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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것이세월뿐이랴]7
[7] 제목 : 흐르는 것이 세월뿐이랴 제 7 부
미니시리즈 "흐르는 것이 세월뿐이랴" 제 7 부
$#1. 아버지의 집, 마당
아버지, 마루에서 방 쪽으로 들어간다.
정민, 아버지의 뒤를 따라 마루로 올라선다.
어머니와 정희, 묵골댁, 정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서있다.
(1부터 정희의 손이 나올 때는 결혼반지 보여진다)
어머니 아구 속 터져. 내 저년을 그냥! (정민 쪽으로 달려 가려하고)
정희 엄마. (어머니를 잡는다)
묵골댁 (혀를 끌끌 찬다) 동가식 서가숙도 아니고...
기집 잠자리 거처가 저래서야...
쯧쯧. 정민이 사내 아니네.
저래 한데 잠, 자는 기집 어디 번듯한데 치우겠나?
잘 갈치게.
어머니 ...(못마땅하게 묵골댁을 한번 바라본다)
$#2. 안방
아버지와 정민 앉아있다.
정민 ...(고개를 푹 떨구고 있다)
아버지 정민아. 사귀는 사람이 있었더냐?
정민 ...예
$#3. 마당
어머니, 의장에 앉아있고, 그 앞에 정희 서있다.
어머니 (대경실색하는) 뭐라구! 그럼 저년이 진짜 남자랑 밤을 샜단
말이야!
정희 그렇기야 하겠어요? 정민이 그런 애 아니에요.
어머니 ...(조금 수그러지는)
정희 엄마. 제 생각엔 아버지 계실 때, 결혼시켰음 좋겠어요. 아버지
도 정민이 결혼하는 거 보심 기뻐하실 것 같아요.
어머니 ...
$#4. 안방
아버지와 정민 앉아있다.
아버지 조만간 한번 집으로 데려오너라. 아버지한테 술 한잔 따르라고
해라. (흐뭇한)
정민 ...죄송해요. 아버지.
아버지 (보면)
정민 ...우리 잘 안 됐어요.
$#5. 정희의 집, 거실 (밤)
정희, 어머니와 통화하고 있고,
원정, 바닥에 스케치북 펴놓고 크레용으로 그림 그리고 있다.
구체적인 그림은 보여주지 않는다.
정희 네. (사이) 정민이두 생각이 많아서 그렇겠죠. (사이) 네. 엄마.
잠깐 모르는 척 하세요. 제가 한번 말해볼게요.
E 띵똥- 띵똥 초인종 울리는
정희 (현관 쪽을 돌아본다)
$#6. 동 집, 현관 (밤)
정희, 문 열면 성수 서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7. 동 집, 거실 (밤)
정희와, 그 뒤에 성수 어색하게 들어온다.
원정 (벌떡 일어나 성수에게 뛰어간다) 아빠! 아빠!
성수 그래, 원정이 잘 있었어? (머리 쓰다듬어 주는)
정희 (그 모습 지켜보다) 안방으로 들어오세요.
성수 (원정이 한번보고) 그럴까.
정희, 앞서서 안방 쪽으로 간다.
원정이도 따라 들어오려 하면,
정희 원정아, 그림 마저 그려 응.
아빠랑, 엄마랑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8. 동 집, 안방 (밤)
바닥에 앉아있는 정희와 성수.
두 사람 사이에 이혼서류 놓여있다.
정희, 도장을 꼭꼭 눌러 찍는다.
정희 (서류를 성수에게 밀어놓는다) 그 동안 고마웠어요.
성수 ...
정희 진작 당신 편하게 해줬어야 하는데,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어
요. 미안해요.
성수 ...
정희 (일부러 벽시계 보는) 늦었네요.
성수 ...집은 당신 명의로 바꿨으면 좋겠어.
정희 ...(자존심이 상하지만) 고마워요. 당신 알다시피 나 살림 외에
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니까... 염치없지만 받을게요.
원정이 앞으로 남겨준 거라 생각하고.
성수 원정인 청주에 데려다 놓겠어. 당분간 내가 안정될 때까지.
정희 (놀라서 보는)
성수 그게 좋을 거야.
당신 아직 젊어. 원정이만 보고 살기엔.
정희 원정아빠!
성수 정희야. 지금은 아무 말 말고,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 당신의
인생이 걸린 문제니까...
정희 그렇지만... (무슨 말인가 하려다 멈춘다)
$#9. 동 집, 거실 (밤)
원정, 스케치북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성수 원정이 뭐 그린 거야?
원정 선생님이 우리 식구 그려오랬어.
(인서트)
원정의 그림.
(6살 꼬마가 그린 듯한)
성수 큰 가방을 들고 아파트 광장을 걸어간다.
원정, 성수에게 빠이빠이 손 흔드는 그림이다.
원정 (그림을 설명한다. 손으로 짚어가며) 아빠가, 큰 가방 갖구 갔
잖아. 저번에.
성수 응?
원정 (답답한 듯) 저번에 저번에, 가방 갖구 가서, 내가 손 흔들었잖
아.
성수 (잘 모르겠다) 엄마는 그럼 왜 없어?
원정 엄마는 방에서 울고 있어서 없어.
성수 ! (그제야 그림의 뜻을 아는)
정희 ! (놀라서 그림을 보는)
성수, 정희, 눈이 마주친다.
$#10. 정희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성수, 착잡한 심정으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복도에서 정희 뛰어온다.
성수, 정희를 보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문 열리자 타려하는데,
정희 잠깐만요, 잠깐만요.
성수, 멈칫 서서 정희를 본다.
승강기 문 닫히고
정희 (작은 종이봉지를 내민다) 이거. 당신이 두고 간 물건이예요.
진작 전해줬어야 했는데...
성수 (말없이 받는다)...
정희 조심해서 가세요.
정희,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르다 문득 자신의 손에 결혼반지를 본다.
정희, 잠시 반지를 물끄러미 보다, 빼서 성수에게 내민다.
