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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笑 屠 와 毒 婆
1.
엽단풍의 몸이 약간 떨렸다.
"자오분심독? 천하오대극독(天下五大劇毒)중의 바로
그 자오분심독 말이오?"
유동립은 자신이 땀을 닦고 있던 수건을 흔들어
보였다.
"그렇소. 조금전에 내가 이 수건에 가지고 있다가
당신에게 날려 보냈지. 어떻소? 멋진 솜씨 아니오?"
유동립은 자신이 생각해도 통쾌하기 그지 없다는 듯
작은 눈이 감겨질 정도로 활짝 웃었다.
"하하...하지만 당신은 조금도 억울해 할게 없소.
당신처럼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다가 쓰러진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까 말이오."
엽단풍은 안색이 침울하게 변한 채 그를 응시하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당신은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몇 사람이나
해쳤소?"
"별로 많지 않소. 당신까지 모두 백 하고도 일흔 두
명 뿐이오."
"백 일흔 두 명이나 된단 말이오?"
엽단풍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동립은 태연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걸 갖고 당신답지 않게 무얼 그리 놀라는거요?
나는 이미 일곱 살 때부터 살인을 했으며 스무 살이
되기전에 이미 백 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소. 나이를
먹은 다음부터는 그래도 숫자가 오히려 줄은 셈이지."
엽단풍은 잠시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눈을
반짝 빛냈다.
"일전에 무림에 당신과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소."
"그게 누구요?"
"소도(笑屠)와 독파(毒婆)요."
유동립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소도와 독파?"
"그렇소. 이들은 부부인데 소도는 웃으면서 사람을
죽이는 인물이고 독파는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독살시키는데 명수(名手)요. 당시 이들의 명성은
그야말로 자자해서 누구나가 이들을 만나는 것조차
두려워 했소."
유동립은 손바닥을 치면서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당신이 정말 잘봤소. 내가 바로 소도와
독파의 하나뿐인 아들이오."
엽단풍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정말로 당신이 소도 유불첨(兪不沾)과 독파
조벽사(趙碧絲)의 자식이란 말이오?"
좀처럼 놀라지 않던 엽단풍도 이때만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소도 유불첨과 독파 조벽사는 정말 무서운
인물들이었다.
그들 부부가 강호에서 횡행(橫行)할 당시에는
소도와 독파가 나타났다는 말만 들어도 그 일대의
무림인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칠 정도였다.
그들의 손에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수는 가히 천문학적인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소도의 웃음과 독파의 하얀 손은
염라대왕보다도 무섭다는 노래까지 퍼질 정도였다.
나중에 그들은 혈악에 가입을 해서 십대고수중
이인(二人)이 되었다.
소도는 십대고수중의 서열 이위가 되었고, 독파는
칠위였다.
자오분심독은 독파가 즐겨사용하던 오대극독중의
하나였는데 일단 중독되면 매일 자시(子時)와
오시(午時)에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느끼다가 삼일 안에 절명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극독이었다.
엽단풍은 한동안 유동립을 쳐다보고 있다가 문득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나는 오늘 한바탕 횡액(橫厄)을 면치
못하겠구나."
유동립은 비곗살을 출렁거리며 웃었다.
"하하...이게 모두 당신이 자초한 일이니 이제와서
누굴 탓하겠소? 정 탓하려거든 나를 만난 당신의
불행을 탓하구려."
이어 유동립은 느릿느릿 엽단풍을 향해 다가갔다.
"나는 우선 당신의 배를 갈라 당신의 간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확인해 볼거요. 그 다음에는 당신의 혀를
잘라 무엇으로 만들어 졌길래 그렇게 함부로 혀를
놀렸는지 알아보겠소."
유동립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배시시 웃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당신의 머리통을 헤집고 정신이
제대로 박혔는지 분석해 볼 생각이오."
엽단풍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나는 간의 크기를 확인하기도 전에 죽고
말거요."
"하하...혹시 모르지. 당신의 목숨줄이 의외로 질겨
내가 머리통을 뒤져볼 때까지 살아 있을지."
엽단풍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소?"
"흐흐...당신의 배짱은 정말 알아줄만 하오. 하지만
내 손에 배가 찢어지면 생각이 약간 달라질걸."
