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제위들이여, 그동안 안녕들 하셨는가? 본 우원 그동안 생업에 쫓기느라 글 안 쓴지 꽤 되었다. 뭐 살다보니 천성의 게으름이 이제 만성이 되어 골수 깊숙히 전이된 상황인지라 독자제위들께서 걍 이해해 주시라.
근데 전쟁이바구긴 전쟁이바구인데, 이게 뭐시냐고? 음...미드웨이 마지막편 어여 연재하라고 득달같이 멜질하셨던 많은 독자제위들 지금쯤 열받은 표정으로 모니터 째려보고 있을 거 같은데...미드웨이도 조만간 마무리 지을 터이니 이왕 기달린 거 쫌만 더 기둘려주시라~
대신에 요번에는 쪼끔 색다른 이바구 하나를 준비했다. 본 우원이 모처에서 연재 준비하던 거인데, 전쟁영화를 통해 전쟁을 썰하는 글되겠다. 걍 재미삼아 쓰다가, 본 우원이 보기에도 쬐끔 볼 만한 거 같기에 독자 니덜에게도 몇편 뵈줄까 통빡 굴리고 있는 중이니 열분들의 호응을 바란다.
오늘은 첫 빠따로, 유쾌한 지구 멸망극 한 편을 소개해 올리고자 한다.
제목 : Dr. Strangelove (국내 출시 제목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감독 : 스탠리 큐브릭
주연 : 피터 셀러스, 조지 C 스콧, 스텔링 헤이든
제작년도 : 1964년
제작사 : 컬럼비아 픽쳐스
수상 : 특별한거 받은 기억 없음
러닝타임 : 95분
"영화 연출의 최고 거장, 우리는 모두 그의 영화를 모방하느라 허덕였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스탠리 큐브릭을 정의한 문장이다. 영화를 한다하는 이 치고 스탠리 큐브릭을 모르는 자 없을 것이고, 영화로 밥먹고 사는 이들이 지표로 삼는 영화감독을 꼽으라면 꼭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인물 역시 스탠리 큐브릭이다.
언제나 독창적인 영화기법과 새로운 시도로 개봉하는 작품마다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큐브릭은, 그의 전매특허인 완벽주의와 비밀주의로 무장한 채 영화의 제작에 있어서만은 전권을 다 휘둘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요즘 케이블에서 심심하믄 틀어주는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1960년 작 <스파르타쿠스>를 감독하던 시절, 제작자이자 주연까지 맡았던 울 커크 형님의 간섭에 학을 띈 큐브릭 대형은...
"좆같아서 못 해먹겠네..."
...라는 한 마디와 함께 과감히 헐리우드를 떠나 런던 근교로 도피(?), 그의 전매특허인 비밀주의와 완벽주의로 그만의 작품세계를 창조해 나가기 시작했다는 스토리.
그렇다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그렇다. 우리 큐브릭 형님이 런던으로 파천하신 뒤에 두 번째로 찍은 작품되시겄다. 울 큐브릭 대형은 작품을 만들어 낼 때마다 영화계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 주시는 분이시기에 어떤 작품이든 다 나름의 뒷 이야기가 풍성한데 그 중에서도 본우원 감히 평하자면, 스탠리 큐브릭 대형의 작품 중 백미는 바로 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일반 독자제위들께서는 익숙한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샤이닝>, 아니면 촛불 조명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베리 린든>, 혹은 좀 더 대중적(?)이라 볼 수 있는 <풀 메탈 자켓>같은 작품이 스탠리 큐브릭의 대표작이라 말씀하시겠지만, 역시 이 <닥터 스테레인지러브>만큼 스탠리 큐브릭 대형의 내공으로다가 소리 소문 없이 부지불식간에, 어떤 낌새도 채지 못하게 관객들을 스크린 안으로 끌고 들어가 그냥 영화 끝날 때까지 웃겨만 주다가 극장문 나서다 말고 '허걱!!' 하는 느낌을 안겨주는 작품도 없다.
그렇다. 궁극의 무인들이 보여주던 '자연체'의 자세...그 내공을 모자라지도 않고, 차고 넘치지도 않을 정도로 절제된 모습으로 보여준 역작 중의 역작이 바로 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라는 얘기다.
1.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 어떤 작품인가?
이 작품은 스탠리 큐브릭이 만든, 인류 미래에 관한 SF 3부작 시리즈(<시계태엽 오렌지(Clockwork Orange)>,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포함) 중 첫 작품이라는 데 의의를 둘 수 있겠는데, 이 작품을 또 단순히 SF 영화로도 한정 지울 수 없다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반전 영화이면서 코미디 영화이고, 시사영화이면서 또한 SF 영화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이 각각의 분류 모두에 충실하게 접근했다는 것일 게다.
