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하면 누구나 한 가지쯤 떠올릴 수 있는 추억과 그리움이 있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MT 장소까지 가는 동안 통기타 하나만 있어도 즐거웠던 대학시절,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는
연인들의 데이트, 군대 가는 남자친구를 태워 보내던 입영열차 등 오랜 세월 동안 기차는
수많은 청춘들의 사랑과 이별을 실어 날랐다.
기차 안에서 먹어야 제 맛이 났던 삶은 달걀과 사이다, 빨간 망 안에 길게 넣어 팔던 귤을 까먹던 일은
얼마나 그리운 추억인가. 빠르고 편리한 첨단 운송수단에 밀려 기차는 추억을 싣고 점점 '과거'로 밀려난다.
그래서일까. 기차는 과거를 되돌아보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에도 가장 어울린다.
이제는, 가격 저렴하고 추억 빵빵한 관광전용열차 한번 타 볼까
관광전용열차는 일본ㆍ미국ㆍ유럽 등에서 인기를 얻은 테마상품으로,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에 선보여
기차여행의 품격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상품에 따라 노래방ㆍ와인바ㆍ이벤트홀ㆍ별실 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족과 연인에게 멋진 추억을 선물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관광전용열차는 연인과 직장인을 위한 '서울야경순환열차', 타는 재미ㆍ보는 재미가 있는 '정선관광열차',
와인 생산지를 방문하고 기차에서 직접 시음도 할 수 있는 ‘영동 와인열차'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용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추억은 빵빵하게 만들어 주는 명물이다.
◆ 영동와인열차 _ 와인에 취하고, 자연에 취하고
기차를 타고 떠나는 6~7월의 영동은 온통 초록이다.
영동을 아늑하니 품어 어딜 가나 보이는 산들, 나무들, 논마다 찰랑이는 얕은 논물들까지도
온통 초록으로 일렁인다. 일교차가 큰 영동지역의 과일은 크고 당도가 높아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영동을 가다 보면 볼 수 있는, 창 밖으로 계속해서 펼쳐지는 아이 키만한 나무들이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탐스러운 포도송이를 맺을 포도나무다.
이렇게 영동의 토양에서 자란 포도를 자연 발효시켜 만들고 있는 영동의 와인공장이 바로 '샤토마니'이다.
열차 안에 꾸며진 근사한 와인바는 영동와인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와인열차는 기존의 경부선 일반열차에 전용객실 2량을 연결해 운행하던 것을, 원목 테이블과 소파가
설치된 고급 와인바 객실 2량을 추가로 개조해 관광전용열차로 만든 것이다.
서울역을 매주 화ㆍ토요일 오전 9시 2분에 출발해 영동역 도착(오전 11시 30분) 후 와이너리 관광을 마치고
다시 서울역에 오후 8시 17분에 돌아온다.
와인열차 안에서는 국산 포도주 제조업체인 와인코리아(주)가 만든 샤토마니(5종) 무료 시음회, 와인 교실,
레크레이션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우리나라 최대의 포도산지인 영동에 도착해서는
와인 제조과정 견학, 와인 만들기 체험, 소나무숲 산책, 난계 국악박물관 관람 및 국악기 연주 체험 등
다채로운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
- 문 의 : 와인코리아 홈페이지 www.winekr.co.kr / 043-744-3211~5
- 코 스 : 매주 화ㆍ토요일 운행. 영등포(오전 9시13분), 수원(오전 9시 33분),
천안(오전 10시 10분) 정차
- 이용 요금 : 드라이ㆍ화이트 객실 8만원, 스위트ㆍ누보 객실 7만원 (왕복열차요금, 점심ㆍ저녁식사,
연계 버스, 이벤트 비용 포함)
◆ 서울야경순환열차 _ 퇴근 후 데이트 코스로도 좋아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서울역에서 오후 7시 15분에 출발하는 야경순환열차의 전체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으로 코스는 신촌-장흥-송추-의정부-청량리-응봉-한남-용산-서울이다.
오후 7시 15분, 기차가 사르르 서울역 1번 홈을 빠져 나간다.
곧바로 와인을 실은 수레 두 대가 움직인다. 그리스산 와인이 두 좌석에 한 병씩 간단한 안주와 함께 놓인다.
수색역을 벗어나면서 철로를 에워싼 답답한 담장이 사라졌다. 멀리 한강을 따라 자유로의 불빛이 일렁인다.
건널목마다 차단기 앞에 늘어서 꼬물대는 자동차들의 불빛이 조급해 보인다.
차단기가 오르기를 기다리는 운전자들을 생각하자 순간 찌르르 통쾌함이 잦아든다.
공연ㆍ마술쇼 등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는 서울야경순환열차의 이벤트 칸.
달리는 열차에서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도 감상하고 색다른 공연도 감상할 수 있다.
능곡을 지나 일영에 다다를 즈음 갑자기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
이벤트 칸에서 그룹 '블루 캔버스'의 재즈 공연이 시작됐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하지만 좁은 공간은 몰려드는 사람들을 주체하지 못한다. 결국 세 번째 곡 '고엽'이 끝날 무렵 상당수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끈질기게 자리를 지킨 사람들을 위한 특전은 마술 공연.
앳된 마술사의 손놀림에 휴지가 장미꽃으로 변하고 카드가 휙휙 날아다니자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린다.
다섯 량의 객차 중 한가운데 위치한 이벤트실의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지만 나머지 객실은
오히려 차분해진다. 호탕한 웃음은 잦아들고 창 밖을 응시하는 눈빛만 그윽해진다.