정희 이제 돌려 줄 때가 됐군요. (성수의 손바닥에 반지를 올려 놓
는다)
$#11. 성수의 오피스텔 (밤)
식탁에 앉아있는 성수.
식탁 테이블에 정희가 준 종이봉지가 헤쳐져있다.
잘 다려진 손수건, 양말 한 켤레, 쓰던 면도기.
성수, 주머니에서 정희의 반지를 꺼내 잠시 보다가 식탁에 내려놓는다.
뷰박스에서 필름보고 있던 영주, 뷰박스의 불 끄고 일어나 식탁으로 온다.
영주 이런 것들 굳이 오빠한테 줄 게 뭐 있어. 알아서 처리해도 될
텐데. (반지 집어들고 본다) 날 밝으면 한강에 갈 거야?
성수 (올려다본다)
영주 다들 그러잖아. 팔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부담되는 물건
이니까.
성수 이리 줘.
영주 (못마땅하게 성수를 보다 반지 탁 소리나게 식탁에 올려놓는
다)
성수, 착잡하게 그 반지를 본다.
$#12. 정희의 방 (밤)
정희, 화장대 스톨의자에 앉아있다.
화장대 위에, 이미 두 사람의 결혼사진은 다 치워져있다.
정희, 한쪽 서랍을 열면, 세 식구가 찍은 사진과 반지 케이스가 보인다.
정희, 사진을 들어 잠시 보다 화장대 위에 놓고.
반지 케이스를 열면, 커플반지 케이스로 정희 것은 비어있고, 성수의 결혼반지
가 들어있다.
정희, 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차례로 끼어본다.
엄지손가락까지.
헐거운 반지.
그 위로 두 사람이 반지를 고르던 때의 대화가 깔린다.
정희E 조금 큰 걸로 보여주세요.
성수E 괜찮아.
정희E 작지 않아요? 너무 꽉 끼면 불편할 텐데.
성수E 이래야 죽을 때까지 손에서 안 빠지지.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말야.
정희E 아이 참. 성수씨도. (행복한 웃음소리)
정희, 소리내 웃는다.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면, 반지가 툭 빠져서 굴러간다.
정희 거짓말! 이렇게 잘 빠지는데... (사진 보며) 성수씨, 이거 봐요.
이렇게 헐겁잖아요.
정희,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든다.
정희, 반지를 집으러 가다 웅크리고 울기 시작한다.
$#13. 아버지의 집, 마당 (낮)
복덕방 주인과 손님 (여자, 40대), 집을 둘러보고 있다.
그 옆에 어머니, 손님의 눈치를 살핀다.
아버지, 의자에 쓸쓸히 앉아 그 모습을 본다.
주인 빌라 올리기에는 그만이라니까요.
어머니 그럼요, 터 넓죠. 주변환경 좋죠, 남향이지요, 근방에선 이만한
집 없어요. 사모님.
대문 열리고, 태준 들어온다.
아버지 (일어나며) 자네가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인가?
태준 약 가져왔습니다. (어머니와 목례하고)
아버지 ...(착잡한) 바쁠 텐데 내 괜한 수고를 시키는군.
태준 (웃고)
복덕방 주인과 손님 나온다.
주인 은행에 잡혀 있다는 거 빼고는 흠 잡을 데가 없지요.
어머니 그래서 싸게 내논거지요. 아님, 이만한 물건 어떻게 그 값에
사시겠어요.
주인 당장 경매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사모님. 충분히 저당 풀 시
간은 있습니다.
태준, 놀란 표정으로 어머니 쪽을 본다.
$#14. 순대국집
아버지와 태준, 앉아있다.
태준 (약을 꺼내 내민다) 많이 힘드시지요?
아버지 뭐, 견딜만 하네.
태준 고통이 심하시다는 거 압니다. 선생님.
약 드시고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바로 연락하세요. 어느
때고 제가 오겠습니다.
아버지 (주머니에 약 넣으며) 고맙네.
주인아주머니, 설설 김 오르는 국밥 두 그릇 가져와 놓는다.
아버지 들게. 점심 전일텐데.
태준 예.
아버지, 국밥을 먹는다.
태준, 그 모습을 잠시 보다
태준 ...집이...제가 얼핏 듣기에는 은행에 들어있다고...
아버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태준 걸어오면서 내내 생각했습니다. 외람되지만, 혹여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버지 (수저 놓고) 마음만으로 고맙네.
태준 선생님.
아버지 나헌테야 집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어차피 한평 남짓 묻히면
그만일테고... 애들이 마음에 걸리네만, (쓸쓸한 미소)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애들 엄마한테 또 맡겨야겠구만. 생활력 강한
사람이니, 믿거라 하면서 떠날 밖에.
태준 선생님, (하면)
아버지 어서 들게나. 뜨거울 때 훌훌 먹어야 맛이 있지.
아버지, 열심히 순대국을 먹는다.
태준, 아버지를 안타까이 바라본다.
$#15. 아버지의 집, 안방 (밤)
어머니, 코 골면서 곤하게 누워 자고 있다.
아버지, 진통이 오는 듯 고통스럽다.
아버지, 신음을 죽이고 일어난다.
$#16. 부엌 (밤)
아버지, 태준이 준 약을 허겁지겁 먹는다.
이마에 진땀이 흐르는 아버지, 싱크대 모서리를 잡고, 겨우 진정을 한다.
$#17. 아버지의 집, 마당
어머니, 수돗가에서 걸레 빨고, 묵골댁, 빨랫줄에 생선 넌다.
묵골댁 이제 우짤라 카나?
어머니 어쩌긴 뭘 어째요. 기영이 더러 책임지래야지.
묵골댁 ... (기죽은, 눈치보며 어머니의 옆에 앉는다) 전세는 몇칸짜리
얻을끼고?
어머니 (흘깃 보며) 걱정 마세요. 고모 방은 챙길 테니까.
묵골댁 (딴청) 누가 나 땜에 그라나. 내사 뭐 양로원에라도 가면 되지.