유동립은 엽단풍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천천히
뚱뚱한 양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얼굴에 징그런 미소가 떠올랐다.
"당신은 정말 운이 없소, 엽단풍. 하필이면 나를
만났으니 말이오."
이어 그는 양 손으로 엽단풍의 배를 찔러왔다.
바로 그때였다.
지금까지 한숨을 내쉬며 우두커니 서 있던 엽단풍이
유동립을 내려보며 씨익 웃었다.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었소."
동시에 그의 커다란 주먹이 번개같이 유동립의 턱을
가격했다.
유동립으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는 주먹이었다.
쾅!
벼락이 치는 듯한 음향이 터지며 유동립의 뚱뚱한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가 떨어졌다.
"크윽..."
유동립은 턱뼈가 부서져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는 고통과 경악으로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채
바닥에서 바둥거리며 엽단풍을 올려보았다.
엽단풍은 천천히 오른 발을 들어 그의 뚱뚱한
배위에 올려 놓았다.
"당신은 정말 운이 없소, 유동립. 하필이면 나를
만났으니 말이오."
유동립은 얼굴의 반쪽이 박살난 고통도 잊은 채
실성한 듯 소리쳤다.
"어...어떻게 이럴 수가...? 자오분심독에 중독되면
내공을 쓸 수 없을텐데..."
엽단풍은 오른발을 그의 배위에 올려놓은 채로
담담하게 웃었다.
"당신은 아직 모르는게 너무 많군. 내가 익힌
내공은 어떤 상태에서도 소멸되지가 않는 것이오.
혈도가 제압당해도, 독에 중독되어도 마찬가지요."
그는 자신의 오른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불쑥
내밀었다.
"잘 보시오."
유동립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자신의
코앞에 내밀어진 엽단풍의 가운데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점점 시커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그것은 검은 색으로 변했다.
파스스...
검은 색으로 변한 손가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매퀘한 악취가 풍겨나왔다.
연기가 짙어짐에 따라 검은 색으로 변했던 손가락이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
잠시후, 연기가 모두 사라지자 엽단풍의 손가락은
처음과 마찬가지의 색깔이 되었다.
"사...산탁취정(散濁聚淨)...!"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유동립이 실성한 듯
부르짖었다.
엽단풍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놀라운 안목이군. 나는 내공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당연히 산탁취정을 할 수가 있지."
산탁취정이란 전신의 진원지기(眞元之氣)를
끌어올려 독기(毒氣)를 제거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비록 그 효과가 탁월했으나 진기의 소모가 심하고
반드시 내공이 완전해야만 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다...당신이 익힌 무공이 무엇이기에 자오분심독에
중독되고도 소멸되지 않았소?"
유동립은 여전히 의혹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엽단풍은 그의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경하기란 것인데 들어 보았소?"
유동립의 눈이 부릅떠졌다.
"겨...경하기..."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엽단풍을
올려다 보았다.
"경하기가 절정에 이르면 그런 경지에 오른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는데...당년의 엽철흔조차도
경하기를 절정까지 익히지는 못했다고 하는데 당신이
그를 능가했단 말이오?"
"능가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고 아뭏든 내 수준이
절정에 이른 것만은 사실이지."
"저...정말 믿어지지 않는구나.."
유동립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엽단풍은 천천히 그의 배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에
힘을 가했다.
"이제 당신은 궁금증이 모두 풀린 모양인데 더 이상
물어볼 것이 없다면 지옥에나 가보는 것이 어떻겠소?"
우드득!
그의 발에 공력이 실어지자 유동립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자...잠깐..."
유동립은 피를 게워내면서도 사력을 다해 외쳤다.
엽단풍은 막 그의 배를 누르다 말고 물었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아있소?"
유동립은 그의 발에 배를 눌리자 숨을 쉬기
어려운지 심하게 헐떡거렸다.
"다...당신이 이곳으로 온 것은 혹시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오?"
엽단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런데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소?"
유동립은 일그러진 얼굴로 정신없이 말했다.
"이...이곳은 내가 책임자요. 만일 내가 죽는다면
당신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찾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없을거요."
엽단풍은 발에 실었던 공력을 거두었다.
"당신은 말을 무척 흥미있게 하는구료. 좀더
자세하게 말해보시오."
