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녁 무렵 커피를 진하게 타먹었는지
영 잠들지 못해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시를 접속한다
몇 차례 검색창 닫히고
벚꽃잎 흩날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아름다운 꽃하양에 이끌림당하다가
꽃시 쫓아 끝까지 가보겠단 오기 발동해
주인장 프로필을 검색한다
꽃 하양 날리는 배경에 시에 관한 댓글까지 천상 여자군, 피식 옷는 동안 머릿속 불 꺼지고 성별 란의 남자가 읽힌다 졸지에 화면 나가고 그루터기 잘린 그림자 내게 드리운다 일전에도 그런 일 있었다
꽃나무와 시를 좋아하는 건 당연 여자라고 생각하는 나 호러물을 좋아한 내가, 이념 역사 정치 얘길 듣길 좋아한 내가, 쌍절곤과 펜타곤 워게임과 오장군의 발톱 같은 극(劇)을 눈불 켜고 본 내가, 아집의 편견에 발모가지 넣고 있는 건 나였다. 바위를 폭파하는 상식적인 사회보다 나였다 민중보다 나였다
시집을 인생 신조로 잡는 여동창들을 비웃은, 그런 것처럼 난 달라, 시를 쓰니까 개인에서 전 인류 박애까지도 쓸가니까 노동자 아내가 될 거고 너희보다 똑똑하니까 실천하며 살 거니까 내 속 숱한 우월로 얕잡아도 본 난 결국 노동자, 아내도 되지 못하고 어수룩하게 학벌과 수상을 인적정보의 책날갤 펼쳐든다 어둠 틈타 원치 않은 죄 저질러버린 것마냥 하염없어라 내 존재를 마냥 떨궈버리고 싶은 밤
2
또다른 나와의 냉전이다
3
눈동자에 꽃봉오리 잠시 맺히고, 피고, 핏빛으로
지고, 포탄 하염없이 터지고 불발되고 인류의 누군가는 오염수로 피폭으로 성차없이 죽을 거고 증권가 불황일 거고 여동창들은 남편 호봉에 맘 졸일 거고 김장하고 육아에 힘쓰고... 멘스 날 오고 브래지어 와이어 살피고... 저 혼자 똑똑한 척 다 하더니 약지 않은 순 멍충일 낳았어 번듯한 남잘 골라야지, 아버지가 세운 나라의 질책은 날 명백한 패륜아로 만들 거고 꽃잎은, 꽃잎이 어딘가에서 흩날려와 날 가려줬음 좋겠다 신의 경고 떨어진 내면세계를 엿보았기 때문(그러니 니 잘못! 니 실수! 니 실책 니 부주의 니 미스 니 미스 판단 이러다 북받쳐 내 모든 나)이라는 듯 하염없어라 지성의 태반 흐려지고 인간 외형만 간신히 남긴 나마저 18층 아파 트 창밖으로 떨궈버리고 싶은 밤 창호 관리 되지 않아 펄럭대는 심경들, 초기화된 포털 사이트 창 안의 꽃잎이 함께한다 새삼 모든 연결이 확연히 어둡다
어느 동서남북으로도 어둔
경계와 의심을 품은 심연의 한 층이 높아진다
[독한 연애],문학동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