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무세이온은 일종의 연구소 같은 곳으로, 지중해 방방곡곡과 중동 등지에서 모인 다양한 학자, 물리학자나 수학자 들이 각종 시인, 문인과 어울리면서 다양한 학술 활동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지금의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일생의 대부분을 거기서 살았지만, 공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아르키메데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하던 때에 유클리드에게서 배웠다고도 합니다. 이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굉장히 많은 과학적 지식을 습득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유클리드라는 인물이 실제 존재했는지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확인하기는 어렵겠지요. 당대 수많은 학자가 교류했던 무세이온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기념하는 현대 도서관이 2002년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의 후원으로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98)
이런 원리는 학교 교육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수학의 기본 개념을 조심해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깊은 생각 없이 효율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보여줄 필요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해진 형식을 따라 저절로 푸는 것도 중요한 훈련이니까요. 수학의 학습은 피아노 연주 같은 면이 있습니다. 기초 기술을 습득하면 반복 훈련을 해야 하고, 그게 익숙해지고 나면 그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말입니다. 흔히 수학 공부에서 암기가 중요한가 원리 파악이 중요한가 하는 질문에 제가 늘 둘 다 중요하다고 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명료한 사고가 반드시 원리를 아는 사고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124-125)
‘규칙의 기계적인 적용’만 이용해서 하는 작업을 보통 알고리즙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을 거의 동일시하죠. 알고리즘은 아주 단순한 단계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명령의 조합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가 알고리즘이라고 보는 것들이 아주 오래전 기록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기원전 2500년경 바빌로니아에 원시적인 나눗셈 알고리즘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곱셈 알고리즘, 최대공약수 알고리즘, 소인수분해 알고리즘 등을 생각할 수 있죠. 알고리즘이라는 말 자체는 중세 이후 16시기경까지 유럽 대학에서 수학 교재로 널리 사용되던 책 <복원과 대비의 계산>을 쓴 알 콰리즈미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185)
세상에 대한 이론을 만드는 일에는 명제를 분석하는 것과 생성하는 것 모두 필요합니다. 여기서의 생성은 앞서 이야기한 명제의 합성과 논법의 적용을 둘 다 포함합니다. 이론가들이 원하는 완벽한 이론이란 분해와 생성 과정이 어디선가 만나는 경우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이론은 없고, 궁극적으로 가능한지도 불분명합니다.
(323)
그런데 이런 화학적 작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더라도, 그냥 보면 희미한 빛을 시간을 들여 관철하면서 그 구성 성분을 분석해 이 분포도를 만들면, 그 빛이 별에서 나온 건지 은하계에서 나온 건지 금방 구분이 되겠죠. 또 각 원소가 발하는 빛의 파장이 서로 다르므로 별 안에 원소가 어떻게 배합되어 있는지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멀리서 오는 굉장히 다양한 빛의 정보를 이해하기 위한 근본적인 테크닉은 성분 분석입니다. 파장의 분포도를 세밀하게 분류하다 보면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분포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겁니다. 모르는 물체가 등장한 것이니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주에 사는 새로운 시스템의 발견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353)
크세나키스는 작곡할 때 확률론을 굉장히 많이 사용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피아노 곡을 쓸 때 먼저 88개의 음 가운데 ‘이 곡에서 이 88개의 음을 다음과 같은 분포로 사용하겠다’ 정한 뒤 작곡을 하는 겁니다. 가령 ‘도’는 전체 음의 12%가 나오고, ‘레’는 14%, ‘미’는 37% 나오게 하는 식으로 분포를 정한 다음 작곡을 하는 거죠. 음뿐 아니라 박자, 화음, 시간 등의 음악적 요소들을 물리적인 입자와 유사하게 여기는 작곡철학과 관계 있습니다. <확률의 작용>이라는 곡에서는 맥스웰 볼츠만 분포를 많이 사용했는데요, 이는 이상 기체 안에 있는 입자들의 속도 분포를 말합니다. 이를 작품에서 선율의 속도 분포에 사용한 것이죠.
(406)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것 같지만 핵과 전자 사이, 원자와 원자 사이가 비어 있는 것이 아니고 광자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광자의 압력 때문에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적당한 설명인 듯합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손으로 만지는 것이 귀로 듣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물체가 손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빛 때문이라는 의미에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