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휴머니즘의 영원한 고전 쓴 英스토리텔러
웨일스의 가난한 탄광 마을에 보건소 보조 의사가 한 명 부임한다. 이름은 앤드루 맨슨. 인도주의적인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청년이다.
부임한 마을엔 장티푸스가 자주 창궐한다. 맨슨은 하수도가 원인임을 밝혀낸다. 낡은 하수관 때문에 상수도와 하수도가 섞이고 주민들이 그 물을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아무리 당국에 보고해도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 이유는 관료주의와 부패, 탁상행정, 예산 부족 이런 것들 때문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건의해봐도 변화는 없고 사람들은 장티푸스로 죽어가는데 이런 상황에서 '의사'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 선 청년의사 맨슨은 과격하고 즉각적인 '신의 한 수'를 던진다. 하수도를 폭파시켜버린 것이다. 방법은 적중했다. 하수도 자체가 날아가버렸으니 제아무리 게으른 당국도 공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소설 '성채'는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책은 '작은 삶'과 '큰 삶'이 어떻게 다른지 또 대의와 소의, 이기와 이타가 어떤 차이를 지니고 있는지를 숙고하게 해줬다.
맨슨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과학적인 치료를 정착시키는 데 최선을 다한다. 영국 의사시험 중 가장 힘들다는 의학회 시험에 합격한 맨슨은 초등학교 교사 크리스틴을 만나 가정도 꾸린다. 탄광을 떠나 의료공제조합으로 자리를 옮긴 맨슨은 또 다른 벽에 부딪친다. 광부들은 보상금과 휴가를 노리고 거짓 진단서를 발급받는 데 혈안이 돼 있었고, 의사들은 인술을 펼치기는커녕 커미션을 뜯어먹으며 살고 있었다. 맨슨은 부당함과 싸우지만 결국 의사와 광부 양측 모두에게 냉대와 멸시를 당한다. 맨슨이 오랜 연구 끝에 발표한 규폐증 연구논문은 다른 선배 의사 업적으로 둔갑한다.
실의에 빠진 맨슨은 런던으로 돌아와 병원을 개업한다. 뛰어난 의술 덕분에 상류사회 환자가 늘어나고 맨슨은 돈을 벌기 시작한다. 돈맛을 보게 된 맨슨은 속물적인 의사로 변해간다. 이 모습을 가장 안타깝게 지켜보는 사람은 부인인 크리스틴이다.
"당신이 인생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기억하나요. 인생은 미지의 것에 대한 도전이고, 언덕 위에 있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성을 차지하기 위해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크리스틴은 '성'에 오르기를 포기하고 속물이 되어버린 남편을 질타한다. 그리고 얼마 후 크리스틴이 교통사고로 죽은 뒤 맨슨은 그녀의 무덤 앞에서 다시 '성'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소설은 매우 치밀하고 재미있다. 작가 크로닌은 스코틀랜드 출신 의사였다.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의료 현장 이야기는 거의 크로닌의 경험이다.
이 소설이 훌륭한 건, 발 빠르게 읽히는 뛰어난 문장력이나 생생한 인물 묘사 때문만이 아니다.
'성채'의 압권은 자칫 잘못하면 계몽적으로 흐를 수 있는 소설을 하나의 명작으로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크로닌의 재능과 순수성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소설 속에서 맨슨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