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에 지쳐 몸과 마음이 정상 작동을 하지 않는다. 2년 동안 맨땅에 헤딩해가며 만든 지점을 날로 먹으려 달려드는 무리들에게 뺏겼다. 억울함과 속상함에 몸도 많이 상했다. 결국은 회사를 옮기기로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라도 조금은 편하다. 그러던 차에 아내가 봉투 하나를 내밀며 좋아하는 여행이나 1박2일로 다녀오라고 권했다. 난…….그냥 행복할 뿐이고……. 금요일 저녁 난 들 뜬마음으로 배낭을 챙겼다.
04:30 기상
06:00 청량리 도착 지하 청량리역을 나오는데 비가 오는데 지하도 계단 입구에 서서 아침을 먹는 노점상 아주머니를 보았다. 불쌍해 보이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가슴 한편이 싸해지는 느낌이 몰려왔다. 표를 구입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보았다. 처음에는 바닥에서 뭘 줍는 걸로 생각했는데, 이 할머니는 허리를 전혀 펴지 못하고 계셨다. 집합기호의 “캡(∩)”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머리를 90°로도 들지 못하고 게셨다. 안타가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시간이 있어 광장을 나와 봤다. 출출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잔치 국수가 있는지 궁금해서 이다. 대합실에서 내려가는 계단참에 할머니 한분이 과자 몇 개를 놓고 장사를 하고 계셨다. 행색을 보아하니 노숙자 이었다. 예부터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를 못하다고 했는데…….어찌할 도리 없이 광장을 둘러본 후 다시 대합실로 들어왔다. 허기를 느끼고 대합실로 들어왔다. 개인적으로는 잔치국수를 엄청 좋아하지만 밖에 있는 포장마차는 이미 만원이라 대합실내 가락국수집으로……. 3,000원을 지불하고 국수쟁반을 받아들었는데 자리가 없었다. 알고 보니 불륜의 향기가 짙게 배어나는 중년의 두 남녀(나보다는 어려보이는…….)가 가방을 의자에 놓고 먹고 있었다. 그것도 자장밥 한 그릇을 시켜서 둘이 먹으면서 말이다. 가슴 저 밑에서는 정의 의 불길이 타오르면서 대성일갈“이보셔!!! 여기는 공중장소이니 서로에 대해 배려를 해야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상대편의 남자는 표피면적이 나의 1.5배는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말씀 드렸다 “저…….가방 좀 치워주실래요…….” 결국 국수는 무사히 먹었다. ㅋㅋㅋ 07:00 출발 1631호차 개찰을 하고 무궁화호에 오르니 내 자리 5호석은 창가 이었다. 혹시나 묘령의 예쁜 아가씨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잠깐의 설렘으로 끝나고 엄마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시는 분이 오셨다. 짐을 올려 드리고 자리에 않았다. 열차 출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졸음이 나를 가두어 버렸다. 하긴 사업 실패 후 13~14년 동안 하루에 4시간이상 자본적이 없다. 한 시간쯤 후 졸음이 나를 놓아준 뒤 살펴보니 할머니는 온데간데없다. 창밖을 보니 “지평” “석불”역을 지나고 있었다. 공기 목베개에 땀이 흥건하다. 요즘 왜 이리 땀이 많이 나는지……. 논과밭, 그리고 기찻길 옆의 집들…….사람들…….도랑……. 작은 상념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지난날의 실수들…….실패들…….그때는 왜 그랬는지……. 나의 어리석음이 얼굴을 괜스레 화끈거리게 한다.
“구둔” 역 지나 “매곡”역 쯤에 어떤 중년(나만큼 처먹은 것 같다)이 열차 내에서 “야! 내려” 하기에 쳐다보니 딸(20대 초 중반으로 보임)로 보이는 이에게 하는 말 이었다. 무식한 놈!!! 무식은 못 배워서 무식한 게 아니다. “배려”를 할 줄 몰라서 무식한 거다. 그 공간에 있는 모두에게 대한 배려, 자기 자신, 상대방 등등에 대한 배려 말이다. 그 무식이 황강 댐에서 물 쏟아지듯이 철철 흘러넘치는 인간은 “양동”역에서 내렸다. 잘 가라! 무식한 놈아……. “배려”에 대해서 더 생각 해 보았다. 술자리에서도 보면 일행의 말은 무시한 채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있다. 또는 일행끼리 너무 떠들어서 다른 테이블을 불쾌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모두 배려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 이다.
