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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01
#.1 씬. 제주도 바닷가 절벽.(낮)
바다를 향해 골프공을 때리고 있는 남자의 실루엣. 거친 파도를 향해 날아가는 하얀 골프공.
천천히 강석의 모습 드러나고. 거친 바다를 향해 연신 골프공을 날리고 있다.
#.2 씬. 제주도 내 호텔.(낮)
‘돌하르방은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플랜카드가 걸려있는 건물을 배경으로.
택시에서 내리는 노교수와 단아.
단아 : (핸드폰 통화 하면서 택시에서 내려 차 문을 잡아주며) 네, 네, 교수님.
그럼 교수님 발표 순번을 약간 뒤로 조정하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핸드폰을 끊으며, 노교수에게) 박교수님 개인 사정으로 약간 늦으시겠다구요.
노교수 : (못마땅한 표정으로) 공적인 행사에 무슨 개인 사정 타령인가, 그 친구 참.
그 친구가 남방기원설인가?
단아 : 네. 몽골기원설 발표자이신 김치환 교수님을 앞 쪽으로 돌려야 할 거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기다리고 있다가 급하게 다가서는 강석.
강석 : 점심 모임은 잘 하셨습니까?
노교수 : (역시나 못마땅하고) 참 한가한 친구로구만.....
(단아와 나란히 걸어가면서) 다른 거 변동 사항은 없는 건가?
단아 : 아직은 연락 받은 사항 없습니다.
강석 : (급하게 따라 붙으며) 액수를 좀 조정하면 어떻겠습니까?
노교수 : (탁 멈춰 서서 강석을 차가운 눈으로 보면) 내가 시장 장사치로 보이나?
강석 : 결국은 그게 가장 큰 문제 아니겠습니까?
단아 :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석을 보는)
강석 : 1,2억 정도는 더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그 쪽에 말을 좀 넣어주시면 어떨까 싶은데요?
단아 : (강석 앞을 막아서며) 그만 하시죠.
강석 : 그쪽이 끼어들 일은 아닌 거 같은데요.
(노교수에게) 그쪽 형편이 꽤 어렵다고 하던데......
노교수 : 사람에 대한 예의가 뭔지는 알고 있나?
강석 : 귀한 물건을 정당하게 대우 해주겠다는 게 예의라고 알고 있습니다.
노교수 : 그런 건 예의가 아니라 흥정이라고 하는 걸세. (걸어가면)
따라가려는 강석의 팔을 잡는 단아.
강석 :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홱 단아를 돌아보는) 끼어들 일 아니라고 했을 텐데요?
단아 : 세상에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강석 : 그런 거 뭐 알고 있는데요? 돈으로 안 되는 일?
#.3 씬. 호텔 로비.(낮)
노교수 걸어가고 있으면, 빠르게 걸어가서 말을 건네는 강석.
단아 : (걸어가며 질린다는 표정으로 강석을 보는데)
자료 뭉치 잔뜩 들고 걸어오는 남교수(여).
남교수 : 슬라이드 자료에 문제가 좀 있는데.
단아 : 오전에 다 체크 했는데요.
남교수 : (미소 지으며) 내 조교 애가 좀 그렇잖아?
(그러다 앞서 가는 노교수와 강석을 보는) 누군데 저렇게 교수님을 귀찮게 하는 거야?
단아 : 족보를 사겠대요.
남교수 : 뭘 사?
#.4 씬. 모텔 전경.(낮)
태영E : 대충 하고 나와라. 때 미냐?
#.5 씬. 모텔 룸.(낮)
태영, 팬티 차림에 와이셔츠를 걸치며, 지갑에서 만 원 짜리 지폐 몇 장 꺼내 테이블 위에 놓으며.
태영 : 여기 택시비 놔둘 테니까 팍 팍 불려서 박박 밀고 가라.
여자E : (욕실 안에서) 오빠, 오빠, 나 금방 끝나.
태영 : 금방 끝내지 마시구요. 하시고 싶은 거 마저 끝까지 하시고 가시라구요.
(거울 보면서 머리도 매만지며, 혼잣말로) 지지배. 광 내봐야 빛도 안 나는 게.
노크 소리.
태영 : (문을 향해) 뭐야?
남자E : 아래층에서 누수가 된다고 해서요.
태영 : 목욕해서 그러니까 잠깐만 참으라고 해.
남자E : 욕실이 아닌데요, 잠깐 문 좀 열어주십쇼.
태영 : 욕실이 아니면 어디서 물이 새?
남자E : 잠깐 살펴만 보겠습니다.
태영 : (귀찮다는 표정 역력한 채로, 문 쪽으로 가서 손잡이 돌리며) 지지배, 진작 나가자니까.
손잡이 돌리는 순간에 문 벌컥 열리며.
정복 경찰과 모텔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흥신소 남자. 현옥 서있다.
경찰 : (신분증 보여주며) 간통 혐의로 고소가 들어와서 현장 좀 보겠습니다.
태영 : (당황해서 현옥을 보는) 당신, 여기 어쩐 일이야?
현옥 :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어쩐 일일 거 같은데?
태영 : (들어오려는 경찰, 흥신소 남자 막아서는데.
그 사이 흥신소 남자 급하게 침대 사진 찍고, 쓰레기통 사진 찍고 바쁘다) 이봐, 이봐, 지금 뭐하는 거야?
욕실에서 타월로 몸 가린 채 나오는 20대 여자.
여자 : 오빠? 뭐야?
태영 : (버럭) 야, 넌 좀 들어가 있어.
여자 : 이 사람들 다 뭐야?
태영 : 들어가 있으라니까. (현옥 손잡으며) 여보. 딱 보면 좀 오해가 있는 상황이긴 한데.
쟤가 속이 안 좋아서 좀 토했거든. 내 옷에다도 토하고. (20대 여자에게) 옷 다 빨았냐?
현옥 : 가지가지 한다.
#.6 씬. 모텔 복도.(낮)
옷 입고 경찰과 흥신소 남자에게 양 팔 잡힌 채 끌려가는 태영.
그 옆에 20대 여자 궁시렁 거리며 따라오고. 현옥 그 뒤에 걸어오는데.
여자 : 마누라 착하다며?
태영 : 입 좀 다물어라.
현옥 : 마누라 자랑까지 하고 다니냐?
태영 : 여보, 여보. 여보야. 정말 이건 아니거든. 나 알잖아? 내가 그럴 놈이야?
현옥 : 조용히 가지.
태영 : 그동안 잘 해오다가 이게 뭐냐? 여보야?
정말 이건 아니거든. 이런 일에 당신이 나서는 거 그거 정말 품위 없는 짓이거든.
현옥 : 지금 내 품위까지 챙겨 주시려구? 참 여러 가지 하세요.
태영 : (경찰, 남자 쏜 뿌리치며 신경질적으로) 아, 이것 좀 놔. 내가 무슨 도둑질을 했어? 강도짓을 했어?
그러는데, 다른 방 문 열리면서 젊은 남자와 영희 나오는. 젊은 남자(강철) 영희의 어깨에 팔 두르고.
강철 : 왜 벌써 가자구 그래?
태영, 현옥 순간 굳어지는.
영희 : (무심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는)
태영 : 혀....혀....형수님?
현옥 : 형님?
강철 : (두 사람과 영희 번갈아 보며) 아는 사람들이야?
영희 : 응.
태영 : 형, 형수님이 여기 웬일이십니까?
영희 : (돌아서서 강철과 걸어가려고 하면)
강철 : 누군데?
태영 : (강철의 멱살을 잡으며) 누군 거 같냐? 형수라고 부르는데, 누군 거 같냐구?
