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쉬움
일본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한가지 아쉬움이 있었다면 그건 다름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옛날에 일본 각처에 뿌려놓은 유적들을
제대로 찾아보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고대의
흔적을 찾아서 탐방 할 계획은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다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잘 몰랐던 탓으로
현장 인근을 지나가면서도 들려 볼 생각조차 못 해보고,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 무척 안타깝고 아쉽다.

우리는 도쿄에서 순환선을 타고 우에노, 이케부크로, 신주쿠, 긴자 일대를 누볐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케브크로나 신주쿠에서 세이브선 전철을 타고 1시간쯤 가면 있다는 고마(高麗)역을 찾아보지 못했다.
그 인근의 고마 신사는 일본의 사이타마 현 히다카 시에 있다. 이 신사는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고마군을 개척한 고약광 (왕약광,
고마노고키시(高麗王) 쟛코(若光))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668년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 공격에 의해 멸망한 고구려를 벗어나 일본으로 망명한 고마노 고키시쟛코는 716년 일본 도처에 흩어져 있던 고구려인 1799명을 무사시노쿠니에 이주시켜 개척하였다.
730년 고마노 고키시쟛코가 죽은 후, 고구려인들은 그를 고마묘진(高麗明神)으로서 모시기 위해 고마 신사를 세웠다.
여기에는 고마신사, 고마산, 쇼텡인
쇼라쿠지가 있다고 한다. 고마왕과 같이 일본으로 건너온 지엔소 쇼라쿠가 고마왕 사후에 고마왕의 성불을
위해 751년 건립한 절이다. 여기에 못 가본 것도 아쉽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우에노(上野)공원에는
왕인(王仁)박사의 비석이
있다는데, 우리는 우에노 공원에 갔음에도 이를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우리는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가시스미요시 구에 있다는 구다라 역(百済駅)에도 못 가보았다. 구다라(百濟)역은 현재 화물만 취급하는 간이역이긴 하지만 일본에서 만나게
되는 '百濟'라는 글자는 이 땅에 정착했던 우리 선조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오사카 국철로
나라 쪽으로 갈 때 분명 덴노지(天王寺)와 히라노(平野)역을 지나갔음에도 이를 모르고 지나쳤던 것이다. 구다라역은 간사이선상에 있는
이 두 역 사이에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옆에 도부시조마에 역이 신설되고, 구다라역은 이름조차 사라져가고 있다.
일본인들이 백제(百濟)라고 써놓고 ‘구다라’라고 읽는 것은 백제는 그들에게는 ‘큰나라’ 였기 때문이다. 한국어 ‘큰
나라’가 전와(轉訛)해서 ‘구다라’가 된 것이다.
한국 외대 홍윤기(洪潤基)교수는 교토대 사학과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명예교수로부터
“구다라라는 호칭은 백제의 고어(古語)로 ‘큰 나라’라고 하는 데서 연유된 것”이라는 말을 직접 들었다고 한다.
일본인들 사이에는 ‘구다라나이’라는 말도 통용 되었는데, 그 말은 ‘이것은 백제 물건이 아니다’ 라는 말이고, ‘백제 것이 아니면 시시해’ 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큰 나라’ 백제의 흔적은 일본 제2의 대도시인 오사카에 여기저기 널려 있다. 철도역인 ‘백제역’을 비롯해서 시내버스 정류장 ‘백제’도 있다.
오사카시의 공립학교인 남 백제초등학교(미나미구다라 소학교)는 1894년부터 남 백제라는 명칭을 쓰고 있고, 백제교라는 교량도 오사카에는 2곳이나 된다고 한다.
역사의 현장을 지나가면서도
모른 체 외면해 버렸으니 어찌 아쉽지 않겠는가? 우리는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다.
재일교포인 김달수작가가
그의 저서 『일본열도에 흐르는 한국 혼』에서 지적했듯이 우리 한국인은 이미 기원전 3세기 일본의 야요이
시대부터 건너가기 시작하였고, 이들이 일본 땅으로 건너간 것은 새로운 천지를 찾는 한국인의 이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구라파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그 곳으로 이주하여 오늘날의 미국을 건설한 것과 비견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의 문화유적이란 바로 우리의 고대문화 그 자체였다. 그리고 오늘날 일본인의 조상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영국에서 바다를 건너 신대륙으로 들어가 미국을 건설한 사람들을 ‘이민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직 미국은 건설되기 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미국이 독립한 이후에는 그들은 미국인이라 부른다. 최초 미국을 건설한 사람들은 비록 영국에서 왔더라도
영국인이 아니고 미국인으로 기록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인의 조상이다. 그리고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미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 이후에 미국 땅을 밟은 사람들은 이민이다.
