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편을 질릴 정도로 지루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영어에선 bore라고 한다. '따분한(싫증나게 하는) 사람'이란 뜻과 더불어 '지루하게(따분하게, 싫증나게) 하다'는 동사로도 쓰인다. What a bore!는 "참 따분하군. 따분한 사람이군", be bored to death는 "아주 싫증이 나다, 지루해지다"는 뜻이다.
미국 독설가 Ambrose Bierce(1842~1914)는 <악마의 사전>에서 bore를 a person who talks when you wish him to listen(듣기를 바라는데 말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boredom은 권태다. 영국 소설가 Charles Dickens(1812~1870)가 1852년 소설 <황폐한 Bleak House>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다. 미국 비평가 Susan Sontag(1933~2004)는 "Boredom is only another name for a certain species of frustration"이라고 했다.
좌절은 고통을 낳기 마련이다. Stefan Klein은 <행복의 공식: 인생을 변화시키는 긍정의 심리학>에서 "카사노바는 호기심에 내몰리는 인간의 극단적인 유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 있다. 변화가 없는 곳에는 권퇴가 똬리를 튼다. 그리고 권태야말로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 중 하나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독일의 작가 Ernst Jünger도 '권태는 옅어진 고통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절망에 빠져 우리는 권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사람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TV를 보거나 유형을 쫓는다. 여기서도 우선시 되는 것은 일이나 물건의 유용성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는가 없는가이다. 새로움을 소화해내는 것, 이것은 뇌가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신경세포는 충전되길 기다리는 것이다."
19세기 영어에서 boredom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될 무렵, 프랑스에서는 ennui가 널리 쓰였는데 이는 영어의 annoy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ennui의 어원은 라틴어 inodiare로 '증오심을 갖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이와 관련, 황은주는 "따라서 권태라는 단어는 원래 증오심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나아가 폭력과도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에리히 프롬은 폭력을 수동적으로 즐기는 것이나 사디즘적이나 또는 매우 파괴적인 행동으로 즉각적인 잔인성을 보이는 것이나 '양적인 차이만 있지 별다를 바가 없다'고 경고한다. 프롬은 권태에 빠진 사람은 종종 '미니 콜로세움'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과거 로마시대에 온갖 잔학성을 경기장 위에 펼쳐놓았듯이 권태에 빠진 역시 마음속에 미니 콜로세움을 만들어 자신만의 잔학성을 행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1999년 4월 20일 콜로라도주 리틀톤시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Eric Harris 와 Dylan Klebold라는 이름의 두 학생이 총을 난사해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5월 20일 유사한 총기사건이 조지아주에 있는 헤리티지 고등학교에서 일어나 6명의 학생이 부상을 당했다.
경제학자 Tibor Scitovsky(1910~2002)는 1999년 '권태-쉽게 지나쳐버린 질병? Boredom-An overlooked Disease?'이라는 글에서 이 두 비극의 궁극적인 원인을 권태에서 찾았다. 이에 대해 황은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키토프스키의 주장에 따르면 배고픔과 권태의 가장 큰 차이는 배고픔 이 음식으로 쉽게 소화될 수 있는 데 반해, 대부분의 평화로운 권태 해소 방법은 음악이나 미술 등과 같이 배우는 데 특별한 기술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반달리즘, 살인, 또는 다른 형태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으며 쉽게 권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권태로울 때 쉽게 폭력을 행사한다.
강준만 / 영어 인문학 이야기 1
첫댓글
오늘도
새로운 지식을 주시어 고맙습니다.
Thank you 춘수님,
"boredom" 단어의 속풀이가 재미있어요,
rkatkgkqsl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