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자 자유게시판에 해밀 방장님의 공지가 떴다.
10월 15일 불란서 Toulouse의 Halle aux Grains에서 있었던 브람스 <독일(어) 레퀴엠> 공연을
(우리 시각) 11월 7일 새벽 5시부터 불란서 모 라디오에서 풀 재방한다는 공지다.
‘미디어 등장 소프님을 놓친다면 팬이라 할 수 없지.’
눈까풀에 성냥개비를 꼽고서라도 본방 사수!
레퀴엠.
레퀴엠이라면 재작년 외숙모가 돌아가셨을 때 근조 모드로 들었던 모차르트 <레퀴엠>이 내 유일무이한 목록이었는데... 울 소프님 덕분에 두 번째 레퀴엠을 접하게 된 셈이다.
날밤 까기야 워낙 이골이 난 터, 이런 저런 돈 안 되는 작업을 하다가 당일 03시쯤에야 브람스 레퀴엠 공부를 시작해본다. 막상 예습을 하려니 시간이 부족함을 절감한다. 고약한 버릇이다. 소싯적 벼락치기 공부 이후 오래된 습관으로 자리 잡은 ‘똥줄’을 즐기는 탓에 예습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먼저 포탈에서 ‘브람스 독일 레퀴엠’을 키워드로 검색해본다.
올해 5월 28일(토) 롯데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서울 모테트합창단 정기연주회 공연과 올해 6월 23일(목) 부천시민회관에서 있었던 부천시립합창단 공연에 대한 후기가 올라와 있다.
올해 공연만 두 번?
유명한 곡인가? 몇 개를 클릭해본다. 후기를 읽다보니 유명한 분위기가 팍팍 느껴진다.
그렇구나! 브람스 독일레퀴엠.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브람스를 빼고 ‘독일 레퀴엠’으로 검색해보니 좀 더 명확한 내용들이 나온다.
「한국어사전」엔
독일레퀴엠 : 독일의 작곡가 브람스의 작품 가운데 작품 번호 45번의 곡. 총 7곡으로 1868년에 완성되었으며, 전곡 초연은 1869년 2월 18일에 이루어졌다. 가톨릭 교회에서 부르기 위한 곡이 아닌 음악회용으로 작곡된 것이고, 형식은 일반적인 레퀴엠의 양식을 따랐다. 「독일어」 Ein Deutsches Requiem.이라 나와 있고,
「클래식백과」엔
캡처 내용처럼 보다 자세한 내용이 언급된다. (나만 몰랐지) 클래식 바닥에선 집고 넘어가야 할 뜨르르한 작품이었던 모양이다.
예습 2시간은 훌쩍 지나고 어느새 새벽 5시.
뚝뚝 부러지는 독일어 해설 뒤 05시 02분부터 레퀴엠이 흘러나온다.
(예습에 의하면) 소프님이 등판하시게 될 5곡까지는 대략 40분이 남은 터, 긴장감 없이 귀만 열어 감상하며, 손가락과 눈은 여전히 <독일 레퀴엠>의 정체 파악에 집중한다. 소프님이 등장하실 5곡을 중심으로.
예습한 5곡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제5곡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Ihr habt nun Traurigkeit)
지금 너희가 근심에 싸여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그 자식을 위로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는 것이니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
G장조 4/4박의 느린(Langsam) 곡.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과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다’라는 가사는 요한복음과 이사야서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소프라노 독창 뒤 합창이 이어진다.
열공 도중에 들리는 귀에 익은 음성.
헉~ 울 소프님이다. 모니터 시계를 보니 5시 44분. 소프님이 등장했으면 예습은 끝났다. 이제부턴 열공을 멈추고 긴장 모드로 돌입해야 한다. 그런데, 어라? 간간이 기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잘못 들었나? 설마 소프님은 아니겠지. 볼륨을 높여본다. 다행이 잘못 들은 모양이다. 하지만 기침 같은 소리에 신경이 곤두선 사이 소프님이 금방 실종됐다. 시계를 보니 05:51.
“브람스 아제, 이게 뭐야. 7곡 전체가 1시간하고도 반인데... 5곡의 소프라노 분량이 겨우 5분 내외야?”
앙꼬 없는 찐빵은 슬픈 법.
실망감에 나머지 6&7곡 감상은 뒷전이 되어버렸고, 5곡 소프라노 분량 조사에 돌입한다.
제일 짧은 4곡(5분)에 이어 5곡이 두 번째로 짧다. 겨우 8분 분량이다.
6시 24분.
끝났다. 밤잠 설쳐가며 고대했던 만남이 겨우 7-8분 만에 끝나버렸다. 그것도 합창을 빼면 고작 5분 정도만 온전히 소프님과 만날 수 있었다. 애초 생각대로라면
“소프라노 선혜 임 팬으로 접속하게 되었다. 연주를 들려주어 대단히 고맙다.”
불란서 라디오에 간단한 메일이라도 보낼 예정이었는데, 김이 샜다.
하긴 방송사가 무슨 잘못이겠는가. 야박한 브람스 아제를 탓해야지.
방송이 끝나고 확인한 단톡방엔
뮤직홀릭/해밀방장/봉섭/백설공주/박캡틴 님의 감상 메시지가 올라왔다. 특히 해밀방장은 소프님의 성함을 ‘순해 임’으로 발음한 것에 대해 분개하는 중이다. 하긴 울 소프님이 무쟈게 선하긴 해도 마냥 순둥이는 아니시지. ㅋㅋ
어쨌거나...
새벽에 만난 브람스 <독일 레퀴엠>
남겨진 자들을 위로한다는 브람스 <독일 레퀴엠>
똥줄 예습을 겸한 감상의 와중에도 뇌리 한쪽 10월 29일 참사를 지울 수 없던 바...
<독일 레퀴엠>이 남겨진 유족들에게도 들렸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새벽을 닫아본다.
첫댓글 우리나라 방송이 아닌 먼~~나라서 일부러 틀어준 것처럼 숙연~해지는 아침이었어요~
근데.
백과에는 시대:낭만/ 분류: 낭만주의.... 아이디 낭만 붙으신 분이 브람스 레퀴엠은 알고 계셨어야 하는거 아님유??🤣
쏴리~
제 낭만이 허점 투성이라. ^^
@낭만배달부 실은 저도 첨 들었어요~ㅋㅋ
무겁지 않은 아름다운 레퀴엠이던데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11.07 09:58
해밀 방장님은 자상도 하셔라.
본문 중 '뚝뚝 부러지는 독일어 해설'에 대해
작성자만 볼 수 있는 댓글로 '술에 술 탄 듯한 불어 해설'이었다고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러게여. 불란서 방송에서 독일어 해설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요. ㅋㅋ
작품 감상 중 딴 짓을 하면 이렇게 사단이 난다는 교훈을 위해
해당 부분을 수정하지 않고 적색 처리 후 그냥 남겨둡니다.
방장님의 친절하고 자상한 지적질(?)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