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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8:1-20
▣ 생명의 빛과 자유이신 그리스도-요한복음 8장-
이 장은 유대 지도자들과 대립되어 있는 그리스도를 보여 주며, 일련의 중요한 대조점들을 제시한다.
1. 빛과 어두움(8:1-20)
그들은 이 여인을 성전의 보배로운 부분인 여인의 뜰에 계신 예수께로 데려왔다(20절). 그들의 동기는 그리스도를 고소하고 곤경에 빠뜨리려는 것이었다. 만약 그리스도가 그 여인을 놓아주면 모세의 율법을 범할 것이며(레 20:10/신 22:22), 그녀를 돌로 치면 죄를 사하시는 분임을 주장할 수가 없게 된다.
아더 핑크(Arther Pink)는 그리스도께서 땅 위에 두 번 손가락으로 쓰신 것은 율법의 두 돌판과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기록하심을 그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말한다(출 31:18/출 32:15-18/출 34:1). 유대인들이 범죄함으로 인해 모세는 첫판을 깨뜨렸지만, 하나님은 피의 제사를 준비하고 두번째 돌판을 주심으로써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다. 그리스도는 이 여인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며, 그녀가 그리스도를 “주여“라고 불렀을 때에 용서할 수 있으셨다.
12절의 위대한 “나는... 이다“는 그리스도의 선언이 이 사건 뒤에 나온다. 하나님은 빛이시므로, 세상의 빛으로서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을 주장하였다(요일 1:5). 어두움은 죽음과 무지와 죄를 말하지만, 빛은 생명과 지식과 거룩함을 말한다. 빛은 죄를 드러낸다(요 3:20). 잃어버린 죄인은 어두움 가운데 살며(엡 2:1-3/4:17-19/5:8), 그리스도를 거절하면 영원한 어두움가운데 지내게 될 것이다(마 25:30).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께 순복하는 대신 성전에서 그와 더불어 논쟁하였다 !"
요 8:21-30
2. 하늘과 땅(8:21-30)
여기에는 두 가지의 출생이 나오는데, 즉 하나님의 영에 의한 출생인 위로부터의 태어남과, 육에 의한 출생인 아래로부터의 태어남이다. 그리고 두 가지의 죽음의 길이 있는데, 즉 죄인이 그의 죄로 죽는 것과, 신자가 주님 안에서 죽는 것이다(계 14:1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은 차이점들을 만들어낸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그가 하늘로부터 오셨음을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그를 보내셨고(26절), 그를 가르치셨으며(28절), 그와 함께 계신다(29절). 아버지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죄를 지셨을 때에 그 아들을 버리셨다. 28절에서 그리스도는 “들려질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이는 물론 십자가 형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이 사실에 대해 3장 14-16절에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으며, 12장 32-34절에서도 재차 언급하셨다."
요 8:31-40
3. 자유와 속박(8:31-40)
믿는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실함으로 그들의 믿음을 증거하라고 조언을 받았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지만, 말씀에 거하고 진리를 아는 것(살아가는 것)은 제자가 되게 한다. 그리스도는 영적인 자유와 구속을 말씀하신 것으로, 육적인 의미나 또는 정치적인 뜻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죄인은 육체와 죄, 사단과 세상의 속박을 받고 있다(엡 2:1-3). 그리스도 안의 진리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는 자유롭게 된다 !
물론, 그리스도의 반대자들은 그들의 육체적인 이점만을 드러내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고 말한다. 그들은 세례(침례)요한에게도 똑같은 말을 하였다(마 3:8-9). 예수께서는 여기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육적(37절), 영적(39절)으로 주의깊게 구분하신다.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이와 같은 구분을 하고 있다(롬 2:28-29 /4:9-12/9:6/갈 4:22-29).
사람들은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혼동하기 때문에 지옥으로 간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영적 탄생에 대해 말씀하셨으나, 그는 육적인 출생에 대해 물었다(요 3:4). 그리스도께서 여인에게 영생의 물(산 물)에 대해 말씀하셨으나, 그녀는 문자적으로 육적인 물로 받아들였다(4:15). 육은 무익하다 !(6:63) 구원은 영적인 경험이며 인간으로서의 탄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요 8:41-47
4. 하나님의 자녀와 사단의 자녀(8:41-47)
성경에서 “영적인 자녀“의 네 가지 종류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우리는 본래 진노의 자녀로 태어난다(엡 2:3). 우리가 고의적인 죄와 반역의 나이에 이르면 불순종의 자녀가 되며(엡 2:2),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갖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요 1:12).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자기 의(義/ 마귀의 대용품)를 더 좋아하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가 된다.
