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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연보
2019, 4, 14
고후8 : 6-15절
바울 사도가 이 고린도후서를 쓸 무렵인 서기 55-56년 무렵에 이스라엘이 있는 중근동지역에 아주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재정적으로 아주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방인 여러 교회에게 예루살렘교회를 위해서 구제헌금을 보내도록 독려하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가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영적인 것을 받았으니 땅의 것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면서 예루살렘교회의 구제헌금을 하라고 권했습니다.
지난번에 마게도냐에 있는 세 교회 빌립보교회와 데살리로니가교회 와 베뢰아교회는 종교적인 박해를 받으며 환난과 많은 시련 중에도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 중에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들이 극심한 가난 중에도 풍성한 연보를 하게 된 것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된 그 기쁨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믿음으로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영으로 새로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 나라의 형제들입니다.
우리 주님은 중생하여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이 땅의 믿음이 형제들을 이 세상에 혈육의 관계보다 더 중히 여기십니다.
마태복음 12장 47-50절에 한 사람이 예수께 말씀하시기를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말하는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기를 ”누가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아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을 우리들의 혈육보다 더 우선에 두시고 더 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아주 특별한 사랑을 하십니다.
그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신 그 특별한 사랑을 성령을 통하여 중생한 우리들에게도 부어 주심으로, 형제에 대한 그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3장 14절에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에 들어간 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형제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이 없다면 “너희는 아직 생명 되시는 성령을 받지 못했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6절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에 그대로 성취하게 하였노라.”
여기 나오는 디도는 헬라인으로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요, 특별히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구제헌금을 하도록 바울보다 먼저 권장한 사람입니다.
디도가 고린도교회가 헌금하도록 1년 전에 권장하여 구제 헌금을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그 헌금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제 다시 시작하여 모두가 이 헌금에 참여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특별히 마게도냐 성도들의 극심한 가난 중에도 간절함과 기쁨으로 넘치도록 풍성한 헌금을 드린 것처럼 너희도 그처럼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7절에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내가 명령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믿음과 말과 지식과 간절함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 대한 풍성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 일에도 풍성하게 하라.”고 권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이 일을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시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자원하여 스스로 자발적인 마음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 되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게 헌금을 명령하지 않고 마게도냐교회의 성도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자원하여 했던 것처럼 너희도 그리하라고 권한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말과 지식에 능한 사람들이 있어 그들의 믿음이 큰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과 행위가 일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너희의 믿음과 말과 지식과 간절함이 진실한 것임을 너희의 풍성한 헌금으로 증명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헌금은 우리의 믿음과 지식과 사랑이 진실함을 증명할 수 있는 그런 힘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돈이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뜻을 버리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쉽게 하려고 합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자기희생 없이 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9장 23-24절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믿음이 진실하고 참된 성장을 이루기까지는 이 말씀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 주의 말씀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주의 말씀에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의 삶에는 자기희생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형제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너희 믿음이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형제에 대한 사랑이 그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이 형제에 대한 사랑도 자기희생 없이는 안 되는 일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를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위해 만드시고 지으신 그 목적대로 선한 일에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이 일은 자기희생 없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지으시고 성령을 부어 주신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하여 힘쓰고 애써야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만물이 그분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가난한 몸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큰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얻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몸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들도 그분의 희생을 본 받아 궁핍한 너희 형제들을 위해서 너희가 가진 물질을 드려 그들을 구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0-12절에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1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며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할 것이라.”
마게도냐 교회는 바울 사도의 권고로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시작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 박해를 받는 시련 중에 있었고 또 극심한 가난 가운데 있었지만 마음을 다해 풍성한 헌금을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아직도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하던 일을 성취하라고 권했습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라고 하셨습니다.
헌금이란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들이 반드시 알아야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만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행위의 동기가 되는 마음을 중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한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21장 1-4절에서 보면 예수께서 부자들이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또 한 과부가 헌금함에 두 렙돈을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과부가 헌금하시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풍족한 중에 헌금을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중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며 그 과부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이 과부는 그의 헌금으로 우리 주님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킨 사람입니다.
주의 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주께서는 부자들이 헌금하는 것과 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보시는 것처럼 우리의 헌금을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마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가 드리는 이 헌금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신 자 때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면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이 성장하면서 그분의 은혜로 가장 크게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들의 모든 행위를 아시며, 우리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것 즉, 범사에 그분이 행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성장은 반드시 여기까지 이르러야 하나님을 경험하는 믿음이 되며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잠언 3장 6절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하시는 말씀을 여러분들도 아실 것입니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우리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뜻의 말씀이 로마서 8장 28절에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참되게 깨닫는 믿음에 이르면 우리는 새로운 믿음에 으르게 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주께서 행하시는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도 이사야서 28장 26절에서“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으며.”라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2장 12절에 “우리가 세상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것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을 부어 주셨다 하셨습니다.
우리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새롭게 되어 범사에 감사하는 즐거운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를 인정하는 믿음만이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요, 범사에 그분의 가르치심을 받을 것이요, 주께서 어떤 일에 우리를 손짓하여 부르고 계시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항상 우리 곁에 계시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요,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이요, 또한 우리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드려 섬기면서 기뻐하는 믿음이 될 것 입니다.
바울 사도는 16-24절까지에서 너희의 드리는 헌금을 맡을 자로 디도뿐만 아니라, 마게도냐 교회들이 추천한 신실한 두 형제를 함께 보낸다는 내용입니다.
16-18절에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라고 했습니다.
디도에게 그 간절한 마음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주신 간절함을 가지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에게 헌금을 권하는 디도의 권함을 따라 풍성한 헌금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도와 함께 보내는 두 형제는 마게도냐 여러 교회의 사역자들이요, 그리스도에게 영광 되는 일꾼들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마게도냐 여러 교회의 사역자들 앞에서 너희의 진실한 믿음과 사랑을 보이라, 그들에게 너희에 대한 우리의 자랑이 부끄럽지 않게 풍성한 헌금을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들이 마게도냐 교회로 돌아가서 너희의 풍성한 헌금으로 믿음과 사랑을 증거 할 수 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10절에 “이 일에 대해서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라고 했습니다.
궁핍한 예루살렘교회를 위해서 헌금하는 것이 그들에게 어떻게 유익함이 된다는 것입니까?
첫 째는 형제를 사랑하라는 주의 말씀대로 형제에 대한 사랑을 그 헌금으로 나타내는 것이 됩니다.
두 째는 주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든지 돈을 사랑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섬길 것이라 하셨습니다.
둘을 다 섬길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헌금으로 자기 사랑이나 세상 사랑이나 돈을 우상처럼 여기는 자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에 대한 참 사랑을 증명하여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헌금을 통하여 그 사람의 믿음과 감사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너희에게 유익이 된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