응봉역을 지나면서 객차에 불이 꺼지고 창문을 통해 도시의 불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한강을 따라 가는 마지막 15분이 서울 야경의 하이라이트다.
일부 눈치 빠른 승객은 맨 뒤 객차의 전망 칸으로 달려간다. 창이 넓어 사진 찍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불빛이 인상적이다. 저녁 9시 45분, 용산역을 거쳐 서울역으로 들어온 기차가
승객들을 쏟아 낸다. 15분에 불과한 야경인데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는 표정들이다.
화려한 야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기차 여행의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2명당 한 병씩 제공되는 와인 서비스와 라이브 재즈 밴드 공연, 마술쇼 등을 즐긴 후에는,
함께 온 사람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20분간 객차 전체를 소등한다.
출발 당일 오전까지 예약해야만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 문 의 : www.ktx21.com 02-393-3100
- 코 스 : 서울역-신촌-장흥-송추-의정부-청량리-응봉-한남-용산-서울역
- 이용 요금 : 2만 9,000원
◆ 정선관광열차 _ '정선아리랑' 부르며 가는 정선 5일장
열차를 타고 시골장터를 찾아가는 관광상품으로 전국적인 인기가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열차가 미끄러지듯 서울을 벗어난다. 양평을 지나자 이벤트가 열린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얼마 후 어디선가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들려 온다. 사람들은 하나 둘 그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여행객을 위한 특별 공연이 이벤트룸에서 펼쳐지기 시작한 것. 사람들은 이제 신이 날 대로 난 상태다.
이어지는 '정선아리랑'. '정선아리랑' 기능 보유자인 명창은 정선을 앞두고 끊어질 듯 부서질 듯 구성지게
가락을 뽑아 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흥겨운 가락에 여행객은 열차 안이라는 것을
잊은 듯 엉덩이를 들썩인다.
열차에 쓰여 있는 말 그대로 '추억'을 담고 정선으로 향하는 정선관광열차.
정선 5일장에 힘입어 10년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정선에 도착하자마자 정선 5일장으로 이동한다. 특별히 무언가를 사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즐겁고
애틋한 정선 5일장 풍경. 잔주름 깊은 시골 아낙이 펼쳐 놓은 나물이며 짚신 등은
잃어버린 옛 추억의 한 토막이다.
정선 5일장은 알려진 것만큼 규모가 크거나 세련된 맛은 없다.
하지만 특유의 소박함이 곳곳에 가득하다. 시골 냄새 풀풀 풍기는 된장과 몸에 좋다는 산약초도
은근슬쩍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옛날 대장간에 놓인 농기구나 검정고무신ㆍ짚신ㆍ왕기ㆍ산나물 등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추억의 상품이다.
오후 4시가 지나자, 정선문화예술회관에서는 정선 사람의 애환과 기쁨이 잘 버무려진 <정선아리랑> 창극
공연이 펼쳐진다. 프로가 아닌 정선 사람들이 선보이는 창극은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공연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선사하는 최고의 이벤트인 셈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열차 한쪽에서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막걸리와 동동주를 늘어놓고 오늘 하루 여행을
안주 삼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열차는 노래하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술에 취한 사람, 피곤에 잠든 사람을
모두 끌어안고 집으로 향한다.
- 문 의 : 1544-7786
- 코 스 : 정선 5일장이 서는 2ㆍ7일과 매주 주말에 청량리역에서 오전 8시 10분 출발,
정선역에 12시 37분 도착한다. 이곳에 도착하면 문화예술회관과 5일 장터를
연계하는 버스를 이용한다.
- 이용 요금 : 5만 1,000원.
◆ 곡성미니열차 _ 섬진강 강줄기 따라 콧노래 절로 나네
곡성군은 1999년 전라선 철도 개량공사로 폐선이 된 철로를 이용해 섬진강변을 달리는 미니기차를
상품으로 개발했다. 곡성의 명물로 떠올라 인기가 높은 미니기차는 옛 곡성역 자리인 곡성철도공원 혹은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고달면 가정마을 간이역까지 9km 구간을 왕복 운행한다.
섬진강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구간을 시속 30km로 달리는 미니기차를 타고 감상하는 맛이 색다르다.
섬진강 맑은 물과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차창으로 달리는 강바람은 스트레스를 한순간에
날려 버린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여성들이 좋아해 가족 나들이 코스로 제격이다.
연인들에게도 인기 데이트 여행지로 꼽힐 정도라고...
미니기차가 곡성 철도공원을 출발해 가정 간이역을 돌아오는 데는 왕복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수용 인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예매를 받지 않고 운행시간에 맞춰 선착순으로 탑승권을 나눠 준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나왔던 증기 기관차.
곡성군이 이 열차를 구입하여 곡성미니열차로 활용하고 있다.
섬진강 기차마을인 구곡성역은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지다.
진태(장동건 분)와 진석(원빈 분) 두 형제가 한국전쟁 피난길에 대구역에서 국군으로 강제 징집되는 과정을
촬영했다. 또 장단역을 배경으로 한 전투장면과 진태가 훈장을 타는 장면도 여기서 찍었다.
미니기차가 지나는 가정마을 간이역은 섬진강의 수려한 풍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장소.
차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면 철도공원으로 되돌아가지 말고 이곳에서 내려도 된다.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섬진강변을 따라 하이킹을 해보는 것도
섬진강을 제대로 여행하는 방법이다.
- 문 의 : 구곡성역 곡성철도공원(061-360-8309)
- 코 스 : 하루 4차례(09:30, 11:00, 14:00, 16:00)
- 이용 요금 : 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