우리와 일본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고대에
왜 나라로 들어간 한국인들은 국호를 일본이라 정한 후부터는 원래 한국인이었다 하더라도 일본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일본인들이 고대인을 가리켜 한국으로부터의 도래인이니 어쩌니 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들은 도래인이라고 말할
때 자신들의 조상과는 별도의 사람들이 도래해 온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과 구별하는 것이다. 그들이 들어와서 우수한 문화를 전수 해 주었을지는 몰라도 그들이 바로 자신들의 조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자신들을 도래인의
후손이라 하지 않는 것은 바로 한국과의 관계를 부정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조상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일본은 이런 역사를 무시하다 보니 자체의 역사가 없다. 그러다 보니 왜인의 기원에는 고고학, DNA 형질, 언어학 등이 동원된다. 일본인은 형질인류학, 고고학 등 접근방식자체가 다르다.

일본의 유일한 역사서인
일본서기나 고사기에는 왕조의 설립에 백제와 가야의 관계사가 집요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를 회피하기
위해 고대사를 언급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용납되지 않고 있다.
일부 우익 재야단체 말고는 일본서기로 일본 고대사를 연구하는 착실한 학자도 없다고 한다.
고대사 말고도 그들의
최고의 시가 집으로 치는 만요슈(만엽집,萬葉集)는 한자로 쓰였지만
그것은 중국어가 아니라 고대 우리나라에서 한자음을 차용한 이두문자이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해독을 못하고 있다.
이두문자도 한국에서
전래 되었다. 그리고 이두나 향찰은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각각 발전했기 때문에 많이 달라졌다. 우리나라 고대어는 우리나라와 일본에 각각 남아 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우리말로 해석을 해야 하는데, 자기네들 이두나 중국어로 해독을 하려니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일본은 한반도에 관련되기
싫어하기 때문에 일본민족 형성을 말할 때는 역사서보다는 야요이니 죠몬인 같은 근대식 조어를
들먹이고 있을 뿐이다. 사실 야요이 토기는 죠몬 토기를 대체시킨 한반도의 무문토기이지만 왜인들은 이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일본인들 스스로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일본어 고유어휘 대부분은 베트남 주변의 남방국가 어휘와 높은 일치율을 보인다는
설도 있다. 야요이시대 인골로 밝혀진 왜인의 고향은 중국의 장강(長江)유역이라며 장강유역에서
논(畓)재배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한족에게 멸망 당해
일부는 남쪽으로 피난하여 베트남에 도망쳐 들어가고 나머지 일부는 북쪽으로 피난하여 일본에 도망쳐 들어간 것이 야요이인(彌生人)이었다고 주장하는 설도 있었다. 이른바
남방기원 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 하던지 우리와의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일본인들의 욕망 때문에 만들어 진 픽션일 뿐이다. 물론 일부 중국에서 건너 온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건너 간 사람들을 말할 때도 늘 ‘대륙에서’ 또는
‘한반도를 거쳐’라는 식으로 완곡하게 표현한다.)
일본인들로 하여금 도래인이 바로 자기 조상임을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족쇄는 바로 그들의 조작된 역사와 교육이다.
소위 그들의 황국사관은
역사를 날조했고, 일본서기는 사실을 왜곡했고, 일본의 학교에서는
임나일본부설 같은 거짓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우고 성장한 일본인들은 도래인 조상을 인정하지 않고, 한국을 경멸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들은 새삼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찬 역사를 바로 고칠 수도 없다. 자기 조상을
부끄러워하고 조상의 뿌리를 인정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우리도 그들과 한 종족이라는 게 끔찍스럽다. 우리를 싫어하는 그들과 굳이 한 뿌리에서 갈라졌다는 사실을 밝힌다 해도 우리에게 달가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다만, 역사와 진실이 무엇이냐 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