이 영화에 대해 일반에게 알려진 것 중 가장 유명한 일화는 아마 주인공인 '피터 셀레스'의 1인 3역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잭 리퍼 장군의 음모를 분쇄하고 R작전의 취소 암호를 유추해서 인류를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잠시잠깐 구해낸 영국공군 장교 맨드레이크 역할과, 약간 얼빵한 대통령 머플리 역,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이 된 대통령 특별 고문인 무기 연구 개발 국장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까지 세명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 해 낸 피터 셀레스의 연기력은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다.
원래 이 영화는 피터 조지의 <운명의 두 시간(Two Hours to Doom)>이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인데,(큐브릭은 1962년 <로리타>를 찍기 전까지 "유명 소설 각색은 사양하겠다"라고 말했으나, <로리타>를 찍으면서부터 소설 원작을 들고 와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영화의 내용과 대충 비슷한 내용이었다.
다만 한 가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마지막 결말 부분인데, 큐브릭 대형은 원작이 지구의 구원으로 마무리되는 게 못내 아쉬웠던지, 지구 멸망으로 그 끝을 바꿔 버렸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나? 여기서 본 우원은 영화가 만들어졌던 1964년의 시대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 봐야 할 것 같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같은 결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기 위해서 말이다.
2. 1964년
1964년 - 케네디가 암살당했고, 비틀즈가 데뷔했으며, 베트남전 파병 결정과 함께 미국은 순수의 시대를 마감한 해였다. 하지만 이 시기가 더 중요한 것은 일련의 '핵 관련 사건들'이 불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단 2차 대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자.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전선에서 승리를 확인하고 나서 미 국방성은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에게 항복을 받기 위해선 최소한 40만에서 50만의 미군 사상자를 감수해야 한다고 예상했다. 이런 병력의 피해를 감수한다 하더라도, 빠르면 1946년, 늦으면 47년이나 48년이 되어서야 일본 본토를 점령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관측이 일반적이었다.
이 상황에서 일본 본토엔 300만의 병력이 본토 옥쇄 작전으로 일전을 준비중이었다. 자, 이런 상황이라면 한번 핵을 쏴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일본에 핵을 터뜨린 이유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스탈린에게 얕보이는 게 싫었고, 결정적으로 미국이 분명 소련을 압도할 수 있다는 '분명한 경고'를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핵 없이도 전쟁은 끝낼 수 있었지만, 트루먼은 전임자 루즈벨트에게 비교당하는 것이 싫었고 스탈린과 처칠같은 국제정치의 베테랑들에게 꿀리는 것도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떨어뜨렸다. 21세기 지구인들 수준으로 보면 "딱총" 수준인 17킬로톤 짜리 핵폭탄을 떨어뜨렸지만, 24만 5천명의 인구를 자랑하던 히로시마의 총 인구중 11만명을 죽였고, 7만6천개의 건물 중 90%를 파괴시켜 버렸다.
명백한 힘의 과시였다. 이후 나가사키에 대한 2차 핵공격을 감행한 다음 미국은 일본에게 정중한 항복 권고를 날렸다.
"무조건 항복하지 않으면 일본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
이때 미국에 남아 있는 핵폭탄은 겨우 한발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뻥카는 멋지게 먹혔고, 일본은 미주리호 함상으로 끌려나가야했다.
자,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1949년 9월 24일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미국은 적성국가에 대해 툭하면 공공연하게 '핵협박'을 단행했다는 것이다.
1946년 봄, 미국은 먼저 소련에 대해 핵 위협을 보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도 이란땅에 뭉기적 거리며 엉덩이를 비비고 있던 소련, 원래 이란 남부 지역의 석유는 영국의 몫이었는데 소련은 여기에 군침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트루먼은 당시 주미 소련대사였던 그로미코를 백악관으로 초대해 한마디 던졌다.
"48시간 안에 이란으로부터 소련군이 완전히 철수하지 않으면, 소련에 대해 핵공격을 명령하겠다."
뻥카는 또 먹혔다. 소련군은 24시간만에 이란에서 완전히 철수한 것이다.
이후 49년도에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나서도 미국의 '핵협박'은 계속 되었다만 그때부터는 물론 소련에 대한 핵협박은 없었다. 같이 죽을 일 있겠냐?
이제 1954년이다. 베트남 정글에서 허우적거리던 프랑스군은 드디어 디엔 비엔 푸에서 아작이 나고, 미국은 프랑스를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그 지원의 내용이란 건 아주 간단한 거였다. 전술 핵폭탄 3개를 프랑스에게 제공하겠다는 거였다. 간단히 말해서 베트남에 핵을 떨어뜨리자는 것이었다.
이 의견은 국무장관 덜레스와 합참의장 렛포드 등의 지지를 얻었고, 결국 미국 정부는 프랑스 외무장관 조르쥬 비도에게 본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런데, 오히려 놀란 건 프랑스였다. 아무리 수세에 몰렸다곤 하더라도 핵을 떨어뜨리겠단 말을 하냐고....결국 프랑스는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였다.
1960년대, 미국은 자신들이 베트남의 수렁에 빠졌을때에도 핵위협 카드를 꺼냈다. 1968년 테트 대공세로 위기에 몰렸을때, 그리고 1969년에서 72년 북베트남과의 종전협상을 할때도 미국은 어김없이 '핵협박'을 써먹었다.
