌 선언'을 진행할 때 +2 잔여 경험치 : 관리(0)||지혜(1)||체술(0)||매력(0) 소속 정파 :남로당파 직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및 전략로케트군 사령관, 차수 배경 :조일봉, 또는 이석주는 구한말 무관벼슬을 지내다 아관파천 때 행방이 묘연해진 이유하의 손자입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집안은 이미 풍비박산난 상태였으며, 대고모 이진하는 이미 사회주의 투쟁을 위해 연해주로 떠난 상황이었습니다. 오직 그의 아버지 이은수(*이름은 적절히 변경 가능)만이 무단통치의 엄혹한 세월 속에서 마지막 남은 가산으로 옛 전우들을 챙겨주고 있었으나, 이은수와 그의 아내는 1921년 일경에게 끌려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갓난아기 때 천애고아가 된 이석주는 먼 친척뻘이자 아버지 이은수의 절친이었던 한 자본가 집안에 입양되었고, 그 집안의 고명딸 이화영과 남매처럼 지냈습니다. 물론 두 사람이 맺어지는 일은 없었는데, 이는 이석주가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지향성을 타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은 사춘기를 거쳐 “마초이즘”으로 발효되었고, 1937년 중일전쟁이 벌어지자 황군에 자진입대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천황 폐하께 혈서를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요. 일제 당국은 그를 입대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불령선인 집안의 사보타주로 판단하고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패기만 했습니다. 그제서야 이석주는 “빼앗긴 자들은 빼앗은 자들에 죽을 때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는 간단한 진리를 깨닫고 이야기로만 듣던 대고모 이진하를 찾아나섰으나, 모두 허사였습니다. 연락 자체는 닿은 것 같았지만, 이진하는 응답하지 않았죠. 이 과정에서 전설적인 보천보 전투의 소문을 듣고 1937년 함경도 혜산으로 찾아가 박금철의 갑산파 휘하에서 활동하였으나, 박금철의 수감과 전향 이후 소규모 무력투쟁을 실시하다 실패해 경성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그 무렵 재건 중이던 ’경성콤그룹‘에 가담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석주는 콤그룹 내 무투파, 군사적노동조합파의 선봉으로서 때로 국수주의적 경향을 보였으나, 박헌영의 현란한 가스라이팅은 그를 국제 프롤레타리아 군사혁명주의자로 바꾸어놓았습니다. 물론 그를 완전히 ‘교화’시키기 전에 박헌영이 일경의 포위망을 피해 지방으로 내려가버렸지만요. 일제가 마지막 발악을 할 무렵 이석주는 이현상 동지를 따라 덕유산으로 들어가 은거했고, 남로당이 이박사와 미군정에 의해 착실히 박살나는 과정 속에서도 “진정한 인민해방의 그날을 위한 당 무장세력”을 조직하는 실무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해 퇴로가 끊긴 이후에도 이석주는 오히려 더 가열찬 빨치산 투쟁을 이어갔으며, 이름도 “조국 통일의 선봉”을 의미하는 조일봉으로 고쳤습니다. 물론 이는 민족주의적 열망같은 게 아닌 세계 사회주의의 승리로서의 통일을 말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몇 없었죠. 어쩌면 그랬기에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철저히 피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1953년 휴전협상으로 다시 송환되어 이제는 북조선의 1인자가 된 박헌영과 어색한 악수를 나눈 조일봉은 그의 송환에 도움을 준 오승택이라는 자가 코민테른 총회에서 매우 우익적이고 반동적인 선동을 일삼았다는 것을 듣고 아연실색, 노동당 선전부의 지시로 오승택을 매장하는 데 동참했습니다. 1954년 이제는 매제(또는 매형)이 된 박철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일봉은 최종계급 소장으로 전역을 택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국토완정은 적어도 수십년간 달성될 리가 없으며, 설령 억지로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민족주의의 승리이지 사회주의 형제애의 승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조일봉은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 조국이 사회주의의 다음 단계로 이행하기를 오매불망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멈추지 않는 그의 심장이 원하는 바이니까요. --- 저장소 1. 이름(노어) :로디온 흐리스토포로비치 오가이(Родион Христофорович Огай) 이름(한국어) :오승택(吳承澤) 플레이어 :E.E.