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머리 무릎 발 무릎 발" 선생님의 노래와 손동작에 맞춰 제대로 몸도 못 가누면서 앙증맞은 고사리 두 손을 움직여 차례로 머리 어깨 무릎 발에 갖다붙이는 유치원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에 얼른 떠오르는 건 애오라지나무밖에 없다. 몸통과 가지와 잎새와 뿌리, 이 사대육신만으로 애오라지 한세상을 사는 나무들. 그런 그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그 나무들 앞에서 내가 득의 양양할 때가 있다. 산책길에 누가 나무 이름을 물어올 때인데, 내가 아는 나무는 고작 열 손가락 안팎이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애오라지나무!"라고 대답한다. 상대방이 미심쩍어하는 눈치가 보이면 "학명과 원산지는 잘 모르지만"이라거나 "작은 식물도감에는 안 나오지만"이라는 꼬리말을 붙이면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 그런 나무도 다 있어? 처음 듣네"라고 못 미더워하면서도 그냥 속아넘어가(는 척해)준다. 애오라지 하늘의 태양에 순종하고 달빛 별빛에 감사하고 비바람에 울고 웃는, 뿌리는 일찍이 대지와 한몸이 되어 있으니 세상의 모든 나무는 사심 없는 애오라지나무이다. 애오라지 하나로 무장한 것은 나무밖에 없는 것 같다.애오라지 그렇게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는 나무 근처에서 그 그늘 아래에서도 살 자격이 없지만, 마음 붙일 곳 하나 없을 때 찾아가 부둥켜안고 뺨 부비고 싶은 것은, 그리고 잘못되어 목을 매게 된다면 그것 역시 애오라지 애오라지나무밖에 없을 성싶다.
[중얼거리는 천사],문학동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