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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8월 28일 금요일
[(백)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354년 누미디아의 타가스테(현재 알제리의 수크아라스)에서 모니카 성녀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 방탕하게 생활하며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끊임없는 기도와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영향으로 회개하여 387년에 세례를 받았다. 391년에 사제가 된 그는 오 년 뒤 히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아우구스티노 주교는 이단을 물리치며 교회를 수호하는 데 일생을 바치면서 참회의 자서전인 『고백록』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430년 세상을 떠난 그는 중세 초기부터 ‘교회 학자’로 존경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17-25
형제 여러분,
17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19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20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25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요한 4,7-16)와 복음(마태 23,8-12)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마태 25,9). 기름을 나누어 달라는 어리석은 처녀들의 요청에 슬기로운 처녀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가서 사라.”라는 말이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상인에게 가는 ‘수고’와 기름을 사는 ‘노력’ 없이는 등에 기름을 채울 수 없다는 말로 이해해 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수고하고 노력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필요한 때를 위하여 시간도 발품도 비용도 들여 가며 준비하였습니다. 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누군가가 해 놓은 것에 숟가락만 얹으려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말만 앞세웁니다.
한편, 등은 가지고 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모습은 “내가 이만큼 하였는데 …….”라며, 예전에 한 일들, 지난날만을 바라보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한 일들, 곧 등에 들어 있는 기름만으로는 하느님 앞에서 충분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우리에게 실체로 다가온 하느님의 사랑을 또 다른 실체로 열매 맺으려는 수고와 노력이 끊임없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25,13).
오늘 미사에 참례한 우리의 수고와 노력도 등에 기름을 채우는 슬기로운 일일 것입니다. 사는 것보다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고, 잘 사는 것보다 영원히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을 기억하며, 지금 여기에서 바로 기름을 채워 나가면 좋겠습니다.(유청 안셀모 신부)
자비하신 하느님 품 안으로 돌아오기까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교회 역사 안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님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신 대성인이 또 다시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오랜 방황의 세월을 접고 하느님 품 안에 안긴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유명한 ‘고백록’을 통해 지난 세월 자신이 저질러왔던 오류와 죄에 대해 소상하게 고백합니다. 그릇된 신앙, 오류투성이였던 세속적인 지식, 지나친 호기심...그 모든 것들이 곧바로 죄와 연결된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는 대단한 지적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한번 들은 모든 것을 단번에 기억하고 이해하는 타고난 천재였습니다. 이런 그가 지적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렇게 후회합니다.
“나는 미련하게도 모든 것을 머리로만 알아듣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가 방황했던 시절, 오류와 죄투성이의 길을 걸었던 가장 큰 이유가 명백히 드러납니다. 그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마음이요, 가슴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40세 때 저술한 고백록은 교회 역사 안에서 가장 위대한 저술 가운데 하나입니다. 놀랍게도 고백록 안에는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모든 삶의 역사가 가감 없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미화시킨다거나 완화시키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의 실수, 자신의 오류, 자신이 저지른 과오, 죄...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감추고 싶었던 과거, 도덕적 결핍, 끔찍이도 어머니를 괴롭혔던 세월, 마니교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날들, 그리고 마침내 자비하신 하느님의 품 안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갖은 사연들이 가감 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지난 삶을 고백하는 형식의 자서전이지만, 단지 죄투성이의 삶에 대한 고백만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자비하신 하느님을 향한 애틋한 사랑의 정, 진흙탕 속에 빠진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건져내 주신 자비하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정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고백록은 단순한 죄의 고백이나 참회의 글 모음이 아니라 우리 죄인들을 향한 하느님의 오묘한 손길이 담겨있는 명작입니다. 죽을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들 수 없는 비참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큰 사랑으로 구원해주신 하느님 사랑에 감사드리는 한 영혼의 찬가입니다.
오랜 방황을 끝낸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들 아데오다토와 절친 알리피오와 함께 마침내 387년 부활 성야 때 당시 밀라노 주교였던 암브로시오 주교로부터 세례성사를 받습니다. 그리고 발레리오 주교로부터 사제, 그리고 주교로 서품됩니다.
