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證言) - [49] 지생련 (池生蓮) - 하늘 섬기며 이 길 따르리 3. 뜻을 위해 제물 된 이화여대 퇴학 사건 - 1 당시 사회적으로나 우리 교회 섭리사적으로 가장 충격적이고도 이슈화됐던 내용은 이대학생 퇴학 사건이었다. 많은 이화여대생들이 교회에 와서 원리 말씀을 들은 후 학내는 술렁였고 그 말씀은 급속도로 전파됐다. 게다가 교수님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으며 차기 총장으로 물망에 오를 만큼 유망하신 김영운 선생마저 원리 말씀을 접하고 그것을 증거하니 수많은 학생들이 동요되는 것은 마치 큰 물줄기에 고기 떼가 따라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내가 다니고 있던 이대 법정대학 이영석 학장은 나를 비롯해 원리 말씀에 심취해 있던 친구들에게 “통일교회 신앙은 접어두고 어지간하면 졸업하라.”라고 권유하며 3일의 시간을 줬다. 대학 당국 역시 본보기로 전체를 위해서 소수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때 통일교 신앙을 하던 우리들에게 통일교와 이화여대 중 양자택일할 것을 요구했다. 오직 뜻만을 위해 살겠노라고 다짐한 우리들은 결국 1955년 5월 12일 퇴학을 맞았다.
원리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교회와 인연 된 지 4개월 만의 일이었다. 7월 20일까지 앞으로 두 달만 지나면 졸업이었던 나로서는 학교의 의도적이며 몰지각한 종교 핍박에 울분이 치솟았다. 하지만 이미 몽시를 통해 참아버님에 대한 나의 믿음은 너무도 굳건했고 주위 사람들도 기도나 꿈을 통해 참아버님에 관한 많은 계시를 받았다. 만약 그때 우리가 학교와 주위의 회유로 교회를 잠시 중단하고 학업을 다 마친 후 다시 교회를 다녔다면 어떻게 하늘이 우리를 기억해 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런 우리가 어떻게 하늘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보잘것없는 우리였고 나의 모습이었지만, 결국 하늘이 이 모든 내용을 아시는 입장에서 우리가 이 원리 말씀을 지켜나가고 참아버님을 사수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뜻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이 쓴잔을 모면하기 위해 통일교회를 사교로 우리 스스로가 인정하고 절대 진리인 원리를 원리가 아니라고 부인한다면 훗날 역사 앞에 그리고 하늘 앞에 어떻게 떳떳하게 나설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참아버님께서 2천 년 전 예수님처럼 죽음으로 치닫는 핍박과 시련으로 인해 이 세상에서 사라지시게 된다면 역사는 더 비참하고 처참한 자리로 떨어질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우리 하나 희생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참아버님을 사수해야 한다는 각오 속에서 퇴학을 당했다. 전통적인 감리교 신앙을 배경으로 한 이화여대 측에서는 우리들에게 통일교회 신앙은 감리교 교리에 위배되므로 퇴학을 통고한다는 통고서를 보냈다. 그때 퇴학을 통고 받은 학생은 15명이었는데 최종 퇴학을 당한 학생은 나를 비롯해 신미식, 사길자, 김정은, 서명진, 김경식, 임성희, 정대화, 박성규, 최순화, 김숙자, 박영숙, 이계순, 강정원 등 14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