강철 : 이 사람이 왜 이래? (태영을 밀치는데)
태영 : (뒤로 주춤하며 밀려나고)
영희 : (강철의 팔을 잡고) 아무도 아니니까 그냥 가.
태영 : 아무도 아냐? 형수님?
영희 : 동서 볼 일 마저 봐. (걸어가려고 하는데)
강철 : (영희한테) 시동생이야? 집안 좀 웃긴다.
태영 : 이 새끼가. 집안이 웃겨? (강철에게 주먹을 날리는)
순간, 강철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강철 :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태영 : 이런 새끼?
태영, 강철 엉겨 붙어서 싸움이 벌어지고.
태영 : 그러는 너는 어떤 새낀데 남의 집 멀쩡한 종부를 꼬여내 대낮에 이런데서 무슨 짓인데?
강철 : 남 말 할 처지 아닌 거 같은데.
여자 : 오빠. 오빠. (태영을 감싸려고 하면)
태영 : 넌 좀 빠져라. (여자를 확 밀치고. 다시 강철에게 주먹을 날리고)
강철 : (입에서 피 쏟아지고)
현옥 : (두 사람을 뜯어말리며) 그만 해, 당신.
태영 : (강철을 두들겨 패면서 영희에게 화가 나서 소리치는) 형수님? 이게 말이 됩니까?
영희 : (고개를 돌려버리는)
#.7 씬. 레스토랑.(낮)
석호, 영인 식사하고 있는.
영인 : (거북한 표정으로 식사 하는)
석호 : (약간 눈치 보면서) 피곤하지? 미안해. 토요일까지 일 시켜서.
영인 : 월급쟁이가 별 수 있어요. 오너가 시키면 토요일이건 일요일이건 하는 거지.
석호 : 꼭 말을 그런 식으로 하드라.
영인 : 태생이 그런 거 몰랐어요? (그러면서 윽하고 입 틀어막고 일어서는)
석호 : 왜? 왜?
영인 : (손사래 치면서 뛰어나가는)
석호 : (놀라서 따라 나가는)
#.8 씬. 레스토랑 내 여자 화장실 앞.(낮)
석호, 안절부절하면서 서있는. 나오는 중년의 여자.
여자 : (안 좋은 기색으로 석호를 보는)
석호 : (눈길을 피하고, 여자가 걸어가자 여자 화장실 안쪽을 기웃거리는) 괜찮아? 많이 안 좋아?
영인, 종이 타월로 입가를 누르며 나오는.
석호 : 많이 안 좋은 거야?
영인 : 나 위암인 거 같아.
#.9 씬. 시골 논 앞.(낮)
만기, 박씨 걸어오면서 들판을 둘러보고 있는.
박씨 : 올해는 작년보다 수확이 좀 더 될 거 같습니다.
만기 : (끄덕이며) 다 자네가 고생한 덕 아니겠나.
급하게 핸드폰 들고 뛰어오는 이기사.
이기사 : 회장님?
만기 : (보면)
이기사 : 서울에서 전홥니다.
만기 : 서울?
이기사 : (핸드폰 내밀며) 명예 회장님께서 쓰러지셨다구.
만기 : (놀라서 급하게 핸드폰 뺏어드는)
#.10 씬. 종합 병원 응급실 일각.(낮)
하중웅 옹. 의료진에게 둘러싸여 응급 처치를 받고 있는.
겁에 질린 삼월 할머니, 응급실 내 전화로 통화 중.
삼월 : 점심 잘 드셨는데.....갑자기 수저를 툭 떨구시더니 그대로 옆으로 넘어지시면서 정신을 놓으셔서....
위급하게 돌아가는 의료진들. 가슴에 충격기도 대고.
삼월 : (더욱 겁에 질리고) 회장님 어서 올라오세요. 아무래도.....아무래도.....이상해요.
#.11 씬. 시골 길.(낮)
급하게 차에 오르는 하만기 회장. 이기사 앞 쪽으로 타면.
박씨 차 문 닫아주며.
박씨 : 별 일 없을 겁니다. 회장님. 얼마나 정정하신 어른이신데요.
만기 : (끄덕이면서. 이기사에게) 출발하게.
급하게 출발하는 차.
만기E : 하사장부터 찾아봐.
#.12 씬. 내과 진료실 앞.(낮)
침이 바짝 바짝 말라 손과 입술을 비벼대는 석호.
그 옆에 영인, 긴장은 했지만, 억지로 태연을 가장하면서.
영인 : 비틀즈 노래를 계속 깔아줘요.
석호 : (의아하게 보고)
영인 : 이매진도 중간 중간 섞어 깔고.
석호 : 무슨 말이야?
영인 : 내 장례식. 초대객 명단은 내가 뽑아 줄 테니까 그 사람들만 부르고.
석호 : 지금 뭐하는 거야?
영인 : 와인 파티 비슷하게 하는 것도 괜찮겠다. 나 젊어서 찍어놓은 비디오 있거든요.
그거 흑백으로 바꿔서 파티하는 동안 쭉 틀어놓고.
석호 : 영인아?
영인 : 사진들도 편집본 만들어서 줄테니까.....
석호 : 뭐하는 거냐 지금?
영인 : 그 정도는 부탁해도 되는 관계잖아요? 우리? 나 혼자 생각인가?
석호 : 지금 장례식 얘길 왜 하는데?
영인 : 느낌이 안 좋아서 그래요. 나 그런 쪽으론 좀 정확한 편이거든. 계속 소화도 안됐고....
석호 : 소화 안 되면 다 죽냐?
영인 : 느낌이 안좋다니까.
간호사, 챠트 들고.
간호사 : 이영인씨?
#.13 씬. 내과 진료실 내.(낮)
은주, 챠트 보고 있는.
영인, 석호, 간호사 들어오는.
은주 : (석호를 보면)
영인 : 하석호 선배 기억 안나?
은주 : 아. 오랜만이예요, (일어서서 악수 청하며) 선배.
석호 : (엉겁결에 인사하고)
영인 : 나랑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여기 내과 과장으로 있어요.
석호 : 어. 어.
은주 : (차트 보면서) 검사 결과가.....
영인 : 몇 기야?
은주 : (고개 들고) 뭐가?
영인 : 위암 몇 기냐구?
은주 : (피식 웃는)
영인 : 말긴 아닌가보네. 방사선 치료부터 해야 하는 거야? 수술부터 해야 하는 거야?
은주 : 아는 거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 저기, 선배님?
석호 : 어, 네.
은주 : 영인이하고 둘이만 얘기 했으면 좋겠는데. 약간 민감한 사항이라서요.
영인 : 괜찮아. 장례식까지 부탁하는 사이니까 그냥 얘기해.
은주 : (난감해하며) 너 좀 난처할 수 있는데.
영인 : 난처할 거 없어. 나 구질구질 한 거 딱 질색인 거 알지? 가망 없는 거면 괜히 시간 낭비하기 싫어.
아직 크루즈 여행 못해봤으니까 그것부터 해야겠구.
은주 : 위암은 언제 걸릴지 모르겠구. 크루즈 여행은 임산부한테 무리일 수 있으니까 애 낳은 다음에 가라.
영인 : 뭘 낳아?
은주 : 태아 크기로 봐선 임신 5주 쯤 된 거 같은데.
영인 : (멍하니 석호를 보는)
은주 : 것 봐. 선배님 앞에서 난처할 수 있을 거라고 하니까 말 참 안 듣는다 너두.
석호 : 임, 임신이란 말이죠?
은주 : 말씀 놓으세요, 선배님.
영인 : (버럭) 지금 말 놓는 게 문제야?