엽단풍의 발에 누르던 압력이 사라지자 그제서야
유동립은 한숨돌린 표정이었다.
하나 엽단풍의 발은 여전히 그의 아랫배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유동립은 그 발을 내려보다가 나직하게 탄식을
했다.
"내가 설마 남의 발에 짓밟히는 신세가 될 줄은
몰랐군. 아버님이 이 꼴을 보시면 무어라고 하실까?"
엽단풍은 히죽 웃었다.
"남들이 안 해본걸 해 본 기분이 어떠냐고 묻겠지.
그보다 당신이 없으면 찾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건 무슨 말이오?"
유동립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찾고 있는 사람이 이곳에 수감된 죄수라면
그 죄수들은 지하감옥에 있소."
"그건 나도 알고 있소."
"그 지하감옥의 출입구는 오직 나만이 열 수가
있소."
"아! 그거 참으로 다행이구료."
엽단풍은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나 사실은 이미 허평에게 들어서 어느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몰랐던 것은 오직 유동립의
내력 뿐이었다.
엽단풍은 시치미를 뚝 떼고 얼른 발을 치우며
유동립의 몸을 일으켜 주었다.
"하마터면 내가 이곳의 주인어른께 큰 실례를 할뻔
했구료. 어디 다친 곳은 없소?"
엽단풍이 그의 몸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주며
제법 자상한 어조로 물어보자 유동립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유동립도 심기(心機)라면 어느 누구한테도 뒤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자는 정말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엽단풍은 그의 몸을 털어준 후 다정하게 팔짱을
끼었다.
"자. 그럼 곡주(谷主)나으리. 지하감옥을 향해
가보실까?"
유동립은 그의 팔에 팔짱을 끼우자 도저히 양 팔을
잡아 뺄 수가 없었다. 잡아빼기는 커녕 손가락조차
마음대로 움직여 지지 않았다.
'이 놈은 무슨 놈의 힘이 이렇게 세냐?'
유동립은 할 수 없이 그의 팔에 양 팔을 내맡긴 채
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자. 지하감옥이 어느 쪽에 있소?"
유동립은 침울한 표정으로 전면을 가리켰다.
"저 앞에 있는 가장 커다란 누각이오."
엽단풍은 유동립의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그 누각을
향해 걸어갔다.
가 보니 확실히 이곳에서는 가장 크고 호화로운
누각이었다.
"이곳은 당신이 거주하고 있소?"
유동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엽단풍은 누각의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거듭
탄성을 토해냈다.
"정말 잘지었군. 아주 멋있소. 나도 이런 곳에서
살았으면 소원이 없겠군. 이건 정말 환상적이오.
당신은 정말 복도 많은 사람이오. 왜 당신이 이렇게
살이 쪘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료. 이런 곳에서
살면 누구라도 살이 찌지 않겠소? 아! 바닥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저절로 몸이
앞으로 나아갈 것 같구료..."
아뭏든 엽단풍이 어찌나 떠들어대던지 유동립은
귀가 따가워서 당장에라도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양 팔은 옴짝달짝을 할 수가 없고 엽단풍의 입은
닫힐 줄을 모르니...
유동립은 한 시라도 이 소음공해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재빨리 그를 이끌고 누각으로 들어갔다.
누각안은 그야말로 호화의 극치였다.
유동립은 엽단풍이 정신없이 떠들어 댈 것이 두려워
황급히 턱으로 왼쪽에 있는 대청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야 하오."
엽단풍은 그를 질질 끌다시피하며 대청으로 향했다.
향하면서도 그의 입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저것은 향지국(香支國)에서 나는 특이한
양탄자로군. 아...또 저것은 운남(雲南)
대리국(大里國)의 특산인 흑오석(黑烏石)...저건 또
무엇이냐? 에라...어디서 났는지는 모르지만 아뭏든
굉장히 예쁜 꽃병에...저 그림...저 탁자...저
자기(瓷器)...저 화분...저 쓰레기더미...여자빼놓고
없는게 없군."
유동립의 얼굴이 괴상망측하게 변햇다.
그는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얼굴로 그가
주섬주섬 섬기는 말을 들으며 어서 빨리 대청안으로
들어가기만을 학수고대했다.
대청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그는 급히 말했다.
