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월터 클레어본 롤리는
한 줄기씩 가지를 자르면서 되뇌었다
포도는 건포도가 될 수 있지만
건포도는 포도가 될 수 없다
건기의 샌와킨강은
광활한 사막에 줄지어 늘어선 청포도밭이
바싹 마르지 않을 만큼 흐르고 있었고
그곳에서 물길을 얻은 운하들은
끝없이 펼쳐진 밭고랑 사이사이로 간신히 사라지고 있었다
한발짝 떼면
푸석거리며 마른 먼지가 일어나는
사막의 청포도밭 한가운데서
월터 클레어본 롤리는 몇시간째
포도 넝쿨의 가는 줄기들을 가위로 자르고 있었다
넝쿨 가지째 말려야 값비싼 건포도가 된다는 농장주의 말을 떠올리며
월터 클레어본 롤리는 또 한번 되뇌었다
포도는 건포도가 될 수 있지만
비싼 건포도라도 포도는 될 수 없다
자신의 한쪽 허리춤에 매달려 달그락거리는
물병의 텅 빈 무게를 느낄수록 갈증이 깊어갔지만
줄기 잘린 채 볕에 매달린 청포도들이 그만큼
빠르게 마르고 있다는 생각에
월터 클레어본 롤리는 가위질을 쉴 수 없었다
월트가 어깨와 목을 비트는 간격은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몇고랑 건너 검붉게 메말라가는 청포도들은 그때마다
점점 반짝이며 그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얼마 버티지 못해 제값을 못 받고 떠난
멕시칸 이주민들의 흔적이었다
쉴 틈 없이 가지를 자르는 월트는
석양이 길게 반사된 한줄기의 운하를 바라보며 다시금 되뇌었다
포도는 건포도가 될 수 있지만
까맣게 쪼그라든 건포도는 불린다 해도 포도가 될 수 없다
건기의 샌와킨강은
흐른다기보다는 버티고 있는 느낌이었고
그곳에서 사방으로 잘게 뻗어나온 운하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방향으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건포도는 포도가 될 수 없다
뿌리로부터 길어 올리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창비,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