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모든 건 사람에게 물으면 된다. 언어의 장벽? 뭐 그리 중요한가. 베를린 장벽도 작은 망치 하나로 무너졌다. 길에 다니는 인도 사람들은 모른다. 그렇다면 어찌하겠는가. 그들 방식대로 찾고 계산하도록 맡기고 여행객은 그들만 관리하면 된다. 우리는 지갑을 열, 손님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곳, 여기는 인도다.
인터넷 카페를 찾고 있었다. 숙소를 예약한 증서를 노트북에 담아왔다. 정보들이 컴퓨터에 안에 있으니 서류를 보여주려면 인터넷이 연결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그랬다. “인도의 IT산업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남편은 서류와 기계를 믿는다. 그건 도시 일부 층의 이야기다. 우리가 무슨 외교통상부에서 파견 나온 직원인가. 이곳은 하루 일용할 양식 짜이Chai 한 잔과 로띠Roti 빵 한 개가 급한 삶의 현장이다.
나도 알파벳 정도는 읽지만, 나도 돋보기는 있지만, 이렇게 침낭까지 짊어지고 동서남북을 쫓아다니다 보면, 눈치만 백 단으로 는다. 궁하면 통한다. 늘 시기가 문제다. 꼭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야 보인다. “여보, 여기가 인터넷 카페다.” 힌디어로 쓰인 간판이나 지도가 무슨 소용인가. 나의 능력은 오로지 하나. 어디서 본 듯한 아련한 풍경. 초가집들이 많았던 내 고향 사람들의 표정과 말씨와 눈빛이다. 그 눈빛 속에 상대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다 보인다.
인도에 서류를 출력해 갔다고 치자. 5성급 7성급 고급 호텔이라면 몰라도 극기 훈련 차원의 배낭 여행객에게는 백지나 마찬가지. 인쇄된 종이 쪼가리 사본보다 자신들 눈앞에서 손으로 꾹꾹 눌러 쓰는 기록만을 믿는다.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왔으며 어제 머물렀던 주소는 어디였는지 일일이 적어야 한다. 한 사람 것만 적고 ‘00외 1명’은 안 된다. 성과 이름만 다를 뿐 여행목적이 같은 부부인데도, 위의 내용을 반복해서 적으라고 한다. 그때 남편과 게스트하우스 직원의 오가는 눈빛은 대치상태다. 서로 종교와 이념이 다른 국경지대의 힌디와 이슬람권 정부 요원들 같다. 짐꾼, 심부름하는 아이, 집주인 옆에 어슬렁거리는 개도 소도 쥐도 참관인이다. 순간순간 재빠르게 호기심과 경멸의 눈길이 오간다.
나는 아예 퍼더앉아 구경한다. 무심한 표정으로 말 못하고 글 모르는 천치 바보 멍청한 여편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그들을 빤히 쳐다만 본다. 남편은 그들이 원하는 문서를 적는다. 가늘게 내리깐 눈과 한 일자의 꾹 다문 입, 압도적인 분위기에 나 같은 건 쫓아 들어왔는지조차 신경도 안 쓴다. 안중에도 없다. 그들 눈에는 오로지 남편의 기갈에 눌려 사는 힘없는 한국 아낙이 한심하게 보일 것이다. 그 정적의 시간이 지나면 나의 남편은 달마상의 너그러운 표정으로 내 앞에 온다. 크기가 화판만 한 숙박 서류를 어부인 앞에 공손하게 내려놓는다. 나는 천천히 우아하게 여왕이 된다. ‘류창희’ 내 이름 석자를, 한 획 한 획 전각하듯 사인한다. 관음보살의 미소와 함께 드디어 체크인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나선다. 기품 있는 목소리로 “이리 오너라.” 호령한다. 그래, 내 말 좀 들어 보시게. 카피 한 장이면 될 일을 이게 무슨 불편한 짓이람. 언제 이런 번거로움을 개선할래? 그건 기계적인 일이니 그렇다 치고, 자네들이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문제다. 우리가 그런 시스템을 가동할 수 없으니, “죄송하지만 이렇게 해주십시오.” 친절하면 좀 좋아. 꼭 잘못한 아이 나무라듯 범법자 문초하듯 고자세로 나오면 듣는 사람이 기분이 좋으냐, 나쁘냐? 묻고 또 묻는다. 그리고 알아들었으면 “대답해라, 오바!” 단호하게 다그친다.
나는 단락마다 또박또박 하나하나 짚어가며, 한 가지 설명이 끝날 때마다 후렴처럼 ‘대답해라, 오바!’를 요구한다. 그럼 젊은 남자 매니저도 올드보이 주인도 “노프라범” “예스” “OK” 복창한다. 남편은 그게 또 못마땅하다. “이것들은 손님이 왕인 걸 모르나.” 오케이는 내가 오케이 해야 하는데…. 뭐가 오케이냐며 언성을 높인다.
종업원들은 슬슬 남편 눈치를 보며 피해 다닌다. 오가며 나와 눈이 마주치면 내 남편 몰래 슬쩍슬쩍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나 혼자 지나다 마주치면 “헬로우 마담, 베리 나이스 패션!” “헬로우 마담, 뷰티플 스마일!”이라며 친근한 관심을 표한다. 그리고 하루나 길게는 일주일을 머물러도 남편 옆에 꼭 붙어 있는 나에게는 눈길 한번 안 준다. 떠나는 날, 숙박료를 내는 사무적인 일이 다 끝나면,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종업원까지 서너 명이 또 둘러선다. 그때야 나를 보고 아쉬운 듯, “굿바이!” 인사하며 내가 하던 말투, (나는 영어는 한마디도 안 했다. 힌디어도 한 적이 없다. 언제나 또박또박 한국말로 한다. 그래도 그들은 모국어처럼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내가 하던 몸짓을 그대로 흉내 내며 “이리 오너라~.” “대답해라, 오바!” 오케이! 노프라범이 또 즐겁다. 자이살메르에서도 카주라호에서도 아그라에서도 바라나시에서도 지역과 숙소의 크기와 주인은 달라도, 한결같이 내게 그렇게 우정의 악수를 청한다. 나는 흔쾌히 그들의 손을 맞잡는다. 남편은 또 펄펄, 펄쩍 뛴다. 인도 남자와의 신체접촉은 성추행의 빌미라며 붉으락푸르락 흥분한다.
남편은 냉철한 이성으로 숫자를 지켜야 하고, 나는 온화한 마음으로 감성을 지켜야 한다. 우리 부부의 인사이드 경제와 아웃사이드 외교로 나뉜 역할이다. 어쩌랴. 열이 머리끝까지 차올라도 이미 체크아웃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