지구의 제3세계 국가들이 핵무기를 어쨌든 개발해 보겠다고 난리치는 이유...어쩌면, 미국이란 나라가 보여준 핵에 대한 모순된 입장때문일 것이다. 핵확산을 억제하면서 자기네들의 지하 핵실험은 계속하고, 핵협박을 하면서 핵무장을 하려는 나라는 억누르는 이 이중적 행태에 대해서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모습 아닌가?
각설하자. 어쨌든 미국의 '호시절'은 소련이 핵을 만들어내면서 끝나는 듯 했다. 미국의 핵 독점의 역사는 채 5년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려야 했지만, 이때까지 미국 애들은 소련의 핵 위협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왜?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말이다.
당시 미국은 핵무장에 대해선 소련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기에 그들은 '대량 보복전략'을 그들의 군사 전략 노선으로 채택 하였다. 이게 뭐냐고? 간단히 말해서 미국이나 미국의 우방국가를 향해 공산국가 애들이 찝적거리면 지상군 파견같은 번거로운 짓은 생략하고, 바로 핵무기로 대응하자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1957년, 미국인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가 버린 사건이 터지면서 일이 슬슬 꼬이기 시작한다. 바로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닉이 발사된 것이었다. 소련이 우주로 진출하게 됨으로써 미국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인공위성을 발사할 정도의 기술력이면 대륙간 탄도탄을 만들어서 미 본토에 대한 직접 공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성립되고, 그 이야기는 바로 미국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스토리 아닌가? 결국, 57년서부터 64년까지 미국은 공포의 한가운데로 끌려가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소련은 스푸트닉을 날렸고, 이어서 쿠바에 핵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며 설레발 치고...이 쿠바 핵 위기에 대해선 제대로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는데, 아래의 내용을 참조하시라.
*쿠바 핵 위기 사태 바로 알기
{1962년 10월 14일, 미국의 U-2기가 쿠바에 건설 중인 소련의 미사일 기지를 촬영하면서 13일간의 '인류 멸망 게임'이 시작되었다. 케네디와 후르시쵸프 두 명 다 매파라기보다는 비둘기파였다. 그러나 그 두명의 공통점이라면, 역시 다른 강경파 정치인들과 군부에 둘러싸여 있었다는 점과 지금 상대방에게 밀리는 기색을 보인다면 그 자리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쿠바 미사일 위기는 미국이 일으켰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다. 당시 쿠바에 배치하려던 42기의 SS-4 미사일이란 것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소련이 어떤 커다란 군사적 이득을 본다거나 미국이 그렇게 큰 위협을 받는다거나 하는 상황은 만들지 못했다.
당시 미사일이나 핵공격 능력에 있어서 미국이 소련을 압도적으로 눌러버리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 42기의 중거리 핵미사일의 배치가 미국에게 상당한 위협이 될 거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미 ICBM과 SLBM 그리고 전략 핵폭격기란 3대 핵전력 체제가 가동 된 상황에서 전술 핵미사일의 의미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만약 제3차 대전을 각오한 상황이 온다 해도 42기의 핵 미사일이란건, 그야말로 딱총수준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럼 소련은 어째서 이 42기의 핵미사일을 쿠바에 보냈던 것일까? 바로 쿠바의 보호와 "값싼 선물"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60년대, 케네디는 마피아에게 돈을 주고 카스트로를 죽이라고 사주하였고, 피그만 침공으로 개망신을 당한 바 있다. 쿠바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미국의 공격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쿠바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어수단은 역시 '핵'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핵이란게 알고 보면 상당히 '싼값이지만 효과는 만점인 무기'였던 것이다.
쿠바 역시 그동안 미국때문에 불안에 떨던 생활을 접고, 미국 눈치를 안 봐도 되는 꽃길을 기대하며 이 미사일을 받아들였다. 경제제재에 이어진 카스트로 암살 작전, 그리고 피그만 침공 등으로 날카로워져 있던 쿠바에게 소련은 구원의 빛을 보낸 것이었다. 문제는 케네디와 후르시쵸프 두 명 다 '꼴통'은 아니었으며, 또한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했다. 누구에게? 바로 자기 옆의 매파들에게 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핵전력면에서 소련을 압도하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역시 케네디의 자제력과 후르시쵸프의 상식에 의해서 핵전쟁까지는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은 쿠바의 안전보장과 터키에서의 핵미사일 철수와 쿠바 핵미사일 기지 철거가 등가가치로 교환 되었고, 이 사건은 13일만에 종결이 났다. 명분이란걸로 따지면 분명 미국의 승리였지만, 이 쿠바 미사일 위기 덕분에 지구는 '멸망의 시간'을 더더욱 앞당겨야 했다.