#.14 씬. 내과 진료실 앞.(낮)
영인, 넋이 나가 걸어 나오고. 비틀 현기증을 느끼고.
은주 따라 나오고. 석호, 엉겁결에 부축하려고 하는데.
영인 : (홱 뿌리치는) 친한 척 하지마.
은주 : (영인과 석호 번갈아 보며 묘하게 미소 지으며, 영인에게) 혹시 선배?
영인 : 너 재밌니?
은주 : 응.
영인 : 나쁜 년. (걸어가면. 석호 빨리 따라가고)
은주 : 야, 야. 산부인과 진료 받고 가라니까.
영인 : 나 쟤 여고 때부터 밥맛없었어.
그때, 석호의 핸드폰 울리고.
영인 : (또 비틀하고) 아, 정말 미치겠네.
석호 : (급하게 핸드폰 밧데리 빼면서) 괜찮아? (영인의 팔을 잡아 부축하려고 하면)
영인 : (뿌리치면서) 친한 척 하지 말라니까.
#.15 씬. 방송국 복도.(낮)
화가 나서 걸어오는 주정. 병도 따라오는.
주정 : 친한 척 할래?
병도 : 술 사준다니까 그런다.
주정 : 월급은 내가 너보다 많거든.
병도 : 그럼 사주던지.
주정 : (탁 멈춰서며) 말이 되냐?
병도 : 말이 안 되지.
주정 : 두 달 동안 뭐 빠지게 고생 했는데 방송불가라니. 이게 말이 되냐구?
병도 : 뭐가 빠지는데?
주정 : (병도 정강이 발길질 하고) 이럴 거면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 하든가.
병도 : 국장님이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는 했지.
주정 : 죽을래?
병도 : 선배 열 받는 건 알겠는데 어떡해 방송 현실이 그런 걸?
주정 : 재벌가 사모님들의 뒷모습 그게 뭐가 어때서?
병도 : 그게 너무 일방적으로 한쪽만 부각하니까.....
주정 : 그러는 너는 왜 같이 했는데?
병도 : 나 말고 또 누가 선배랑 그런 거 해주겠냐? 난 선배한테 없는 평형감각을 찾아주겠다는 충심으로....
주정 : 그래서 국장님 앞에서 한마디도 안했냐?
병도 : 하면 뭐하나 입 아프게. 포기할 땐 잽싸게 해야 찍히지도 않고....
주정 : (가방으로 병도의 얼굴을 갈기는데. 가방에서 떨어져 나오는 핸드폰. 바닥에 떨어지는데.
테잎 실은 바퀴차 핸드폰 위로 지나가고)
병도 : (얼른 달려가 핸드폰 주워드는) 또 박살 났다. 괜찮아. 번호 이동하면 공짜로 또 줄 거야.
#.16 씬. 경찰서.(낮)
태영, 얼굴이 엉망이 된 상태로 소리 지르고 있는.
태영 : (형사에게 얼굴 들이대며) 나도 맞았다니까.
형사 : 이 양반이 어디서 계속 반말이야?
태영 : 맞았다니까요. 저도. (옆에서 조사 받고 있는 강철 보면서) 보세요, 저 자식이 나보다 10살이나 어린데
주먹이 세면 누가 세겠냐구요?
옆에서 조사 받는 여자.
여자 : (태영에게) 오빠? 우리 정말 콩밥 먹어야 하는 거야?
태영 : (발로 여자 의자 밀쳐내며) 떨어져라 좀. 넌 눈치도 없냐?
강철 : 저 아저씨 주먹 장난 아니거든요.
(형사에게 입 안 보여주면서) 보세요. 이빨 두 개 나간 거? 이 아저씨 운동했다니까요.
태영 : 그래. 나 운동 좀 했다. 젊은 놈이 힘없는 거 자랑이다, 자랑이야.
뒤에 앉아있는 현옥, 영희.
현옥 : 그러는 댁은 자랑 났다.
태영 : (홱 돌아보며) 이게 다 당신 때문에.....
현옥 : (노려보면)
태영 : (태연하게 앉아있는 영희 보자 다시 열 받고) 형수, 난요. 다른 건 다 이해하는데, 정말 이건 아니거든요.
영희 : (무심하게 창 밖만 보고 있는)
태영 :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이게 말이 되냐구요? 말이?
말순, 이마가 터진 채로 투덜거리며 들어오는.
말순 : 하여간 깡패 새끼들은.
태영 앞에 앉아 조서 쓰고 있던 형사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순을 보는.
형사1 : 하루라도 안 터져 들어오면 입안에 가시가 돋지?
말순 : (강철 앞에 앉은 형사2 옆으로 걸어가서) 웬 손님들이 이렇게 많아?
형사2 : (킬킬거리는 느낌으로 말순에게 뭐라고 하는데)
그 사이.
태영 : 말 좀 해보라니까요, 형수.
현옥 : 조용히 좀 해.
말순 : (이 가족들 보면서 형사2에게) 완전히 콩가루네. 형수랑 시동생이 같은 모텔에서 간통으로....
태영 : (벌떡 일어나며 말순에게 달려들 기세로) 야, 너 뭐야? 말이면 다하는 줄 알아?
말순 : 야? 내가 댁 친구야?
태영 : 친구도 아닌 게 어디서 콩가루니 뭐니 나불거려?
말순 : (팔 걷어 부치며) 나불? 그럼 콩가루 아니냐? 콩가루라 콩가루라고 하는데? 뭐 잘못 됐냐?
태영 : 어, 그래, 너 오늘 잘 만났다.
말순 : 이산가족이냐? 잘 만나게?
두 사람, 금방이라도 일전을 불사할 자세로 으르렁거리는데.
형사1,2 끼어들어 말리는.
형사1 : 그만 좀 해라. 나경사.
형사2 : 댁도 (태영 잡아 앉히며) 그만 좀 하시구.
태영 : 민중의 지팡이라는 게 선량한 시민한테 아무 말이나 막해도 되냐 이거야 내 말은?
말순 : 너 쓰라는 지팡이냐?
태영 : 저, 저 게..... (발길질 하려고 하는)
급하게 들어오는 수영.
현옥 : (일어서며) 오셨어요?
수영 : 어떻게 된 겁니까?
현옥 : 전화로 설명 드린 그대로예요. 간통에 폭행까지 추가 되서.....
수영 : (영희 보고) 다, 당신은 어떻게 알고?
태영 : (홧김에 버럭) 형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수영 : (뭐라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태영 : 도대체 마누라 단속을 어떻게 하는 거야?
수영 : (의아하기만 하고)
현옥 : 당신이 지금 누구 나무랄 처지야?
수영 : 지금 쟤가 뭐라는 겁니까?
현옥 : (난감해서 고개 돌리고)
영희 : (그제서야 일어서는) 서방님하고 폭행으로 얽힌 저 남자. 나랑 같은 모텔 방에 있었어요.
수영 : ......(믿기지 않는)
영희 : 간통으로 고소해요. 나 다 인정하니까 복잡할 거 없을 거예요.
(말순에게) 커피 자판기 어디 있죠?
말순 : 저...저기....(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영희 : (걸어가는)
태영 : 이게 말이 되냐구? 간통 현장에서 나한테 딱 발각 됐으면서 저렇게 뻔뻔할 수 있는 거냐구?
수영 : ......
태영 : 그러니까 형 잘 좀 하고 살라구 했지. 선물도 좀 자주 사주고.
현옥 : 그만 입 좀 닥쳐. 창피 한 줄도 모르니?
태영 : 입 닥쳐? 그게 남편한테 할 말이야?
