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면 마음 가고, 마음 가면 몸 따라가는 법.
지난 무주 ‘백운산~수성대’ 산행에서 내내 우리들의 시선을 끌었던 산이 거칠봉이다.
드날머리는 몇 군데에 걸쳐 있지만 우리는 구산마을 두길교에서 시작하여 말발굽 형태의 능선을 돌아 사선암에서 절정을 맛본 후 철목리로 내려올 계획이다.
거칠봉(居七峯 1,178m)은 덕유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일곱 신선(神仙)이 살았 던(居)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300m대의 기점에서 1,000m가 넘는 거친 고봉을 올라서면 잡목에 가려 갑갑하던 산길에 숨통이 트이는 지점이 거칠봉 고스락이다.
고스락 한 모퉁이 전망바위에 다가서면 나아갈 말발굽 능선과 헌걸찬 백두대간이 시야에 들어온다.
무인감시카메라가 있는 선인봉(仙人峰 1,150)엔 데크 전망대가 잘 갖춰져 있고, 향적봉과 적상산을 표시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어울려 산상 뷔페식당을 차리기에 안성마춤이지만 우리는 거칠봉에서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였다.
이곳에서는 남쪽 무주구천동 계곡 가까이 있는 덕유산자연휴양림 쪽으로 산길이 잘 나있다.
나중에 헤프닝이 벌어졌지만 우리는 이곳을 B코스 들머리로 잡아 A팀과 동선을 맞추게 한 건 거칠봉이 제외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선암(四仙巖)은 벌한마을과 경계를 이루는 철목리 뒷산 안부(해발 약 760m)에 자리잡고 있다.
높이 15m쯤 되는 수직 바위벽에 무풍 일대에 세거해 살던 네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신라시대 4명의 화랑이 수련했대서 붙은 이름이라지만 이곳을 자주 찾던 4명의 무풍 선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나제(羅濟) 국경인 이곳에서 4명의 화랑이 수련을 하였으니 그를 패러디한 네 선비가 지팡이 짚고 짚신 끌며 와 노닐었을까?
‘사공장구지소(四公杖屨之所)’ 란 각자가 선명하다.
‘이시발(李時發)’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이시발과 동명이인으로 한말 김구 선생을 추종하던 애국지사란다.
밧줄을 잡고 올라선 사선암 위에는 10명이 넘게 앉을 수 있고, 그 한가운데에 바둑판도 새겨져 있다.
전국에 걸쳐있는 바둑판 바위와 함께 신선사상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무풍면소재지와 반대편의 벌한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사공(四公)이 신라 네 화랑을 그렇게 한 것처럼 필자도 그들을 코스프레하며 파안하였다.
사선암 바로 아래 안내판이 있는 지점이 바로 철목리로 내려서는 안부 갈림길이다.
이정표가 있을 중요지점이지만 이정표는 그만 포인터에서 벗어나 남의 책상다리를 긁고 있다.
촘촘히 박힌 국립공원 표석은 마치 울타리를 친 듯 경계를 긋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국립공원 에리어에 세울 수 없었던 걸까?
아님 철목리에서 세웠으니 철목리에서 올라오는 길만 생각해서일까?
단체 산행팀이 다녀가지 않았으니 그 흔한 시그널 한 장 걸리지 않았다.
철목리에서 사선암을 오르기 위해 걷게 되는 ‘신선길’은 무풍면 철목마을에서 시작되는 3km 정도의 등산로로, ‘무풍승지방문자센터’를 출발해 마을길을 따라
이정표를 보고 오르면 된다.
옛날 벌한마을 사람들이 바로 이 고개를 넘어 무풍 장을 보러 다닌 ‘사선암 옛길’이다.
코스: 구산마을(두길교)-농로-해주오씨묘-헬기장(1536)-거칠봉-깊은골갈림길-선인봉-삼각점-한재-895(구삼각점)-전망대-사선암-임도-옥담골-철목교(6h)

산행궤적

14km를 6시간 걸은 셈.