소련은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소련이 굴복(!)한 이유가 미국보다 핵전력에서 뒤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후 가열차게 핵전력을 확충해 나갔고, 미국도 이를 따라가야 했다. 결정적으로 이 쿠바위기 덕분에 지구인들이 좀 힘들어졌는데, 미국 지도부는 이 쿠바 미사일 위기로 한 가지 심각한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바로 '힘에의 의지'였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밀어 부치면 어떤 문제에도 통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최초의 실증적 사례로 이 쿠바 미사일 위기가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인상 깊게 각인된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은 냉전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하나의 전략과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MAD(Mutual Assured Destruction : 상호 확증 파괴) 전략, 일명 '미친 전략'이란 게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건 전략이라고 말하기에도 좀 뭐한 건데, 아주 간단한 논리되겠다. 이쪽에서 쏘면 저쪽에서도 쏜다. 결국 같이 부둥켜안고 죽는 수 밖에 없다. 말 그대로 미친(mad) 전략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런 상호 확증 파괴를 위해선 상대보다 한발이라도 더 많은 핵폭탄을 만들어야 하고, 적의 공격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게 다양한 채널의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면서 미소 양국은 대륙간 탄도탄, 잠수함 발사 탄도탄, 대륙간 폭격기, 이 세 가지의 핵무기 체제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걸 TRIAD - 3각체제라 불렀다. 그 중에서 지구를 구한 핵무기가 바로 SLBM 바로 잠수함 발사 탄도탄이었는데, 이건 나중에 영화 <크림슨 타이드> 이야기할 때 하겠다.
어쨌든 60년대 미국애들이 소련 핵무기 공포에 벌벌 떨게 되었던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소련의 스푸트닉 발사도 있었지만,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갭(Gap)논쟁 때문이 컸다. 이 갭 논쟁은 간단히 말해서 미국이 소련에 비해 핵전력이 뒤졌다는 '공포'를 일반 국민에게 확산시켜서 미국의 핵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일종의 프로파갠다였다.
50년대 미국 공군은 'Bomber gap 논란'을 미국 사회에 불러 일으킨 바 있다. 간단히 말해서 대륙간 폭격기 전력에서 미국이 소련에게서 뒤져 있다는 공포를 확산시켰던 것이었다. 웃기는 것은 이게 새빨간 거짓말이란 거다. 당시 소련은 1955년이 되어서야 겨우 미국 본토로 날아갈 수 있는 폭격기를 개발할 수 있었는데, 반면 소련에 대해 직접 핵공격이 가능한 미국의 폭격기 숫자는 B-47이 1,600대, 그리고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주인공인 B-52가 50대쯤 되었고(막 생산 배치 되었던 시기였다) 이때 소련이 가지고 있던 폭격기 수는 겨우 200대가 될까말까였다. 그러나 이 속사정을 몰랐던 미국의 일반 국민들은 공포와 불안에 떨어야 했다.
60년대가 되자, 이번엔 케네디가 또다른 gab을 들고 나타났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케네디가 선거전략 중 하나로 들고 나온 미사일 갭 논쟁은 당시 미국 사회에 또다른 공포의 확산을 불러 왔다. 당시 케네디 측의 주장은 1960년까지 미국은 불과 30개의 대륙간 탄도탄 밖에 확보하지 못할 것이지만, 소련은 1백여개의 미사일을 확보할 것이며 이 격차는 계속 늘어나 소련은 매년 5백기씩 미사일을 늘려 1964년이 되면 2천기의 대륙간 탄도탄을 배치해 미국을 위협할 것이 분명하다는 경고였다.
케네디는 이에 대비해 1천기의 대륙간 탄도탄과 6백기의 잠수함 발사 탄도탄을 확보하자는 계획을 들고 나왔고,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당시 소련측의 위협은 과장을 넘어서 '범죄 수준'으로 국민들을 협박했다는 것이 후에 드러났는데, 소련측은 1961년에 겨우 4발의 대륙간탄도탄을 확보했을 뿐이었고, 미국측의 계산대로라면 1천5백기의 대륙간 탄도탄을 확보했어야 했을 1963년에 소련측의 대륙간 탄도탄 보유량은 겨우 1백기를 보유하는데 불과 했었다.
문제는 이런 사실이 미국 정부의 철저한 정보 조작에 의해서 일반 국민들에겐 비밀로 부쳐졌고, 인류는 핵공포의 늪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가게 되었던 것이었다. 60년대의 시대상은 바로 '인류 멸망에 대한 공포의 일상화'였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바로 이런 60년대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투영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3. 유쾌한 지구 멸망극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조종한다는 B-52 폭격기. 1952년 개발되어 2003년 지금까지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어엿한 현역 폭격기.... 지금도 B-1, B-2와 함께 미국 폭격기 3총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이 녀석은 한때 10만 불짜리 화장실을 달고 다니는 녀석으로도 유명했었다. 어쨌든 이 녀석이 공중급유기로부터 급유를 받는 장면으로 이 영화는 시작된다.