현옥 : 댁, 이제 내 남편 아니거든요.
태영 : (멍해지는)
그때, 저쪽 켠에서 조사 받고 있던 남자와 진아.
진아 : (남자의 뺨을 갈기고 일어선다) 니가 사람이니?
남자 : 창피하게 왜 이래?
형사3 : 아가씨 경찰서까지 와서 사람을 때리면 어떡해요?
남자 : 이 여자가 이렇다구요. 이래서 제가 헤어지자고 한 거라니까요.
진아 : 그래서 헤어지자고 한 거니? 그 여자가 부잣집 딸이라서가 아니라?
말순 : (저 쪽을 보면서) 오늘 신파 여럿 찍네.
태영 : 그러는 너는 신파라도 찍어봤냐?
말순 : 니가 봤냐? 봤어? 내가 신파 찍나 안 찍나 봤어 봤냐구?
태영 : 말하는 거 봐라. 유치하기 짝이 없어서.
형사1 : 거 좀 조용히 해요.
진아 : (울면서 큰 소리로) 너 때문에 나 방 한 칸 없이 살았어.
느네 엄마 심장 수술해야 한다고 해서 방 보증금까지 빼서 줬어.
남자 : 진짜 창피해서 못살겠네. 그래서 잘 썼다고 계산해서 줬잖아.
말순 : (형사1에게) 저쪽은 또 뭔데?
형사1 : 뭐긴 뭐야, 들어보면 몰라? 가난한 애인 뒷바라지 해놨더니 부잣집 딸한테 갔다는 거 아냐?
말순 : 진짜 신파다.
형사1 : 남자애가 좀 밑바닥이야. 위자료랍시고 여자애가 지 엄마 병원비 대준 거 내주면서 깐죽거렸나봐.
헤어지는 자리에 지금 애인 애까지 불러냈다나 뭐라나.
태영 : 뭐 저런 나쁜 놈이 다 있어?
말순 : 그러는 댁은 좋은 놈이구?
태영 : 이게 말끝마다.
말순 : (형사1에게) 그렇다고 경찰서에 와?
형사1 : 지금 애인인 여자애가 치사하게 굴지마라 어쩌구 하면서 좀 웃기게 굴었나봐.
저 여자애가 밀었는데 팔이 부러졌다나 뭐라나.
말순 : 진짜 재수도 없다.
남자 : (진아에게) 너 계속 이런 식으로 사람 망신 주면 진짜 독하게 나가는 수가 있어.
내가 맘 잘못 먹으면 너 몇 년 콩밥 먹이는 거 일도 아니야.
진아 : 너 같은 새끼 때문에 내가.....
남자 : 내가 해달라고 했냐? 저 좋아서 따라 다녀놓고 이제 와서 왜 헛소리야.
말순 :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하면서 저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형사1 : (잡으며) 제발 좀. 응? 제발 좀.
태영 : 왜 맨날 터지고 다니는지 알만 하다.
영희, 커피 들고 걸어오는.
수영 : (넋이 나가 서있는)
울리는 핸드폰.
현옥 : 저기.....전화 왔는데요.
수영 : (넋이 나간채로 전화 받는) 여보세요? (듣다가 멍해지고) 지금 바로 가죠.
수영, 전화 끊고 돌아서는데, 영희 걸어오는.
수영 : (무시하고 걸어가려고 하는데)
태영 : 형, 그냥 가면 어떡해? 형수가 저 새끼하고.....
수영 : 증조 할아버님 쓰러지셨단다. (걸어가는)
태영 : (털썩 주저앉는)
멍해지는 현옥과 영희.
#.17 씬. 경찰서 앞 계단.(밤)
수영, 걸어 나오는데, 얼굴로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
수영 : (무심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18 씬. 제주도 호텔 세미나장 앞.(밤)
단아, 진동으로 울리는 핸드폰을 들고 세미나장에서 나오는.
단아 : 여보세요? 할머니? 저 지금 전화 받기 그렇거든요, 급한 일 아니시면.....
남교수, 자료 들고 급하게 걸어오는.
단아 : (멍해지는) 알았어요, 지금 바로 출발 할게요. (전화 끊는데)
남교수 : (심상치 않은 단아 표정 살피며) 무슨 일 있어?
단아 : 저 지금 올라가봐야 해요. (걸어가려고 하면)
남교수 : (단아 팔 잡으며) 왜 무슨 일인데? 자기 없으면 세미나 진행 어떻게 하라구?
단아 : 부탁드려요.
남교수 : 무슨 일인데 그래? 자기답지 않게?
단아 : 증조 할아버님이 위독하시대요.
#.19 씬. 종합병원 특실 내.(밤)
만기, 의사와 얘기하고 있는.
의사 : (산소 호흡기 달고 있는 하중웅 옹의 상태 살피면서) 오래 견디지 못하실 거 같습니다.
자손들 빨리 불러들이시는 게......
만기 : 다른 방법은 전혀 없는 겁니까?
의사 : 워낙 연로 하셔서.....죄송합니다. 회장님.
만기 : 애 쓰셨소.
의사 : 그럼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의사 나가고)
옆에서 울고만 있던 삼월, 만기 옆으로 다가서고.
삼월 : 무슨 이런 일이.....
만기 : (하중웅 옹의 손을 어루만지는. 눈물이 고이고)
수영, 급하게 들어오는.
수영 : 어떻게 된 겁니까?
만기 : 왜 너 혼자냐?
수영 : .....
만기 : 할아버님 오늘 넘기시기 힘드실 거 같다니. 빨리들 찾아 불러들여라.
수영 : (하중웅 옹 옆으로 다가서는) 할아버님?
만기 : 빨리들 찾아.
수영 : (하중웅 옹에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할아버님. 태영이 데려오겠습니다.
만기 : 태영이 이 놈은 어디 있는 거냐?
수영 :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삼월 : 어디 있는데 그래? 전화도 안받고. 오늘따라 다들 연락이 안돼. 동동이네도 전화 안받고.
새댁은 점심 전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하고 아직 안 들어 왔구.
얼른들 연락해서 오라고 해. 장손도 없는 사이에 잘못 되시면 어쩌려구?
수영 : 제가 가서 데려와야 합니다.
삼월 : 어디 있는데?
수영 : .....
만기 : 가서 데려와라.
수영 : (돌아서서 나가는)
삼월 : 사장님도 연락이 안돼. 주정이도 전화 안받고....
수영 : (나가는)
삼월 :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왜 오늘따라 다들 연락도 안 되고.
만기 : 주정이한테 다시 전화 좀 해봐요.
삼월 : 네. 어르신.
#.20 씬. 포장마차.(밤)
포장 위로 추적대는 빗소리.
주정, 병도 술에 취해 있는.
병도 : 난 선배 이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여자 이름이 주정이 뭐야, 주정이. 그것도 하주정이.
그러니 허구헌날 술을 안 푸겠냐구. 아니, 뼈대 있는 집안에서 딸 이름을 왜 그렇게 짓나.
혹시 선배 출생에 비밀 있는 거 아냐?
주정 : (병도의 뒤통수 때리고)
병도 : 우이씨, 뼈대 있는 집안 여식이 손버릇도 더럽고. 이게 다 이름에 문제가.
주정 : (자학적으로 웃으며) 뼈대? 뼈대가 뭔데?
병도 : 그걸 나한테 여쭈시면 어쩌십니까? 종가집 귀한 여식께서?
주정 : 그거 다 허울이야. 잘난 양반 행세하고 싶어서 만들어낸 허울.
병도 : 저 같은 천출이 뭘 알겠습니까요? 마님.
