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선의지
"이 세계 안에서, 아니 그 밖에서조차도 무조건적으로 선한 것으로서 선의지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다"({기초}61, 393)
무조건적으로 선한 유일한 것은 오직 선의지뿐이다.
*무조건적 선의 개념과 본래적 선의 개념
본래적 선: 오직 그 자체로, 그것만으로 선한 것
cf. 비본래적/ 도구적 선: 오직 다른 어떤 사물이나 사건의 상태를 선한 것으로 만들거나 선을 증진시킴으로 선하다
행복이나 쾌락 등은 무조건적인 선이 아니면서 본래적 선일 수 있다.
무조건적 선: 그것의 선함을 부정할 수 있는 어떤 조건도 존재하지 않을 경우
선의지가 진정으로 무조건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선의지는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여전히 선하며 그것을 경멸스러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어떤 경우나 상황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와는 무관하게 선하다고 인정된 의지 자체와 관련해서는 어떤 결점도 찾아낼 수 없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선의지는 오직 그 자체만으로도 보석처럼 빛을 내며 자기 자신 안에 완전한 가치를 품고 있는 것이다."({기초}62, 394)
* 무엇이 의지를 선하게 만드는가?
선의지의 가치가 그것이 낳은 좋은 결과, 즉 세상에서 무언가를 성취함으로부터 도출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선의지 자체에 아무런 결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좋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
그렇다면 선의지의 선함은 결구 그 자체의 본성에 놓여있다
"선의지는 오직 자신의 의지 작용을 통해서만 선하게 된다."({기초}62, 394)
즉 선의지가 어떻게 의욕 하는가 그리고 선의지의 의욕 작용의 특성은 무엇인가?
이것들이 선의지를 선하게, 특히 무조건적으로 선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칸트: 도덕 원리들에 의해서 자극된 의지는 항상 그리고 필연적으로 선하다
* 우리의 도덕적 지위는 우리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것은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지위를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으며 우리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우리 자신의 의지이다.
따라서 우리의 도덕적 특징은 우리 자신의 마음의 자세, 우리의 의지의 노력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성의 역할
나름대로 고유한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는 기관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기관과 능력은 각각 자신이 이상적으로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어떤 기능을 소유한다
그렇다면 이성의 기능은 무엇인가?
칸트: 이성의 목적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이 행복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거부
본능에 따라는 삶을 살 경우에 우리는 가장 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이성은 행복의 증진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행복의 장애물이 된다.
행복의 성취나 욕구(경향성)의 인도가 이성의 기능이 아니라면 이성의 기능은?
칸트: 이성이 "실천적 능력"즉 의지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능력이다.
이성의 역할은 의지를 인도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즉 경향성의 대상들을) 성취하는 것을 부정.
"이성의 진정한 기능은 더 이상의 어떤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선한 의지를 산출하는 것이어야만 한다."({기초} 64, 396)
이성은 우리가 모든 것들 중의 최고선에, 즉 선의지에 도달하는 것을 돕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II. 의무
이성의 인도를 통하여 선의지를 확립하는 것은 경향성(욕구)의 만족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주 경향성의 목표를 방해하는 것을 포함하기도 한다."({기초} 64, 396)
도덕적 삶이란 자주 경향성의 유혹이나 압박과 상충을 일으키는 것
우리의 의무를 행하는 것, 이성의 요구에 따라 우리가 행하여야만 할 바를 행하는 것, 옳은 것을 행하는 일은 무척 힘들다.
왜냐하면 우리가 욕구하는 것, 우리에게 쾌락을 주는 것 또는 우리의 감각적 본성이 요구하는 것들이 우리를 의무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도덕적 삶은 우리 자신의 욕구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일종의 투쟁.
*그러나 의무와 경향성이 항상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경향성을 만족시키는 것과 의무가 요구하는 바가 같은 경우
예) 기질상 기꺼이 이웃을 돕는 경우
칸트: 우연히 경향성과 의무가 일치하는 경우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우리의 행위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잘못
우리가 행위가 도덕적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행위의 동기와 무관하게 단지 의무와 일치하게 행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도덕적 가치란: 오직 우리가 의무로부터 행위할 경우에만, 즉 우리가 그렇게 행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행위할 경우에만 드러난다.
어떤 행위가 우리의 의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곧 의무가 그런 행위를 하는 동기가 되어야 함을 의미
첫 번째 명제: 어떤 행위가 도덕적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반드시 의무로부터 행해져야만 한다. ({기초} 66, 398)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행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무에 따라 행위 하는 경우(이 경우에 행위의 동기가 오직 의무감 때문이다)
오직 하나의 동기만(즉 의무를 인식하는 것만이) 우리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만들어주며 우리의 행위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
III. 원리에 따르는 행위
의무감으로부터 또는 의무를 인식하고 행위할 때 등장하는 동기의 본성은 무엇?
동기는 우리의 행위가 어떤 구체적인 목적이나 목표의 성취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의지의 대상이 우리로 하여금 행위 하도록 만드는 경우 항상 경향성이, 즉 그 대상을 획득하려는 욕구가 작용하게 된다.
칸트: 도덕적 가치가 "욕구 능력의 모든 대상과 무관하게 오직 행위가 수행될 경우에 작용하는 의지 작용의 원리에만"({기초} 68, 400) 의존한다.