"50메가톤의 핵폭탄을 각기 탑재한 폭격기들이 페르시아만에서부터 북빙해까지 포진해 있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러시아에서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50메가톤의 화력은 2차 세계대전 사용하였던 모든 폭발물의 16배에 달하는 위력이다...."
대충 이런 나레이션과 함께 장면은 버펠슨 공군기지, 우리의 쥔공 맨드레이크 대령이 콧수염을 붙힌 채 리퍼 장군의 전화를 받는다. 'Wing attack plan R'을 명령하는 우리의 리퍼 장군. 시가를 씹으며, 공산당이 물에다가 전분질을 타고 있다며 빗물과 증류수 그리고 위스키만 마신다는, 약간 맛이 간 리퍼 장군.
여기서 잠깐, 영화 속 리퍼 장군은 실존 인물이었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을 패러디한 인물이다. 언제나 잘근잘근 시가 빠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미 전략공군 사령부 사령관 커티스 르메이는 요즘 우리가 잘 쓰는 표현으로 '수구꼴통'이란 정의에 어느 정도 근접한 인물인데, 이 양반은 1944년부터 인도, 중국에 B-29폭격기대를 지휘해서 폭격을 했고, 1945년 1월엔 마리아나 제도 폭격, 그리고 1945년 8월엔 그 유명한 히로시마 원폭투하를 선두에서 지휘한 주인공되겠다.
1948년 10월, 냉전 에피소드 중 최고로 흥미진진(?)했던 베를린 봉쇄 때 역시 수송기 부대를 진두지휘하며 베를린에 석탄과 물자들을 공수하기도 했었다. 이 아저씨는 쿠바 위기 때에도 군부(<D-13>이란 영화에서 케네디 압박하던 놈들)를 이끌고
"쿠바에 선제 공격을 합시다!"
라며 케네디 옆구리 찌른 걸로도 유명한 놈이다. 이후 공군에서 제대한 뒤에 부통령으로 출마할 당시에 베트남전을 어떻게 해결하겠느냐의 질문에,
"베트콩에 폭격을 가해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
란 대답으로 좌중을 쏴- 하게 만들었다는 스토리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어쨌든 이 커티스 르메이 사령관을 그대로 패러디하여, 시가를 빨면서 공산주의자들의 음모에 대한 편집광적 과대망상으로 우리 맨드레이크 대령을 가치관의 혼돈 속으로 끌고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리퍼 장군을 보며 우리는 웃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50년대 60년대의 시대상황에서 이런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모습일지도 모른단 생각도 든다. 메카시가 빨갱이를 때려잡자고 설레발치던 게 불과 몇 년 전이었던 그 시기에 미국 국민들은 서로를 믿지 못했고, 소련이 미국의 핵과학자들을 빼돌렸다는 의심을 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리퍼 사령관은 부대에 비상을 걸고, 신속하게 '라디오'를 수거하라는 지시와, 부대 내 200야드 이내로 접근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사살 명령을 내린다. 언제나 그렇지만, 뭘 휘어잡기 위해선 외부와의 단절과 정보의 차단이 최우선이란 상식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맨드레이크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규방송을 듣고 이 상황이 리퍼 장군의 독단적 판단 때문인 것을 확인하고 장군에게 상황 해제를 요구한다.
한편 전략 사령부에선 리퍼 장군이 843연대 폭격기들이 열심히 소련으로 가고 있는 상황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데, 여기서 터기슨 장군이 나서서 대통령에게 기왕 이렇게 된 거 쓸어버리자고 말하기 시작한다. 1천만내지 2천만 정도 죽는 거야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여기서 대통령은 터기슨 장군에게 언제 핵무기 사용권한을 리퍼에게 주었는지에 대해 묻고 터기슨은 대통령이 사인을 했다고 말한다. 인류의 멸망에 관한 위임장을 써 주고도 기억을 못하는 대통령...실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핵무기에 대한 대응의 사전위임'이라고 불리는 이 핵무기 사용권한은 1950년대부터 미국에서 시행되었던 정책인데, 1957년 미 의회의 양원합동 원자력 위원회(Joint Committee on Atomic Energy)에 처음으로 보고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핵 공격이란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 선참후계를 한다고 봐야 할까?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재가를 얻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동안 이미 전쟁은 끝나 버릴수도 있는 상황 하에서 미국은 북아메리카 항공 방위 사령부(NORAD)사령관이나 바르샤바 조약군의 위협속에 앉아 있던 유럽주둔 미군 사령관들에게 사전 핵사용 권한을 넘겼던 것이다.
미국은 50년대부터 지금까지 6~7명의 3성장군이나 4성장군에게 핵무기 사용권한을 넘겨왔었다. 국제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인원엔 변동이 있었으나, 사전위임이 사라지진 않고 있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장군 몇 사람의 손에 지구의 운명이 결정 쥘 권한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어쨌든 대통령은 터기슨의 말을 쌩까고, 소련 대사를 부른다. 하바나산 시가를 고집하는 소련 대사, 자메이카산 시가에 대해 농담 한마디 던진다.