"우측에 걸려있는 족자의 뒤를 보면 고리가
나올거요. 그 고리를 좌측으로 두 번 돌리시오.
그러면 지하감옥의 출구가 나올거요."
그런데 왠일인지 엽단풍은 그 탁자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히죽 웃기만했다.
"일전에도 누군가가 그런 식으로 말해서 따라했는데
아주 신통한 현상이 벌어지더군."
그는 유동립을 이끌고 족자로 다가갔다.
"그 일을 겪은 다음에 느낀건 앞으로 그런 일을 할
때는 당사자를 직접 시키는게 제일 현명하다는
것이지. 그러니 당신은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할게
없소."
엽단풍은 족자를 뒤로 젖혔다.
과연 어른의 주먹만한 쇠로 된 고리가 나왔다.
엽단풍은 팔짱을 끼었던 팔을 풀며 친절하게도
유동립의 손을 잡고 그 고리에 쥐어 주었다.
"자. 이제 돌려 보시오. 바닥이 벌어지나 천정이
떨어지나 어디 한 번 봅시다."
유동립은 쓴웃음을 흘렸다.
"당신이 이렇게 소심한 사람인줄은 몰랐소. 전혀
천하광자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는구료."
엽단풍은 빙그레 웃었다.
"이게 다 여기와서 배운거요. 나도 그전에는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선량한 성격의 소유자였소."
유동립은 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린 후 그
고리를 잡고 왼쪽으로 두 번 돌렸다.
그러자 크르릉!하는 음향과 함께 대청의 중앙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엽단풍은 유동립의 어깨를 탁 쳤다.
"과연 당신은 신용이 있군. 앞으로 당신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겠소."
그는 유동립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계단으로 향했다.
"자. 어서 내려갑시다. 내가 찾는 사람만 발견하면
즉시 당신을 자유롭게 놓아 주겠소."
유동립은 그에게 어깨를 잡히자 아까보다도 더
움짝달짝을 할 수가 없었다. 조금전에는 그래도 양
팔만 움직일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아예 상반신
전체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는 마치 나무로 만든 인형처럼 상체는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 두 다리만 움직여 엽단풍과 함께
지하계단을 내려갔다.
지하계단은 모두 열 다섯 개였다.
지하로 내려가자 지하실 특유의 쾌쾌한 내음이
진하게 풍겨왔다.
아래로 내려서자 길다란 통로가 보였다.
통로의 저쪽 끝에는 쇠창살로 만든 감옥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저곳이오?"
유동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두 사람은 사이좋게 그곳으로 다가갔다.
쇠창살은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굵었다. 거의
어른의 팔뚝만해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자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우라지게도 굵군. 이건 창살이 아니라 완전히
기둥이로군."
엽단풍은 투덜거리며 쇠창살안을 들여다 보았다.
쇠창살안은 크기가 십 여장쯤 되는 넓직한
석실이었다.
석실은 창문도 뚫려 있지 않은 완벽하게 밀폐된
곳이었는데 그 안에는 동그마니 두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초라한 몰골의 중년남녀였다.
남자는 이목구비가 수려하고 전신에 고고한 기상이
넘쳐 흐르는 사십대의 인물이었다.
머리는 비록 흐트러지고 오랜 동안의 감옥생활로
누추한 몰골이었으나 한 줄기 비범한 인상은 숨길
수가 없었다.
여자는 남자에 비견될만큼 아름다운
중년부인이었다.
얼굴윤곽이 아주 또렷하고 몸매도 나이답지 않게
풍만하면서도 굴곡이 뚜렷해서 젊은 여자들 못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많은 남자들의 눈길을 받았을 게
분명했다.
그녀 또한 지치고 피곤한 표정이 역력했다.
엽단풍은 그들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들 뿐이오?"
유동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가 이 곡을 맡은 후 죄수들이라고는
오직 이들뿐이오."
"당신은 언제부터 이 곡을 맡았소?"
"올해로 삼 년째요."
엽단풍은 잠시 침음했다.
이번에는 유동립이 물었다.
"찾고 있는 사람이 저들이 아니오?"
"글쎄...잘 모르겠소."
"모르겠다니...그럼 찾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단 말이오?"
유동립이 어이없다는 듯 엽단풍을 바라보자
엽단풍은 히죽 웃었다.
