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주어진 권리 정치적 중립성 접근 교육계 매뉴얼 마련
새해 벽두부터 2020년 4월15일 총선을 앞두고 패스트트랙으로 처리된 선거법 개정안 속에 감춰진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만 18세 이상 선거권 부여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중요한 문제가 충분히 논의되고 공론화되기는커녕 장막 속에 가려져 있었다. 교총에서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려고 시도했지만 연동제와 선거구 문제에 가려 공론화되지 못했다. 일부 양심적인 여론이 초점화할 거란 기대도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대부분이 18세 이상의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 우리도 19세가 아닌 18세 이상에게 선거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18세 이상에 선거권이 주어지는 나라는 만 18세이면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는 나이가 되거나 취업 상태가 된다. 우리의 경우는 취학연령을 조정하거나 학제를 수정해야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 수 있다. 현재로선 고3 학생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면 헌법 제31조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최근 교육의 정치적 편향성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인헌고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학생들을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작금에 통과된 선거법 개정안은 당사자인 우리 학생들이 준비할 시간과 과정이 생략된 채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권리다. 이와 같이 준비의 과정이 생략된 채 주어지는 권리는 축복이 아니라 해악을 줄 가능성이 높다. 올바른 권리 행사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이용되거나 도구화될 가능성이 높다.
자유와 권리에는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 선택의 자유를 누리려면 선택의 능력을 갖춰야 하고 권리의 행사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준비 없이 주어진 권리의 칼자루는 우리 학생들을 해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우리 학생들과 교사들이 선거법 문제로 선거사범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신성한 선거권이 바르게 행사될 수 있도록 선거권이 갖는 의미와 책임을 우리 학생들에게 분명히 가르쳐야 하고 우리 학생들이 민주정치의 주권자로서 그에 걸맞은 인식과 실천 능력을 갖추도록 교육해야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일들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청소년들의 건강한 선거권 행사를 위해 지금부터 노력해야 할 시급한 과제들이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4월15일에 실시되는 총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론화 과정을 거쳐 공정한 게임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규정과 매뉴얼을 확정하고 교육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교육공동체와 국민이 믿을 수 있는 규정을 도출하기 위한 절차와 과정을 가동시켜야 한다. 교총은 학교 및 교실의 선거운동과 정치활동 차단 방안으로 공직선거법과 지방교육자치법 등 관련 법을 개정해 교실 내 선거운동과 정치활동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조항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지도 매뉴얼을 제시할 것을 주장한다. 이와 같은 절차와 과정을 통해 정치 및 시민사회 세력이 학교 현장에 개입하거나 연계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장기적인 처방으로 학제의 개편과 초·중·고교의 올바른 정치교육 방향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모아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과 청소년의 미래를 위해 제대로 된 정치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교육현장에 간단치 않은 문제와 과제가 던져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