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쓰는 편지
K 시인에게
변종환 (한국바다문학회 회장)
K 시인님!
폭로되고 비판되어야 할 타락한 사회에 대척될 긍정의 세계는 무엇일까요. 오규원 시인의 시 「보물섬」을 읽어 보겠습니다.
보물섬
-환상수첩 1
오규원
나의 장난기―꽃, 그 여자의 앞가슴 단추를 따고
손가락 하나를 곧추 세워 유방의 꼭지를 누른다.
간지러운 사물의 젖꼭지, 부끄러운 본질의 아름
다움. 세상의 순수한 모든 것은 장난을 좋아한다.
나의 장난- 나의 순수와 그 철없는 사물과의 사랑.
내 앞의 현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해체, 나의 가
장 아름다운 환상의 입체. 빌딩과 기와집과 오물의
뒹구는 골목 사이로 가면 기름투성이 먼지를 뒤집
어 쓴 잡풀들. 극기로 가는 내 꿈의 잔해들이다.
자꾸만 내려앉는 하늘, 내려앉은 하늘이 빌딩의 사각
모서리에 걸려있다. 그 밑에서 호흡이 가쁜 사람들이
노란 해바라기 형상이다. 광기, 꿈의 흑점이 내리박히
는 해바라기, 그 위로 알몸을 드러내는 도시의 권태.
몇 사람이 구름에 사다리를 걸고 위로 위로 오르고 있다.
끝없이―어디에선가 착각처럼 예루살렘의 닭이 운다.
내 귀의 장난?
사람들은 강박관념을 앓는다. 전염병이다. 사물들은
문을 닫아걸고 그들끼리 산다. 말도 그들끼리, 고독도
그들끼리, 사랑도 그들끼리. 나는 짓궂은 어린이, 모험
을 즐기는 동화의 한 아이. 보물섬의 젖꼭지를 누른다.
나의 철없는 사랑. 간지러운 섬의 젖꼭지, 몸을 비틀면
딸기와 포도 덩굴이 뒤덮인 바위가 보인다. 나는 매일
보물섬으로 가는 배를 탄다. 보물섬의 있음-오, 순수한
모순이여. 나는 아버지를 반역하고 흔들리며 흔들리는
만큼의 쾌락에 잠긴다. 시커먼 동굴이 있는 그 것으로
이미 나는 행복한 자. 나는 세상이 모두 길로 이어져
있음을 길에서 보았다.
산문시 「보물섬」의 첫 두 연은 모호하고 혼란한 묘사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해석하기 힘든 이미지들을 헤치고 대충 수습해본다면 아마 이런 진술일 것 같습니다. 즉 그가 긍정하는 행위는 헛된 가짜의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본질의 아름다움”을 밝혀주는 ‘간지러움을 일으키는 장난’이며 그 장난은 “나의 순수와 그 철없는 사물과의 사랑”입니다. 다시 말하면 순수한 정신 또는 정서로 사물의 맥을 짚어 만져 들어가며 그 비의를 캐내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행위는 나를 ‘가장 아름답게 해체’시킬 때 얻어지는 ‘나의 현실’인 동시에 그것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환상의 입체”가 됩니다. 오규원 시인에게 있어 ‘현실’은 우리의 산문 언어에서 대체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비참하고 극복 되어야 할 삶의 공간이 아니며, ‘사물’ 역시 피상적이고 거짓을 품고 있는, 지워버려야 할 객체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오규원 시인의 내면에서 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현실과 사물은 그에게 있어 “구체적인 것”(시, 「당신을 위하여」)이며 만지면 간지럽고 부끄러워하며(시, 「보물섬」) 그래서 “에로틱”(시, 「김해평야」)한, 말하자면 열어보면 ‘보물섬’처럼 아름다운 본질이 숨어 있는 육감적인 공간과 그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사물에 그것의 올바른 이름을 붙여주어야 합니다. “김가 이름 김가에게 주고/길에게 물어 양평 이름 양평에게 주고”(시, 「버리고 싶은 노래」), ‘현실’과 ‘사물’이 이렇다면 그것의 순진 무구함을 찾고, 혹은 그 속에서의 삶을 갖는다는 것은 아마 이상이며 꿈일 것입니다. 더구나 이상과 꿈을 허용하지 않는 현대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환상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시인은 환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환상, 흔들리는 이상의 나무 잎사귀”(시, 「등기되지 않은 현실 또는 돈키호테 약전略傳」), 이럴 때 환상과 현실은 서로 멀리 떨어져 건널 수 없는 심연을 가지면서도 그 관계는 하나로 일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순수한 사물로서 구체적으로 만져볼 수 있는 현실을 얻지 못한다면 그 현실은 환상일 것이며 그와 반대로 일상에서는 환상적이겠지만 그 환상 속에서 마치 돈키호테의 행동처럼 삶의 실감을 얻는다면 그것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환상은 “등기되지 않은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작부일지라도 그녀를 보는 돈키호테에게 귀족으로 보인다면, 그리고 그 환상 속에서 기사도의 자부심을 십분 발휘한다면 돈키호테로서는 충분합니다.