하느님을 멀리 떠나 방황하던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께 돌아서는데 성경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 그 어떤 쾌락을 통해서도 얻지 못했던 한없는 감미로움, 완전한 아름다움을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맛보게 했습니다. 평생 진리에 대한 갈증을 느껴왔던 아우구스티누스였는데 성경은 그의 갈증을 원 없이 채워주었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오늘은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생각하면 먼저 어머니인 성녀 모니카가 떠오릅니다. 모니카 성녀는 젊은 날 쾌락과 명예와 세상의 지식을 좇아 방황하던 아들을 위해 오랫동안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어머니의 기도와 하느님의 은총으로 회개하였고, 마침내 교회의 위대한 주교이자 학자가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인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며 바닷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어린아이가 모래밭에 작은 웅덩이를 파고, 조개껍데기로 바닷물을 퍼 담고 있었습니다. 성인이 물었습니다. “아이야, 무엇을 하고 있느냐?” 아이는 대답했습니다. “이 바닷물을 모두 이 웅덩이에 담으려고 합니다.” 성인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란다.” 그러자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이 작은 웅덩이에 바닷물을 모두 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어떻게 온 우주보다 크신 하느님의 신비를 작은 머릿속에 모두 담으려고 하십니까?” 성인은 그 말을 통해 하느님의 신비는 인간의 이성만으로 다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은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던 한 인간이 은총 안에서 참된 자신과 하느님을 발견해 가는 영적인 여정입니다. 그는 쾌락과 명예와 지식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얻을수록 마음은 더욱 허전해졌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잠시 마음을 채워 주었지만, 영혼의 깊은 갈증까지 채워 주지는 못했습니다. 성인은 마침내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를, 당신을 향하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저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 안식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로는 채울 수 없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는 오직 하느님께서만 채워 주실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에게 회개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고 지워 버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상처와 실패와 방황까지도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십자가의 신비를 이야기합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십자가는 실패입니다. 힘없이 붙잡혀 죽어 간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십자가는 하느님의 사랑이며, 하느님의 지혜이고, 우리를 구원하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처음에는 세상의 지혜와 화려한 말과 철학적인 논리를 찾았습니다. 그에게 십자가의 예수님은 너무 단순하고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회개한 뒤에는 십자가에서 참된 지혜를 발견하였습니다. 인간의 교만은 힘과 성공을 자랑하지만, 하느님의 지혜는 자신을 낮추고 내어주는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신국론’에서 말한 ‘하느님의 도성’과 ‘세속의 도성’도 결국 두 가지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세속의 도성은 하느님을 잊을 만큼 자신과 권력과 성공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도성은 자신을 잊을 만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어느 도성에 속해 있는지는 사는 장소나 겉으로 드러나는 신분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이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가장 사랑한다면 성당 안에 있어도 세속의 도성에 머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세상 한가운데에서 살아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준다면 하느님의 도성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다섯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했지만, 다른 다섯 처녀는 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신랑이 늦게 오자 모두 졸고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한밤중에 신랑이 온다는 외침이 들렸을 때,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만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졸았다는 사실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도 잠들었고, 어리석은 처녀들도 잠들었습니다. 차이는 실수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기름을 준비했느냐에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도 지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으며, 때로는 기도에 소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기름이 준비되어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깨어 있다는 것은 한숨도 자지 않고 긴장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오늘 해야 할 사랑을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화해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화해하고,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며, 감사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오늘 감사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성공과 즐거움은 잠시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지만 영원한 평화를 주지는 못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만이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이고, 우리 영혼을 밝히는 참된 빛입니다. 오늘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전구를 청하며 우리 마음의 등잔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믿음의 기름이 있는지, 희망의 기름이 있는지, 사랑의 기름이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늦었다고 낙심하지 말고, 오늘 다시 주님께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나 당신께 갑니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마태 25,1-44)
나 당신께 갑니다
당신께서
나에게
주신
등
나의 믿음으로
나의 희망으로
나의 사랑으로
나의 참됨으로
나의 착함으로
나의 고움으로
나의 품음으로
나의 나눔으로
나의 돌봄으로
나의 섬김으로
나의 돋움으로
나의 살림으로
나
환히
밝히고
설렘으로
나 당신께 갑니다
오늘의 성인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e)
신분 : 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지역 : 히포(Hippo)
활동연도 : 354-430년
같은이름 : 아오스딩, 아우구스띠노, 아우구스띠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또는 아우구스티노)는 이교도인 로마 관리인 부친 파트리키우스(Patricius)와 그리스도인인 모친 성녀 모니카(Monica, 8월 27일)의 아들로 354년 11월 13일 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 지방의 타가스테(Tagaste, 현 알제리 북쪽의 수크아라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타가스테와 인근 마다우라에서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는데, 370년에는 법률가가 될 꿈을 안고서 수사학을 연구하기 위하여 카르타고(Carthago)의 대학교에 들어갔다. 이 때 그의 나이는 17세였는데, 여기서 한 여인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여 그의 부친이 항상 소중히 여기던 아들 아데오다투스
(Adeodatus)를 낳았다.