"아직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소. 하지만 물어보면 금새 알 수 있겠지."
그때 감옥속의 두 남녀는 그들의 말을 들었는지
고개를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엽단풍은 그들 중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귀하의 이름을 알 수 있겠소?"
남자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엽단풍을 빤히 응시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몸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
엽단풍은 어리둥절해서 여인을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여인도 고개를 저으며 손으로 자신의 입과
다리를 가리켰다.
엽단풍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유동립을
돌아보았다.
"저들의 혈도를 제압했소?"
유동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거요."
"아마라니?"
"그들은 이곳에 올 때부터 저런 상태였소.
누군가에게 혈도를 제압당한 모양인데 그 때문인지
무공도 전폐되었고 입을 열지도 못하는 것 같소."
엽단풍은 잠시 생각하다가 유동립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시오."
"무얼 말이오?"
"뭐긴. 열쇠말이오. 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봐야겠소."
유동립은 망설이다가 허리춤에서 금으로 만든
어린아이의 손바닥만한 열쇠를 꺼냈다.
엽단풍은 뺏듯이 그 열쇠를 움켜쥔 채 쇠창살로
다가갔다.
쇠창살의 한쪽에는 보기만해도 기가 질릴 정도로
엄청나게 큰 자물통이 매달려 있었다.
엽단풍은 나직히 혀를 찼다.
"이 자들은 쇠가 남아도나보군. 이럴바에야 이곳을
아예 쇠로 뒤집어 씌우는 게 낫겠군."
열쇠는 자물통에 꼭 맞았다.
추르릉!
쇠끼리 부딪치는 마찰음과 함께 두꺼운 쇠창살문이
열렸다.
엽단풍은 열쇠를 빼내 품속에 갈무리한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두 명의 남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보아하니 몸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다.
엽단풍은 그들중 남자에게로 먼저 다가갔다.
"어디 봅시다. 어느쪽 혈도가 제압당했소?"
한데 그가 막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 할
때였다.
쿠르릉!
나직한 굉음이 울리며 석실이 흔들렸다.
엽단풍이 움찔하여 몸을 돌리는 순간 유동립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엽단풍! 네놈은 또 내게 속았구나!"
엽단풍은 앞을 바라보다 몸이 굳어버렸다.
쇠창살문은 그대로 열려 있었다.
하나 언제부터인지 그 쇠창살문 앞에 또 다른
쇠창살이 내려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쇠창살은 먼저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굵고
튼튼한 것이었다.
2.
쇠창살의 간격은 사람의 손바닥이 간신히
통과할만큼 촘촘해서 제아무리 신묘한
축골공(縮骨功)을 익혔다해도 절대로 통과할 수가
없었다.
유동립은 그 쇠창살의 밖에서 득의만면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흐흐...엽단풍. 설마 이곳에 제 이의 쇠창살이
설치되어 있는 줄은 몰랐지?"
엽단풍은 그 쇠창살의 굵기를 어림하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제아무리 천하의 보검(寶劍)이라도 그 쇠창살에는
흠집 조차 내지 못하겠군. 보아하니 이번에는 정말로
당한 것 같구나."
"흐흐...이를 말이냐? 네 놈은 그곳에서 평생을
ㅆ어야 할 것이다."
엽단풍은 한숨을 푹푹 쉬다가 자신의 뒤에 있는 두
명의 남녀를 가리켰다.
"이들은 누구냐? 이들도 가짜냐?"
"그들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 아까 말한대로
내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있었던 자들이니까.
하하...그들도 동료가 하나 더 늘었으니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동립은 음침하게 웃으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럼 그들과 정다운 대화나 나누고 있거라. 나는
이 삼일 후에 네 놈이 완전히 기력(氣力)이
탈진되었을 때 다시 오겠다. 하하..."
유동립은 광소를 터뜨리며 밖으로 걸어나갔다.
엽단풍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저 뚱뚱보녀석을 아예
없애버리는건데...나는 너무 마음이 인자해서
탈이로군."
엽단풍은 멀어지는 유동립의 뒷등을 바라보며
탄식을 했으나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엽단풍은 한숨을 내쉬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우선 이들이 누구인지나 알아봐야겠군."