어머니 마음에 없는 말 마세요.
아버지, 외출복 차림으로 나온다.
묵골댁 (보고) 동상, 어디 갈라꼬?
아버지 예.
어머니 바람 차요. 그냥 집에 있지 그래요.
아버지 괜찮아, 운동도 할 겸. 약수터에나 다녀오겠네.
묵골댁 그래 그럼 당겨와.
아버지, 대문으로 가고, 그 모습을 어머니, 지켜본다.
$#18. 안방
어머니와 정희, 정민, 앉아있다.
정희 집은 팔리는 건가요?
어머니 그래야지. 신경 쓸 거 없어. 나 집에 다시 왔을 때, 이미 각오
한 일이다. 집일은 엄마한테 맡기고, 그저 니들은 아버지나 챙
겨드려. 환갑 때까지는 있어주면 좋을 텐데...
정희 (달력 보며) 그러고 보니 아버지, 생신 얼마 안 남았네요.
어머니 그래, 니 아부지 이제껏 힘들게 산 사람이다. 이번에는 잘해
드리자.
정희, 정민 ...
어머니 정민아. 너, 유학 지금 당장은 못 보낸다.
정민 ...알아.
어머니 정희, 너도 김서방하고 이러구 저러구 하지 말고, 다정한 모습
보이구 알았지?
정희 (표정 무거운) 네.
어머니 일어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언제 어덯게 될 지 모르는 양
반. (한숨) 편안히 보내 드려야 된다. 괜히 맘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딸들, 무거운 표정으로 듣는다.
$#19. 약수터
아버지, 약수터 벤치에 앉아있다.
쓸쓸한 표정으로, 운동하는 장년들의 생기 있는 모습을 지켜본다.
$#20. 찻집
아버지 동네의 찻집.
태준, 앉아 있고, 어머니 들어온다.
태준, 어머니보고 일어난다.
어머니, 다가와 맞은 편에 앉고, 태준 앉고.
어머니 (불편하고, 어색한) 그래 왜 날 보자 했어요?
태준 선생님이 계시면 안될 것 같아서요.
어머니 (덜컹하는) 애들 아버지, 더 나빠졌나요?
태준 아닙니다.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테이블에 놓는다)
어머니 (보면)
태준 생각해보면, 선생님께만 은혜 입었다고 할 수 없지요.
사모님께서 이해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제 앞길을 열어주신 두분에게, 달리 보답할 방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어안이 벙벙한)
태준 표현은 안 하시지만 선생님께서 집 문제로 힘들어하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합니다.
어머니 하이 참 (자존심 상해) 병원에서야 어쩔 수 없이 신세 좀 졌
죠, 우리가. 아니 그치만, 왜 내가 댁 돈을 받아요. 기가 막히
네.
태준 중고등학교 육년, 의대 육년 십이년 세월, 학비에... 생활비에
염치없이 주시는 대로 받았습니다. 사모님 입장에서 쉬운 일
아니었다는 거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어머니 아니, 가만 있어봐. 누가 뭘 줬다구. 그니까 우리 애들 아버지
가 댁 뒷바라지를 했다 이말이예요? 지금.
태준 네. 모르셨습니까?
어머니 몰랐죠! 당연히!
응, 입장 바꿔놓고 함 봐요. 내가 댁 공부시킬 처진가!
태준 ...알구 계시는 줄 알고.
어머니 진작 알았음 내가 그렇게 했겠어요! 아구, 기가 막혀라! 주는
사람이나, 넙죽넙죽 받는 사람이나...
태준 ...죄송합니다.
어머니 그래서 (돈 봉투 들어보고) 이거로 신세 갚겠다?
태준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다만.
어머니 그래 한 십억 들었어요? 여기.
태준 사모님...
어머니 (신경질 나서 탁자에 내려놓는다) 집어넣어요!
태준 ...
어머니 아 어서요!
태준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소리 요란하게 울린다.
(시간경과)
태준, 입구 쪽에서 전화를 받고 있다.
애드립으로 "그래요! 이런! 지금 들어갈 테니까 우선, 정 박사님한테 연락해
서..." 등등의 대사 쳐주고,
어머니, 화난 얼굴로 앉아있다.
문득 테이블 위의 봉투에 시선이 간다.
어머니, 집어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태준 쪽을 곁눈질한다.
태준, 어머니 쪽에 등 보이고 전화한다.
어머니, 다시 한 번 망설이다.
봉투를 열고 돈 조금 빼본다.
천만원짜리 수표가 다섯장 정도 들어있다.
어머니, 화들짝 놀란다.
어머니, 돈 한번, 보고, 태준을 본다.
태준, 통화가 끝났는지 핸드폰을 접는다.
어머니, 얼른 봉투에 돈 밀어놓고, 원래대로 탁자에 놓는다.
태준 (앉고) 죄송합니다. 사모님 놀라고, 언짢으신 심정 충분히 압니
다. 하지만, 받아주십시오.
어머니 (처음보다, 누그러진) ..집어넣어요. 나 이 돈 받을 입장 아닙니
다.
태준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제 입장도 한 번 헤아려 주십시오.
어머니 ... (마음이 흔들리지만, 더 약해지는) 필요없다니까요.
태준 병원에서 급한 연락이 와서요. 받아 주시리라 믿고 먼저 일어
서겠습니다. (가방 들고, 목례하고 걸어간다)
어머니 (태준이 멀어지고 나서야, 탁자를 헛손질하듯 짚으며, 기운 빠
진 목소리로) 이봐요. 이거, 가져가야...
태준, 문을 나가고
어머니, 자존심이 한없이 상한 얼굴로 돈 봉투를 내려다본다.
$#21. 약수터
어머니, 손가방을 흔들며 씩씩거리면서 걸어온다.
아버지가 앉아있던 약수터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만, 아버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 멈춰 서서 호흡을 고르는데, 분노와 자존심 상한 감정이 뒤범벅되어 울
듯한 표정이다.
