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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4:20-30절) 새 사람을 입자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과거의 모든 실패와 수치스러운 일 즉 부끄러웠던 일들을 모두 다 청산하고, 새 출발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이와 반대어는 *사람을 망쳤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술에 중독되거나, 도박과 마약으로 인해 사람이 못쓰게 되었을 때,*저 사람은 완전히 망쳤다* 혹은 *페인이 되었다*는 말을 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나빠지거나, 새 사람이 되지도 않고, 평범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평범하고, 무의미한 삶이라는 것은 사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를 들어서 음식이나 어떤 물건들은 가만히 두면, 점점 부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패하지 않게 하려면, 자꾸만 신선하게 해야 하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어서 새롭게 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능력은 사람을 새롭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를 향하여 단순히 *새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만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는 외모나 행실까지도 완전한 새 사람이 되어서 말이나 행실의 옷을 입으라는 뜻입니다.
새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들이 쓰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쉬운 방법이 비싸고, 멋진 옷 입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말할까? *저 사람은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할 것입니다.
즉 새 사람이 된 것은 아닌데, 잠시 새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멋진 새 옷 입는 것은 잠시 새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새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비해 요즘 사람들은 새 사람이 되기 위해 살을 빼거나, 성형수술을 합니다. 사람의 외모가 달라지면, 새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확실히 외모의 변화는 그 사람의 자신감에도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도 중요한 변화를 주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비만인 사람이 살이 빠져 날씬하게 되었거나, 못생겼던 사람이 아주 멋지게 변했을 경우, 자기 자신도 상당히 자신감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도 함부로 그를 대하지 못하고, 조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입니다.
이것이 그 본인에게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외적변화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외국 가수들 중, 가장 심하게 성형수술 한 사람은 고(古) 마이클 잭슨일 것입니다. 그는 전에 평범한 흑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성형수술을 해서 피부색은 흰색으로 바꾸고, 입술도 앓게 만들고, 눈도 수술하고, 코도 수술해서 완전히 백인 여성 같은 얼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햇빛에 노출되면, 얼굴이 변형되어 버리기 때문에 언제나 우산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심한 것은 정신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는 아동 성추행 혐의로 고소되어서 가진 재산도 모두 벌금으로 지불되어 2천억 원 빚진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새 사람이 되려면, 정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신 치료라는 것이 마음에 병이 들어서 감정이나 생각이 정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부분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 주는 것이지, 심령이 새롭게 되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①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라는 것과
②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속사람뿐만이 아니라, 겉 사람까지도 완전히 멋진 새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이런 멋진 새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Ⅰ.말씀이 만드는 새 사람
우리가 새 사람이 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셨다는데 있습니다. 전에는 새 사람이 된다고 할 때, 두 가지를 들 수 있었습니다.
①노예로 있던 사람이 노예에서 풀려나는 것입니다.
즉 노예가 매인 노예에서 풀려나는 것은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노예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완전히 주인의 소유이므로 주인의 뜻대로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노예(종)를 아예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돈을 주고, 자유를 사든지, 주인이 노예에서 풀어 줄 경우, 노예 팔찌나 목걸이가 벗어지면서 완전히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이것이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죄수가 감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감옥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단절된 또 다른 세상입니다. 즉 감옥안에는 인격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그가 지은 죄를 가지고 대합니다.
예를 들어서 *너는 강간범* 혹은 *살인자* 혹은 *사기꾼*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감옥안에서는 누구나 자유와 인격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죗값을 다 치르고, 밖으로 나오면, 그때서야 새사람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위대한 축복을 받게 된 것은 우리 주 예수님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이 축복이 오게 된 것은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을 통해서 오게 됩니다.