등기되지 않은 현실 또는 돈키호테 약전略傳
― 楊平洞 2
오규원
돈 키호테를 아시지요?
라 만차의 케하다 또는 키하다라는 이름의 50대 사내.
식탁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창 밖을 바라봄. 창 밖의 풍경과
어울리게 아랫배에 힘을 빼고 선 나무들. 그 나무들의 라만차.
어둠이 맥을 놓고 있음. 식탁 위의 요리, 양고기보다 소고기가 많
이 섞인 고기 범벅, 야채, 수프, 빵. 어제와 그제와 또는 언젠가와
같이 그러함. 야채 몇 번, 고기 요리 두 번 포크로 쿡쿡 찔러 먹다
말고 창밖을 봄. 몬티엘 평야, 그도 같음.
어제 새로 맞춘 벨벳 바지와 구두 다시 꺼내 신고 입고 함. 그래
도 아직 시간은 초저녁을 서성거림. 어디선가 웃음 소리. 돌아보니
책에서 나온 기사 고을의 아마디스, 베르날도 델 카르피오, 거인 모
르간테가 서가 옆에 서 있음.
환상. 흔들리는 이상의 나무 잎사귀. 실바의 펠리시아노 기사담
다시 들다 팽개침. 등기되지 않은 현실, 환상. 등기되지 않은 현실
속으로 뛰어듦.
갑옷, 투구, 방패 손질함. 스스로 구속할 자기의 다른 이름들을
구함. 사랑을 바칠 여신도 한 명 정함. 이리하여 둘시네아 델 토
보소.
아가씨여, 저는 마린드라니아 섬의 주인, 거인 카라쿨리암브로이온데 라
만차의 돈키호테님에게 단번에 패해, 아가씨 존전에 뵈오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아가씨여, 이 몸을 마음에 드시는 대로 처분하옵소서. 미소가 떠오름. 창밖을 보니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가볍게 발을 옮김.
태양신 아폴로가 광활한 대지의 얼굴 위에 그 아름다운 황금의 수실을
펼쳐내자마자 색색소조色色小鳥들이 투정하는 남편의 품속을 빠져나와 라 만차의 지평선의 문과 발코니에 나타난 장밋빛 새벽 여신의 강림을 달콤한 노래로 맞아들일 틈도 없이, 라 만차의 케하다氏 아니 돈키호테 로시난테에 올라 몬티엘 평야를 출발함. 한 손에 창을 들고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막막한 들, 그러나 딸깍딸깍 로시난테의 말발굽 소리.-소리 또는 있음, 그대여. 그대 사랑하는 탓으로 고통을 사랑으로 선택하는 한 하인을, 그대는 용납하소서.
