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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가 달구벌을 달린다.
남아공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4)가 남자 장애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자격을 땄다. 그는 다음달 개막하는 대구세계선수권대회(8월 27일~9월 4일)에서 비장애인 엘리트 선수들과 경쟁할 예정이다.
◆대표 결정 마지막날 통과
피스토리우스는 20일 이탈리아 리냐노에서 열린 육상대회 남자 400m 경기에서 45초07로 1위를 했다. 종전 개인 최고 기록(45초61)을 0.54초 앞당겼으며 세계선수권·올림픽 A 기준 기록(45초25)도 통과했다. 특히 20일은 남아공 대표선수를 결정하는 마지막 날이어서 기쁨이 더 컸다.
IAAF(국제육상연맹) 규정으로는 한 나라가 A 기준 기록을 통과한 자국 선수를 세 명까지 세계선수권에 보낼 수 있다. 피스토리우스는 이번 시즌 남아공 랭킹 4위였다가 2위로 올라서며 대구세계선수권 출전을 확정 지었다.
피스토리우스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꿈의 레이스였다"며 "'대구에서 만납시다'라는 말이 기분 좋게 들린다"고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종아리뼈 없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메이저대회의 무대에 서겠다는 피스토리우스의 도전은 드라마 같았다. 1986년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난 그는 선천적으로 두 다리의 종아리뼈가 없었다. 다리가 짧고 기형인데다 기능을 못해 생후 11개월 때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의족이라도 착용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보조기구를 사용해 걸음마를 배웠다. 운동에 관심이 많아 학생 시절엔 럭비, 수구, 테니스, 레슬링을 즐겼다. 육상은 2003년 말부터 시작했다. 럭비를 하다 다쳐 재활하는 과정에서 달리기의 매력에 빠졌다.
피스토리우스는 2004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2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비장애인 스타들의 경연장인 올림픽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하던 2008년 1월 첫 시련을 겪었다. 국제육상연맹이 피스토리우스의 보철 기기를 문제 삼으며 올림픽 출전자격을 주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피스토리우스는 스포츠중재위원회(CAS)에 제소했다. CAS는 2008년 5월 IAAF의 결정을 취소하라고 명령하면서 피스토리우스가 올림픽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그러나 피스토리우스는 베이징올림픽 A 기준 기록(45초55)에 0.7초가 모자라 출전 티켓을 얻지 못했다. 남아공 1600m계주팀 후보에도 들지 못해 결국 베이징행이 무산됐다.
◆절단장애인으론 첫 선수권 출전
당시 같은 남아공의 여자 수영선수 나탈리 뒤 투아는 절단 장애인으로는 사상 최초로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했다. 2001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었던 뒤 투아는 오픈 워터 10㎞ 종목에서 25명 중 16위를 기록했다.
피스토리우스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 나가지 못한 이후에도 도전을 계속했다. 2008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 나가 100m·200m·400m 우승을 휩쓸었다. 남아공 프레토리아대학에서 경영학과 스포츠과학을 전공하는 그는 대구세계선수권을 노리고 훈련을 거듭했다. 올해 3월 개인 최고 기록(45초61)을 세웠고, 넉 달 만에 세계 정상급 기량을 선보이며 꿈을 이뤘다. 내년 런던올림픽 출전도 유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