그는 중년사내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중년사내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중년사내의 텅빈 동공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엽단풍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단 당신 몸을 살펴보겠소. 만일 혈도가
제압당했다면 풀어줄테니 잠시만 기다리시오.
그런다음 함께 머리를 짜내서 이곳을 빠져나갈 궁리를
합시다."
중년사내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엽단풍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천천히 그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우선 그의 맥문(脈門)을 짚어보았다.
그의 맥은 가늘게 뛰고 있었다.
잠시 관찰했으나 비록 가늘고 미약하나마 끊임없이
뛰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혈맥(血脈)은 크게 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그의 목과 어깨의 관절을 살폈다.
그곳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엽단풍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혈맥도 이상이 없고 신경도 상하지 않은 것
같은데...그러면 경락(經絡)중 잘못된 곳이 있나?"
엽단풍은 그의 가슴과 배에 손을 갖다 대었다.
심장은 정상적으로 뛰고 있었다.
그런데 배를 만지자 배가 이상하리만치 차가웠다.
엽단풍은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배가 이렇게 차다니...혹시 무얼 잘못 먹고 체한
게 아닐까?"
그는 자기 입으로 말해 놓고도 우스운지 피식
웃었다.
"체한 증세가 이렇다면 음식먹을 사람이 없겠군."
그는 중년사내의 차가운 배를 몇 차례나
쓰다듬었으나 따뜻해질 기미가 없자 중얼거렸다.
"배가 이렇게 찬 경우는 세 가지밖에는 없는데..."
그는 손가락을 하나하나폈다.
"첫째는 체한건데 그건 말이 안되고...둘째는
얼음굴속에 들어갔다 나온건데 그때는 배만 찰리가
없고..."
그는 세 번째 손가락을 쫙 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로군. 이 자는 지금 아주
기이한 음공(陰功)을 잔뜩 끌어올리고 있군. 흡사
누군가를 죽이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쾌액!
무표정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던 중년사내의
눈에서 한광(寒光)이 번뜩이더니 그의 손이 번개같이
엽단풍의 목덜미를 찍어왔다.
그 모습은 조금전 유동립이 엽단풍을 암습했을 때와
흡사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속도였다.
지금 이 중년사내가 손을 내뻗는 속도는 유동립이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번개가 무색하다는 말로도 표현못할
가공할 빠르기였다.
하나 그때 엽단풍은 어느 새 몸을 뒤로 젖힌 채 일
장밖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그것은 중년사내가
공격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기전에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동작이었다.
그 바람에 중년사내의 가공할 손이 헛되이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하나 엽단풍이 채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전,
파스스...
그들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중년미부의
몸이 어느 새 허공을 날아오며 엽단풍에게로 무언가를
던졌다.
허공에 깨알같은 것이 자욱하게 뒤덮혔다.
엽단풍은 힐끗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오릉사(五菱砂)구나!"
그의 몸은 바닥을 구르던 상태 그대로 삼 장여
밖으로 폭사되어 갔다. 단봉무영신법중에서도 가장
빠른 단봉능광(丹鳳凌光)이었다.
치치치칙!
방금전만 해도 그가 있던 부근의 일 장이 그
깨알같은 먼지에 뒤덮히며 시커멓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토할 것같은 악취와 함께 반경 일 장이 완전히 움푹
파여졌다.
실로 가공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끔찍한 독기였다.
엽단풍은 삼장 밖으로 날아간 다음 몸을 돌렸다가
그 광경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정말 악독한 독이구나!"
그는 오릉사로 뒤덮힌 바닥을 내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중년남녀는 어느 새 그의 앞뒤를 에워싸고 있었다.
문득, 중년사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엽단풍을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너는 어떻게 우리가 암습하리란 것을 알았느냐?"
그의 음성은 표정만큼이나 무감각한 것이었다.
너무 아무런 빛도 담겨 있지 않아서 오히려 더욱
섬뜩하게 들렸다.
엽단풍은 빙그레 웃었다.
"우선은 유동립이 너무 쉽게 떠난 것이 마음에
걸렸소."
"무엇이 마음에 걸렸느냐?"
"그는 응당 밖에서 암기를 날리던지 독을
사용해서라도 나를 완전하게 제압해야 하는데
쇠창살만 믿고 나를 그냥 두고 가버렸소. 그래서 나는
이건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중년사내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없는 얼굴로 물었다.