종일 말을 달림. 저녁에야 작부 둘이 서 있는 주막을 발견하고 길을 멈춤. 환상과 현실. 나의 현실은 내가 그곳에 있으므로 나의 현실, 내가 그곳에 숨 쉬므로, 내가 그곳을 느끼므로 나의 현실. 잠시 눈을 감았다 뜸. 너희들은 작부. 아가씨들이여, 나의 말을 믿어주십시오. 여러분의 외모에 분명히 나타나는 바와 같은 지체 높으신 아가씨들에게 해를 가하는 것은 제가 속한 기사단에 어울리지도 합당하지도 않는 일입니다.
작부들, 작부답게 웃음을 터뜨림. 현실에서.
돈키호테, 돈키호테답게 웃음. 현실을 밟고 올라선 로시단테 위에서.
희극, 혹은 비극은 여기에 있습니다. 작부와 돈키호테는 서로 다른 현실을 갖고 있고 그래서 그들의 똑같은 웃음소리는 서로 다른 동기에서 연유합니다. 작부의 눈으로는 돈키호테가 환상에 빠진 광인이지만 돈키호테는 ‘현실 속에 뛰어들어’ 귀부인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의 관계는 혹은 하나이면서도 그 두 가지는 영원히 상면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은 언어의 함축적인 비약이 없이도, 진정한 자유와 거짓된 자유, 사물화 하는 인간과 참된 사랑을 가질 수 있는 인간 사이에 가로놓인 깊은 심연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오규원 시인은 이 차원이 다른 두 개의 세계에서 차라리 환상을 선택하라고 충고합니다.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등기된 현실’ 즉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우리에게 분명히 가짜의 편안, 가짜의 만족을 주고 있기 때문이며 상상, 꿈, 이상, 의식, 몽상 등 여러 비슷한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세계에서 진정한 삶의 행복과 원색적이고 투명한 인식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다른 시인의 작품을 감상하겠습니다. 성미정(※1967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고 강원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대머리와의 사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상상 한 상자』가 있음.) 시인의 「사랑은 야채 같은 것」입니다.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성미정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래서 그녀는 그도 야채를 먹길 원했다
식탁 가득 야채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이만 먹었다
그래 사랑은 야채 중에서도 오이 같은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야채뿐인 식탁에 불만을 가졌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고기를 올렸다
그래 사랑은 오이 같기도 고기 같기도 한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식탁엔 점점 많은 종류의 음식이 올라왔고
그는 그 모든 걸 맛있게 먹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
모든 정의(定義)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이기 마련입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일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 시에서처럼 사랑의 정의를 끝없이 바꾸어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사랑인지도 모릅니다. ‘나’의 정의가 마침내 ‘너’의 현실에 닿을 때까지 사랑은 나와 너를 바꾸어갑니다. 사랑은 고귀한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잡식성의 한없는 식욕으로 우리를 삼킵니다.
K 시인님!
선禪(※삼문의 하나. 마음을 가다듬어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깊이 생각하여 무아無我의 경지에 드는 일. 선종禪宗, 좌선坐禪의 준말)은 고정된 틀을 무너뜨리는 그 무엇입니다. 왜냐하면 삶의 궁극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한 잔의 차를 마심에서도 선이 된다면 그 차향과 차 맛에서 삶의 진실한 의미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반목과 질시와 투쟁과 같은 단단한 벽을 허물고 이것이 하나의 생명 살림이 될 수 있다면, 이때의 차 한 잔은 선과 한 맛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선은 우리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고요에 드는 경지이지요.
이 밤, 참선의 의미를 생각하며 행복한 시간 되십시오.
건승을 빕니다.
牧 雲 올림.
■ 약력 ■
* 現, (사)한국문인협회 이사 ·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 (사)부산예총 감사 · 부산진구문화예술인협의회 회장 * 부산문인협회 회장 · 부산시인협회 회장 역임 * 시집 『水平線 너머』(1967‧親學社) 『풀잎의 잠』(2010·두손컴) 『松川里에서 쓴 편지』 (2015·두손컴) 등 5권 * 산문집 『餘滴』 등 2권
첫댓글 적막의 시간에 맞이하는 詩야말로 아삭한 오이맛 같습니다. 회장님 덕분에 공부 잘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