고도표

무풍면 여행.

광주대구고속도로에서 눈에 익은 거창의 산군들을 좌우로 짚어보다 지난 주 다녀갔던 박유산을 잡아 보았다.
다른 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지만 삼각뿔처럼 솟은 모양이 이채롭다.

A팀 들머리인 구산마을 두길교를 향하다 지나치는 '덕유산자연휴양림'에 먼저 B팀을 내리게 한다. <B코스: 덕유산휴양림-선인봉-사선암-철목리>

B팀이 내린 덕유산자연휴양림에서 20여분을 더 달려 두길교에 도착했다.
정면으로 보이는 다리가 두길교이고 곧장 진행하면 방재마을을 지나 벌한마을로 가게된다. <C코스: 두길교-벌한마을-사선암-철목리>

네비에 두길교를 입력한 우리 버스는 두길교 직전의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산꾼들을 토해 놓는다.

두길교를 건너면...

노거수 한 그루와 안내판이 있고, 포장도로를 따라 곧장가면 벌한마을이고,

거칠봉은 우측 포장농로를 따라 펑퍼짐한 능선에 접속을 하게 된다.

두길교(약 330m)에서 돌아본 모습.


덕유산 신선명품마을 안내도.

포장 농로를 따라...

조금씩 고도를 높혀가면...

'ㅓ'자 삼거리. '명품마을 옛길 1구간'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이 길은 벌한마을로 들어가는 옛길.

옛길 안내도.

오미자 밭에서 농로가 끝이 난다.

오미자 밭에서 본격 산자락으로 붙어 희미한 선답자들의 흔적을 좇아...

선명한 능선에 올라 붙는다.

무시무시한 경고판이 시선을 끈다.

능이버섯이 나는 지역으로 무단 채취하면 처벌된단다.

해주오씨묘.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로엔 아까의 그 경고판이 계속 이어져 있다.

커다란 바위를 에돌아...

잡풀이 무성한 헬기장(1035.6)에 올랐다. 이 헬기장은 월현마을 갈림길이다.

1048.8m 봉우리엔 '큰절봉'이란 코팅지.

인위적인 돌담의 흔적은 일곱 신선이 살았던 흔적일까? 농경지도 없고, 물도 없으니 그건 답이 아닐 것. 나제(羅濟) 국경이었으니 아마도 옛 성터일 것.

잡목 뒤엉킨 여나믄 평의 거칠봉.

인증샷을 한다.

권 선생님과 함게 필자도 얼굴을 내 밀었다.

삼각점의 안내판.

고스락 한켠 동쪽 바위턱으로 나아가면 진행할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 미터대의 산정에 추색이 느껴지고 우람한 근육질의 산맥은...

백두대간으로 우측 대덕산과 삿갓봉인 듯. 가까이 보이는 능선은 나제통문으로 내려앉는 능선자락.

진행할 능선과 고개든 백두대간.

주위를 둘러보는 가운데 오늘 처음 참가한 일행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분은 군대(공수부대)에 있을 때 야간에 거칠봉을 올랐던 추억이 있단다.

조릿대 구간을 지나고...

미역줄이 성가시더니...

데크전망대가 설치된 선인봉에 닿았다. B팀들은 이 지점을 지나 사선암에 얼추 도착했을 것이다.

선인봉 데크전망대에선 덕유산 향적봉 방향으로 조망이 트인다.

안내판을 참고로 향적봉과 적상산을 짚어본 후...

멀리 시선을 고정시킨다.

높고 낮은 산들이...

운무를 덮어쓰고 첩첩이 포개져 있다.

덕이 많아 너그러운 덕유산(德裕山).

발 아래 덕유산자연휴양림으로 통하는 능선과 계곡.

무인산불감시탑 옆...

이정목에 선인봉 표지판이 걸려있고...