4:21-24절)진리가 예수 안에...그에게서 듣고...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아...거룩함으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진리를 듣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 사면장(죄를 면하는 문서)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절대로 나올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진리를 듣는 순간, 감옥문이 열리고, 우리의 손과 발을 잡아매고 있던 쇠사슬은 모두 다 풀려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8:32절)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진리를 알지니*라는 말씀은 우리가 가만히 있는데도 하나님의 진리를 알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진리를 꼭 들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 갓난아기같이 귀를 기울여야 하고, 또 그것을 갓난아기같이 내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듣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사탄의 세력이 어느 정도까지 물러갔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자기 마음이 감옥안에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통하여 사탄의 세력은 이미 완패되었고, 완전히 물러갔기 때문에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자유가 주어졌고, 새 삶이 주어진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21절)...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자유가 즉 새로운 삶이 주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외모까지 완전히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사람 즉 겉옷을 입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은 노예에서 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에 노예로 있을 때, 입던 옷을 아직 입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이제는 노예가 아니기 때문에 이전의 전자 팔찌나 목걸이나 옷을 벗어 버리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감옥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죄수의 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죄수 때, 하던 방식대로 줄을 맞추어 구호를 외치면서 화장실에 간다면, 주위 사람들이 *이제는 그런 것은 다 벗어 버리고 새로운 행동을 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삶을 얻었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다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듣고, 배우는 것은 아름다운 새 사람을 입는데, 가장 중요한 비결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마치 하나님의 진리로 성형수술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흉측한 부분을 잘라내고, 부족한 부분은 덧붙여서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모습)을 되찾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엄청난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너무나도 망가진 모습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망가진 부분들을 모두 다 고쳐야 합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두 가진데 ①듣는 것과 ②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듣는 것이란? 설교 말씀을 듣고, 은혜가 우리 마음속에 충만히 채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에너지는 은혜가 충만한데서 나옵니다. 만약 은혜가 충만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코를 높이고, 턱을 깎는다 해도 멋진 모양이 나오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충만한 은혜를 받으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의 윤곽이 잡힙니다. 그 외에도 구체적인 가르침을 받고, 자신의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적용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도 처음에는 대충 중요한 윤곽(기본 구도)만 잡고 나중에 상세한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내 속에 흘러 들어오는 것이요, 내 삶에 새로운 틀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Ⅱ.벗어야 할 것과 입어야 할 것
22절)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어떤 사람이 감옥에 오래 갇혀 있다가 죄수의 신분을 벗고, 나오게 되었을 때, 그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옥내에서 입었던 죄수의 옷을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새 옷을 입어야 사회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또 죄의 노예의 신분이었던 사람이 노예의 신을 벗고, 자유를 얻게 되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노예의 옷을 벗어버리는 것입니 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벗어버려야 할 것과 새로 입어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벗어 버려야 할 것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불신자들의 헌옷을 벗고, 새 옷을 입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불신자가 입어야 할 헌 옷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입니다.
여기서 옛 옷의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①유혹의 욕심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유혹의 욕심*이란? 너무나 달콤하고, 매력적인 것입니다. 이것보다 멋지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막상 죄를 짓고 나면, 별것도 아닌데, 엄청난 후유증과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고, 중독성까지 있어, 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항상 이 욕망의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죄의 유혹을 받습니다. 즉 죄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완전히 죄에 빠지지 않고, 조금만 죄를 맛보려고 했는데...*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죄의 달콤한 맛을 보다가 흠뻑 빠져서 엄청난 양심의 고통과 죄책감으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또 물질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엄청난 손해를 봅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또 죄가 그리워져서 직접 죄를 찾아가게 됩니다.
②썩어가는 구습(舊習)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썩은 냄새가 나는 고약한 것*입니다. 옛 사람의 삶은 썩은 냄새가 납니다. 이 세상에 죄를 씻을 수 있는 물이 없습니다. 언제나 죄를 신문지같은 것으로 덮거나, 가리기 때문에 썩는 냄새가 진동합니다.
③어제나 구습(舊習)을 따릅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부모나 선배가 물려준 것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어떤 경우는 그것도 모자라서 더욱 발전시킵니다. 그래서 점점 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요, 자기도 그렇게 당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버지가 술을 퍼마시고, 어머니를 구타하는 것을 보면서 자녀는 그것이 너무 싫어하면서도 자기도 그런 식으로 본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보고, 배운 것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는 모두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의 옷을 벗어 버릴 수 있을까? 사실 생활방식이 인격 속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옷 벗듯이 그렇게 쉽게 훌렁 벗을 순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옛 가치관과 생활방식은 절대로 고통 없이는 벗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비밀을 체계적이고, 꾸준하게 만들어 가듯, 우리 몸에 한번 붙은 죄의 기름은 쉽게 빠져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꾸준하게 제거시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비결은 항상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져 합니다. 딤전4:5절)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23절)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여기서 *심령이 새롭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그냥 내버려 두면, 항상 부패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생선과 육류를 그냥 두면, 언제나 상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생선과 육류가 부패하면, 어떻게 될까? 냄새가 고약하게 나고, 벌레가 생기면, 전혀 쓸모없게 되어 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타락한 사람에게 *맛이 갔다*고 말합니다. 이미 그 사람에게서 신선미가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부패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말씀과 성령으로 마음을 새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더럽고 냄새나는 마음에 너무 고민하거나,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냄새나는 부분을 고민하지만,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해도 이 세상 죄에 접촉하거나, 아니면 가만히 내버려 두면, 썩은 냄새가 고약하게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을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비우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로 고백하면 비워집니다.