"제국주의의 물건은 사양하겠다!"
아무리 공산주의자라도 인류의 일원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한마디가 나오면서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서기장의 행방을 찾을수 없게 되자 자신만만하게 번호를 알려주는 소련 대사.
"인민의 지도자지만, 역시 남자지요."
참으로 가슴에 와닿는 대사가 아닐수 없겠다.
자 다시 리퍼 장군이 있는 버펠슨 기지를 보자. 이 영화의 공간 이동을 보면, 크게 3군데를 두고 그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걸 알 수 있다. 킹콩 소령이 기장으로 있는 B-52폭격기 안, 리퍼장군이 있는 버펠슨 공군기지, 그리고 대통령과 스트레인지러브 박사가 앉아 있는 전시 상황실.
리퍼 장군은 섹스하고 난 뒤에 밀려오는 공허감과 허탈감이 공산주의자의 음모 때문이라며, 맨드레이크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말한다.
"국방성의 전시 상황실에 모인 대통령과 합동 참모들이 공격 명령 취하의 불가를 인지하는 순간, 취할 결정은 단 한 가지 뿐이네...철저한 파괴지."
정신 이상자치고는 나름의 계산이 깔려있는 행동이었다는 게 보인다. 이 짧은 문장 속에서 스탠리 큐브릭은 60년대 미국의 전략 핵무기의 사용에 대한 기본 인식을 응축시켜 놓고 있었다. 핵 시대는 섣불리 전쟁을 할 수 없는 '공포의 균형'을 기본 축으로 움직이는 시대이지만, 일단 그 공포의 균형이 무너지면 '멸망'만이 존재한다는 걸 단적으로 표현해 준 대사인 것이다.
이어지는 리퍼의 대사는 상당히 시니컬하면서도 다시 한번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정치가 클레망소가 이런 말을 했었지. 전쟁은 군인 손에 맡기기엔 너무 중요하다. 그 말을 한 50년전엔 옳은 말일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정치인에게 맡길 순 더더욱 없네. 정치가에겐 시간도, 훈련도, 전략적 머리도 없으니까."
마치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인들 들으라고 하는 말 같기도 한데....
4. Doomsday machine
R작전 명령을 수신한 킹콩 소령의 B-52의 기체 안, 어떠한 송신도 불가능하고 오직 리퍼 장군이 설정한 암호로만 수신이 가능한 상황 하에서 B-52 폭격기 승무원들은 충실히 맡은바 임무에 몰두한다.
킹콩은 승무원들에게 생존 장비를 나눠 주는데, 45구경 권총이나 4일분 식량까지는 이해가 가지만, 이어지는 성경책, 콘돔과 껌 9통, 립스틱 3개에 나일론 스타킹 3개 등등...소령의 말처럼 라스베가스에 가서 거하게 놀만한 물건들이 들어있는 생존키트를 보면서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때쯤, 전시 상황실에선 소련 대사의 공포어린 눈초리를 지켜 봐야만 했다.
Doomsday machine의 등장이었다. 더 이상의 핵 군비 경쟁에서 버티지 못할 거 같기에 같이 죽자는 취지에서 만들어낸 "최후의 날"기계를 보면서 우리는 냉전의 시대를 관통하던 MAD 전략의 실체를 확인 할 수 있게 된다.
극중에 등장하는 이 '최후의 날'이란 기계는, 핵공격 상황이 벌어지면 자동으로 작동하여 공격한 자든, 공격을 당한 자든 다같이 사이좋게 멸망하자는 공멸 보장의 히든카드처럼 등장하는데, 실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영화를 보신 분은 설마~ 하는 생각과 함께 미국의 음모론을 떠올리며 이것도 그저 그런 음모일 것이라 생각 하실 분도 있겠다만, 인간의 운명을 쇳쪼가리에게 맡긴 적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아마도 소름이 쫙 돋을 것이다.
신냉전의 시작을 알리던 1980년의 시작 - 그러니까 1979년 1월에서 1980년 6월 사이에 북미 항공 방어 사령부(NORAD)의 컴퓨터 경보체제는 20개월이 채 되지 않는 이 기간동안 무려 3,804회의 경보를 울렸다. 그 경보 내용이 뭐냐면
"소련의 핵공격이 시작되었다!"
라는 경보였다. 이 기간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스크램블이 공군기에게 전해진 건 물론이거니와 핵 공격 대비태세에 들어가 MAD전략에 충실한 '같이 죽자' 작전에 발동되기 직전까지 상황이 악화되었던 경우도 수차례나 되었다.
다행히 경보 체제에 대한 인간의 컨트롤이 있었기에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건 막았지만, 말 그대로 '최후의 날'기계에 진배없는 눈부신 활약을 했던 건 사실이다.