샤츠슈나이더 성별 :남성 생년월일 :1919년 9월 29일 출생지 :일본군 점령 하 극동,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 모국어 :러시아어 구사가능언어 :조선어, 부랴트어(약간) 능력치 : 지휘(1)/통솔(0)/인사(4)||회계(3)/행정(0)/탐문(1)||호신(3)/공작(1)/장악(1)||화술(4)/선전(4)/위조(0) 트레잇 : [빛을 쫓는 불나방] :상대방에게 '아무 근거가 없는' 거짓말을 할 때 +1 잔여 경험치 : 관리( )||지혜( )||체술( )||매력(2) 소속 정파 :없음(최종 소속 정파 :조선인민당) 직위 :없음(최종 역임 직위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 배경 : 고려공산당 전 조직국장이자 동방자유군단의 전 2인자이며 대숙청 시기 사회적으로 매장되었다가 형벌부대 연대장으로서 전사한 왕년의 “전설적 적색투쟁가” 오하묵(흐리스토포로 오가이)의 양아들 로디온(로쟈)은 자신의 생부모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계 생부와 조선계 생모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대략적인 정보를 제외하고 말이죠. 로쟈는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열정적으로 조국해방과 혁명을 위해 일하는 아버지를 존경했습니다. 아버지의 족적을 따라 피오네르단 활동에도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어려서부터 붉은 군대의 영웅이 되는 것을 꿈꿨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갓 성년이 된 로쟈가 군사비행학교에 입학할 무렵 시작된 대숙청은 그의 세계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피오네르단 후배들이 고위 당직자의 집을 쳐들어가 조리돌림을 놓는 혼란 속에서 아버지 오하묵 역시 갖은 비난을 당했고,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로쟈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바로 그제서야 밝혀진 출생의 비밀이었는데, 즈다노프의 끄나풀들은 로쟈가 1920년 니콜라옙스크 사건 당시 마구잡이로 민간인을 학살했던 전쟁범죄자 부부의 친자라는 점까지 끄집어내며 공격했던 것입니다. 오하묵이 양아들을 지키기 위해 형벌부대 지휘관으로 자원하여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자 로쟈의 세상은 무너졌습니다. 1943년 고등비행교육을 마치고 공군 중위로 임관한 로쟈는 대조국전쟁 종전 이후 대위 전역을 신청했으나 한국전쟁 발발 이후 항공지원단에 차출되었고, 미군 B-29 폭격기의 무차별 폭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미그기를 타고 미군 세이버 전투기와 교전을 벌이면서 그는 북조선의 모든 도시가 잿더미로 변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죠.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자신의 핏줄, “더러운 범죄자의 피”를 저주하던 로쟈는 1951년 2월 황해도 상공의 치열한 공중전에서 격추된 뒤 마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소련 국적자이자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의 아들을 전향시켜 프로파간다로 이용하고자 했던 국군 당국은 집요한 심문과 회유를 반복했고, 로쟈는 - 비록 이승만을 찬양하는 것은 거부했지만 -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며 전향서를 제출했습니다. 숙련된 조종인력이 절실히 필요했던 공사교장 최용덕은 김정렬 공참총장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P-51 머스탱의 조종간을 쥐어주었죠. 그러나 로쟈는 이미 김일성 정권과 “남조선 부르주아 과두정권”이 민족상잔을 도구로 제 권력을 연장하는 적대적 기생행위를 일삼는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고, 1952년 1월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 때 대동강 기슭에 머스탱 기체를 고의로 추락시켰습니다. ”대한민국 공군 오승택 중령“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던 4월, 로쟈는 MiG-15기를 타고 다시 전장에 나타났습니다. 두 정권 모두를 배신하여 숙청만을 기다리고 있던 로쟈는 이대로 죽을 수 없었습니다. 조선 민족으로 하여금 전쟁이라는 단어를 영구히 잊게 하고 다시는 상잔의 비극이 벌어질 수 없게끔 한다는, 그리하여 낳아주신 생부모의 피보다 길러주신 아버지의 피가 더더욱 진했음을 증명할 기회를 이렇게 날려버릴 수 있겠습니까? 혼자서라도 악착같이 살아남을 결심을 하려던 도중, 김일성이 실각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혹시, 높으신 그 분 여호와의 뜻이었을까요? |
이벤트 16 ex) 장악을 2로 올립니다.
질문 : 이카루스의 적용 대상은, 양측 모두가 아군이라 생각해야 하는건가요? 아니면 대상만 그렇게 생각해도 되나요...?
대상이 비우익'을' 아군이라 생각할 때입니다. 그래서 중국 이벤트 당시에 트레잇이 내내 적용되었죠.
완료
에피소드 17) 통솔 3으로 올리겠습니다.
이벤트 17)
수령: 지혜1, 매력2 (지혜1, 매력4)
사용: 선전3->4(매력 4)
잔여: 지혜1
이벤트 17 종료) 호신을 3으로 올립니다.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