그는 공부를 마치고 여러 지방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생활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는 점차적으로 철학에 흥미를 갖다가 존재 문제 특히 악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373년경 마니교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타가스테와 카르타고 등지에서 10여 년간 교사생활을 한 후 383년에 로마(Roma)로 가서 수사학교를 세웠으나, 학생들의 태도 때문에 크게 실망하다가 384년 가을부터 밀라노(Milano)의 수사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때 그는 신플라톤 철학과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 주교의 설교에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암브로시우스의 강의를 통해 성서를 문자적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은유적 또는 영적으로 해설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한편으로는 명예, 재산, 결혼 등의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며 살려는 소망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정원을 산보하다가 “집어서 읽어라”(Tolle, lege) 하고 반복해서 외치는 신비로운 소리를 듣고 성서를 들어 펼쳐 읽어 본 것이 사도 바오로(Paulus)의 로마서 13장 13절의 말씀이었다.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그래서 그는 386년 8월 교수직을 그만두고 그의 친구 성 알리피우스(Alypius, 8월 15일)와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387년 4월 13일 부활성야에 밀라노에서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지도로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와 일종의 수도원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다가, 391년에 자신의 소망과는 달리 사제로 서품되었고, 5년 후에는 히포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북 아프리카의 교구에서 그리스도교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주교 중의 한 사람으로 거의 35년을 봉사하였다. 그는 사목자의 권위를 행사하되 백성들의 복리와 행복을 위하여 사용하였고, 대성당의 성직자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으며, 엄격한 규율 아래에서 범사를 행했으며, 주일과 축일에는 꼭 강론을 하였고, 예비자 교리를 담당하였으며,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의 재정지원을 물색하는 등 사회정의를 위하여 주교직을 유용하게 활용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글을 썼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교구 신자들과 도나투스파(Donatism) 이단자들에게도 반박문을 써 보냈다. 특히 마니교(Manichaeism)와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를 반박하는 강연회에는 청중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외에도 삼위일체와 은총론에 관해서도 책을 썼는데, 그의 연구 대상은 매우 광범위하였다. 전해오는 저작으로는 113종의 책과 논문, 200여 통의 편지, 500회의 설교 등이 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는 자신의 개종 과정을 기록한 자서적적 저서인 "고백록"(Confessiones)과 호교론적 저서인 "신국론"(De ciavitate Dei)이 있다. 그는 흔히 '은총론의 박사'(Doctor Gratiae)라고 불린다.
그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교부이자 교회학자이며 영성가였다. 그는 서방 그리스도 교회 지성의 모델로서 가톨릭 신앙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는 반달족이 히포를 포위 공격하던 430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성 모세 (Moses)
활동년도 : 330-405년
신분 : 은수자
지역 : 에티오피아(Ethiopia)
같은 이름 : 모이세스
고대 에티오피아 태생인 성 모세 흑인(Moyses the Black)은 원래 신체상으로 매우 건장하고 또 깡패 기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이집트 사람의 종으로 있던 중에 약탈 행위를 하다가 쫓겨나면서부터 아예 강도단의 두목이 되었다. 그가 어떤 경로로 회개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스케티스(Scetis) 사막의 은수자들 틈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사제직에도 올랐는데 주교의 허락을 받아서 흰옷을 입었다고 한다. 이때 그 주교가 “이제까지 흑인이던 사람이 백인이 되었다”고 하자 그는 “겉만 그렇지, 속은 아직도 검은 줄을 하느님만은 아십니다.” 하며 대답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와디 나트룬(Wadi Natrun)으로도 부르는 스케티스에 있는 다이르-알-바라무스가 그의 묘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