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2017년 11월 15일 새벽 4시30분 운명하셨다. 장례식이 끝나고 아버지 영정사진 아래를 장식했던 울긋불긋한 국화를 한줌 들고 영구차를 탔다. 향기가 강한 국화의 향이 차안에 정적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그 동안 세간에는 화환이 재사용되는 일이 소비자들은 기분 나쁘다고 했는데~ 동창회에서 보내오고 또 재향군인회서 보내오고 직장에서 보내온 화환은 고인의 관속에 흩뿌려졌다. 장례지도사의 안내에따라 초대된 교회 목사와 성도들의 찬송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삼일은 갔다. 이렇게 한줌 재가 되서 남양주에 있는 납골당에 안치된 아버지를 두고 발길을 돌리기 아쉬웠다. 육이오 참전용사로 표창을 받고 군인으로 10년을 젊음을 보낸 여든여덟살의 아버지는 구십까지 사실 줄 아셨다. 국군묘지로 가시기에 너무 먼 거리밖에 장지가 없었다. 가까운 곳은 5년정도 대기하면 가능하다는 장례행사에서 나온 지도사에 말에 또 노환의 어머니를 생각한 맏아들의 생각으로 회장터를 양재동으로 정하고 화장터와 납골당이 언계된 상품처럼 스케줄이 정해졌다. 아버지는 생전에 항상 젊은이처럼 강인하시기만 했다. 그래서 막내딸의 물음에 아버지는 구십까지는 사시고싶다고 하셨던것같다. 이제 이번 주가 되면 한달인데 오늘 사망신고를 동사무소에서 하고 오빠는 돌아왔다. 한줌 내손안에 들고 있던 꽃은 아직도 국화향을 내며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어제일처럼 아버지는 영정사진속에서 우리를 바라보시는것 같다. (아래 꽃은 장례식장 꽃이고 오늘까지 열심을 다해 피고 있습니다.)
첫댓글 고인의명복을빕니다.!
저도.임실호국원에모셨는데.이천호국원이있는걸로알고있는데?
이천은 다찼고 다시 확장하는데 원주민과의 타협점을 찾아야해서 5년예상한답니다.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관심 갖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