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없는 오늘이 어디 있으랴
허 영 선
그때 아버지는 물을 향해
내 속살의 부끄러운
사금파리를 깨뜨리고는
큰 걸음으로 돌아서셨다
그것을 조각조각 건져올리는 동안
나는 절멸 직전의 꽃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맨눈으로도 환하던 물의 정원은
어머니의 자궁
물에서 건져올린 건 내 꿈이었다
어디까지 더듬어야 내 어린 어둠이 사라질까
어디까지 내려가야 그날
외발로 선 내 꿈이 착지한 곳이 보일까
그제야 보았다
사금파리를 줍는 동안
바다의 숨결에 떨던
따뜻한 노랑
쓸쓸한 파래빛 바다의 눈
바람 깊은 돌밭 그루터기에서도
숨비소리 내는 애기제비꽃 있다는 것
생의 길은
파도처럼 바람이 품는 것
파도의 생은
몰래몰래 끓는 소리 모아 거대한 위안이 되는 것
파도 없는 어제가 어디 있으랴
파도 없는 하루가 어디 있으랴
_《해녀들》(문학동네, 2017)
ᆢ
생의 길을
파도처럼 바람이 품어
파도의 생이 유지되듯
그 파도의 생 또한 위안이 되어
우리의 삶도 유지되리라.
오늘도 그 파도에 흽쓸리지 아니하기를!!
카페 게시글
시사랑
파도 없는 오늘이 어디 있으랴 [허영선]
초록여신
추천 0
조회 59
23.05.03 06:53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