벌과 뱀을 조심하라는 경고판도 붙어있다.

이정표를 확인하지만...

목적지는 적혀있지 않다.

삼각점에서...

안내판을 확인하니 1056m 봉우리.

국립공원 표석을 만나는 건 경계라는 의미.

로마 병정의 투구를 닮은 '투구꽃'.

한재로 내려서는 곳은 독도에 유의해야만 되는 지점. 반듯한 능선 우측으로 비켜 내려서야지, 무심코 능선을 따르다보면 벌한마을로 곧장 빠져 버린다.

펑퍼짐한 등로를 따라 하강이 끝나면...

더이상 내려설 곳이 없고 나무가 뿌리채 뽑혀있는 지점이 한재(약850m)다. 한재란 큰고개라는 뜻.

한재에서 고도를 90여m정도 높히면 940봉에 이르고, 940봉에선 국립공원 표석이 세워져 있다. 이후 이 표석은 촘촘히 울타리를 친 듯 경계를 긋고 있다.

등로는 능선으로 나있지만 능선이 펑퍼짐하다보니 길찾기에 유념을 하여야 한다.

894.5m봉엔 국립공원 표석과 이끼낀 '구삼각점'이 있다.

808.6m봉이 가까워질 즈음 바위들이 널버러져 있는 게 보인다.

사선암이 이쯤 어디 있을 테지만 오리무중이였고, 대신 확 터인 전망대에서 우리가 발품을 팔아 여기까지 이어온 말발굽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칠봉 우측으로 고도를 높히며 올라온 오름길이 보이고, 발 아래 보이는 바위가 사선암일 터.

사선암은 제쳐두고 우리는 이 전망바위에서 사위를 천천히 스캔하기 시작한다. 멀리 오늘 산행을 부추긴 백운산과 깃대봉, 청량산.

그를 살짝 당겨 보았더니 무덥던 그날의 추억과 함께 우람한 모습으로 그곳에 버티고 있다..

잡목을 헤치고 사선암을 옆으로 돌아...

깎아지른 바위벽을 올려다 본다.

사선암을 올랐다 내려오는 일행.

바위 옆으로 돌아보니 신미(辛未) 4월 흥양(興陽) 이시발(李時發)이란 이름의 각자가 보인다.
이시발<1865(고종 2)-1934>은 본관이 흥양(興陽)으로 호가 간설(艮雪)이며, 이곳 무풍면 출신의 애국지사다.
김구 선생이 도망다닐 때 이시발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기록이 백범일지에 전한다.
신미년이면 1931년으로 일제의 억압과 침탈이 극에 달하던 시기이다.

<흥양인 이해교, 진양인 하재만,하현, 안동인 권철로> 네 명의 이름이 새겨진 암벽. 사선암(四仙巖)이란 이름이 생긴 유래다.

다른 벽엔 '사공장구지소(四公杖屨之所)'

안내판엔 나제국경 신라땅인 이곳에서 네 화랑이 호연지기를 연마하던 곳이란다.

짝지를 놓쳐버린 상곤 씨가 철목리 갈림길(사선암, 안부 750m)에서 우리를 쳐다보지만 우리는 사선암에 올라야만 한다.
사선암 하단부에서 바라보면 이정표가 있어야 하는 지점은 바로 이곳 안부이지만 아무런 안내나 표시가 없다.
상곤 씨가 향하는 길이 철목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직진 오르막 능선은 나제통문으로 이어지는 길.

바위 틈새를 통해 접근을 한 뒤 밧줄을 이용...

사선암 정수리에 올랐다.

정수리에는 제법 널따란 마당바위가 펼쳐져 있고...

바둑판이 그려져 있다.

<by 한덤> 필자의 신선 코스프레는 아무래도 거시기하여 고려시대 이인로(李仁老)를 모셔왔다.
사선랑은 신라시대의 나그네
낮이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랐네
천년 동안 남긴 자취 추적해 보니
삼산에는 약초만이 남이 있더라.

