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2월13일)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 국수역에 9시17분에 도착하여 걷기를 시작하였다. 원목터널과 기곡터널 특히 기곡터널에는 양평군에서 내부에 아트겔러리 조명을 설치하여 오고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오늘은 아름다운 조명을 볼수 없는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원목터널(길이 261m)과 기곡터널(길이569m)지나게 되었다;
기곡터널을 지나면 아신역이다. 이곳은 아신역과 고속도로(충주~춘천) IC로 진입하는 출입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속도로 밑을 이용하여 소공원과 켈러리 전시장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겔러리 전시장이 쉬는 날인지 문이 잠기어 있어 발길을 재촉하였다.
양수리 지나면서 산과 논밭을 걷어오니 남한강변 강물은 임춘이 자났는데 얼음판이고 버들강아지는 꽃망울이 싱그러워 보인다. 옥천냉면은 옥천에는 옛부터 냉면을 잘하는 곳이라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냉면을 먹었다. 1. 고산정은 북쪽에서 힘차게 뽇어 내려온 용문산 지맥의 끝에 지어진 정자로서, 고산(孤山)이란 명칭은 * 떠내려 왔다 하여 떠드렁산이라고 불리는데, 한자로는 부래산(浮來山)으로 표기하기도 하고, 충주(忠州)에서 떠내려왔다고 하여 충주산이라고도 불린다. 2.청개리이야기 청개구리 이야기가 이곳 양평 떠드렁 산에서 유래 되었다는 사실,일고 계셨나요 이야기는 도선중기로 거슬러 올라가 "이괄의 난"이로 유명한 무신 이괄은 어려서 말성끄러기여서 아버지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반대로 하였다고 합니다. 이괄의 아버지는 펼서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아 일찍부터 묘자리를 알아보고자 전국 팔도강산을 부비다가 용문산의 정기가 힘차게 뻗어 강가에 힙삑기가 모여있는 이곳 떠드렁산을 찾았고 죽음을 앞두고는 이괄에게 자신을 떠드렁산 바위밑에묻어 달라고 하였다. 이때 아버지는 이괄이 또 반대로 할줄알고 "내가 죽거든 거꾸러 묻지 말고바로 묻어 달라오" 라고 말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이유는 이괄의 아버지가 원래 반은 용이고 반은 사람이라 거구러 묻어야만 죽은 후에 용으로 승천 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처럼 이괄 역시 아버지의 유언을 어길수가 없다며 버로 묻어야만 죽은후 용으로 승천할수 잇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청개구리 이야기처럼 이괼 약시 아버지의 유언을 어길수가 없다며 바로 묻어드려 결국 아버지는 용으로 승천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문에 이괄의 난이 결구 실패했다고 합니다. 만약 이괄이 아버지를 거꾸러 묻어드렸다면 그래서 아버지가 용으로 승천해서 훗날 이괄의 난이 성공 하였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청개구리 이야기는 그내용이 많이 바뀌어 있지 않았을까요 남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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ㅕㅐ
개군면 양덕리는 지석묘도 있고. 이곳은 곤지암쪽에서 흐르는 물이 이곳에서 합류하여 한강으로 흐르고 있어
민물고기 잡는 어부들이 있어 강물에는 고기를 파는 어선들이 있었다.
ㅗㅓ
남한강 자전거길 옆 작은 아담한 겔러리
오늘은 집에서 8시에 출발하여 팔당역에서 전철 타고 국수역에서 9시 10분에 걷기를 시작하여 15시20분에
이포보 도착하였다
이포보와 파사성은 다음으로 미루고 천서리 막국수에 막걸리 한잔을 먹고 버스를 탔다.
첫댓글 황대감님
깜짝 놀랬읍니다
우직하고 성실하기만
그친구 황선직이가
이런 글재주가 있는줄이야
새삼스레 우리1415에는많은 인재가 있다는것을
다시한번 실감 합니다
한자 한자 글자마다가 작품입니다
사진도 왜이리 잘 찍어서 올렸는지
그 환한 얼굴이
더ㅡ
멋있어 집니다
술래잡기가 봄소식과함께 생기를 되찾고
쭈욱 뻗어갑니다
황대감님
고마워ᆢ
요즘 지자체에서 둘레길을 잘 조성해놓아 어딜 가든 볼거리가 많습니다.
하루에 25km씩 걷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장호원 권역 둘레길을 걷게 될 것 같습니다.
장호원 권역 둘레길에 접어들면 꼬~옥 미륵뎅이(어석리)에 들러 석불입상을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석불입상 얼굴이 박해수 동문을 닮았다는 소문이 읍내에 파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