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21일 ]
외방선교회 성직자들의 순교
성 범 라우렌시오 앵베르 주교/ 성 장 시메온 베르뇌 주교 /성 안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
성 범(范) 라우렌시오 앵베르 주교(1796-1839년 43세)
주교·제2대 조선교구장. 9월 21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범세형范世亨: Imbert, Laurent Marie Joseph) 주교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1819년 12월 18일 파리 외방선교회 신부로 서품되었다. 다음해 3월 20일 파리를 떠나 중국 사천교구에 가서 선교 활동 중 제2대 조선교구장에 임명되었다.
1837년 12월 17일 봉황성 변문에 도착한 다음날 조선 입국에 성공하여 조선 땅을 밟은 첫 주교가 되었다. 그는 먼저 입국한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와 함께 선교에 힘써 1839년 초에는 신자가 9천 명이 넘을 만큼 교회 발전에 이바지했다.
성직자 양성에 힘을 쏟아 세 소년을 유학 보냈고, 이미 성년이 된 이들 중에서도 적임자를 뽑아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치는 등 교회 발전을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했다. 1839년 7월 3일 포졸에게 자수해,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라는 극형으로 순교하여 이 땅에 복음의 뿌리가 되었다.
성 범 라우렌시오 앵베르 주교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범 라우렌시오 앵베르 주교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모든 주교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장(張) 시므온 베르뇌 주교(1814-1866년 52세)
주교·제4대 조선교구장. 3월 7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
성 시메온 베르뇌(장경일張敬一: Berneux, Simeon Francois) 주교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1837년 신부로 서품된 지 2년 후 파리 외방선교회에 들어갔다.
1841년 베트남 통킹에서 선교하다가 체포되어 2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만주에서 12년 동안 선교했다. 1854년 12월 주교로 성성되었고, 이듬해 제4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56년 입국했다.
배론에 신학교를 세우고, 서울에 두 개의 인쇄소를 차리는 등 10년 동안 조선교회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1866년 2월 23일 체포되어 3월 7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로 순교하여 앞서간 순교자 대열에 들었다.
성 장 시므온 베르뇌 주교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장 시므온 베르뇌 주교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모든 성직자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안(安)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1818-1866년 48세)
주교·제5대 조선교구장. 3월 30일 충청도 보령 갈매못에서 군문효수
성 안토니오 다블뤼(안돈이安敦伊: Daveluy, Marie Nicolas Antoine) 주교는 파리 외방선교회 회원으로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1841년 11월 신부가 되었고, 1843년 외방선교회에 입회했다. 1844년 2월 고국을 떠나 그해 9월 말 마카오에 도착했다.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인 페레올 주교의 요청으로 조선 선교사로 임명되어 1845년 10월 12일 강경포에 입국하여 21년 동안 조선 선교사로 활약했다. 그는 교황청의 허락을 받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조선교회의 새 주보로 모시게 했고, ‘성모성심회'를 설립하여 신자들이 성모님께 받은 은총에 깊이 감사드리게 했다.
또 「한한불자전 漢韓佛字典」·「한국천주교회사」·「조선순교사」 등을 편찬했으며, 많은 순교 자료를 파리 본부로 보내 훗날 달레 Dallet가 「한국천주교회사」를 저술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충청도와 경상도를 다니면서 선교하다 체포되어 충청도 보령 수영水營으로 압송되었다. 3월 30일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여 성모님의 손을 잡고 천국으로 갔다.
성 안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안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모든 신자가 성모 신심을 키우도록 빌어주소서.
외방선교회 성직자들의 순교
조선 천주교회에 가장 큰 은인인 파리 외방선교회 성직자들의 순교정신이 없었다면 교회 발전이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언어와 풍속, 의식구조가 달라 외국 선교사들의 고생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조선 천주교회 책임자로서 그 노고와 고충은 남달랐고, 양들을 이끄는 목자로서 용감한 순교는 모든 신자에게 용기를 북돋았기에 세 분 순교는 더욱 의미가 크다.
세 성인 주교에게 우리나라 모든 주교와 대주교가 참된 목자로서 깊은 겸손의 바탕 위에 맞갖은 덕성으로 교회를 다스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주님께서 날마다 필요한 은총을 주시길 기도하고, 우리나라 가톨릭교회가 모든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고 교세가 날로 확장되도록 도움을 청하자.
제5대 조선교구장 안 안토니오 다블뤼 성인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주보로 모시고 조선 천주교회를 성모님께 봉헌하는 업적을 남겼다. 우리나라 모든 교우가 성모 신심이 날로 깊어지도록 노력하고 아울러 모든 주교와 사제도 성모님께 대한 각별한 신심을 가지도록 할 것이다. 성직자들은 성모님께 무엇이든 도와달라고 매달리며, 교만한 성직자라거나 돈을 좋아하는 성직자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