마귀의 자녀가 거짓된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마 13:24-30/13:36-43 참조). 예수께서는 마귀의 자녀들의 특성에 대해 지적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할 곳을 주지 않는다(37절).
인간적인 출생, 공로, 의식 등 육적인 일을 신뢰한다(39절).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그를 죽이려 한다-사단은 살인자이다(40, 44절).그리스도 또는 그리스도의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42절).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사단이 그들을 눈멀게 했다(43절).
거짓말장이이며 진리보다 거짓말을 더 좋아한다(44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말씀을 미워한다(47절).
이 마귀의 자녀들은 부도덕하며 술취하거나 도박꾼들이 아님을 기억하자.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한 자기 의를 지닌 사람들이다 ! 오늘날 참으로 영적이고 성경에 근거한 종교가 아니면서 “기독교“로 간주되는 많은 것들이 마귀의 모조품이다(고후 11:14). 수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복음의 능력이 없는 “경건한 모습“으로 사단에게 미혹되고 있다."
요 8:48-59
5. 공경과 무시(8:48-59)
하나님은 그 아들을 높이셨으나, 자기 의를 가진 인간들은 그를 무시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사마리아인이라 부르고 귀신이 들렸다고 비난함으로, 그를 멸시하였다. 사마리아인이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그 땅의 찌꺼기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아브라함이 그의 날을 보고 즐거워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아브라함이 그리스도의 날을 볼 수가 있는가? 이는 믿음으로써 가능하다(히 11:10-16). 그는 제단 위에 이삭을 드릴 때에 모형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의 약속된 아들인 이삭이 태어난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상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때문에, 그를 친구라 부르시며 그와 많은 비밀을 나누셨다(창 18:16-22).
하나님의 말씀의 밝은 빛이 마음에 비췰 때에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여 구원을 얻든지, 아니면 거절하여 잃어버린 바된다. 이 종교적인 유대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미워했으며 그를 죽이려 했었는지를 보라 ! 이것은 실로 그들이 살인자인 사단의 자녀임에 대한 증거이다.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주장하셨다(출 3:14). 24절에서도 역시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으며, 28절에서는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십자가) 내가 그인 줄 알고...“라고 말씀하셨다. 사단의 거짓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요일 2:22/요일 4:1-3). 하나님을 공경하는 동시에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거절하기란 불가능하다(5:23).▣ 실제적인 적용
당신은 빛 가운데 행하는가 아니면 죄의 어두움 가운데 있는가?
당신은 육적 탄생에 의존하는가 아니면 하늘로부터 온 탄생을 의지하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자유하는 아들인가 아니면 사단의 노예인가 ?
당신은 마귀의 자녀가 되어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 위험에 처해 있는가?
오늘 당신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가 받으실 영광을 돌리려 하는가?"
요 9:1-7
▣ 소경의 고침-요한복음 9장-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명하기 위해서(요 20:30-31) 요한복음에 기록된 일곱 가지의 기적 중 여섯번째 기적이다. 앞의 세 기적은 사람이 구원얻는 방법, 즉 말씀을 통해서(물이 포도주가 됨), 믿음으로(신하의 아들), 은혜로(병자) 말미암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제 뒷부분의 세 기적은 구원의 결과로서 평화(폭풍을 잠잠케 함), 빛(소경의 고침), 생명(나사로를 살리심)을 보여 준다. 5,000명을 먹이신 일은 복음이 세상에 주어지는 데에 사람과 그리스도와의 협력이 요구됨을 보여 준다.
1. 치료(9:1-7)
이 사람은 잃어버린 죄인의 상징이다.
-그는 소경이었다(엡 4:14/요 3:3/고후 4:3-6)-니고데모와 같은 지식층일지라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영적인 것들을 보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전 2:14-16)
-그는 구걸하였다-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비록 세상적으로 보기에는 부유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빈곤하다. 그는 만족을 위해서 구걸한다.
-그는 무기력했다-그는 스스로 치료할 수 없었으며, 이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도 불가능했다.
이 치료는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방법을 보여 준다.
-은혜 가운데 그에게로 오심-그 날은 안식일이었고 그리스도는 쉬려고 생각하셨으므로 그를 지나치실 수도 있었다(14절). 제자들은 그의 실명의 원인에 대해 논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셨다.
-그를 자극시키심-진흙이 눈을 자극하였다. 진흙덩이가 어떤 느낌을 갖게했을지 상상해 보라. 그의 눈에 발려진 진흙은 씻으러 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하였다. 말씀을 전하는 것도 그와 같다. 그것은 사람들을 자극하여 그에 대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도록 만든다(행 2:37)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그를 치료하심-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신의 믿음을 입증했다. 그리스도는 그에게 안경을 주시거나, 의사에게로 그를 보내거나, 실례를 들어 보이시거나, 또는 안내자를 붙이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는 그를 치료하셨다. 오늘날의 “종교“는 구원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대용품들을 주지만, 오직 그리스도만이 죄와 지옥의 어두움으로부터 건질수 있으시다.