주정 : (병도 뒤통수 다시 갈기고)
병도 : (퍽하니 테이블에 부딪히고) 야, 야, 선배 선배 해주니까 너무 하는 거 아니냐? 나이는 너랑 나랑 동갑이야?
주정 : 동갑이면서 8년 후밴 게 그렇게 자랑스럽냐?
병도 : 그거야 내가....그래, 나 머리 나쁘다. 머리 나빠서 오수 하고, 방송 고시는 3수했다.
디스크라 군대 안간 덕에 그것도 8년 후배지. 군대 갔다 왔으면 10년 후배 될 뻔 했다. 됐냐?
주정 : 자랑이다.
병도 : 그렇게 잘나서 너는 맨날 8년 후배 뒤통수 갈기면서 술주정이냐?
주정 : 니 말대로 이름이 하 주정인 걸 어쩌냐?
병도 : (킥 웃으며 고개 들며 애교 있게) 그러니까 선배. 이름에 문제가 있다니까.
(주정 잔에 술 따라주면서) 개명 하는 거 진지하게 생각 좀 해보라니까 그런다.
요즘은 시간도 많이 안 걸린다드라.
주정 : (자조적으로 술 들이키면서) 그지 발싸개 같은 고고한 집안에서 그런 걸 허락하겠냐?
우리 아버지가 어떤 양반인데.
#.21 씬. 제주도 길.(밤)
비 오는. 달리는 택시.
단아 : (초조해서) 아저씨, 조금만 빨리 가주시면 안 될까요?
기사 : 비가 이렇게 억수로 쏟아지는데 어떻게 더 빨리 갑니까?
단아 : 그래도 조금만.....
#.22 씬. 제주공항 입구.(밤)
빗속. 정신없이 택시에서 내려 뛰어 들어가는 단아.
#.23 씬. 제주공항 내 티켓창구.(밤)
항공사직원과 얘기하고 있는 단아.
직원 : 죄송합니다. 현재로썬 표를 구할 수가 없는데요.
단아 : 어떻게 좀 해봐주세요. 정말 급한 일이라서 그래요.
직원 : 비가 와서 캔슬하시는 승객 분이 계실지도 모르니까 스탠바이 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단아 : (답답하고, 핸드폰 꺼내는) 여보세요? 할머니?
#.24 씬. 종합병원 특실.(밤)
삼월 할머니 전화 중.
만기, 하중웅 옹 옆에 서서 아버님을 내려다보고 있는.
삼월 : (하중웅 옹 쪽을 보면서) 많이 안 좋으셔. 지금 회장님만 옆에 계셔.
#.25 씬. 제주공항 일각.(밤)
단아, 핸드폰 중.
단아 : 왜요? 다들 어디 왜 아직? 할머니? 할아버님께..... (목이 메이고) 말씀 좀 해주세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구. 단아.....금방 온다구요.
#.26 씬. 종합병원 특실.(밤)
삼월 : (수화기 내려놓고, 하중웅 옹 옆으로 다가오는. 하중웅 옹의 귀에 조용히 속삭이는)
어르신. 단아가 금방 온다네요. 그러니 조금만 더 버텨 주시라네요.
어르신..... 다른 사람은 몰라도.....단아는 보고 가셔야죠.
만기 : (얼굴을 돌리고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는)
#.27 씬. 경찰서 마당.(밤)
빗속. 차에서 급하게 내리는 수영.
수영 : (걸어가려는데, 울리는 핸드폰) 여보세요? (멈춰서는, 굳어지는) 알겠습니다. 네. 다 찾아서 데리고 가겠습니다.
(비를 맞으며 비감에 젖어 걸어가는. 조금 전과는 달리 느린 걸음으로.
계단 밑에 서는데. 그 위에 남자, 여자, 진아 서있는)
여자 : (화려한 차림으로 팔에 깁스하고) 거칠다는 얘긴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요.
왜 민준씨가 그렇게 학을 뗬는지 이젠 이해가 되요.
남자 : 긴말 할 거 없어. 진아 너 운 좋은 줄 알아. 이렇게 끝낼 일이 아닌데, 우리 지혜씨가 워낙 동정심이 많아서.....
진아 : 꺼져.
여자 : (비웃고) 위자료라도 주려고 했는데, 그래봐야 고마운 것도 모를 사람 같으니 생략 할게요.
진아 : (남자에게) 겨우 고른 게 저 정도니?
여자 : 뭐 이런 게 다 있어? 어떻게 민준씨는 사겨도 저런 애를 사겨?
남자 : 상대 할 거 없어. 가자.
진아 : 어쨌든 고맙다.
남자 : 알면 됐다. 이쯤에서 끝내주는 거. 그러니까 빌린 돈 받으라고 했을 때 받고 갔으면 좋았잖냐.
그거 다시 줄 수도 있는데, 그럼 너 반성하는데 지장 있을 거 같아서
여자 : 생략하기로 했잖아. 내가 입은 정신적 피해 보상에 치료비, 찢어져서 성형도 받아야 하고.
그거 다 보상하려면 그깟 빌린 돈으론 어림도 없다니까.
진아 : 좋겠다, 니들은. 쿵짝이 잘 맞아서.
남자 : 이게 고맙다고 할 땐 언제구?
진아 : 너 같은 새끼한테 코껴서 평생 빌빌거리며 안 살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이었어. 이 머저리 자식아.
여자 : 아, 됐어. 뭐하러 이런 저질스러운 애랑 상대해. 가. 자기. (남자의 팔짱을 끼고 계단을 내려오는)
수영 : (계단을 올라가는)
진아 : (고급 승용차에 올라타는 남자와 여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어쩌면 내가 사랑할만한 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가끔 했어.
그런데도 믿고 싶지 않았어. 내 사랑이 아까워서...... 이 세상에 그것마저 없으면 못 견딜 거 같아서.....
그래서 너였으면 한 거야. 너한테 준 내 마음이 너무 아까워서.....
수영 : (지나치려다가 시선 주지 않은 채) 그런 거 믿지 말아요. 세상에 사랑 같은 건 없으니까....
진아 : (수영을 보는)
수영, 경찰서로 들어가는.
말순 급하게 뛰어나오는.
말순 : 마침 아직 안 갔네요. 조서에 사인 빠트린 게 있어서요.
#.28 씬. 경찰서 내.(밤)
현옥, 영희 한쪽에 앉아있고, 태영, 강철 반대쪽에 앉아있는.
태영과 모텔에 있었던 여잔 졸고 있고.
강철 : 간통으로 고소 된 것도 아닌데 저는 가도 되는 거 아닙니까?
형사1 : (짜증스럽게 턱으로 태영 가리키며) 저 쪽이 폭행으로 맞고소 한다잖아요?
강철 : 맞긴 제가 더 많이 맞았다니까요. 이빨도 두 개나 부러졌는데?
태영 : (현옥 노려보며) 잘했다, 잘했어. 하필이면 증조 할아버님 쓰러지신 날 일 벌이고.
내가 가정을 팽개쳤냐? 학대를 했냐?
현옥 : 두들겨 패야지만 학대니?
태영 : 장난이란 거 당신도 알잖아? 내가 무슨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심심풀이 땅콩 먹는 기분으로?
현옥 : 제발 입 좀 닥쳐달라니까. 가요, 형님. 더 있어봐야 저 인간 입에서 흘러나오는 지저분한 소리나 들어야 할텐데.
영희 : 가고 싶으면 가.
현옥 : 형님은 여기서 뭐 하시게요?
영희 : 모르잖아. 그 사람 와서 고소해줄지.
