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조금 짤렸는데 건륭제하고 유용이라는 사람이 민가를 돌아다니는 중인가봅니다;)
건륭제가 궁중에만 있다가 처음 민간에 나온 때이므로 민간에 있는 모든 것이 신기해 보였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꼬치꼬치 묻고 다니고 민간의 경치와 시장의 물건들을 마음껏 구경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고 넓은 초원과 들판도 구경하다가 어느덧 해가 저물어 지치고 배고프게 되었다.
그리하여 건륭제와 유용은 인근 마을에서 식사를 얻어먹기로 하고 한 노인에 집에 숙식을 부탁하였다. 노인이 보아하건데 그리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이므로 숙식을 제공하기로 하였다.
노인은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딸에게 식사준비를 하게 하였다.
건륭제가 보기에도 노인의 딸이 매우 단정하고 깔끔해 보였으며 예의까지 바른 소녀였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하룻밤을 머문 건륭제와 유용은 이튿날 황궁으로 들어가기로 했는데,
노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건륭제가 말하길 노인의 딸을 양녀(養女)로 삼고 싶다고 하였다.
이에 노인이 기뻐하며, 딸을 건륭제에게 인사시키며 수양아버지라고 소개시켰다.
그러면서 건륭제가 말하길
"만약 네가 어려운 일이 있거든 북경에 와서 나를 찾거라. 나는 황제...."
그 때 유용이 헛기침을 하며 건륭제의 말을 가로막으며,,
"황가대원(皇家大苑 : 황궁이라는 뜻)을 북경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우리들을 찾을 수 있단다..."
건륭제가 맞장구를 치며 소녀에게 수양딸이 되었다는 징표로 노란 손수건을 주었다.
그리고 건륭제와 유용은 그 집을 떠났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화북지역에 심한 가뭄이 들어 흉년이 났고 부녀는 가난을 이기지 못해
예전의 기억을 생각해내고 소녀의 수양아버지를 찾기위해 북경에 가기로 결심하였다.
애당초 그들은 너무나 부주의했기에 수양아버지의 성명과 어느거리에 사는지조차도 물어 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래서 건륭제가 남긴 단서인 "황가대원(皇家大苑)"을 찾으려고 북경을 헤메고 다녔으나 그들은 "황가대원(黃家大苑 : 황씨의 집)"으로 잘못 알아들었는지라 그 많은 황씨들중에 누구인지도 몰랐고 어떤 황씨집에 가서는 문전박대조차 당하기도 했다.
북경에 연고도 없었고, 돈도 다 떨어지고 먹을 것도 없는지라 낮에는 길거리에서 구걸하고 저녁에는 노숙자 신제를 면하기 어려운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가 노인은 병에 걸리게 되었고, 소녀는 절망하여 다리 밑에서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자신마저 죽으면 노인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지라 자살도 못하고 다리 밑에서 엉엉 울기만 하였다.
마침 조정에서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유용이 다리밑을 지나다가 울음소리를 듣고 소녀를 보게 되었으니, 마침 낯이 익은 소녀였다.
마침내 유용이 예전에 봤던 황제의 수양딸임을 기억해내고 자초지종을 물으니 소녀가 그간의 일을 고하였다.
이를 측은히 여긴 유용은 소녀를 황제에게 데리고 가기로 결정하고 이튿날 건륭제에게 이 일을 고하였다.
그러나, 건륭제는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고, 별 염두에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양딸이라고 자신 앞에 나타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게다가 자신이 신분이 낮은 시골사람을 친척으로 두었다는 얘기가 황궁 안에서 수군거려질까봐 걱정하였다.
그러나 증표인 노란 손수건(노란색은 황제의 상징색)이 있고, 유용이 증인인데 소녀가 수양딸이 아니라고 발뺌할 수가 없어, 궁궐 안에 처소를 마련해 주고 소녀와 노인이 살게 하였다.
소녀와 노인은 이전보다 훨씬 풍족한 곳에서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지냈으나
황궁의 까다로운 예절이 그들을 괴롭혔고, 기회주의자가 우글대는 황궁에서 하루도 마음 편히 살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 노인이 병들어 죽게 되면서 소녀 혼자 외롭게 궁중에서 살게 되었다.
늘 외롭게 혼자 고독하게 살면서 황비들과 공주들의 질투어린 눈초리와 시기, 수군거림을 견뎌야 했고, 건륭제는 그 소녀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마음의 병이 깊이 들게 된 소녀는 마침내 죽게 되었는데, 유언으로 먼저 죽은 노인이 묻힌 고향에 묻어달라고 하였다.
건륭제가 소녀의 죽음과 유언을 유용에게 전해듣고 말하길
"그냥 뭐 대충 묻으면 될 것을.."
이러고 말하자, 유용이
"그러면 안 됩니다. 친딸이 아닐지라도 폐하께서 직접 수양딸로 삼으신 분입니다. 게다가 증거물도 있지 않습니까? 장례를 대충 치르면 안 되고 공주의 예에 따라 치르십시오." 라고 말했다.
건륭제는 못마땅했으나 유용의 따가운 눈초리와 듣고 보니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소녀의 무덤을 취미로(娶薇路)에 묻어주라고 했으니 여기에 소녀의 무덤을 가리켜 후세사람들이 "공주묘(公主墓)"라 하였다.
위의 글은 퍼온 글이고요, 중국의 이런류의 영화나 드라마는 현실을 바탕에 둔 가상의 사건을 극화한 것입니다.
건륭제 못됐죠?ㅜㅜ
이렇게 안타까운 이야기가 황제의 딸로 각색되어서 만들어졌다니 놀라울 따름이네요....
이거안본사람나밖에없나
다들 황제의 딸 엄청 좋아하시네요.ㅋㅋ 저는 중학교때보고 완전 빠져서 결국 나중에 중국으로 유학까지 왔어요.ㅋㅋ
제 친구도 황제의 딸 완전 좋아하다가 중어중문학과 갔어요 ㅋㅋ
ㅋㅋㅋㅋ저도 황딸덕분에 중문과오게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황제의딸 옛날에 i net인가 뭐더라 어쨌든 거기서 맨날해줬었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또보고싶다
노비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찰쌱찰쌱이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미칠거가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꼬릿말이 더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쩐에 이얘기듣고 슬퍼서 눈물날뻔 ㅠ.ㅠ
간시니~ 가안신니이이이~ 간세양와~ 쏘샤느 놔네~ 이즈 욜라미~ 쑈니니 노화우 미~ 콩샤 공공 고샤노 샤샤네 쏘시느꼴랑도 친미~ 하이포트셰숄라님마는 쉐사네~ 오황도 농마네 쇼신드쇼~ 하이포트셰숄라님마는 쉐사네~ 오황도 농마네 쇼신드쇼~쇼신드 쇼신드 쇼~
~~~~~ 간시에 디~~~~~ 간시에 양꽝 자오쎠츠다디 쯔총여우라늬~~스츠삔다하오메이리~~~이치 피아보 이치유어 랑쉐이 ~~~ 탈란다 티엔미!! 하이커꾸 스으커란 티엔커벙 디커리에 워멘찌엔 빙저찌엔 쇼우첸져쇼우~~ 하이커꾸 스으커란 티엔커벙 디커리에 워멘찌엔 빙저찌엔 쇼우첸져쇼우첸져쇼우첸져 소우첸져 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웃김 아 진짜 나 이거 수십번도 더봣는데 막 날라댕기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이가 없네 진자;ㅋㅋ
진짜재밋엇는데ㅠㅠㅠㅠㅠㅠㅠ님들너무우껴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