예전에 “비들기호” 혹은 “통일호”가 했던 역할을 이제는 “무궁화호”가 한다. 웬만한 역은 다 선다……. “판대역”은 간이역인가 보다. “배려” 이야기 한지 얼마도 지나지 않아 이제는 전화로 온기차안을 들쑤셔놓는 할아버지가 출현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목소리의 톤이 높지 않아 귀는 많이 아프지 않다. 그리고 벌초 하러 가는 길인가 보다. 조상을 위해 내가 참아야지…….ㅋㅋㅋ
“간현역” 이다. 옛날 한때 교회에 푹빠져 지내던 시절 청년회에서 여름 수양회로 자주 갔던 그 간현역이다. 감회가 웃기네…….ㅋㅋㅋ(새롭네. 라고 쓸 줄 알았지? ㅋㅋㅋ)
“동화역” 차가 저속 또는 곡선주로 주행 시 왜 그리 삐꺽거리는지 불안하기 까지 하다. 동화역에는 텃밭까지 있다. 참으로 시골스러운 풍경이다. 늙어서 이런 곳에 역장하면 안 될까? 재밌을 것 같다. 딸애들 시집보내고 아내와 둘이 오순도순…….
수시로 다니는 이동판매대가 나를 유혹한다. “맥주한잔 마셔?” 나는 도계에서 그곳의 막걸리를 순수한 입으로 먹고 싶어 참는다. 크지도 않게 속삭이듯 “맥주, 오징어 있어요” 하는 소리가 마치 어느 주점에서 곁에 앉았던 이름 모를 그녀가 “오빠. 맥주 한잔해” 하는 소리로 들린다.
09:00 이제 “원주역”이다 나는 아직도 3시간24분을 더 가야 한다. 상념에 사로 잡인 나의 곁으로 노가다 3명이 장난치듯이 내린다. 사업에 실패하고 전공, 미장데모도, 조적데모도, 곰빵까지 노가다 안해본게 거의 없다. 나중에는 인력시장에 잡부까지 나가봤지만…….별 소득이 없었다.
원주……. 예전에 치악산 다닐 적에 많이 왔던 곳이다. 20여 년 전에 12월겨울에 한번 혼자서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마침 눈이 엄청 오는 바람에 올라갈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등산을 감행했다. 오후2시 넘도록 길을 못 찾아서 헤매고 있는 도중에 어느 아저씨의 도움으로 겨우 하산을 한 적이 있다. 죽을 뻔 했지…….그날 한겨울에 폭설에 오후 4시만 넘으면 강원도의 산은 어두워져 길을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얼마 더 가니 곡선주로 가 나왔다. 앞과 꼬리가 서로 보이는 곡선주로에서 팔로만 기차를 붙잡고 발을 한껏 내미는 장난이 유행이었다. 그때의 기차는(비들기호, 무궁화호)은 승강장 문을 열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여름에는 냉방을 선풍기로 의존 하다 보니 통로에 나와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물론 담배도 피울 수 있었고……. 그날도 그 장난을 하는데 갑자기 발에 뭐가 부딪치는 것 이었다. 철로 가에 서있는 표지판이었다(기관사 들이 보는 표지판으로 생각난다). 난 황급히 기차 안으로 들어가서 발을 살펴보니 다행인지 피가 나는 곳은 없었지만 몰려오는 통증으로 결국 등산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날의 등산코스는 경춘선타고 강촌에서 내려서 삼악산 을 등반할 예정 이었다. 바깥의 풍경은 벼가 초록과 노랑이 섞여있다. 충청도는 거의 노랑으로 치닫는데 아마도 지역의 차이일듯 하다.
