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냄을 다스리는 법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너의 사지 마디마디를 끊는다 해도, 스스로 마음을 거두어서 성을 내어 한을 품지 말라. 또 입을 보호하여 나쁜 말을 하지말라. 만약 성내는 마음을 제멋대로 놓아두면 스스로가 도를 장애하여 공덕의 이익을 잃고 만다. 참는 것이 덕이 되는 것은 계를 가지거나 고행하는 것으로도 능히 미칠 수가 없다. 능히 참음을 행하는 자는 곧 힘 있는 대인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 만약 더러운 꾸지람의 독을 참고 받아들이기를 마치 감로수를 마시듯이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에 들어간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냄의 해는 모든 선법을 파괴하며, 좋은 명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금세와 후세의 사람들이 기쁘게 보지 않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성내는 마음은 맹렬히 타오르는 불보다 심하다. 항상 막고 보호하여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된다. 공덕을 겁탈하는 도적은 성냄보다 앞서가는 것이 없다.
아첨을 다스리는 법
아첨하는 마음은 도와 더불어 서로 어긋난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 마음을 정직하고 질박하게 해야 된다. 아첨은 단지 속임수이니, 도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올바르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음을 단정히 하여 질박하고 정직함을 근본으로 해야 된다.
적정원리(寂靜遠離)
적정무위(寂靜無爲)의 안락을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안팎의 심란(心亂)과 시끄러움을 떠나 혼자서 한가한 곳에 있어야 한다. 세간 일에 얽매이고 집착하여 여러가지 괴로움에 빠지는 것은 마치 늙은 코끼리가 진흙 수렁에 빠져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을 멀리 떠남(遠離)이라 한다.
정진
만일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비유컨대 작은 물방울도 쉬지 않고 떨어지면 돌을 뚫는 것과 같다. 만약 수행인의 마음이 게을러 정진을 쉬게 되면, 마치 나무를 비벼 불씨를 얻으려 할 때 나무가 뜨거워지기도 전에 그만두는 것과 같다. 비록 아무리 불씨를 얻으려고 하더라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정진(精進)이라 한다.
선정
만일 마음을 거두면 마음은 곧 定의 상태를 이룰 것이다. 마음이 평정상태(定)로 있는 까닭에 세간의 생멸하는 존재 양상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항상 모든 선정을 부지런히 닦아 익혀야 한다. 만약 선정을 이루면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물을 아끼는 집에서 둑이나 못을 잘 관리하는 것과 같이, 수행자도 또한 그러하여 지혜의 물을 잘 보존하기위해 선정(禪定)을 잘 닦고 그 물이 새지 않도록 한다. 이것을 「정(定)」이라고 한다.
지혜
지혜가 있으면 탐착이 없어지는 것이니, 항상 스스로 성찰하여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법 중에서 능히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다. 만약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수행자도 아니며, 또 재가신자도 아니므로 무엇이라 이름할 수 없는 것이다. 진실한 지혜는 곧 노병사(老病死)의 바다를 건너는 견고한 배이고, 무명의 어두움을 밝히는 크나큰 등불이며, 모든 병든 자의 좋은 약이고, 번뇌의 나무를 베는 예리한 도끼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문·사·수(聞․思․修)의 세가지 지혜로써 자신을 더욱 증익(增益)해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지혜의 비춤을 가졌다면, 비록 그것이 육안이라도 그는 밝게 보는 사람이다. 이것을 「지혜」라고 한다.
희론하지 않음
여러가지로 무익한 희론(戱論)을 일삼는다면 그 마음은 산란해 진다. 만일 너희들이 적멸(寂滅)의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오직 희론으로부터 오는 환난을 잘 멸해야 한다. 이것을 「희론하지 않음」이라고 한다.
모든 공덕에 항상 한 마음으로써 모든 방일을 버리기를 마치 원수인 도적을 여의듯해야 한다. 크게 자비로운 세존이 설하신 바의 이익은 모두 이미 극진한 것이니, 너희들은 오로지 부지런히 그것을 행하라. 혹 산간이나, 혹은 비어 있는 습하고 풀이 무성한 곳이나, 혹은 나무 밑에서나, 한가하고 고요한 방일지라도 받은 바의 법을 생각하여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며, 항상 스스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닦아야 한다. 한 일도 없이 헛되이 죽으면 뒤에 후회함이 있을 것이다. 나는 마치 훌륭한 의사와 같이 병을 알아 약을 베푸나니, 복용하고 복용하지 않는 것은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 또 나는 잘 인도하는 길잡이와 같아서 사람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과 같다. 그것을 듣고 행하지 않는 것은 인도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다.
3)주의사항
①얻으려고 하지마라
이와같이 수행한다면 누구나 훌륭한 수행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수행하더라도 몇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얻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앞에서 수행을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닦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성은 밝게 빛나고 있으며 진실은 이미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닦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수행은 얻는 것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에 속하는 것이다. 무엇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한 이미 수행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린다. 비우고 버리는 속에서 묻득 본성광명이 그대로 밝게 비추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부처를 지니고 부처에게 절하지 말며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염하지 말라. 부처는 경을 읽지도 않으며, 부처는 계를 가지지도 않으며, 부처는 계를 범하지도 않으며, 부처는 지킴도 범함도 없으며, 선과 악을 짓지도 않는다. 만일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곧 부처일 것이다. 성품을 보지 못한채 염불을 하거나 경을 읽거나 재계를 지키거나 계를 지킨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다. 염불은 왕생의 인과를 얻고, 경을 읽으면 총명해지며, 계를 지키면 하늘에 태어나고 보시를 하면 복스런 과보를 받거니와 부처는 끝내 찾을 수 없느니라.<달마혈맥론>
그러므로 수행을 하면서 이것을 한다는 생각이 붙으면 안된다. 그러면 곧 나는 수행한다는 상을 갖게 되고 너는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붙어 교만해지기 쉽다. 또한 모든 것으로부터 해탈하고자 하는 것이 수행의 목적인데 다시 수행에 묶여 버리는 어리석음을 짓게 되게 된다. 성품의 참 모습은 본래 나와 너도 없고, 오고 감도 없으며, 늘어남과 줄어듬도 없으니, 먼저 성품을 보지 않고서는 무언가 얻으려는 생각, 쌓아 간다는 생각을 여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품을 보지 못한 수행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아서 결코 도에 이를 수 없다. 어디에도 걸림없는 참성품을 보아야 무위의 행이 가능한 것이다. 그 전에는 모든 노력이 다 유위를 벗어나지 못하니 유위로써는 생사를 벗어날 수 없다. 대나무 그림자가 마당을 쓸어도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것처럼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