"둘째는?"
"둘째로는 당신이오."
중년사내의 눈꼬리가 처음으로 슬쩍 치켜 올라갔다.
"나라고?"
엽단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당신은 유동립과 내가 온 것을 알고
고개를 들어 우리를 쳐다보았소.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이름을 물어보자 말을 못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소."
"그것이 어디가 잘못 되었느냐?"
"무공이 전폐된 상태에서 아혈(啞穴)이 제압당한
사람은 비단 말도 못하게 될 뿐만아니라 귀도 들리지
않게 되오. 그런데 당신은 말은 못하면서 듣기는
한다니 어찌 이상하지 않겠소?"
중년사내는 잠시 엽단풍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운 관찰력이로군."
엽단풍은 히죽 웃었다.
"과찬의 말씀. 그리고 세 번째는 ..."
엽단풍은 슬쩍 고개를 돌려 중년미부를 돌아보았다.
"바로 당신이오."
중년미부의 안색에는 서릿발같은 차가움이 담겨
있었다.
"나라고?"
그녀의 음성은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카랑카랑하고 몹시 귀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그렇소. 내가 물어보자 고개를 저으며 손으로 입과
다리를 가리켰소. 아마 말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다는걸 나타내려고 한 것 같은데 그게 잘못이었소.
손을 움직일 수 있다는건 곧 발도 움직일 수
있다는거요. 그렇다면 당신은 의당 일어나서 내게로
왔어야 했소. 그런데 그 자리에 꼼작도 않고 앉아서
움직일 수 없다고 했으니 나로서는 당연히 의심을
품을 수밖에..."
중년미부의 얼굴이 더 한층 싸늘해졌다.
"과연 대단한 놈이로군."
그녀는 그 한 마디만을 중얼거린 후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때 중년사내가 무표정한 음성으로 물었다.
"너는 그런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엇 때문에
스스로 철창 속으로 들어온 것이냐?"
엽단풍은 빙긋 웃었다.
"하나는 당신네들이 도데체 무슨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고..."
중년사내는 그의 다음 말이 궁금한지 그의 입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엽단풍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다른 하나는 당신들과 함께 있는한 유동립이 나를
어쩔 수 없다는걸 알았기 때문이지."
중년사내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건 무슨 뜻이냐?"
"유동립이 제아무리 천하의 악당이라 해도 자신의
부모를 굶어 죽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거요."
그 말에 중년사내의 얼굴이 가볍게 굳어졌다.
"부모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엽단풍은 껄껄 웃었다.
"하하...당신들의 정체를 알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내 발로 이 안으로 걸어들어오겠소? 설마 당신은 내가
이런 이중창살문조차 예상하지 못한 멍텅구리라고
생각하는거요?"
중년사내와 중년미부의 낮빛이 약간 변했다.
중년사내는 한동안 엽단풍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너는 어떻게 우리를 알아보았느냐?"
"첫째는 당신들이 남녀라는게 눈에 거슬렸소.
가둘때는 보통 남자와 여자를 분리하는게
상례(常例)인 법이거든.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부부가
아닐까 생각했지."
"......!"
"그리고 둘째로 나는 이미 당신들의 용모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소. 그래서 보는 즉시 당신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지."
중년사내의 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누가 네게 우리들에 대해서 말을 했느냐?"
"물론 선친이시오."
중년사내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엽철흔말이냐?"
"그렇소. 그 분께선 당신이 천하에 둘도 없는
정인군자(正人君子)같이 생겼고, 당신 부인은 천하에
둘도 없는 요조숙녀같이 생겼으나 사실은 흉악하기
그지 없는 자들이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시곤
했소."
중년사내는 드디어 얼굴에 씌워져 있는 가면의 빛을
벗어버렸다.
그의 무표정하던 얼굴이 점차 차가워지며
소름끼치는 빛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보기만 해도 악독하고 사이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중년미부 또한 두 눈 가득 사악(邪惡)한 빛이
가득했다.
이것이 바로 이들의 본 모습이었다.
소도와 독파!
이토록 준수하고 이토록 아름다운 남녀가 바로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린다는 소도 유불첨과 독파
조벽사였던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
잘밨어요
ㅈㄷㄱ~~~~~``````
즐독하였습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소도와 독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