현옥 : ......(의미심장한 눈길로 보는)
태영 : 너무 당당하신 거 아니에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수영, 걸어오는, 그 뒤로, 말순, 진아 나란히 걸어 들어오고.
태영 : (수영을 보고 일어서는) 할아버님 어떠셔?
수영 : .....
태영 : 괜찮으신 거지?
수영 : .....
태영 : 여보. 나 충분히 반성 했으니까 이제 화해하자. 나 진짜 반성 많이 했거든.
그러니까 오늘은 여기서 접고, 할아버님도 편찮으시다잖아.
현옥 : 저 그만 들어갈게요. 아주버님.
태영 : 여보, 그냥 가면 어떡해? 고소 취하하고 같이 가야지. 내가 다 잘못 했다니까.
그래, 내가 해도 좀 너무 했지 뭐. 나 진짜 눈물나게 반성한다, 반성 해.
저기 내가 이번에 크게 한번 쓸게. 당신 가지고 싶은 거 있으면.....
수영 : (태영의 뺨을 때리는)
태영 : (멍해져서 보는) 형? 어디서 뺨 맞고 어디 와서 화풀이야?
형수 저런 게 내 잘못이야? 나 때문에 걸렸다 싶어서 그런 가 본데.....
수영 : (현옥에게) 죄송합니다. 제수씨. 못난 제 동생 놈 때문에 마음고생 많으신 거 잘 압니다.
그런데 오늘은 용서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현옥 : 아니요, 아주버님. 더는 못해요. 참을 만큼 참고 살았어요.
태영 : 그래서 내가 그때마다 반지며 옷이며....
수영 : (태영의 뺨을 갈기는)
태영 : 왜 그래 정말? 형 지금 열 받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왜 나한테 자꾸....
수영 : 할아버님.....돌아가셨다.
태영 : .....
수영 : .....
현옥, 영희 굳어져 서있고.
영희 : (형사1에게 다가가는) 저 사람 폭행 고소 안할 겁니다. (강철 보면서) 그렇죠?
강철 : 나, 나야 뭐.
영희 : 그럼 됐죠. 우린 이만 가 봐도 되는 거죠?
형사1 : 저쪽에서 맞고소를 하겠다고 하니까 아직은....
영희 : 서방님?
태영 : .....
영희 : 고소 하시겠어요?
태영 : .....
영희 : 갈게요. (현옥에게) 애써. 동서.
현옥 : 형님.
영희 : (수영에게) 이혼 서류 준비 되면 연락 줘요.
수영 : (가려고 하는 영희 앞에 무릎을 꿇는)
경찰서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 굳어져서 수영을 보는. 진아의 표정도 잡아내고.
태영 : (수영에게 톤 높여서) 형, 미쳤어? 지금 뭐하는 거야?
수영 : 할아버님.....상 치뤄야 하잖아요. 당신이.....필요해요.
영희 : (복잡한 시선으로 물끄러미 수영을 내려다보다가 고개 들고) 당신이 얼마나 사람을 질리게 하는지 알기나 해요?
수영 :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29 씬. 길.(밤)
비가 쏟아지는 밤길.
수영, 운전하고 있는 그 옆에 화가 나서 앉아있는 태영.
태영 : 아무리 뼈 속까지 종손인 사람이라도 그렇지. 사내가 그게 할 짓이야? 바람 핀 마누라한테 그게 할 짓이냐구?
그러니까 형수가 형을 만만하게 보고 그런 짓까지 한 거야. 형이 얼마나 우스웠으면 아까 봤지?
시동생한테 현장 딱 들킨 사람이 그렇게 당당하다는 게 말이 돼? 말이 되냐구? 형이 이런 사람이니까 형수가....
수영 : 큰 소리 내지마라. 어른 가신 날이다. (핸드폰 내밀며) 아버지께 전화나 넣어봐라.
태영 : 아버지한테는 왜? 상 치룰 준비하시느라 정신없으실 텐데.
수영 : 아버지 연락 안 되신다.
태영 : (보고) 그....그럼? 아버지 안 계신단 말이야? 병원에?
수영 : .....
태영 : 어디 계신데?
수영 : 모르니까 전화 하라는 거 아니야. 계속 꺼져있었는데, 다시 켜셨을지 모르니까.
태영 : 저기.....그럼....누가 지켰어? 할아버님 임종?
수영 : ......
#.30 씬. 길.(밤)
빗길. 운전하는 현옥, 그 옆에 무심히 앉아 창 밖을 보고 있는 영희.
현옥 : 형님?
영희 : .....
현옥 : 왜 하필이면 그 모텔이었을까요?
영희 : .....
현옥 : 형님 아셨잖아요. 아까 같이 점심 먹을 때 흥신소 사람 전화 받는 거 들으셨잖아요.
제가 오늘 그 모텔로 동동이 아빠 잡으러 갈 거..... 아셨잖아요? 형님?
영희 : 운전이나 해.
현옥 : 형님 분명히 들으셨어요. 제가 그 모텔 위치 묻는 거.
영희 : 그냥.....묻어둬.
현옥 : 작정 하신 거예요?
영희 : 봤잖아. 그 사람. 종부 없이 상 치르게 될까봐 내 앞에서 무릎 꿇는 거.
(창 밖을 보면서) 우리 할아버님 가시는 날.....비까지 오시네.
#.31 씬. 길.(밤)
비. 운전하는 수영. 그 옆에 태영 전화 중.
태영 : 그러니까 광고 회사 사람들하고 미팅 하시고 이실장님하고 같이 떠나셨다는 거네요?
알았습니다. 이부장님. (전화 끊고) 이실장님 휴대폰 번호 입력 돼 있어?
수영 : 어떤 이실장님?
태영 : 홍보실 이실장님 말이야?
수영 : 이영인 실장님?
태영 : 그럼 홍보실 이실장님이 또 있어?
수영 : 휴대폰 번호 없는데.
태영 : 기획실장이 간부 사원들 개인 번호도 입력 안 해두고 뭐했어?
통화 버튼 누르고.
태영 : 아, 이부장님. 이영인 실장님 휴대폰 번호 좀 알려주세요.
참, 상조회에는 연락 됐죠? 왜라뇨? 아직 모르세요? 명예 회장님 돌아가신 거?
#.32 씬. 영인의 아파트 내.(밤)
영인, 왔다 갔다 하면서 캔 맥주 벌컥 벌컥 마시고 있는.
석호 : (영인의 손에서 맥주 뺐는) 뭐하는 거야? 지금?
영인 : (뺐으려고 하면서) 왜 이래?
석호 : 이런 거 마시면 안 되잖아?
영인 : 왜?
석호 : 몰라서 묻냐?
영인 : 상관 없어. (뺏어서 마시는)
석호 : 영인아?
영인 : 이건 재앙이야, 재앙. 어떻게 딱 한번에....이게 말이 되냐구? 말이.
석호 : 애 놀라니까 제발 앉아서 좀 얘기 하자.
영인 : 애? 무슨 애?
석호 : 영인아.
영인 : 나 놀란 건 어쩌구? 애 놀라는 게 대수야?
석호 : (영인의 어깨 잡으며) 이러지 말고 영인아. 너 당황한 거 알겠는데?
영인 : 알아? 뭘 알아? 선배가? 그러니까 그날 내가 이러지 말자고 했지?
석호 : 들어오라고 했던 건 너야.
영인 : 술만 마시자고 했잖아. 술만 좀 더 마시자구.
석호 : 술 마시면 내가 무슨 짓 할지 몰라서 싫다고 했어.
영인 : 무슨 짓 할 거 같았으면 그냥 갔어야지. 들어오란다고 들어와?
