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의 북한식당
연길시에는 조선족식당, 중국식당, 한국식당, 북한식당 등이 섞여 있다.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조선족식당과 중국식당 이지만 한국식당과 북한식당도 눈길을 끈다. 최근 연길에 많이 들어서고 있는 것은 위구르식 ‘촬집’. 뀀집 이라고 도 하는 이 식당은 서민들이 가장 즐겨 가는 곳 중의 하나로 양고기 꼬치구이 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격도 싸고 맛도 있다. 양고기 맛은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맛이 아니지만 양념장으로 양고기 냄새를 없애 먹을 만 하다. 대구에도 북부정류장 인근에 ‘신장반점’이라는 곳이 있다. 거기에는 위구르식 꼬치와 칭따오 피주(청도맥주)등을 파는데 연길보다 훨씬 비쌌다는 기억이 난다. 물론 정통 중국요리집도 있고 개고기집도 즐비하지만 남한 사람들의 눈에 확 띄는 건 역시 북한식당이다. 연길에 있는 북한식당은 3곳이다. 류경호텔, 해당화, 평양식당 등이 그것인데 류경호텔은 남한 사람들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는 곳 이기도 하다. 류경호텔의 평양냉면은 이 호텔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메뉴다. 메밀을 위주로 한 평양 물냉면은 전분을 위주로 만든 함흥식 비빔냉면보다 또 다른 시원한 맛이 있다. 연길의 대표적인 냉면은 서시장 옆 진달래식당의 냉면. 연변조선족들은 고향을 떠나 가장 먹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연길 진달래식당 냉면이라고 한다. 하여튼 진달래 식당도 하루종일 붐빈다. 대구의 강산면옥과 부산면옥에 길들여진 내 입맛은 연길냉면 보다 평양냉면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혼합한 듯한 연길냉면은 일단 쌉쌀하고 맵다는 느낌이 강하다. 육수는 경상도말로 ‘시그러블’ 정도로 시큼하다. 면도 평양냉면에 비해 질기고 색깔도 흑색에 가깝다. 평양냉면은 꿩 육수를 사용하는데 면의 색깔은 연길냉면 보다는 연하지만 그래도 대구의 냉면집 보다는 진한 색이다. 맛은 담백한 편인데 양념장이 독특하다. 하여튼 음식은 습관이질 않은가? 나에겐 역시 대구냉면이 가장 입에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류경호텔의 김치는 지금까지 연길에서 먹어 본 어떤 김치보다 맛있었다. 이곳 중국 음식과 조선족 음식은 시원한 맛이 없는데 이 김치는 그야말로 시원했다. 적당히 삭힌 배추에 아삭아삭한 김치. 고춧가루와 양념도 적당하다. 연변과기대의 남한 교수님 사모님들이 만들어 파는 김치보다 솔직히 더 맛있다. 이 밖에도 산천어찜, 가자미식혜, 찹쌀떡, 은어구이, 낙지무침(남한의 오징어. 또 이들은 오징어를 낙지라고 한다) 등 수 십 가지의 요리가 있다. 모두 맛깔스럽다. 산천어회와 연어회 등은 가장 비싼 축에 든다. 술도 여러 가지다. 중국술도 팔지만 들쭉술, 도토리술, 평양소주도 판다. 중국술에 비해 훨씬 비싸 연변의 대중 빠이주인 ‘왕팔’을 시키거나 ‘빙추완 피조우’로 대체하기도 한다. 중국식당과 남한식당보다 조금 비싼게 흠이지만 서비스와 분위기 값을 치면 비싼 것 만은 아니다. 연길에 있는 남한식당은 모두 40여개 정도. 북한식당이 3개 이고 보면 10배가 넘는다. 선화회관, 경복궁, 양반댁, 홍콩반점, 전주비빔밥, 작은 바람, 속초순대국 등은 중국인들 사이에도 꽤 인기가 있다. 특히 전주비빔밥은 연길에 2호점을 내고 지난해 용정까지 진출해 각광을 받고 있다. 곱돌 이라고도 하는 전주 돌솥비빔밥이 용정의 수십년 된 비빔밥집까지 파리를 날리게 하고 있다. 기름기 많고 느끼한 것을 좋아하던 그들의 입맛도 담백하고 얼큰한 걸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따라가고 있다. 양반댁은 한국식 소갈비와 삼겹살 요리로 명성이 자자하다. 만약 대구 따로국밥이 이곳에 진출하면 어떨까? 하는 재미난 생각도 해 본다. 하기사 지난해 요녕성 심양시 서탑가에 현풍할매곰탕도 상륙했던데...... 이곳 동북지역의 입맛도 한류를 따르고 있는 셈이다. 남한에 6개월 간 교환학생으로 간 경험이 있는 나의 한족 푸다오(개인교사)는 ‘더 이상 중국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나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
해당화는 북한 여성복무원 동무(?)들의 밴드공연으로 이름이 높다. 류경호텔도 저녁에 한차례 공연을 하지만 해당화보다는 초라하다. 해당화는 점심, 저녁 하루에 두 번씩 공연을 한다. 식사 중간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복무원들이 전자오르간과 기타와 드럼 등을 치며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 ‘반갑습니다’ ‘휘파람’ ‘다시 만나요’ ‘심장에 남는 사람’ 등은 이들의 고정 레퍼토리다. 가끔 ‘선구자’ ‘고향의 봄’ ‘아침이슬’ ‘홍도야 울지마라’ 등도 연주한다. 무대 앞의 남한 LG산 TV와 ‘금영’ 가요기기 앞에서 북한 여성복무원들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마치 대구 수성구의 한 가요주점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손님들이 앞에 나와 함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들 목소리도 나긋나긋하다. 평양 말투를 쓰며 애교도 곧잘 부린다. 가끔 손님들이 ‘북한’ 이라고 말하면 앞으로는 ‘조선’으로 불러 달라고 웃으며 말한다. 또 외래어를 아무 생각없이 쓰면 ‘듣기 좋은 우리말 놔두고 왜 남의 말을 사용하냐?’ 고 가벼운 핀잔을 주기도 한다. 맞다. 이들의 우리말 사랑은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점이다. 복무원들은 모두 20대 초반의 미인들이다. 듣기론 모두 사상과 출신성분이 우수한 평양의 대학출신 이란다. 3년씩 교환근무를 하는데 제각기 악기를 하나씩 다룰 줄 알고 노래와 춤도 일품이다. 가슴에는 명찰을 달고 있다. 공연 중에 손님의 손도 가끔 잡고 공연이 끝나면 손님 팔짱을 끼고 기념촬영도 기꺼이 해 준다. 류경호텔과 해당화, 평양식당은 서로가 경쟁체제다. 류경호텔에 가서 해당화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 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또 해당화에 가서 평양식당이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잘 가르쳐 주지도 않을 정도로 자기들 식당 홍보가 대단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노래가 천편일률적인 신파조에다 ‘위지동,친지동’(위대하신 지도자 동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하면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 때다. 그러나 이곳에선 남과 북이 따로 없다. 손님들도 대개 남한사람, 북한사람, 중국사람 등으로 섞여 있다. 북한사람들이 옆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도 많다. 그러나 공연을 할 때면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치며 흥겨워 한다.
중국 내 북한식당은 남.북간의 거리를 좁히고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는 작은 문화 공간이자 만남의 장소인 것이다.
사진설명: 연길의 북한식당인 해당화식당 복무원인 박현희 동무(?)가 '고향의 봄'을 부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