지구 멸망의 순간이 바로 코 앞에 닥친 상황에서 지구의 운명을 손아귀에 쥔 리퍼 장군은 골프채 사이에 숨겨 놓은 LMG 30기관총을 응사하며, 공산주의자들(?)과 싸우고, 버펠슨 공군기지 내에서 벌어진 총격전 와중, 부대 안에 설치된 간판에 적힌 구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임무는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에 사용했던 모든 폭발물의 양보다 더 위력적인 핵무기를 폭격기마다 달고 다니는 전략 공군기지의 구호 치고는 좀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실제 B-52 폭격기 부대의 캐치프레이즈로 많이 쓰였던 구호가 바로 이것이다.
어쨌든 리퍼 장군은 암호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다음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갈긴 사이 맨드레이크는 리퍼 장군의 암호를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낸다.
여기서 다시 큐브릭은 절대 핵공포 시대에 지구의 멸망이 얼마나 우습게 벌어지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코카콜라 자판기를 등장시킨다. 대통령에게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걸려고 하지만 거절 당하고, 동전은 없고, 자기를 연행하러 온 장교에게 총으로 콜라 자판기를 부셔서 동전을 꺼내라 하지만,
"콜라 회사에서 항의 들어올 텐데..."
라는 장교의 말 한마디에 상황은 말 그대로 블랙 코미디로 치닫게 된다.
지구의 운명이 콜라 자판기에 걸려 있었고, 지구의 운명이 수신자 부담 전화 거절로 멀어져 가는 이 아이러니컬한 상황 연출 속에서 우리는 60년대 절대 핵공포 아래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된다.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스탠리 큐브릭의 장난인지 간에 킹콩 소령의 B-52는 미사일에 피격되어 암호 수신을 못하고, 결국 핵공격 준비는 착착 진행된다. 그 사이에 미국 대통령은 소련 전투기 전부를 동원해 예정 공격 지점에서 방어하라고 서기장을 닥달한다.
소련 전투기들이 전부 라푸타의 대륙간 탄도탄 기지로 몰려간 사이 미사일 공격으로 연료가 떨어진 B-52 는 다른 목표로 공격 목표를 전환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멸망의 시간들...
마지막 순간,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최고의 장면'이 등장하게 된다.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쓴 킹콩 소령은 폭탄 해치를 수동으로 열기 위해 30메가톤짜리 수소폭탄 위에 앉아서 해치를 조작하다가 결국 핵폭탄과 함께 떨어진다. 마지막 순간까지 환희의(?) 괴성을 지르며 떨어져 나가는 킹콩소령과 수소폭탄,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나리(We'll meet again)>란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언젠가 다시 만나리~ 언제, 어디서가 될지 모르지만..."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 끝까지 이 핵공포 시대의 인류를 비웃었던 것이다.
스트레인지러브 박사는 왜 안나오는 거야?
스트레인지러브 박사 - 본명은 운베르티히리베(Unwertigliebe)였으나 미국으로 건너오며 스트레인지러브라고 개명했다는 이 녀석. 한쪽 팔이 의수였지만, 과거에 놀던 가락을 못 버려 "하일 히틀러!"할 때마냥 곧게 뻗은 손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5. 스트레인지러브 박사 등장
그는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남자 1명당 여자 10명의 비율로 성비를 맞춘 후 지하 갱도로 내려 보내 생활을 시키면 된다고 말한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스트레인지러브는 통솔과 전통의 유지를 위해 주요 정부인사와 군 수뇌부를 이 '노아의 방주'에 태워야 한다며 역설했고, 소련 대사마저도 그 탁월한 성비의 균형에 대해서
"대단히 훌륭한 견해!"
라며, 그를 추켜세운다.
영화 속에서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든 간에 본 우원이 독자제위 여러분들께 말하고 싶은 한 가지는 바로 그가 '나치'였었고, 그를 나치에서 미국 시민권을 가진 훌륭한 과학자로 만들어 준 '페이퍼클립'작전에 관한 것이다.
'Operation paperclip'...이 작전의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은 과학자들을 징병하지 않았지만, 과학도들의 징병은 허용하였다. 그 결과로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은 1만여명의 과학도들을 잃고 만다.
그리고 이어진 소련과의 총성 없는 전쟁, 냉전의 시작에서 미국은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된다. 바로 그때 연합국의 진격에 맞춰 독일로 진입한 '과학 첩보부대'는 독일의 과학적 업적에 놀라고 마는데, 실상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과학력이 독일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상황에서 독일의 엄청난 하이테크놀로지에 기가 죽은 것이다.
미국은 핵무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 분야에 있어서 수십년 이상 독일에 뒤떨어져 있었다. 슈노켈 잠수함, 대륙간 탄도탄, 잠수함발사 탄도탄의 원형이 나와 있었고, 공대공 미사일, 공대지, 공대함 미사일에 지대공 미사일같은 각종 미사일 계통은 이미 한 두 번 정도 실전에 사용 했었으며, 독일에서 출격해 뉴욕까지 날아가 폭격하고 돌아오는 대륙간 폭격기는 이미 실전 테스트까지 거친 상태였다.