석호 : 너무 외롭다고 잡았잖아, 니가?
영인 : 내 생일이었잖아. 50번째 생일. 4자에서 5자로 넘어가는데 어떤 여자가 안 외로워?
울리는 영인의 핸드폰 벨.
영인 : (가방 열어서 신경질적으로 전화 받는) 여보세요? 그런데요? 누구세요? 누구?
아. 무슨 일이예요? 이 시간에? 사장님이요? (당황해서) 아까 점심 먹고 헤어졌는데. 어디 가셨는지 모르는데.....
왜요? 무슨 일이예요? (굳어지고) 아, 알았어요. 저도 찾아볼게요. (전화 끊고)
석호 : 나 찾는 전화야? 날 왜 영인이 전화로 찾아?
영인 : 아까 전화기 꺼놨잖아.
석호 : 아.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 꺼내고) 누군데?
영인 : 하과장.
석호 : 태영이가 무슨 일로?
영인 : 증조 할아버님 조금 전에 돌아가셨대.
석호 : .....(멍해지는)
#.33 씬. 길.(밤)
빗속. 수영, 운전하고 있고, 태영 전화 중.
태영 : 안되겠다. 내가 운전할 테니까 차 세워. 당신 오늘 흥분해서..... 여보? 여보?
#.34 씬. 길.(밤)
비 내리고.
현옥 : (운전 중, 휴대폰 끊는) 이 인간이 이래서 싫어요.
영희 : 서방님이 동서 사랑하는 거 알잖아?
현옥 : 그래서 더 싫어요. 헷갈리게 해서......
#.35 씬. 길.(밤)
빗속. 수영, 운전하고 있고, 그 옆에 태영.
태영 : 우리 할아버지 새끼 사랑은 정말 알아드려야겠다.
수영 : (운전만 하는)
태영 : 새끼 간통으로 망신 당할까봐 날 잡으시는 거 봐.
수영 : 넌 그런 말이 지금 하고 싶냐?
태영 : 가슴에 사무쳐서 그러잖아. 임종도 못 한 못난 새끼, 그래도 새끼라고 이렇게 위해주시면서 가시는 게.....
(올리는 핸드폰) 어, 아버지다. (전화 받고) 아버지? 어디세요?
#.36 씬. 종합병원 특실.(밤)
수영, 태영, 영희, 현옥 들어서는데. 삼월 할머니의 흐느낌. 굳어져서 하중웅 옹의 시선.
옆에 말뚝처럼 서있는 만기. 그 옆에 의사도 서있다.
삼월 : 왜....왜들 이제와?
태영 : (다가서서 무릎 꿇고 울음 터트리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이러시면 어떡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삼월 : 그러니까 이 사람아. 왜 그렇게 연락이 안돼?
(영희와 현옥 보면서) 다들 무슨 일들이야? 하루 종일 어째.....이 이 일을 어쩌면 좋아. 다들 어쩌자구.....
태영 : 할아버지? 할아버지? 태영이 왔어요. 할아버지 증손자 태영이 왔다구요.
할아버지 수염 뽑던 나쁜 손자 놈 태영이 왔다구요, 할아버지. 눈 좀 떠보세요, 할아버지.
저 좀 보고 가세요, 할아버지.
석호, 급하게 들어오는.
석호 : (침대 옆으로 다가서는)
태영 : 할아버지, 눈 좀 떠보세요, 할아버지. 이대로는 못가세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지들 죄인 만들고 가시면 안 되잖아요?
석호 : (만기에게) 어....어떻게 된....일입니까? 아침까지도 정정하셨는데.....
만기 : 니들.....뭣들 하는 인간들이냐?
태영 : (싸늘한 만기의 기세에 눌려 일어서는)
만기 : ......
석호 : 죄송합니다.
만기 : 니들이..... (푹하고 무너져 내리는)
석호, 수영, 태영 달려들면서. 의사도 달려들고. 아버님, 할아버지.
#.37 씬. 종합병원 만기병실.(밤)
만기, 링거를 맞고 있는. 그 옆에 수영, 태영, 서있는.
만기 : (눈 뜨고)
수영 : 할아버님?
만기 :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태영 : 할아버님, 이러시면 안 되세요. 이러다 할아버님도....
만기 : 니들 고모 찾아봐라.
#.38 씬. 포장마차.(밤)
빗소리. 만취한 주정과 병도.
병도 : 이제 좀 가자, 선배. 10병이다 열병.
주정 : 딱 한 병만 더 마시자. 응. 후배야? 딱 한 병만.
병도 : 우리 이러다 죽거든.
주정 : 죽기 밖에 더하겠냐? 마시다 가는 거 너 그거 축복이다. 알딸딸한 채로....
연신 울리고 있는 병도의 핸드폰.
주인 여자, 안주 만들다가.
주인 : 아, 그 놈의 전화 좀 받아.
병도 : 난 그렇게 죽긴 싫거든. 선배. 아직 21세기가 날 간절히 원하고 있거든.
주정 : 네가 무슨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냐?
병도 : (킥 웃으며) 우리 노래방 갈까? 킬리만자로 한번 뽑자, 선배.
주인 : (참다못해 다가와 핸드폰 찾아서 내미는)
병도 : 어, 전화 왔나보네.
주인 : 작작들 좀 마셔.
병도 : 여보세요? 아, 국장님? 국장님이 누군데? 너 누구야?
(그러다 정신 번쩍 들고 일어서는) 네. 국장님, 김병돕니다.
주정 : (손사래 치면서) 난 죽어도 방송 낸다고 해. 죽어도 낼 거라구.
병도 : 네, 네. 하주정 선배랑 지금 같이 있는데요. 네? 네. 네.
주정 : 안 그러면 나 사표 낸다고 해, 낼 거야, 내가 이번엔 꼭 내고 말거야. 두구 봐라 너. 내가 내나 못내나?
병도 : 선배?
주정 : 낸다니까 사표.
병도 : 아버님 조금 전에 돌아가셨다는데.
주정 : 느네 아버지 돌아가신지 한참 됐잖아? 끊어, 끊어, 장난 전화다 그거.
병도 : 선배 아버님. 돌아가셨대.
주정 : (물끄러미 보는)
#.39 씬. 제주공항 내 티켓창구.(밤)
단아, 초조하게 서있는.
직원 : 어쩌죠? 전 좌석 풀이네요.
단아 : .....
강석, 걸어오는. 표 손에 들고 탑승구로 걸어가는데.
단아 : (강석 보고 달려가는) 저....저기요.
강석 : (보는)
단아 : 이 비행기 타세요?
강석 : 그런데요?
단아 : 저기....저한테 양보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강석 : (보다가 쓰게 미소 짓는) 안 되겠는데요.
단아 : 부탁 드릴게요. 제가 지금 꼭 서울로 가야 할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강석 : 나도 지금 꼭 서울로 가야 할 사정이 있는데요.
단아 : 제가 나중에 꼭 보답할게요.
강석 : (보다가) 정말 그렇게 급해요?
단아 :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네. 정말 급해요.
강석 : 그럼 흥정 하죠, 우리?
단아 : (의아하게 보는)
강석 : 1억 정도면 어떻겠어요?
단아 : (기가 막혀서 보고)
강석 : (미소 지으며) 봐요. 돈으로 안 되는 일이란 건 없죠? 거래할 마음이 없는 거 같은데....그럼.
(돌아서서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
단아 : ......
#.40 씬. 종합병원 앞.(밤)
내리는 비. 현옥, 동동이 데리고 차에서 내리는. 태영, 기다리고 있는.
태영 : 내가 데리러 간다니까.