요일1:8-10절)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죄 짓고 참으면 안 됩니다. 가장 미련한 사람이 상한 음식을 먹고 배가 아픈데도 꾹 참습니다. 그러면 음식 독(毒)이 온 몸에 퍼지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상한 음식을 잘못 먹었을 경우, 토(吐)하고 비우면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말씀으로 빈 마음을 채우면 됩니다. 우리는 옛 옷을 벗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벌거벗고 있으면, 마귀는 다시 옛 옷을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른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어떤 새 옷을 입어야 합니까? 24절)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새 옷은 의(義)와 진리(眞理)와 거룩함입니다. 여기서 의(義)란 하나님 앞에서 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자격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은혜가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으로 우리의 벌거벗은 육체를 가려야 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준 것은 화려한 외모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性品)입니다.
호2:19-20절)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가를 드는데, 그 지참금이 무엇일까? 은(銀)이나 금(金)이나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性品)입니다.
보통 남자와 여자가 약혼할 때, 모든 것을 다 주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반지를 하나 줄 것입니다. 그 반지 안에 모든 마음이 다 들어 있고, 모든 돈이 다 들어 있고, 모든 미래가 다 들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가 된 증거는 열심이나,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는 성품(性品)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결혼반지요, 약혼반지입니다.
우리는 이 반지 없이 세상의 화려한 반지를 잔뜩 끼고, 하나님 앞에 선다면 *배신자*라고 하면서 발로 차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반지는 오직 *의롭고 진실하고 거룩함*입니다.
의(義)란 바른 관계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직하고, 올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삐뚫어진 것을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바른 것을 보면 기뻐합니다. 또 모든 것을 아름다운 관계에서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의(義)는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습니다.
불의는 남의 것을 가지고, 남의 영역을 침범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많은 돈을 갖고 있는 것을 배 아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또 남의 아내(남편)가 아름다운 것에 대해 나쁜 마음을 갖는 것은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또 *거룩*은 죄를 거부하고, 이기는 것입니다. 즉 죄가 유혹하면 *이것은 아닌데* 하면서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면, 막가파 토개공처럼 더 가져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궁무진한 축복들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얼마든지 풍성하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구약 하나님은 다윗을 목동의 위치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차지했을 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삼하12:7-8절)나는 네가 원하는 것 중에 주지 않은 것이 뭐가 있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필요로 하면 얼마든지 다 주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교만하여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면서 남의 부인을 위력으로 빼앗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정상적으로 주신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막가파 토개공처럼 죄를 지어야 기분이 좋고, 승리의 쾌감을 스스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겔33:8절)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므로 진리를 가진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죄를 짓지 못하도록 진리를 밝혀야 합니다. 많은 경우 죄를 감추고 쉬쉬하기 때문에 거짓이 또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본성과 속성을 진리로 다 드러내면,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Ⅲ.마음의 두 가지 암 덩어리
성경은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두 가지 암적 요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빠져 나가야만, 건강한 자아상을 가질 수 있고, 천사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이 두 가지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①거짓말이요, ②분을 내는 것입니다.
25절)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거짓*이란? 사실 중에서 일부를 과장하거나, 감춤으로서 상대방이 진정한 진실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거짓을 말하는 이유는 우선 기질적으로 진실한 것보다는 거짓된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즉 반드시 거짓말을 하려고 해서라기보다는 상대방이 진실한 것을 모르고, 방황하는 것이 기분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원래 타락한 본성상 진실보다는 거짓을 더욱 재미있게 합니다.