-치료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모든 참된 회심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것이다(엡 1:6)
-그 치료가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음-그외 부모와 이웃들은 그의 삶에서의 변화를 보았다. 이렇듯이 사람이 거듭날 때에는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알게 된다."
요 9:8-34
2. 논쟁(9:8-34)
종교 지도자들은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는 회당에서 출회당한다는 것을 알렸다(22절). 물론 이것은 친구들과 가족, 그리고 유대 종교로 인한 모든 이점들을 잃게 됨을 의미했다. 이 선언은 그 부모와 이웃들이 아들의 놀라운 치료에 대해 다루게 되어졌을 때에 변죽만 울리고 회피하게 만들었다.
비록 그 때에는 예수라고 불리우는 이가 실제로 누구인지 충분히 알지 못하였지만, 11절에서의 아들의 단순한 고백은 그리스도를 높였다.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하며(16절) 죄인이라고 함으로써(24절) 그를 공박하였다. 그 아들은 그가 아는 사실을 말하며(25절),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30-33절). 언제든지 단순한 마음을 가진 신자는 잘 교육받은 신학자들보다 영적 진리를 더 잘 안다는 것이 사실이다(시 119:97-104). 결국, 그들은 그를 회당에서 출회시켰다.
그 아들에게 있어서는 변죽을 울리거나 그의 고백을 숨기고 논쟁을 피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을 내세웠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삶에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셨는지를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은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게 된다.
요 9:35-41
3. 그의 고백(9:35-41)
그는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였으나, 그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한 곳은 유대교의 밖에 있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를 추방했으나, 그리스도는 그를 영접하셨다. 바울처럼(빌 3:1-10), 그는 “그의 종교“는 잃었으나, 구원을 알았고 하늘나라로 갔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를 주의깊게 보자.
예수라 하는 사람(11절)-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를 치료하셨을 때에 그가 알고 있던 전부였다.
선지자(17절)-바리새인들이 물어왔을 때에 그는 그리스도를 선지자라고 불렀다.하나님께로서 온 사람(31-33절)-그는 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결론지었다.
하나님의 아들(35-38절)-이것은 그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신앙고백이다.
잠언 4장 18절은 “의인(구원받은 자)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른다“고 말한다. 이 사람의 “빛“ 가운데서 자라난 것은 이것을 증명한다. 그리스도인은 마음에 빛을 품은 사람이며(고후 4:6) 세상의 빛이다(마 5:14). 그는 빛 가운데서 행하며(요일 1장) 빛의 열매를 맺는다(엡 5:8-9). “주여 내가 믿나이다“는 그의 말은 그의 생애에서의 전환점이었다.
어떤 사람을 인도하는 그 빛이 다른 사람을 눈멀게 한다(39-41절). 바리새인들은 볼 수 있으면서도 그로 인하여 정죄되었다. 이는 그들이 증거를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음은 각기 다른 종류의 마음에 각기 다른 반응을 가져온다. 가난하고 눈먼 죄인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보게 되지만, 자기 의를 가진 종교적인 사람은 복음을 거절하고 영적인 소경이 된다. 빛을 거절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 요한복음에 나타난 네 종류의 영적인 어두움
심령의 어두움(1:5-9)-빛이 비취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들은 고린도후서 4장 3-6절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심령적으로 어두운 상태에 있다.
도덕적 어두움-사람들은 어두움 가운데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두움을 사랑한다. 이것은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 매 순간마다 어두움을 사랑하는 인간의 마음의 부패함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판단력의 어두움(12:35-41)-사람들은 항상 빛을 가지게 되지는 않는다. 빛을 지닌 동안 그들은 믿지만, 그들이 거절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숨기시며 어두움이 임하게 된다. 12장 37-41절에는 두려운 결과가 나타나 있다.
-믿지 않음/ 37절 - 그들에게 기회가 있었을 때
-믿을 수 없음 / 39절 - 그들의 마음이 더욱 어두워짐
-믿지못하게 하심/ 40절 - 하나님의 인내가 끝남.
영원한 어두움(12:46)-어두움에 거하는 것은 바깥 어두운 곳, 즉 지옥에 사는 것을 의미한다. “유다가... 나가니... 밤이러라“(13:30). 그가 끝까지 그리스도를 거절하였으므로 그의 영혼은 어두움에 속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