눈가는 곳은 백두대간으로 민주지산 방향.

살짝 당겨 보았다.

사선암에서 내려와 반대 방향에서 사선암과 갈림길을 확인한다. 화살표는 철목리 방향.

철목리에서 정비한 산길을 지그재그로 따르면...

100m 아래에 약수터란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천남성(天南星).

10여분 만에 임도에 내려선다.

임도에 세워진 이정표에 사선암까지 400m.

임도에서 내려온 곳을 돌아본 모습.

이제 임도를 따르면 곡각지점에 천막이 있고...

다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까진 임도 200여m. 임산물 채취 단속을 위하여 차를 타고 와서 감시를 하고 있다. 정확히 무슨 임산물인지 우리는 알 길이 없고...

임도에서 벗어나는 갈림길의 이정표.

잘 닦여진 산길을 따라...

내려서면 커다란 나무 아래 벤치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옥담골 작은 계류를 건너면서...

산속을 벗어난다.

커다란 나무가 있는 임도에 닿으면...

이정표엔 사선암 1.2km.

세멘트 임도를 내려서면...

차량 차단봉에...

임산물 채취금지 경고판이 붙어있다.

철목마을에서 올라오면 쉽게 사선암을 찾을 수 있을 것.

발갛게 익어가는 사과나무.

차량이 올라올 수 있는 마지막 지점. 대형버스는 불가할 것.

마을길을 따라 신기마을회관을 지나고... * 신기(新基)는 새터를 한문화 시킨 이름.

계류를 끼고 내려가면...

우측으로 무풍승지 건물이 보이고...

버스가 보이는 지점에서 계곡으로 내려섰다. 우리는 여기서 땀을 씻고 셔츠를 갈아 입었다.

계곡에 피어있는 예쁜 꽃은 어릴적부터 많이 보아왔던 '고마리'다. 약용으로 쓰인다고...

버스로 귀환하며...

'休무풍승지'는 '팜스테이' 시설로서 매실과 표고버섯 등의 농원인 듯.

우리 버스는 철목교를 건너와...

철목마을 표석과 목장승이 서있는 곳에서...

뒷풀이 공간을 마련하였다.

오랜만에 기름기 발라낸 돼지고기 찌개를 안주로 산행 허기를 메운다.

그리곤 철목리 이름이 있게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령 350년이 넘은 느티나무로 바삐 가보았다.

원 철목(哲木)마을은 본래 철목(哲目)이라 했으나 후에 나무 목자로 바꾸어 철목마을이 되었다.
이 마을에서는 멀리 있는 사물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라 하여 이름이 붙었으며 원래 선비들이 모여 미풍양속을 지키기 위한 향약을 만들고 이를 행하기
위해 풍호정이라는 정각까지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철사(哲士)들이 모이는 장소라 하여 철목이라고 하였으며, 이 노거수가 세월을 말해 주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쉬었을 널따란 데크 쉼터를 카메라에 담은 뒤...

에쿠~ 비각안의 비석사진에서 '전주 최공'만이 읽힌다.
조선 태종 때 무풍현의 마지막 현감을 지낸 최영보의 가족들이 머물러 살게 되면서 마을이 번창해지게 되었다고 전하며 그의 후손인 죽헌 최활의
위패를 모신 죽림서원이 가까이에 있다.

척사(斥邪)란 성리학의 입장에서 성리학이 아닌 사학(邪學)을 물리친다는 철학적 정치적 운동이지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허허바다-
찾아가보니 찾아온 곳 없네
돌아와보니 돌아온 곳 없네
다시 떠나가보니 떠나온 곳 없네
살아도 산 것이 없고
죽어도 죽은 것이 없네
- - -하 략- - -
<정 호 승>
첫댓글 역시 표현도 절묘하게 갔다 붙였군요
내가 안가본 곳이라 유심히 살폈소
수고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