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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석동호회 단톡방에서]
[장영봉대표님제공]
참으로 소중한 것
영국의 거부였던 피츠제럴드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습니다.
아내를 몹시 사랑한 그는 아내가 남겨 놓고 간 단 하나뿐인 열 살 갓 넘은
그의 아들을 더욱 사랑하고 정성을 다해 돌보았습니다만
아들마저 병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홀로 된 피츠제럴드는 그의 여생을
유명한 미술작품을 수집하며
그 슬픔을 달래려 노력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피츠제럴드도 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 자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 어떻게 재산을 처분할 것인가를
유언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언에는 그의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혀 두었습니다.
그가 많은 돈을 들여 수집한
미술 소장품들을 경매에 붙이라는
지시가 그 유언서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수집한 귀한 소장품들은
양적으로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질적으로도 참으로 고귀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소장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경매장에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소장품들은 경매에 앞서서 전시실에
전시되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전시된 소장품 중에
별로 뛰어나지 않은 그림 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 작품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란
제목이 붙여진 작품으로서 지방의 한 무명 화가가 피츠제럴드의 외아들을 그린 볼품없는 그림이었습니다.
경매가 시작되자 제일 먼저
그 그림이 경매에 붙여졌습니다.
하지만 그 그림은 인기가 없어
아무도 응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뒷자리에 앉아 있던 초라한
모습의 한 노인이 손을 들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
“제가 그 그림을 사면 안 될까요?”
그는 피츠제럴드의 아들을 어릴 때부터 돌보았던 나이들어 늙은 하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그림을 샀습니다.
그 때 피츠제럴드의 유언을 집행하는
변호사가 경매를 중지시켰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피츠제럴드의
유언장을 읽었습니다.
"누구든 내 아들의 그림을 사는 사람이 내 모든 소장품을 갖도록 해 주시오.
이 그림을 선택하는 사람은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으므로 모든 것을 가질 충분한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진정 소중한 것인지 모른 채 우리는 살아 왔는지도 모릅니다.
확인하고 선택하는 능력의 부족으로
때로는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모든것을 버려야 했을 수도 있고
하찮은 것을 얻기 위해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버릴 것과 취할 것을 바로 알고
익힌다면 우리가 영위하는 삶은
그렇게 서두를 필요도, 오류를 범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소중한 것은 멀리서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있어 하찮게 여겨지던 바로 그것일 수도 있음을 유추해 봅니다.
자기 스스로를 바로 알리고, 알 수 있음이 때로 이런 깊은 내면을 갖게 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일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 두십시요.
지금 마주앉은 상대가
지금 읽고있는 글이 참으로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면 우리 앞에 전개된 모든 일들을 하찮게 보아 넘기는 잘못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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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생지락(餘生之樂)
"남은 인생 즐겁게 살자!"
라는 뜻이지요.
공자(孔子)도
"즐기는 자가 최고"
라고 했고,
로마의 정치가였던 '키케로'는
"젊은이 같은 '노인'을 만나면 즐겁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도 선한 일을 하며 낙을 누리는 것이 최고라고 했습니다.
'재물'(財物)이 아무리 많아도
'인생'을 즐기지 못하면 그것은 '웰빙'(Wellbeing)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인생'과 '풍경'을 즐기는 것은 '지혜로운 삶'의 비결입니다.
바쁘다고 서둘러 지나치지 말고 '인생'이라는 길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겨보십시오.
'가을'을 기다리느라 '봄날'의 포근함을 놓치지 마십시오.
'겨울'이 되어서야 푸르렀던 '여름'을 그리워하지 마십시오.
갈 곳 없고 할 일이 없으면 안 됩니다.
주책없이 '완고'하고 '고집'스러워도 안 됩니다.
'잘난 체' 다 '아는 체' 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단순'하고 '순박'하고,
'소탈'해야 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황혼은 베풀며 너그러워야 합니다.
일이 있어 '늙을 틈'이 없어야 합니다.
바보처럼 앉아서 기다리지 마십시오.
떨치고 나가 길을 찾고,
매일 즐기며 사십시오.
오늘 '하루'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행복'은 그 안에 있습니다.
앞만 보고 산을 오르다 보면 옆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기 쉽습니다.