$#22. 순대국집 앞
어머니, 유리문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아버지, 보이지 않는다.
$#23. 길
어머니, 시장 본 비닐봉지들이 양손이 부족할 정도로 들려있다.
어머니, 술이 거나하게 취해, 기분 좋은 얼굴로 혼자 키득대며 온다.
맞은편에서 복덕방 주인과, 손님이 걸어온다.
주인 아이고. 아주머님. 마침 딱 잘 만났습니다. 계약서 가져 왔습니
다.
어머니 나, 집 안 팔아요.
주인 예? 그 값에 그냥 계약 할 겁니다. 낮게 후려칠 거 아니고, 내
놓으신 금대로,
어머니 후려치든, 올려 쳐 주든, 안 판다니까요.
주인 (기분이 상한) 돈이 급하시다더니, 어디 복권이라도 맞으셨나.
어머니 (화르르 웃으며) 아구. 이 아저씨 족집게네. 맞아요, 나, 오늘
돈벼락을 맞았에요. 횡재수가 있어나. 돈방석에 올라앉았잖아
요.
어머니, 휘적휘적 걸어간다.
그 모습을 멀거니 보는 복덕방 주인.
$#24. 아버지의 집 앞 (저녁)
해가 기우느라 어스름해지는 시각이다.
아버지, 걸어온다.
$#25. 마당 (저녁)
아버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함께, 마당 한켠이 잔칫집 같다.
화덕에서 피어오르는 고기 굽는 연기.
어머니와 묵골댁, 정민, 정수 고기파티를 하고 있다.
어머니 여전히 취기가 있는
묵골댁 동상 이제 오나.
아버지 예에.
어머니 (반색하며) 아이구! 정희 아버지 얼른 와요.
정민과 정수, 아버지에게 인사하고.
정수, 쪼르르 달려가 손 끌고 온다.
정민, 아버지에게 자리 마련해준다.
어머니 (저를 들려주며) 자자, 어서드세요. 술도 한 잔 하실래요?
묵골댁 희야 어매가 기분이 좋은 갑다 무신 좋은 일 있나?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다 이 냥반 덕이에요.
아버지 (보면)
어머니 (고모한테) 이 양반이요. 글세 저 몰래 적금도 큰 걸 들어 났
구요. 아따 이자도 엄청스럽게 많이 받구요. 그러니 기분이 좋
을 수 밖에요.
아버지 (어리둥절해서 보고)
묵골댁 어이? 참 말이가. 그게. 내 그럴 줄 알았다.
우리 동상이 어떤 동상인데... 착실키로 말하면사 조선천지 둘
ㅉ가라믄 서러울낀데... 내 다 수가 있을 줄 알았다.
아버지 그게 무슨 소리요?
어머니 시침 떼지 마세요. 나 오늘 당신이 들어둔 적금 찾아 왔세요.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아버지 정희 엄마.
묵골댁 아고, 니네 엄마 취했다 보다. 또 그 버릇 나오네.
어머니 좋아서 그래요. 좋아서 (웃으며) 우리 정희 아버지 덕에 편히
살 생각하니 좋아서 이러잖아요.
정민 엄마, 들어가서 좀 누워. 안되겠다.
묵골댁 어! 그래 정민아, 너그 어무이 자리 좀 봐 드리라.
어머니 (손 내젓고) 오줌이나 좀 누고 올게요.
어머니, 웃으며 일어나는데 비틀한다.
정민, 부축하려면 아버지가 잡는다.
아버지, 어머니를 감싸안고 마루로 간다.
어머니의 키득대는 웃음소리.
묵골댁과 정희, 정민, 웃으며 두 부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26. 안방
문 열리고, 아버지, 어머니를 부축해 들어온다.
아버지 좀 눕지. (하는데)
어머니 이거 놔요!
어머니, 아버지의 팔을 확 뿌리치며 시퍼렇게 날 선 눈으로 노려본다.
아버지 (당황한다) 정희 엄마.
어머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래
도 당신 자식 줄줄 낳고, 산 나한테 어떻게 이래요!
$#27. 마당
묵골댁과 정민, 정수 고기를 먹다 안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어머니의 큰소리에
놀란다.
서로 얼굴 마주보는.
$#28. 안방
아버지와 어머니, 대치 상태로 서 있다.
어머니 우리 정희, 대학 입학 때, 새 옷 한 벌 못해 입혔어요. 우리 정
민이 학교 다닐 때, 레슨 한 번 못 시켜 봤어요. 그런데 뭐가
어째요? 누구 학비를 대주고, 생활비를 줘요!
아버지 (놀라는) 여보.
어머니 기영이 때문인 줄 알지 퇴직금도 월급도 그래서 축난 줄 알았
지! 그 사람 의사 만들라구 당신이 그런 줄 내 몰랐는데...
아버지 그게 무슨 소리요?
어머니 (서랍 위에 얹어 두었던 돈 봉투를 확 잡아채 집어던진다) 태
준이가 줍디다. 저당 풀라고.
수표가 방바닥에 흩어진다.
$#29. 마당
묵골댁과, 정민, 정수 마루 앞에 서 있다.
묵골댁 이기 시방 무신 소리고. 어이?
정민 ...
묵골댁 니네 어무이 술 주정 하나부다. 안되겠다 (댓돌을 올라서려 하
면)
정민 고모... (묵골댁의 팔을 잡는다)
정수 (불안한 얼굴로 방 쪽을 보고)
$#30. 안방
아버지, 앉아서 돈을 봉투에 놓는다.
어머니, 여전히 서 있다.
아버지 (화난) 대체 이 돈을 왜 받았소!
어머니 내가 못 받을 거 받았어요? 당연히 받을 거 받았어요? 당연히
받을 거 받았어요. 내 자식들 못 입히고, 못 먹이고... 그 세월
생각하면... 내 그 돈 이자를 놓았어도 빌딩을 올렸어요!