진실을 말하면, 괜히 분위기가 무거워 지거나, 침퉁 해지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웃기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우리의 본성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상대방에게 사실을 감추거나, 과장하는 것이 더 이상 기쁨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남을 속이는 것은 자기는 기쁠지 몰라도 상대방은 어려움과 혼동을 하게 됩니다. 거룩은 남을 골탕 먹이고, 자기 혼자 기분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에게 바른 것을 제시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진실이 아닌 것을 보고, 즐기려 할 때, 한심한 생각이 들고,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농담을 하거나, 거짓으로 그를 속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짓말이나, 농담을 하는 것을 *나는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농담이나, 거짓말을 해서 분위기를 웃기며,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할 수 있으면,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죄를 덜 짓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정직하다는 것이 무조건 모든 것들을 사실대로 다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정직은 치료 행위와 같기 때문에 과정이 필요합니다. 할 수 있는 한, 상대방과 바른 관계에 있기 위해 하나씩 설득해 들어가는 것이며, 때로는 상대방에게 진리가 소화될 때까지 기다려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잘못을 지적하기만 한다면,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할 것입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깨끗한 양심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진실해지는 데는 굉장히 많은 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농담과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어쩔 수 없거나, 편의상 할 수 없다는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고난과 연단을 겪으면 선의의 거짓말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회개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들이 믿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분(忿)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26절)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성경은 우리에게 *전혀 분을 내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분(忿)을 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여러 가지 이유로 분(忿)을 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①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것과
②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분(忿)이 터져 나올 때가 언제입니까?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 시킨 대로 하지 않았거나, 나를 오래 기다리게 했거나, 아니면 나의 인격을 무시하면, 분(忿)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분(忿)을 한 번 내고 나면, 그 뒤처리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분(忿)를 낸다는 것은 끓는 물을 마음속에 담아 두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속에 뜨거운 물을 담아두면, 속이 모두 다 타버릴 것입니다. 그것이 우울증(憂鬱症)입니다.
또 이것을 남에게 쏟아 버리면, 그때부터는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그러면 분(忿)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①분을 내면서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를 짓는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분(忿)을 폭발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잠깐 한번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다 사정이 있습니다. 그 사정을 통하여 나의 분(忿)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분(忿)은 나지만, 상당히 누그러지고, 상대방도 충분히 수긍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분(忿)을 내면서 말하는 것이 저주입니다. 즉 소리를 지르거나, 악담을 하거나, 욕을 퍼붓는 것이 저주요, 상대방의 마음은 심한 화상(火傷)을 입게 됩니다. 이것이 상대방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분(忿)을 상대방에게 내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내 분(忿)을 퍼부어야 직성이 풀리고, 다른 사람을 꼼짝 못하게 이겨야만 직성이 풀린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상대방을 죽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해가 지도록 분(忿)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忿)을 자기 속에 품고, 그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상대방에게 분(忿)을 토(吐)하지 못할까? 어떤 경우, 그 사람이 나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거나, 성격적으로 남에게 나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 대신에 자기를 학대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 저 사람은 내게 이렇게 말 했을까?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저 사람이 이런 말을 내게 했을까?*라는 것을 수천 번, 수만 번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기쁨이 모두 다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우울증(憂鬱症)이 오게 됩니다. 이미 내 마음이 분(忿)으로 홀랑 다 타버렸기 때문입니다. 또 밤에 잠이 잘 오지 않게 되고. 밤새도록 미움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마음속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는 내 속에 남아 있는 분(忿)을 믿음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고 분(忿)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잘못만 생각하면, 분(忿)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던가? 를 생각하면, 상대방의 잘못도 용서가 됩니다.
27절)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분(忿)을 낼 때마다 마귀는 우리를 이용합니다. 우선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대신에 저주를 하게 됩니다. 이때 이기는 방법은 잠시 밖으로 나가서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결론(決論)
우리가 정직하지 못한 것은 상대방을 업심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것을 알게 될 때, 마음이 아프게 됩니다. 우리가 분(忿)까지 내면, 우리의 입에서는 결정적인 저주의 말이 나올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런 거짓과 분노(忿怒)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인지? 구원받은 사람인지? 의심하게 합니다. 한번 분(忿)을 내면, 하나님이 과연 자신을 사랑하시는지? 자신이 과연 구원받은 백성인지? 모두 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분(忿)을 내면, 마귀에게 이용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에서 기쁨과 확신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정직입니다. 즉 어렵고, 일이 꼬일수록 정직한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입니다.
일단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분(忿)을 폭발시키면, 그는 그 문제에 있어서 패배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 밑천을 다 드러낸 셈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가 분(忿)을 폭발시키지 않도록 생명의 양식을 묵상하고 조심해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재산은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지켜 주시고, 우리에게 언제나 위로와 지혜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30절)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죄는 우리를 혼동하게 만듭니다. 즉 우리로 하여금 자신감과 존귀함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넘어져도 하나님 앞에 그 죄를 자백(自白)내어 놓기만 하면,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수천억 짜리 재산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넘어져도 일어나게 되는 것은 성령의 위로와 보호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전 생각과 이전 근성의 더러운 옷을 벗어 버리고, 변하여 새 사람의 옷 입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아-멘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영적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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