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禮意)
글 / 김광한
예의(禮意)란 인간 상호간의 사귐에 있어서 서로 상대방에게 예(禮)를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이나 행동 따위의 총체를 말한다. 고려 공민왕 때는 예의사(禮儀司)라는 것이 있어서 예의를 주도 관장하던 벼슬아치가 백성 및 벼슬아치들의 예의를 감독했다.무릇 사람이 사는 사회는 동물계(動物界)와는 달리 사람과 사람끼리의 사귐에 있어서 예의를 중시했고, 예의에 어긋나거나 행동거지가 바르지 못한 자를 상것, 또는 천민이라 하여 매우 경시했다. 예의는 인간의 품격을 높여 주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대할 때의 언행은 예의를 갖춰야 하고, 윗사람은 윗사람으로서의 예의를 갖춰야 윗사람 노릇을 할 수 있으며 또 그만한 대접을 받는다.
지금도 높은 관청이나 군대 또는 경찰 같은 기관에는 의전(儀典)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로 예의에 관한 문제를 중요시 여긴다. 경찰 악대나 군대의 의장대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을 대우해 줌으로써 상대적인 편안함과 도리를 지킬수 있는 것이 곧 예의이다. 그런데 요즘 들이서 예의란 말이 생소한 단어가 되어 버린 느낌이 들어 안타깝기만하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대하는 예의, 연인끼리의 예의, 친구간,부부간, 고부간의 예의 같은 것이 대중화(?)되어서인지, 또는 서양화(?)되어서인지 예의를 심각하게 생각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수십 년 전, 내 젊은 시절에는 어쩌다 연애할 상대가 생기면 상대에게 예의를 다해 마음을 전했다. 낙엽 지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가더라도 남자는 앞장서고, 여자는 뒤따라오고, 손바닥을 서로 잡는 것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낭자께서는 구루몽의 시를 좋아하십니까? 시몬의 낙엽 지는소리가 들리나‥‥‥‥」
「예. 선생님도?」
하며 깜짝 놀랄 듯이 쳐다보는 그 얼굴에 사랑이 듬뿍 담겨 있는 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낭자」와 「선생님」이란호칭이 다소 구시대적인 거리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형이상학적인 아름다움이 스며 있었다. 남자는 아니더라도 「숙자씨」, 「영자씨」 등 씨 자를 붙이거나 아니면 「무슈」 등 프랑스 식의 호칭을 붙여 상대를 인정하는 예의를 갖췄는데 반해 요즘은 시대가 달라져서인지 만난 지 며칠 안 된 사이에도서슴없이 「너!」, 「나!」 등의 막된 호칭을 쓰는 것이 예사이다.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것들이 전철 안에서 상대는 물론 타인의 눈총을 의식치 않고 머리에 빨강, 노랑 물을 들인 채 경로석에 앉아 껴안고 쓰다듬고, 해괴망측한 짓들을 하는 그런 양태가 그리 향기롭지 못하다. 이들에게 「낭자 이야기」를 했다가는 노망 든 영감으로 삿대질을 당할 것이 뻔하다.
일찍이 신라의 스님 혜초가 천축국(인도)을 갔다 와서 보고 들은 것을 쓴 기행문이 중국의 돈황이란 곳에서 발견되었다.거기에는 인도의 어느 나라에 갔더니 그 나라가 상당히 예의가 어긋나 대낮에도 상소리를 하고, 귀밑대기가 새파란 놈들이 젊은 계집과 농탕질을 하고, 도대체 세상천지에 이런 상스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쓰여져 있다. 그런 혜초가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로 와 본다면 기가 막힌 일이 너무 많아 할 말을 잊을정도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어른 앞에서는 술잔도 외면해서 들고, 담배는 숨어서 피우고 하던 것이 언제부터인지 제 아비뻘 되는 사람앞에서 맞잔을 하는 건 예삿일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담배를 숨어서 피우기는커녕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고등학교 다니는 녀석이 제 할아버지뻘되는 사람에게 「담뱃불 좀 얻읍시다」 하는 건 그래도 낫고, 이제 「담배 한 가치 얻읍시다. 불도‥‥‥‥」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영감님이란 호칭이 「꼰대」라는 한글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은 호칭으로 통용된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꼰대란 호칭은 영감님을 한껏 낮추어서 천하게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제 아비에게도 꼰대란 호칭을 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나이든 스승을 꼰대라고 부르면서 좋아하는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있다.
탑골공원에서 점심시간에 밥을 타 잡숫기 위해 열을 지어 서있는 노인들에게 배식하는 젊은이가 하는 말이다.「저 꼰대는 죽지도 않고 시간 맞춰서 나온단 말이야.」
「한 꼰대는 뒈졌는지 보이질 않는군.」
「할망구 한 명도 고태골(저승)엘 갔는지 안 보이는데‥‥‥ 」
밥을 나눠주는 것은 좋지만, 여기에도 예의가 있는 법이다.정성이 들어 있지 않는 음식은 오직 생리적인 욕구를 채우는데 불과할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이 어린 며느리가 시아버지앞에서 담배를 꼬나 물고, 다리를 포개 앉아 있는 것은 서양 영화에나 등장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런 못된 행태가 현실로나타나고 있다.
아들 뻘밖에 되지 않는 젊은 검사가 결재를 받으러 온 늙은경위에게 함부로 뱉는 말, 「야, 이 x x야! 눈깔도 없냐. 이 xx, 이것도 서류라고」 하는 것은 약과다. 버르장 머리없는 검사는 그 늙은 경위의 따귀를 올려붙이기도 한다. 권력의 힘이 그리 대단한지, 그래야만 권위가 서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권력의 상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을 존중하여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예의국이요,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참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과연 구시대적인 발상일 뿐인가?
예의란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질서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힘이란 것으로 질서를 잡는 일이 보통이지만 인간의 세계에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고 친구간에 예의를 지키는 것을 참된 질서로 삼는다.상스런 말로 우정을 유지한다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예의를 다해 친구를 대할 때, 그 우정이 돈독해진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남녀관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달콤한 문구가 적힌 편지를 주고받는 시대가 아니더라도, 상대를 인정하고 예의를 다할 때 사랑의 열매는 더욱더 크고 알찬 것이 된다. 반드시 부둥켜
안고 거리를 쏘다니지 않더라도, 그리고 남자가 한발 앞장서고 여자가 뒤따라오더라도 그 마음속에 진실이 들어 있고, 사귐에 있어 정성이 들어 있으면 그만름 긴 여운이 남을 것이다. 그런 긴 여운은 사랑이란 끈으로 남아 더욱더 두 사람을 조여 놓을것임에 틀림이 없다. 상스런 한마디 말에 사람의 마음은 그만큼상하고, 예의 있는 한마디 말과 바른 행동거지에 사람의 마음은 풍요를 얻을 것임을 명심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