09:18 치악역에서 무궁화 2대가 서로 비껴갔다. 09:24 “신림역” 진짜부부로 보이는 등산객이 내렸다. 어느산을 가는거지? 09:38 “봉양역” 09:46 “제천역” 제천에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올라탔다. 한 그룹의 남학생 들이 비닐봉지에 쌀을 담아들고 탔다. 아!캠핑 가는구나…….좋겠다. 짜식들…….재미있는 추억 만들고 오니라……. 또한 그룹은 가족인 듯하다. 사위 장모 등등……. 자리를 다 잡은 후 사위 曰“여보! 저 앞에서 노래 한자리 할까?.. 부인 曰 “좋지…….” 객차안의 모든 사람들의 입 꼬리가 15°정도 올라갔다. 제천을 출발 후 얼마지 나지 않아 앞자리에 앉은 40대 초중반의 아주머니의 전화가 시작됐다. 태백에 오빠네 잔치에 가는 모양이다. 무슨 잔치 인지는 모르겠지만……. 올케를 시작으로 오빠를 거치고 언니로 정점을 찍고, 조카에게서 전화는 끝을 맺었다. 시끄럽긴 했지만 오빠 챙기고 올케 챙기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선반에는 보자기에 싸인 복숭아 박스가 보인다. 10:08 “쌍용역” 쌍용시멘트 공장이 있어 쌍용역 이라 했나? 온통 쌍용시멘트라 쓰인 화물열차뿐이다. 전에 승용차로 이곳을 지나간 적이 있다. 한번 와봤다고 전혀 낯설지는 않다. 10:25 “영월역” 기차로 지나가는 경치가 수려하다는 말 외에는 별로 쓸 말이 없다. 10:50 “예미” 11:09 “중산(민둥산)” 11:24 “사북역” 왜 이리 호텔은 많은가? 룸살롱, 술집…….경호회사도 있네……. 어울리지 않는 곳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박혀있는 느낌이다. 갑자기 햇빛마저 을씨년스러워 진다. 어서 출발 했으면……. 11:27 “고한역” 고한역을 지난 개울에는 왜 붉은빛 물이 드는가? 11:40 “태백” 잔치 가는 아주머니는 결국 모두 14~5통의 전화를 한 후에야 내렸다. 가족끼리 아끼고 소통하는 모습 때문에 나쁘지는 않았다. 소통! 참좋은 말인데 이 모 씨는 그게 그렇게 어려울까? 그러고 보니 추전역은 안서네??? 태백은 도시의 크기답게 객차안의 2/3가 내려가 버렸다. 11:58 “통리” 마주 오는 열차를 피하기 위해 잠시 정차……. 흥전에서 나한정 가지는 선로의 높이를 맞추는 스위치 백 구간이다. 기차가 약4~5분간 거꾸로 간다.
12:24 “도계” 오늘의 1차 목적지 도계에 도착했다. 대합실에서 부산 부전(동해 남부선)의 시간표를 확인해보니 13:55분 출발이다. 즉 점심 먹는 시간을 포함해서 도계를 둘러볼 시간이 1시간 반 정도밖에 없다. 도계는 너무 한적하다(다음에 또 온다면 장날에 맞춰서 오면 좋겠다) 어렵게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았다. 특산음식을 먹고 싶었으나 특히 도루묵 찜을 먹고 싶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소”자도 2만원인데 두 사람 이상은 먹어야 한다고 하며, 남기면 아깝다고 다른 것 먹으라고 한다. 서울 같으면 남기건 말건 해줄 텐데……. 우겨서 먹고 싶었으나, 시간이 많지 않아 이번에는 참기로 했다. 13:56 강릉행 기차와 부전행 기차가 동시에 플랫폼에 들어오게 시간표가 짜여 있나보다. 대합실에 약20여명이 있었는데, 30초 정도 먼저 들어온 강릉행 기차에 모두 올라타고 나 혼자만 부전행 하행선을 타나보다. 그리고 부전행 기차를 보니 객차는 달랑3칸……. 어쩐지 도계역 매표소 아가씨가 매점 이 없으니 먹을 것 을 사가지고 타라고 했다. 그 말을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 식당차가 없다는 소리로 알아들었다. 이동식 판매대는 다닐 줄 알았다. 없다. 전혀 사먹을 게 없다……. 7시간 반을 물 한 병으로 버텨야한다……. 이 열차도 나한정에서 “스위치 백”을 했다. 객차 안은 1/3가량 밖에 승객이 없다. 하루에 1번 밖에 없는 차 같은데……. 긴 시간동안(21:10 이 되어야 도착한다) 뭘 하나…….맘껏 자고, 맘껏 보고, 맘껏 써야 겠다. 목베개를 꺼내 공기를 불어넣어 무장(?)을 갖췄다. 이 차도 쇳소리는 마찬 가지다. 점심이후부터 조금씩 내리기 시작 한 비는 이제 제법 모양을 갖추고 있다. 기차는 산곡대기를 달리고 무지개는 저아래 골짜기에 걸렸다. 미쳐 사진기를 꺼낼 틈도 없이 지나갔다. 14:26 “통리” 비오는 옥수수밭길을 지나니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 생각난다.