현옥 : (무시하고 동동이 손잡고 걸어가려고 하면)
태영 : (동동이 잡고 그 앞에 무릎 꺾고) 동동아?
동동 : 응.
태영 : 고조 할아버지 돌아가셨거든.
동동 : 알아.
태영 : 우리 동동이가 유일한 고손자거든.
동동 : 다 알아.
태영 : 고조 할아버님한테 가서 의젓하게 인사드리는 거야.
동동 : 돌아가셨다면서?
태영 : 그래도 동동이가 의젓하게.....
동동 : 돌아가셨는데 내가 인사하는 거 어떻게 알아?
태영 : 그래도 고조 할아버님, 안녕히 가세요, 하고.
동동 : 죽은 사람이 어떻게 인사를 받아.
태영 : (동동이 머리 쥐어박으며) 하라면 좀 해라. 넌 왜 이렇게 말이 많냐?
현옥 : 왜 애는 쥐어박고 그래?
택시 급하게 다가오고, 차에서 내리는 병도, 주정.
주정 : (내리다가 윽 하고 구토하는)
태영 : (얼굴 찡그리면서 다가가는) 할머니?
주정 : 어?
병도 : (인사하고) 같이 근무하는 김병도라고 합니다. 얼마나 애석하십니까?
태영 :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하는 표정으로 보는데)
주정 : 태영아?
태영 : 네, 할머니.
주정 : 뭐 잘못 된 거지?
태영 : 네?
주정 : 우리 아버지가 어떤 양반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이건 우리 아버지다운 게 아니거든. 나 술 끊게 하려고 다들 작정하고 일 벌이는 거지? 그지?
동동 : 대고모 할머니?
주정 : 어, 동동이도 있네.
동동 : 고조 할아버지, 정말 돌아가셨어요. 진짜 죽으신 거 맞아요.
주정 : (보다가 윽하고 입 가리고 주저앉는)
#.41 씬. 종합병원 특실.(밤)
하중웅 옹의 시신 곁에 서있는 만기, 석호, 수영. 의사도 같이 있고.
조금 떨어져서 서있는 영희, 삼월.
삼월 : (입 가리고 눈물을 참아내려고 하지만. 참아지지 않고)
태영, 현옥, 동동이 데리고 들어오고.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주정.
태영 : (얼른 주정을 부축하고)
만기 : (그런 주정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리는)
주정 : (태영 손 뿌리치고 시선 곁으로) 아버지? 아버지? 나.....왔는데. 주정이 왔는데.....
석호 : 고모.
주정 : (하중웅옹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아버지? 아버지? 나 왔다니까.....주정이 왔다구.....
만기 : 아버님. 주정이 보셨죠?
주정 : (절규 하듯이) 오빠? 우리 아버지.....우리 아버지? 정말 가신 거야?
의사 : (만기에게) 선고 하겠습니다.
만기 : 아직 안됩니다.
의사 : (보고)
가족들 모두 만기를 주시하면.
만기 : 종택으로 가야합니다. 생전에 유언이셨습니다.
의사 : 그럼 어떻게?
만기 : 초혼은 종택에서 해야 합니다.
의사 : 무슨 말씀이신지.....
만기 : .......
#.42 씬. 제주공항 내 티켓창구.(밤)
직원 앞에 서있는 단아.
직원 : 어쩌죠. 폭우로 마지막 항공기는 결항인데....
단아 : ..... (뒤돌아 뛰어가는)
#.43 씬. 제주공항 앞.(밤)
비속을 달려 택시로 다가가는 단아.
단아 : (올라타면서) 항구로, 항구로 가주세요.
#.44 씬. 항구.(밤)
빗속을 뛰어가는 단아. 매표소를 두들겨 보고.
보이는 사람마다 붙잡고 사정하고. 정박해 있는 배마다 뛰어다니는.
절박한 단아의 인서트 씬들. 넘어져서 무릎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45 씬. 항구.(밤)
빗속. 노인, 배를 정박하고 배에서 내리는데. 단아 달려와 매달리는.
노인 : 아이구 깜짝이야.
단아 : 어....어르신.
노인 : 난 귀신인가 했네.
단아 : 어르신. 저 저 저 좀.....
#.46 씬. 항구.(밤)
빗속. 걸어가는 노인, 따라가는 단아.
단아 : 부탁드릴게요. 이 은혜는 제가 꼭 갚겠습니다.
노인 : 요즘 같은 세상에 부모 임종도 대수롭지 않은데 증조 할아버지 임종이 무슨 대수라구.
젊은 처녀가 참 별나기도 하네.
단아 : (막아서며 노인을 붙잡고, 숨을 몰아쉬면서) 꼭 가야합니다.
아시잖아요? 부모 임종 못하는 죄가 얼마나 큰 지?
노인 : 증조 할아버지라며? 괜히 이런 날 배 띄웠다가 젊은 처녀까지 황천길 가.
증조 할아버지 임종 하겠다고 하다가 그 길 따라 나서면 쓰겠어?
단아 : 그래도 저 가야해요. 이렇게..... (두 손을 모으고) 애원 할게요. 저 가서 지켜야 해요.
우리 할아버님.....임종.....꼭 해야 해요. 네, 어르신?
노인 : (깊은 시선으로 보는) 요즘 사람 아니구만.
단아 : 가게 해주세요.
노인 : 그래. 갑시다 까짓것. 나야 오늘 떠나나 내일 떠나나 아쉬울 것 없는 나이니.
가자니 가기는 하겠지만, 생목숨 걸고 증조 할아버지 임종 하러 가겠다는 처녀 팔자가 참 신기하구만.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맘먹을 팔자로 타고 났누.
단아 :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이 은혜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노인 : 예끼 이사람아. 가뜩이나 뒤숭숭한 길 나서는데 죽는다는 소리는 왜 해?
단아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노인과 단아 돌아서서 걸어가려는데. 단아의 핸드폰 울리고.
단아 : 여보세요? 어, 큰오빠. 나 지금 출발해요. 부산 가서...... (넋이 나가는 핸드폰 떨구고)
수영E : 단아야? 단아야?
노인 : (핸드폰 들고) 여보세요? 이 처녀 큰 오빠 되슈?
지금 내가 이 처녀 태우고 배를 띄워볼 거니까 그 노친네더러 좀 더 기다리시라구....
수영E : 어르신. 뉘신지는 모르겠으나....
노인 : 나 통통배 선장인데, 이 처녀가 어찌나 사정을 하던지. 내가 목숨 걸고서라도 한번 가보려고 하거든.
수영E : 어르신. 그러지 마십쇼.
노인 : 뭐? 뭐라구?
수영E : 할아버님 운명 하셨으니까 제 동생더러 서둘지 말고 조심해서 오라고 좀 전해주십시오.
서울로 오지 말고 종택으로 오라구요. 여기도 지금 다 그리로 출발하니까.
노인 : 알겠소. 그러리다. (핸드폰 끊고) 무정한 양반이구만. 손녀딸이 이렇게 애가 닳아 가서 지켜드리려 했건만.....
이봐요. 처녀. 할아버님, 이미 세상 뜨셨대. 그러니까 생목숨 걸지 말고.....
단아 : (푹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토하는)
노인 : (옆에 무릎 꺾고 앉아 단아의 어깨를 다독이며) 너무 서러 말아요.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떤 양반인지 모르지만.....참 복 많은 어른인가보네.
이렇게 애달아하는 자손을 두고 가시는 걸 보니.....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서.
첫댓글 오랜만에 다시 읽는데 너무 재밌고 슬프다. ㅠㅠ
정말 명작이다. 다시 봐도 너무 멋져~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