미국인들은 경악했다. 그리고 이들을 소련에게 뺏기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에 더해, 만약 이들의 기술과 정보를 미국측이 흡수할 경우 세계의 패권은 어디로 향할지에 대한 답까지 찾게 된 것이다.
나치의 전범으로 분류된 대부분의 독일 과학자들은 미군으로부터 두가지 제의를 받게 된다. 하나는 그들의 전범딱지를 떼 준다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미국으로 건너와 윤택한 삶과 풍족한 연구 활동 지원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여기엔 덤으로 미국 시민권까지 얹어준다는 단서 조항이 있었다. 나치의 과학자들이 이런 솔깃한 제의를 그냥 넘길리 없었고, 미국은 이들 덕분으로 1969년 달나라에 미국인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이같은 미국의 범죄행위(!)는 1945년 5월에 이어 8월에도 이어진다. 바로 731부대의 관련자들을 넘겨받은 것이었다.
여기서 '페이퍼클립 작전'이란 이름은 어떻게 붙었냐고? 아주 간단하다. 나치 과학자들의 신상명세서를 종이클립으로 찝어 놓은 다음 전범 기록에서 빼버리는 작전이었기에 작전명이 그렇게 붙은 거다. 미국은 세계 패권을 얻기 위해 도덕적 정당성을 포기하였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의 이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언제나 지멋대로 움직이는 팔 한쪽은 과거를 잊지 못한 듯 계속해 '하일 히틀러'를 외치고 있고, 입으로는 대통령의 자문답게 냉철한 과학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결국에는 자신의 의수를 물어 뜯는데도 사용하지만 말이다.
스탠리 큐브릭은 스트레인지러브란 인물을 냉전시대 괴물들을 조합하여 창조했고, 냉전의 한가운데를 내달려 왔던 인물들의 역사를 한명으로 응축하였다.
스트레인지러브라 할 만한 실존 인물로는, 앞에서 언급한 페이퍼클립 작전의 가장 큰 수혜자였으며 인류의 우주시대를 개척해 낸 '폰 브라운 박사'와, 반전 운동가들이 1970년도에 선정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상'의 수상자로 맨하탄 계획의 일원이자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에드워드 텔러', 그리고 미국 현대 외교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이자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 지도부에게 핵 위협을 가해 '덜 쪽팔린 철수'란 외교적 성과를 끌어낸 '헨리 키신저'의 세 인물을 짬뽕한 거라 볼 수 있겠다.
6. 마치며....
핵무기의 개발은 인류에게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바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스스로 멸망할 힘을 갖게 된 시기"
인류는 '멸망의 공포'로 전쟁을 회피하는 '공포의 균형'이라는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신개념의 평화수단을 발견했지만, 이 공포의 균형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한 균형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일단 깨어진 균형은 곧바로 '인류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스탠리 큐브릭은 이런 공포의 최극단을 달렸던 1960년대의 시간들을 그 만의 시각(상당한 조소와 중간 정도의 냉소, 그리고 아주 약간의 동정)으로 담아낸 이 한편의 부조리극으로, 당시 공포에 떨고 있던 인류에게 쓴 웃음을 짓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2003년 - 그의 작품이었던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 제목보다도 2년이나 흐른 지금의 시선으로 이 작품을 보던 본 필자의 지인들은(요즘 EBS에서 판권을 샀는지 수시로 틀어주고 있다),
"야, 이거 골때리게 웃긴다! 얘가 스탠리 큐브릭이야?"
뭐 웃긴 거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단순히 웃고 넘기기엔 그 안에 담고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보고 난 다음에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뭐 보고 난 다음엔 누구라도 한번쯤은 느껴봄직한 감정들이겠지만 말이다.
P.S 본 우원 생계의 곤란을 느껴 결국 책 한권 찍어내게 되었다. 뭐 본 우원이 다른 거 내겠는가? 전쟁관련 책이니까 걍 생각 있으신분들 있음 한권씩들 사서 봐주시라...책 내용은 장담못하겠는데, 종이질은 조타...책 제목은 <펜더의 전쟁 견문록> 되겄다.
이 영화는 예전에 영화 좋아하는 후배가 권해서 본적이 있습니다. 항상 머리 아픈 영화만 권하던 녀석인데 이 영화는 예외였죠..
개인적으론 이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인상깊게 봤네요. 이야기구조나 의미보단 이미지와 상상력을 극대화한 영화라 생각하며 최고의 SF라는 믿음을 주었던 영화였죠.
첫댓글 2001은 DVD로 사 놓고 가끔 보는데 닥터는 못구했습니다. 혹시 볼 수 있는 사이트가 있나요? 아니면 구매를 할 수 있다거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저번에 볼링 포 콜럼바인을 구하러 강변 테크노마트 디비디 판매점을 뒤지다가 찾은 기억이 나네요. 한번 거기에 가보시는 것도 좋으실 것 같네요.
최초로 스태디 캠을 사용한 것이 .... 그만큼 앵글에 대한 욕심이 많았고 앵글 자체에 대해 새로움을 추구했던 그런 감독이라는 생각.....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