아버지 그래도 받아서는 안 되는 돈이오! 돌려주고 오리다. (일어선다)
어머니 (처연하게, 낮은 목소리로) 그 여자 아들인데... 그 여자 아들인
데... 나라고 그 돈 받고 싶었을까...
아버지 (문 쪽으로 가다 돌아본다)
어머니 (주르르 맥없이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으며) 조금만 적었어
도.. 이렇게 큰돈만 아니었어도 나두 그 돈 안 받어...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소리 내지 말고)
아버지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 나 그런 년이에요. 돈이라면 뭐래도 하는... 자존심두 없구, 염
치두 없구, 그 여자 아들한테라두 손 벌리구..
아버지 ... (애달프게 어머니를 보는데0
어머니 갖구 가요! 그래 갖구 가! 어떤 마음으루 내 그 돈 받아왔는
데. 다듬돌루 억장을 짓누르는데.. 가슴이 갈라지구 쪼개지구!
당신이 내 맘 알어요! (서러운 눈으로 아버지를 본다)
어머닉, 기어이 통곡을 한다.
아버지, 난감하게 그런 모습을 본다.
$#31. 병원 앞, 마당 (밤)
태준, 퇴근하고 나온다.
동료 직원들과 인사하며 걸어나오다, 발길을 멈춘다.
아버지, 담배를 피우고 태준을 기다리고 서 있다.
아버지와 태준의 눈길이 마주친다.
마치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32. 동, 일각의 벤치
아버지와 태준, 마주 앉아있다.
아버지 ...괜한 짓을 했네.
태준E 죄송합니다. 선생님.
잠시의 침묵, 두 사내의 입김이 하얗게 뿜어진다.
아버지 고맙네. 애들 엄마, 정수, 정민이...누님.
두고 가는 사람들에 대해 자네가 내 빚을 조금이라도 덜어주
는구만. 고맙네.
태준 선생님 마음이 제 마음과 같습니다.
지난날 제 마음의 빚을 이렇게라도 조금 덜어주시니 제가 외
려 감사하지요.
아버지, 따뜻하게 태준을 본다.
태준, 그 마음 알겠다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본다.
아버지, 고개를 끄덕이며 태준의 손을 잡고 두어번 투덕여준다.
$#33. 아버지의 집, 안방 (밤)
술에 취한 어머니, 쿨쿨 자고 있다.
문 열리고, 조심스럽게 아버지 들어온다.
아버지, 양복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어머니 머리 맡에 올려 놓는다.
아버지, 벽장문을 연다. (벽장 하나 필요)
벽장 안에, 옛날 책들이 꼽혀있다.
아버지, 그것을 가만 보다가 그중, 오래된 양장본 책 한권을 꺼내 든다.
$#34. 마당 (밤)
아버지, 의자에 앉아 책을 케이스에 꺼낸다.
책장을 넘기면, 책갈피 속에, 젊은 혜선(태준 엄마)의 빛 바랜 흑백사진이 나온
다.
아버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
아버지E (아버지의 속마음 소리) 오랜만이로구만. 이렇게 자넬 보는 것
도 한 이십년 됐지? 혜선이 자네 아들 태준이 말일세. 좋은 사
내가 됐더군. 어떻게나 속내가 따뜻하고 깊은지..
내 요새, 자네 아들한테 신세를 지고 사네.
아버지, 회한에 잠긴 표정으로 사진을 바라본다.
이런 모습들 위로 마치 배경 음악처럼 잔잔하고, 여리게 클라리넷 연주가 이어
진다.
$#35. 정민의 방 (밤)
정민, 조용히 클라리넷을 불고 있다.
정민, 클라리넷을 불면서 책상 위를 본다.
책상 위, 작은 사진틀의 사진.
단발머리 학생시절의 정민과 준일이 클라리넷을 들고 찍은 사진이다.
정민, 생각에 잠긴다.
$#36. 정민의 학교, 음악당 (회상)
정민, 텅빈 음악당의 무대 위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다.
이 교수, 다가온다.
눈치채지 못하는 정민.
이 교수, 잠시 정민을 보다 무대 위로 올라온다.
정민, 그제서야 연주 멈추고,
두 사람, 서로를 바라본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이 교수, 피아노 의자에 앉는다.
이 교수 학과장님 말씀, 그대로 전할게.
정민 ...
이 교수 일단 박 조교가 조교 일을 그만 두길 바라시더군.
정민 음악당에 갇혀 있는 게 잘못인가요?
이 교수 보기에 따라서는...
학교는 보수적인 곳이야, 박 조교.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그리 크게 바뀌지는 않아.
정민 또 다른 사안도 있나요?
이 교수 박 조교는 연주자의 길 보다는 학교에 남고 싶어서, 대학원을
선택한 건가?
정민 아뇨. 그냥 선생님 옆에 있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이 교수 다행이야. 지금 학과장님이나 교수님들이 재직 중에는 학교에
남기 힘들 거라는 이야기 어떻게 할까 망설였는데... 다행이야
이유가 그것뿐이라니.
정민 ....
이 교수, 무대를 가로질러 내려간다.
그 모습을 망연히 보는 정민.
$#37. 정민의 방 (현실, 밤)
정민, 침대에 앉아 클라리넷을 정성껏 닦는다.
$#38. 준일의 집 앞 (다른 날, 낮)
이 교수의 차, 주차되어 있고.
준일, 작은 트렁크를 들고,
최 조교 큰 가방 들고, 이 교수와 함께 나온다.
최 조교, 차에 짐 싣고.
준일, 허전한 느낌으로 집을 한 번 보다, 열쇠로 대문 잠근다.
준일 (열쇠, 이 교수에게 주며) 잘 부탁합니다.
이 교수 네. 뒷일 잘 처리하고 따라 갈게요.
타세요. 월요일이라 길 밀릴지 몰라요.
준일, 집을 다시 한 번 본다.
이때 오토바이 소리 나면서, 우편배달부 다가온다.
우편배달부, 소포 꾸러미를 들고 내린다.
준일, 차에 타려다 우편배달부를 보는
$#39. 공항, 커피숍
준일, 소포구러미를 풀고 있다.