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이하 중략) 14:38 “철암” 16:05 “봉화” 몇 년 전 직원 중에 한사람이 상을 당했다. 봉화가 장지라서 그 일행(친 인척)이 다 내려왔다. 선산에 가서 선친을 장사지내고 내려오는 산길을 상주가 운전을 했단다. 그 상주는 이미 3일 밤낮을 피로에 지쳐 있을 터 인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산길을 운전해 내려오다가 잠깐의 졸음으로 차는 벼랑 아래로 곤두박질 쳤고, 일행 중 3명이 그 자리에서 저세상으로 가고 나머지 2명은 몇 개월 병원신세를 져야햇던 사고로 이어졌다. 그래서 재차 문상을 와야 했던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이쪽의 벼는 강원도 보다 조금 더 누렇다. 16:20 “영주” 영주에는 희방계곡과 희방사가 유명하다. 20여 년 전 아주 키 작은 여자애(? 25~27세정도)가 있었다. 귀여운 얼굴에 귀여운 몸매에…….아무튼 등등…….그 친구 고향이 영주였다. 몇 년 후 그 친구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지만, 그때는 사업이 거푸 망하고 난 뒤라 시쳇말로 먹고 죽을 돈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 도 그 친구에게는 미안하다. 그 후에 어떤 이가 나에게 돈10만원 빌릴 데도 없냐고 빈정거리기에 술김에 ×나게 패버렸다. 빌릴 데가 더 이상 없었는데다가 화풀이 상대가 없었는데 그가 재수 없이 걸린 거지 뭐……. 경상도나 강원도, 전라도나 충청도…….모두를 가봐도 시골의 한적함과 여유로움은 마찬가지이다. 객차안의 말씨는 어느덧 강원도에서 경상도로 넘어가고 있었다. 17:00 “안동” 간고등어, 안동소주로 유명한곳…….남들은 양반의 고장이라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별로 동의 하지는 못하고, 그냥 안동일 뿐이다(더 이상의 이야기는 안동김씨와 조선의 역사에 대해 장황해 지므로 여기서는 피하겠다) 그 옛날에 한 20여 년 전 즘 이었던 것 같다. 사투리로 “힝아, 힝아”하면서 나를 따르는 얘가 있었다. 나보다 4~5년 아래였으니 지금은 40대 중반이 되었을 그 아이……. 참 괜찮은 애이긴 한데, 이아이가 또 “억삼이” 인기라.(억삼이 - 억마디 말하면 세 마디만 진실이라는, 한마디로 입만 열면 구라라는 얘기지) 자기네 집 옥상에 헬리콥터가 내리고 대문에서 현관까지 10분을 넘겨 걸어야 한다는 둥…….그 당시에서는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를 쏟아내는 통에 결국은 회사 내에서 요즘말로 왕따를 당하다가 회사를 그만 두었지. 지금은 뭐하나……. 낮술 얼큰한 아저씨의 톤이 점점 올라가고, 가금가다 울어주는 아기들의 센스, 아주머니들의 목소리도 같이 커지고…….이제야 객차 같네…….근데 시끄럽다. 17:25 “의성” 마늘로 유명한……. 개인적인 추억은 없다. 의성마늘햄 좋아 하는 것 말고는……. 18:17 “영천” 슬슬 배고프고 지루해 지기 시작 했다. 사람이 번잡스럽지 않고 조용하고 바닷가가 가까운 기차역을 찾다가 “좌천”이란곳을 발견했다. 차장에게 물어보니 정류장 이란다. 좌천 다음은 “기장” “해운대”이기는 하지만 왠지 복잡할 것 같고, 지금의 내기분도 좌천된 기분이니 좌천에서 내리기로 했다. 이것이 혼자 다니는 여행의 묘미이기도 한 것 아닌가. 내가 혼자 결정하고, 혼자 책임지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ㅋㅋㅋ
“좌천” 좌천역에서 하자했다. 역 광장으로 나가니 이게 뭔일인지 너무도 조용한고 한적했다. 담배를 사면서 숙박업소를 물으니 좌천에는 숙박업소가 없단다. 젠장……. 난 완전히 좌천에서 左遷됬다. 택시를 타고 기장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기장에서 돼지국밥집을 찾아 들어갔으나 전 에와 달리 이집은 왜 이리 맵고 맛이 없는지, 난 반그릇만 머고 허기를 달랜 후 숙소에 가기 전에 소매점에서 소주2병과 안주를 사들고 숙소에서 여행 첫날을 마감했다……. 시작은 원대 했으나 끝은 허접한 하루 이었다…….
*** 남자놈들하고 아새끼(?)들은 쉴틈이 나면 안됩답니다... 전에 혼자 다녀온 기차여행이 오늘 몹시도 그리워서 .....2010. 10. 26 |
출처: 푸른빛 노을 원문보기 글쓴이: 푸른빛 노을
첫댓글 모셔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