(선의지의 개념에 대한 두번째 명제)
어떤 행위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의지를 인도하는 원리 또는 "준칙"이다.
우리가 의무감으로부터 행위 한다는 것은 곧 원리에 따라서 행위 하는 것이며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행하는 것은 어떤 원리가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행위 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의 동기로 작용하는 원리=준칙
도덕적인 삶-원리에 따르는 삶
도덕적 개인-원리에 잘 따르는 사람
원리에 따르는 사람은 욕구에 기초하여 행위하지 않으며 자신이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항상 일반 규칙이나 이성적으로 형성된 근거에 호소.
도덕적 개인은 도덕 법칙이라는 원리를 행위의 동기로 삼는 사람
도덕적 원리에 따른 개인은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이다.
*원리의 대상과 형식
원리에 따라 행위 함에 있어 나는 원리 자체의 대상을, 즉 원리가 나에게 행하라고 강요하는 바를 나의 동기로 삼을 수도 있다.
예) 나는 "결코 거짓말하지 말라"라는 원리를 따르는데, 그 까닭은 내가 거짓말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일 수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는 욕구가 작용)
따라서 이 원리에 따르는 나의 행위가 의무의 인식으로부터 생겨난 것이기 위해서는 원리의 대상이나 내용이 동기로 작용해서는 않 된다.
오직 원리의 형식만이 동기로 작용해야 한다.
IV. 법칙에 대한 존중
*원리의 형식
원리는 어떤 유형의 행위를 강요하거나 명령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거나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일종의 명령
도덕적 명령은 "항상 진실을 말하라"와 같은 법칙의 형태를 취한다.
따라서 의무로부터 행위할 때 우리는 어떤 법칙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위 하여야만 한다. 이때 우리는 법칙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행위 하는 것이다.
"의무는 법칙에 대한 존경심으로부터 생겨난 행위의 필연성이다."({기초}, 68, 400)
선의지 개념의 설명의 세 번째 명제
법칙자체로서(순수한 법칙)으로서 법칙에 대한 존경심이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동기가 되어야 한다.
의무로부터 행위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원리이기 때문에, 곧 법칙이기 때문에 그 원리에 따라서 행위하며, 이로부터 원리에 따르는 행위가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오직 이성적 존재만이 지닐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법칙의 관념 자체만이-예상된 결과가 아니라 법칙의 관념이 의지를 규정하는 근거인 한에서-도덕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탁월한 선을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탁월한 선은 법칙의 관념에 따라서 행위하는 개인 안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며 결코 단지 결과로부터 기대되는 것이 아니다."({기초} 69, 401)
이성의 역할
행복 또는 경향성의 목적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향성의 대상들을 잘 획득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원리들을 형성하는 것도 아니다.
이성의 고유한 임무는 특별한 형식의 동기를 제공하는 것
즉 어떤 법칙이 요구하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를 하도록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
이성은 우리에게 법칙의 관념을, 즉 우리가 반드시 행해야만 할 바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원리들의 관념을 제공하며 따라서 이성은 우리의 의지가 선에 도달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만든다.
* 그러나 왜 법칙의 관념은 이성에, 오직 이성에만 근거해야 하며 이성으로부터만 생겨나야 하는가?
법칙의 형식을 취하는 원리들이 지니고 있는 두가지 형식적 속성, 즉 보편성과 필연성으로부터 비롯된다.
a. 보편성
원리는 우리가 항상 행해야 할 바를 알려준다
높은 수준의 보편성-모든 사람이 어떻게 행위하여야 하는 지를 알려준다.
오직 이성만이 보편적인 원리와 법칙들에 따라서 행위할 것을 우리에게 명령할 수 있다.
첫 번재 정식-정언명법은 이런 보편성에 근거한다.
b. 필연성, 즉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속성
자연과 경험은 어떤 것도 필연적인 것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항상 어떤 방식으로 발생하는가 만을 보여줌
그들이 그렇게 발생해야만 한다는 점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와 같은 필연성을 드러내는 것이 이성의 기능
기하학과 논리학에서 작용하는 이성만이 무엇이 발생하여야만 하며 어떤 경우가 참이 되어야만 하는지를 보여준다.
법칙을 통하여 도덕성에 부여되는 필연성-즉 우리가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 행위하여야만 한다는 절대적인 요구-또한 이성의 산물
*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법칙은 과연 어떤 것인가?
어떤 원리나 법칙의 내용 때문에 그것들을 따를 수 없다.
그것들을 따를 유일한 근거는 그들이 지니고 있는 법칙의 형식적 특성들, 즉 그것들의 보편성과 필연성뿐이다.
따라서 내가 현재 따르고 있는 행위의 준칙이 무엇이든 나는 나의 준칙이 보편성과 필연성이라는 형식을 지니고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즉 나는 나의 준칙이 모든 이성적 존재들이 의무로서 따를 수 있는 (또는 따라야만 하는) 원리이거나 원리일 수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는 오직 이러한 형식적 속성 때문에 그것에 따라야 한다.
만일 내가 오직 이런 근거에서 그 준칙에 따른다면, "그러한 보편 법칙과의 완전한 일치만이 의지의 원리로서 의지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의무가 어디에서나 공허한 망상이나 환상적인 개념이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이러한 일치가 의지에 도움을 주어야만 할 것이다."({기초} 70, 402)
내가 그러한 법칙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특정한 행위를 규정하는 원리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그것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법칙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의 인도에 따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