포장지 벗겨지면, 정민의 클라리넷 케이스가 나온다.
준일, 흠칫 놀라 케이스를 열어보면 정민의 클라리넷과 편지봉투가 들어있다.
최조교E 선생님. 짐 다 부쳤습니다.
준일,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올려다보면 이 교수와 최 조교가 다가온다.
이 교수, 의자에 앉으려다 정민의 클라리넷을 보고 놀란다.
$#40. 공항, 탑승 게이트 앞
준일과 이 교수, 서 있다.
이 교수 굳이 말씀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떠나시는데 마음만 무거워지
실 듯 해서.
준일 ...
이 교수 (시계보고) 들어가셔야 겠네요.
$#41. 비행기 안
준일, 좌석에 앉아있다.
탑승객들 드문드문 자리를 채우고, 한 두 명씩 들어오는.
준일의 무릎 위에 정민의 클라리넷 케이스가 열려 있고,
준일, 정민의 편지를 읽는다.
(인서트)
1. 비오는 차안, 정민의 준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2. 준일의 발을 주물러주는
3. 음악당에서 준일에게 안겨우는 정민.
이런 그림들과 준일이 비행기 안에서 정민의 편지를 보는 장면이 서로 엇갈리
듯 교차되면서, 정민의 목소리 흐른다.
정민E 선생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이제 선생님께 돌려 드리려 해
요. 선생님과 함께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제겐 의미가 없어
요. 선생님.
사랑하는 사람을 잊으려면, 함께 했던 시간의 두 배가 필요하
데요. 그렇다면,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선생님을
잊을 수 잊겠네요
$#42. 연결트랩 앞
스튜어디스, 입구에서 탑승객들에게 인사한다.
준일, 클라리넷 케이스를 들고 비행기에서 뛰어나온다.
준일, 탑승객들을 헤치고 연결통로로 나가면,
스튜어디스 손님! 손님!
준일, 연결통로를 뛰어간다.
$#43. 아버지의 집, 근처 (밤)
정민, 집에서 입던 옷차림 그대로 가디건만 걸치고 가게에 다녀오는 길이다.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걸어오는 정민.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입술만 달싹이며 말을 잇지 못한다.
정민, 준일의 가슴에 고개를 툭 기댄다.
준일, 결심이 선 듯 정민을 꼭 안아준다.
$#44. 아버지의 집, 마당 (다른 날, 아침)
아버지도 딸의 손을 잡고, 대문 쪽으로 간다.
마당에서, 어머니와 묵골댁, 일하고 있다.
정수 (어머니와 묵골댁에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묵골댁 온냐.
어머니 일찍 일찍 와! 방학했다구 친구랑 놀지 말구. (아버지와 눈이
마주친다)
아버지 ...
어머니 (냉기가 흐르게 외면한다)
정수 (아버지와 어머니 눈치보며) 네.
아버지 그래. 일찍 오너라. 저녁에 우리 정수 둘째 형부 봐야지.
정수 응. 아빠 갔다 올게.
$#45. 대문 앞
아버지, 댓돌이 서 있고
정수, 걸어간다.
정수, 몇 번씩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아버지,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가라는 손짓을 한다.
정수, 팔랑개비처럼 뛰어간다.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가늘게 뜨고, 안타까이 지켜보는 아버지의 모습.
$#46. 시장
어머니와 정희, 장을 본다.
어머니 독일에 공부하러 간다는 거 보니까, 재산은 좀 있는 거 같지?
없는 집에서 유학 보낼 수 있겠어?
정희 그렇겠죠.
어머니 까짓것, 지들 좋다면야, 우리 형편에 뭘 더 가리겠니.
정희 (웃는다)
어머니 오늘은 김서방 꼭 오라 그래. 아무리 바빠도.
정희 (표정 굳는)
어머니 큰 사위, 작은 사위, 동서끼리 상견례는 해야지.
정희 엄마. 저, 저희 말이죠... (하는데)
어머니 이유가 뭐든 오라 그래. 부부간에 다툼 길어 좋을 거 없어.
정희 엄마.
어머니 (웃으며) 뿌듯하겠다. 아들 못 낳은 한이 반분이나 풀리겠어.
원정이 애비, 정민이 신랑, 떡 하니 앉혀 놓으며 방이 꽉 차겠
다.
어머니, 기분이 좋은 듯 앞서서 가고,
정희, 그 모습을 바라본다.
$#47. 부엌 (저녁)
어머니와 묵골댁, 정희, 웃으며 음식 장만한다.
바쁘게 상 차리는 식구들.
정민, 곱게 입고, 부엌으로 들어온다.
정민 뭘 그렇게 많이 하세요.
묵골댁 니 서방 될 자리 먹일라 안쿠나
어머니, 정희 (웃고)
묵골댁 그래, 니 신랑 될 자리는 뭐하는 사람이고?
어머니 고모는. 둘 다 음악한다 그랬잖아요.
묵골댁 (못마땅해서) 뭐, 사내가 그런 걸 한다고... 그래 어느 집안 손
이가?
정민 ... 좀 있다 보세요. 고모.
$#48. 슈퍼마켓 (저녁)
아버지와 정수, 숨을 고른다.
$#49. 아버지의 집, 근처 (저녁)
아버지와 정수, 손 꼭 잡고 걸어온다.
아버지의 손에 비닐봉지.
준일의 차, 주차되어 있고 준일의 뒷모습이 보인다.
정수 아빠! 왔나봐. 둘째 형부.
아버지 어! 그래.
아버지와 정수, 서둘러 걸어온다.
준일, 초조한 듯 서 있는데.
아버지, 준일을 본다.
아버지 선생님 아니십니까?
준일 ! (돌아본다) 아, 예.
아버지 선생님이 이곳가지 웬일이십니까?
준일 ...
아버지 학교 일로 정민이 보러 오신 모양이군요.
준일 ...예.
