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나들이
‘큰아빠! 용돈 잘 받았어요.
항상 챙겨 주셔서 감사해요.
목요일 한국에 왔어요.
정신없어 이제 연락드리네요.
명절 잘 보내세요.’
‘또 줄게..’
어머니 없는 추석은 찾는 이 없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되뇌어도 명절 같지 않았다.
‘연휴 때 어디라도 가자’ 아내 말을 그렸다.
안양에서 공시 준비한 막내가 걸렸다.
동해로 보금자리 옮긴 이 집사님 삶도 걱정이 앞섰다.
양양에서 군복무한 성현이도 둘러보고 싶었다.
이틀 새벽 예배는 자유롭게 기도하도록 광고를 냈다.
도심을 벗어나자 누군가 가을을 데려다 메웠다.
하늘이 파란 옷을 입었다.
먼 산 위에 걸린 흰 구름에 이끌렸다.
연식 있는 차라 좌불안석인데 아내는 편히 잤다.
맞은편 차들 사열에 막힘없이 밟았다.
공주에서 국도로 빠졌다.
어둠 짙을 때 육미제당 비산 지점 앞에서 막내를 만났다.
무한리필 고깃집! 대기 손님이 많았다.
근처 안양천에서 기다리다 호출을 받고 들어갔다.
가족끼리 앉은 푸짐한 자리였다.
셀프 바에 모둠튀김, 잡채, 국물 떡볶이, 피자..
음식 남길 경우 환경 개선 부담금 3천 원! 선명했다.
대장 갈비 맛있게 먹는 법도 눈에 띄었다.
‘숯 향을 좋아하시는 분은 최대 3분까지만 뒤집지 않고 구워 줍니다.
오래 구워 드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숯불이 얼굴까지 달궜다.
막내는 갈비를 폭풍 흡입하는 거구였다.
어깨 근육은 돋보였으나 뱃살이 문제였다.
식단 관리가 안 되었지만 잔소리를 죽였다.
한 끼 더 챙기려고 근처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역 주변은 도둑놈 소굴 같아 겁났다.
명절 아침 먹을 곳이 없어 시장통으로 갔다.
칼국수 집에서 아들은 곱빼기 주문을 넣었다.
김치 하나에 감사 기도 드렸다.
단골집에서 따뜻한 도넛과 꽈배기를 간식거리로 받았다.
강원도로 나서며 밤에 보낸 답을 기다렸다.
‘성현아! 근무 군부대 어디지? 면회 가능하지?’
‘목사님! 양양인데 경계 소초라 면회가 안 됩니다.
11월 전역이라 괜찮습니다.’ ‘
그래, 속초로 출발하는데 너무 아쉽다야..’
‘아, 그러네요.’
이 집사님도 다른 약속이 잡혀 다음 기회로 미뤘다.
가평 휴게소!
결혼 후 동료들과 야영 중 폭우로 면사무소 대피한 추억 서린 곳이었다.
인산인해 속에 졸림 예방으로 커피를 마셨다.
소떡소떡을 손에 들고 먹는 아이들이 많았다.
명절 폭염은 숨 막힐 정도였다.
아내가 덥다는 핑계로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서북주능선과 천불동 계곡이 그리워 설악산으로 향했다.
터널은 많고 길었다.
수려한 산은 높고 맑은 공기에 창을 내렸다.
먼 길 갔지만 설악산 입구 인파에 차를 돌렸다.
세상 쉽게 되는 일이 없어 한경직 목사님 기념관으로 갔다.
가을 숲의 풍경이 정겨웠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소중함을 느꼈다.
시냇물 소리와 소나무가 차분하게 맘을 눌렀다.
출입문을 열며 웃었다.
‘들쥐가 들어옵니다. 문을 꼭 닫아 주세요.’
햇살 드는 곳, 한경직 목사님의 세 가지 기도 제목을 보고 담았다.
1. 오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2. 자유와 정의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3. 한국이 작은 나라이나 세계 선교의 기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지막 사용하신 남한산성의 5평짜리 침실 사진에 숙연해졌다.
빼곡하게 쓴 설교 노트에도 눈길이 멈췄다.
청년 때 여의도 광장 집회에서 쉽고 간결하게 들은 설교는 큰 은혜였다.
‘헌혈에 동참합시다!’
한마디에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성경을 삶으로 살아낸 분의 능력이었다.
지도자는 길을 내고 길은 은혜 입은 자로 걷게 만들었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경주는 이긴 자의 교만이요 패자를 낙심으로 이끌었다.
산책은 승패 자 없고 욕망과 스트레스를 날렸다.
깊은 사색에 지금껏 경쟁한 이들의 손을 잡고 싶었다.
나그네 길 익혀 함께 사는 법을 드러낼 것이다.
뒤돌아보니 은혜의 여정이요 기적의 연속이었다.
가보지 않은 광야 인생길 인도자는 하나님이셨다.
하얀 구름 기둥은 달 가듯 앞서가 희한하게 봤다.
대포 항으로 이동하여 바닷바람 맞았다.
멍 때리다 쌍둥이네 아줌마 영접을 받았다.
모둠 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라 회덮밥을 시켰다.
늦은 점심의 싱싱한 생선이 별미였다.
기지개를 켜고 치악산으로 방향을 돌렸다.
어둠이 내려 산자락을 밟지 못하고 숙소를 잡았다.
종일 운전에 만사가 귀찮았다.
막내가 챙겨 준 간식으로 저녁을 때우고 쉬었다.
평소 먹지 않은 음식에 운동 중단으로 속이 끓었다.
잠 못 이룬 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끝 소절을 읊었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튿날 횡성에서 아침 먹고 출발했다.
여주 휴게소에서 졸음 쫓고 연료를 넣었다.
나들목 정체가 심해 장성 재를 넘자 긴장이 풀렸다.
어머니 산소 길로 향했다.
주차요원들의 수고로 쉽게 다가섰다.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진동할 때에’
아내 목소리가 더 컸다.
기도하며 서러운 마음 금치 못하고 흐느꼈다.
어머니 뵙는 것, 힘이라 보고 싶고 그리웠다.
전화로 어머니 지인들 안부를 물었다.
가슴 뭉클하고 심장이 뛰었다.
연휴 마지막 날, 딸 식구 방문으로 추석 상을 갖추었다.
감사 기도 후 먹는 집 밥이 최고였다.
하루 늦은 딸 생일에 촛불을 켰다.
축하하고 고구마 케이크도 나눴다.
손녀 손자에게 봉투 건네고 딸의 용돈 반은 아내 몫이었다.
2024. 9. 21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