조금은 느리게 오르다 보면 놓치고 가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이 순간을 '소중'하고 즐겁게 보내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항상 즐거움을 담고, 유쾌, 상쾌, 통쾌
하고, 멋지게 늙어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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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채동석씨 친구^글을 지하철안에서 잃고
,이런일이 자주있구나 싶어 내주변에 서도 있어서 띄웁니다
아래일 생긴일 이후로 차시간 노치거나
기타 불가시 좌우명으로 돌리고 지내며 웃으며 삽니다.....
내주변에서 있었던일!!
88올림픽 전 이락크에서 서울로 오는KAL폭파 사건시
그비행기 승객 대부분은 이라크 에서 근무한 해외 근로자 들이며,
그때 난 정우개발 직원으로 사우디지사 에서 근무중이 었으며,
당시 잘나가던 회사가 오너 의 중풍으로 일본병원서 치료 중
회사의 어려움 으로 법정관리를 받다가 벽산건설 로 넘어가
실사팀이 사우디 에 왔는데 그중 후배가 있었으며
갓돌 지난아기가 있어 한 2주떨어져 있다보니 보통 안달이였다,
그리고 사우디 실사를 마치고 이락크 로 가기위해 리야드 공항 에 갔는데
중요한 여권을 사무실(숙소)에 두고와
비상 수단으로 사무실 직원이 비행기 출발 직전 공항으로 가져와 겨우 출발 비상이였는데....
이락크에 가서도 집에빨리 가고싶어서 일주일에 한번뜨는 비행기를 놓치지 안기 위해서 안달
그 운명의 비행기를 타게됨,
그런데 우리이락크 철도현장 소속 경리과장은
같은 비행기로 휴가 스켓쥴 이었는데 현장 소장님이 실사로 인한
잔일 처리하고 다음주로 가라하여 명령거부 못하고 공항까지와
실사팀과 휴가자( 8명) 만 송별하고 되돌아 감....
그래서 그 소장명령에 순응한 경리과장은 그비행기를
타지않아 살고,안달한 후배를 포함 휴가 근로자
는 모두 희생한 사실임...
어렴프시 기억하고 싶지않았는데 위내용 읽고서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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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cafe.daum.net/gwangnaru77/EcI1/47015?svc=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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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할렐루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도 복된 하루 되세요
♡♡♡♡♡♡♡
《 紳士道, gentlemanship》
1912년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닥쳐 침몰하는 과정은 영화로 재연됐습니다.
하지만 영화만으로 실제 상황을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생존자인 부선장은 오랜 세월 침묵 끝에 드디어 사고 당시의 이야기를 공개했습니다.
1912년 4월 14일은 공포의 날이었습니다. 사고로 1,514명이 사망했고 710명이 구조되었습니다.
사고 당시 38세였던 타이타닉호의 이등 항해사 '찰스·래히틀러'씨는 구조된 승객을 책임지기 위해 선원 중 유일하게 구조된 승무원이었습니다.
아래는 '찰스·래히틀러'씨의 타이타닉호 참사의 자세한 사정을 담은 17페이지 분량의 회고록입니다.
선장은 침몰을 앞두고 여성과 아이를 먼저 구조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많은 여성승객들이 가족과의 이별 대신 남아있기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높은 소리로 ‘여성과 아이들은 이리 오세요!’라고 불렀지만, 가족을 버리고 혼자 구명보트에 오르려는 여성과 아이는 몇 명 없었습니다.
'래히틀러'씨는 "살아 있는 동안 그 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첫 구명보트가 바다로 내려가고, 저는 갑판 위에 있던 한 여성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어서 구명보트에 오르세요!”
그녀는 뜻밖에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니요, 저는 배에 남겠어요.”
이 말을 들은 여성의 남편이 “그러지말고 어서 타세요! 여보!”라고 말하자, 여성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혼자 가지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이 배에 남을 거에요.”
그것이 제가 본 그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애스터 IV(당시 세계 최고 부자)씨는 임신 5개월 된 아내를 구명보트에 태워 보내며 갑판 위에 앉아, 한 손에는 강아지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시가 한 대를 피우면서 멀리 가는 보트를 향해 외쳤습니다.
"사랑해요 여보!"
승객들을 대피시키던 선원 한 명이 '애스터'씨에게 보트에 타라고 하자, '애스터'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사람이 최소한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자리를 곁에 있던 한 아일랜드 여성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배의 파편들에 의해 찢겨진 '애스터'씨의 시신을 생존자 수색 중이던 승무원이 발견했습니다.