아버지 같이 들어가시지요. 안 그래도 오늘 정민이 사귀는 사람이 온
다구 해서, 식구들이 밥이나 먹을까하고 있었는데.
함께 들어가시지요.
준일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정수 (준일을 의아한 표정으로 본다)
$#50. 마당 (저녁)
아버지, 정수와 들어온다.
마당에 정민이와, 어머니, 묵골댁 왔다갔다 분주하고.
아버지 정민아. 밖에 선생님 와 계신다. 학교일로 의논하실 게 있어서
오셨다는구나.
정민 ... (표정이 잠시 무거워진다)
$#51. 준일의 차 안 (저녁)
준일, 운전석에 앉아있다.
힘겨운 표정이다.
옆 좌석에 케익과 꽃이 놓여있다.
계단을 내려오는 정민 보인다.
정민, 차로 다가와 똑똑 문을 두드린다.
차장 내려간다.
정민 (활짝 웃으며) 어서 오세요. 선생님.
$#52. 아버지의 집, 마당 (저녁)
정민, 한손에 케익과 꽃 들고 들어온다.
정민 (뒤돌아보며) 들어오세요.
준일, 들어온다.
어머니와 아버지, 달려온다.
어머니 아휴!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준일 예.
아버지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안 그래도 우리 정민이 결혼할 사
람이 음악 한다고 해서, 선생님이 한 번 봐주셨으면 했습니다.
준일 ...
정민 엄마. 아버지.
식구들 (보면)
정민 이제 아무도 안 와요.
아버지 (의아한 듯 보면)
정민 선생님이 저와 결혼하실 분이에요.
묵골댁 어이? (정민과 준일을 번갈아 보며) 뭐가 뭐시라고?
아버지 !
어머니 (기절할 듯이 놀린다)
$#53. 안방 (저녁)
아버지와 준일, 앉아있다.
잘 차려진, 상을 정희와 정민, 들고 들어온다.
정희와 정민, 방 가운데 상을 놓는다.
정수, 묵골댁 방을 기웃거리며 본다.
아버지 누님 들어오십시오.
묵골댁 (준일을 보며) 이기 도대체가 어떻게 된 일이고? 작은 아 신랑
짜리가 온다더이, 와 다 늙은 중늙은이가 와서 앉았노. (끌끌
혀 차고, 돌아선다)
준일 ...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아버지 ... 정민이도 게 앉고, (정희에게) 정희야. 너희 어머니 들어오
시라 해라.
정희 예.
$#54. 부엌 (저녁)
어머니, 부뚜막에 앉아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묵골댁, 안방 쪽을 흘깃거리며
묵골댁 희야 어매야, 대체 뭔 일이고? 참말로 그 중늙은이가 정민이
랑, (하는데)
어머니 고모! 남의 염장 좀 그만 지르세요!
정희 (들어서며) 엄마, 아버지가 들어오시래요.
어머니 싫다. 내가 거길 왜 들어가! 아구, 도둑놈... 딱 지 딸만한 애를.
아구 열불 나. 아구 열불 나. 천금같은 사위 줄라구 만든 음식
을 도둑놈 입에 퍼 넣게 되다니...
정희 엄마.
어머니 (벌떡 일어나며) 아니지. 내가 들어가 봐야지. 내 방에 들어가
서, 당장 이 인간을!
어머니, 부엌을 나간다.
정희 걱정스럽게 본다.
$#55. 안방 (저녁)
문, 벌컥 열리고 어머니 들어온다.
어머니, 눈이 찢어져라 준일과 정민을 노려본다.
아버지 앉게. 그만.
어머니 ...(앉는다)
아버지 (술병을 들고) 자, 선생님, 제 잔 한잔 받으시지요.
준일 아닙니다. 제가. (술병을 들려 하면)
아버지 (손 내저으며) 받으십시오. 먼저.
준일 (어쩔 수 없이 잔 받고, 아버지의 잔 채워준다)
아버지 드시지요. 지난번에 너무 대접이 소홀해 마음에 걸렸는데, 이
렇게 와주셔서, 다행입니다. 차린 것 변변찮습니다만, 많이 드
십시오. (정민, 정수에게) 니들도 먹어라.
어머니 정희 아버지! 지금이 한가하게 술이나 나눌 때예요!
아버지 좀 조용히 하게. 어서, 드십시오. 시장하실텐데.
준일 말씀 놓으십시오.
아버지 그럴 수가 있나요. 아무리 지난 이야기라 해도, 군사부일체가
아닙니까?
준일 ...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 동안 우리 정민이 잘 돌봐주셔서. 그런데, 선생
님, 지난번 제가 선생님께 청을 하나 드렸는데... 기억하시는지
요?
준일 예?
아버지 이제 작은애가 혼기가 차질 않았습니까. 어디 심덕좋은 청년
있으면 소개시켜 주십시오. 짝을 지워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서.
정민 아버지.
준일 ...
아버지 자, 드십시오. 음식이 다 식습니다.
$#56. 마당 (밤)
마루에 어머니, 서 있고.
준일, 대문 쪽으로 걸어간다.
그 옆에 아버지와 정민.
아버지 (정민에게) 너는 여기 있거라. 내 배웅해 드릴테니.
정민 ...(멈춰선다)
$#57. 아버지의 집, 앞 (밤)
아버지와 준일, 차 앞으로 걸어온다.
아버지 오르시지요.
준일 (뭔가 말을 해야겠다는) 정민, 아버님. 정민이와 저,
아버지 (말 끊으며) 그럼 살펴 가십시오. 멀리 안 나갑니다.
아버지, 준일에게 고개 숙여 깍듯이 절한다.
준일, 할 수 없이 절하고.
아버지, 돌아서서 뚜벅뚜벅 걸어간다.
준일, 아버지의 그 완강한 거부의 몸짓을 보다 한숨을 내쉰다.
$#58. 마당 (밤)
어머니, 정민의 뺨을 호되게 후려친다.
어머니 이 미친년!
정민 나, 선생님 사랑해요. 나이 차가 난다고 사랑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어머니 그만 못해! (정민을 손가는 데로 팬다) 이년아! 정신 차려 이
년아! 세월이 아깝구, 청춘이 아깝다.
정희 엄마... (어머니의 팔을 붙들며 말리는)
묵골댁 (쯧쯧 혀만 차고)
아버지, 마당으로 들어선다.
어머니와 아버지, 눈이 마주친다.
어머니, 옆에 있던 꽃다발을 냅다 집어던진다.
놀라는 식구들.
정수, 놀라서 '아빠...'하며 엄마, 아버지를 본다.
어머니 이게 다, 저 인간 때문이야! 이게 다! 남의 새끼 돌본다고, 지
새끼들 안 돌본 다 당신 때문이야! 오죽 애비 정이 그리웠으면
다 늙은 그 인간을...
아버지 ...
묵골댁 동상댁, 와 화살이 엉뚱한 데로 튀노.
정희 엄마...
어머니 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 때문!
어머니, 아버지에게 케익상자를 집어던진다.
정수 아빠한테 이러지마!
식구들, 다들 놀라서 정수를 보면.
정수, 눈물을 흘린다.
정수 엄마, 아빠한테 이러지 마. 응! 아빠... 아빠, 아프잖아. (주저
앉아서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아버지, 그 모습을 보다 등을 돌려 대문을 빠져나간다.
$#59. 아버지의 집, 대문 앞 (밤)
정수, 손에 아버지의 목도리와 잠바를 들고, 목을 빼고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60. 이발소 안 (밤)
이발사, 아저씨 낚시 가는 복장으로 소파에 앉아 낚시대를 손질하고 있다.
문 빼꼼히 열리면서, 정수의 얼굴 보인다.
이발사 어! 정수구나.
정수 (둘러본다)
이발사 부장님 찾아왔니?
정수 (고개 끄덕인다)
이발사 부장님은 오늘 안 오셨는걸. (낚시대를 손질한다)
정수 (낚시대를 본다)
이발사 (정수의 눈빛을 따라) 그래. 할아버지 낚시 간단다.
정수 ...
이발사 (혼잣말 처럼) 마음이 설레는구나. 낚시가 아주 재미있단다...
정수 ... (이발사의 낚시대 손질 모습을 본다)
$#61. 순대국집 (밤)
아버지, 술을 마신다.
열린 문으로 정수, 들어와 선다.
아버지 우리 정수 왔구나.
정수 (아버지의 의자 옆에 들고 온 목도리와 잠바 놓고) 이제 집에
가.
아버지 조금만 더 있다 가자... 그래도 되지?
정수 (아버지의 맞은 편에 앉는다)
아버지 ... (우울한 얼굴로 술잔을 기울이는)
정수 나, 노래 부를까?
아버지 (딸을 가만히 보는)
정수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 부를까? (일어선다)
아버지, 가만 막내딸의 손을 잡고 끌어다닌다.
아버지, 정수를 아주 꼭 안아준다.
정수 아빠, 나 방학했어.
아버지 (정수를 품에서 놓아주고 본다)
정수 방학하면 할아버지 살던 바다에 가자구 그랬잖아. 아빠, 나 청
어 잡아줘.
아버지 ...
$#62. 이발관 앞 거리 (밤)
정수, 아버지의 손을 끌고 온다.
이발사, 낚시대를 메고 이발관 문을 닫고 있다.
$#63. 바닷가 (아침)
아버지와 이발사, 방파제 앉아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정수.
아버지, 쿨럭쿨럭 기침을 한다.
(인서트)
이발관에서, 아버지와 이발사가 술을 마시며, 나누던 대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
인 대목들.
정수, 아버지의 옆모습을 쓸쓸히 바라본다.
$#64. 작은 점방
바닷가의 옹색한 점방
공중전화가 바깥 입구, 담에 설치되어 있다.
정수, 타박타박 전화기 앞으로 걸어온다.
$#65. 아버지의 집, 마루
어머니와 묵골댁, 정희, 정민 다 같이 걱정스런 얼굴이다.
어머니 아구 속 터져. 내가 홧병으로 죽어야 정신들을 차릴래나...
정희 엄마.
묵골댁 아구! 대체 이게 무신 일이야 얼라까지. 엉. 어디 신고라도 해
봐라.
E 따르릉-따르릉,
전화벨 울린다.
정희 (수화기 들고) 여보세요. 정수야!
어머니 (번쩍 귀가 뜨이는) 이리 이리 내. (수화기 잡아채듯 받고)
정수E 언니. 나 있잖아.
어머니 이 미친년! 거기 어디야! 응. 어디야 거기!
$#66. 점포 앞
정수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할아버지 살던 곳.
어머니E 뭐, 뭐?! 이게 또 무슨 소리야? 니 아버지 바꿔. 얼른.
정수 엄마, 아빠한테 그러지마. 아빠두 다 알아. 다 안단 말이야.
(운다)
어머니E 알긴 뭘 알어 이년아!
정수 아빠두, 아빠 죽는 거 알아. 수술 못 한 거 다 알아.
$#67. 아버지의 집, 마루
어머니 ! (가슴이 떨어진다, 수화기를 들고 굳어지는)
수화기 저편으로 정수의 울음소리와, 말 소리가 들린다.
정수E 그니까, 그니까 아빠한테 그러지마. 엄마.
어머니,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식구들 놀라서 '엄마/와. 와 이러니/ 동상댁/' 애드립으로
$#68. 점포 앞
정수, 담벼락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서럽게, 서럽게 운다.
$#69. 방파제
아버지와 이발사의 낚시가 이루어지고.
정수, 천천히 방파제를 향해 걸어온다.
그 위로.
정수E 아빠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삼천포, 그 바닷가에 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청어를 잡으러 다니셨던 할아버지의 집도.
아빠가 할머니와 함께, 할아버지를 기다렸다던 그 언덕도.
이제는 다 지난 일이라고...
흐르는 것은 세월뿐이 아니라고...
아빠는 쓸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제 7 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