그는 타아타닉호 10대도 만들 수 있는 자산을 가진 부호였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으로 양심을 지킨 위대한 사나이의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성공한 은행가였던 '구겐하임'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로 갈아 입으며 이처럼 말했습니다.
“죽더라도 체통을 지키고 신사처럼 죽겠습니다.”
'구겐하임'씨가 아내에게 남긴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배에는 나의 이기심으로 구조받지 못하고 죽어간 여성은 없을 것이오. 나는 금수만도 못한 삶을 살 바에야 신사답게 죽을 것이오.”
미국 메이시(Macy’s) 백화점 창업자 '슈트라우스'씨는 세계 2번째 부자였습니다.
그가 어떤 말로 설득해도 아내 '로잘리'씨를 구명보트에 태우지 못했습니다.
아내 '로잘리'씨는 “당신이 가는 곳에 항상 함께 갔어요. 세상 어디든지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라며 남편을 두고 배에 오르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8번 구명보트의 책임 선원이 67세의 '슈트라우스'씨에게 “누구도 어르신이 보트를 타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구명정 탑승을 권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슈트라우스'씨는 단호한 말투로 “다른 남성들보다 먼저 보트에 타라는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라며 생사의 순간에도 초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63세의 아내 '로잘리'씨의 팔을 잡고 천천히 갑판 위의 의자에 앉아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현재 뉴욕 브롱크스에 '슈트라우스'] 부부를 기리는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바닷물로 침몰시킬 수 없었던 사랑’>
프랑스 상인 '와트열'씨는 두 아이를 보트에 탄 여인들에게 부탁하고 배 위에 남아 아이들과 작별했습니다.
두 아들은 이렇게 구조되었고 세계 각지의 신문사들이 어머니를 찾을 수 있도록 연달아 사진을 실어주어 어머니와는 재회할 수 있었지만, 배에 남겨진 아버지는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남편과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리더파스'씨는 남편을 꼭 껴안고 혼자 살아남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남편은 주먹으로 그녀를 기절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명보트 안이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재가하지 않았으며 남편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리스 로잔의 생존자모임에서 '스미스' 부인은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한 여성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제 두 아이가 구명보트에 오르자, 만석이 돼서 제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때 한 여성분이 일어나서 저를 구명보트로 끌어당기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올라오세요. 아이들은 엄마가 필요합니다!”
그 대단한 여성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위해 <이름 없는 어머니>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희생자 중에는 억만장자 '아스테드', 저명 신문가 '헴스테드', 육군 소령 '바트', 저명 엔지니어 '루오부어' 등 사회의 저명인사가 많았지만, 이들 모두 곁에 있던 가난한 농촌 부녀들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주요 승무원 50여 명 중 구조를 책임졌던 이등 항해사 '래히틀러' 외 전부 자리를 양보하고 배와 함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새벽 2시, 각자 도망가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1번 연산사 '존·필립스'씨는 여전히 전산실에 앉아 마지막 순간까지 ‘SOS’를 입력하며 자신의 보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선미가 물에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삶과 죽음의 마지막 순간, 사람들이 서로에게 외쳤습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날, 우리 모두 위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 제가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습니다. 일본 철도원 차장인 '호소 노텍스트'씨는 여장을 한 채 여성과 어린이들로 채워진 10번 구명보트에 올랐습니다.
그는 귀국 후 바로 퇴직을 당했습니다. 모든 일본 신문사와 여론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으며 그는 십여 년 뒤 후회와 수치로 가득 찬 삶을 마감했습니다.
1912년 타이타닉호를 기리는 자리에서 타이타닉호를 건조한 선박회사 'White Star Line'는 희생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해상 규칙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의 행동은 약자들에 대한 배려이자, 그들의 개인적인 선택이었습니다.”
‘Unsinkable’의 저자 '다니엘 알란 버틀러'는 약자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삶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치고 혼자 남겨져 돈과 유산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죽음 혹은 삶의 어떤 고난과 마주친다 해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한 분들의 희생정신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무엇이 이 분들로 하여금 목숨을 던지는 고귀한 결단을 내리게 하였을까요?
사랑, 희생, 배려, 품격, 명예? 아니면, 인간적인 성품......
매일 만사에 허덕이는 우리 삶,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까요, 지금 내 삶을 지탱하고 이끌어가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당장 내인생의 타이타닉호가 침몰해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요?
내가 이 세상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에서 놓아서는 아니될 가치는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답하며, 잊었던 내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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