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6일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깨어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우울한 생활 극복하기
가을이 되면서 우울한 날이 연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여름 너무 비가 많이 와서 곡식들이 잘 여물지 못해서 수확량이 많이 떨어지고, 채소 값이 오르고, 코로나 19로 나라와 세계가 정말 어수선합니다. 이제는 감염 주의 단계가 격상 되어서 경제와 사회는 지금 형편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일 감염자가 늘어나 곧 2.5단계로 격상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정치가들은 아주 추한 모습을 보이고 권력에 집착해서 국민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유튜브나 각종 뉴스는 믿을 수 없고, 나라가 정말 어수선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국민이 정말 냉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는 냉정해야 합니다. 정국을 더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수학능력고사를 치르고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용기를 내라고 응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요즘 많이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울한 것은 본질적으로 기쁨을 상실하고 기쁨이 없어지면서 우울한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울한 것과 우울한 징후들은 나에게 아주 익숙한 징후들입니다. 일 년 내내 우울한 시간들이 나를 많이 괴롭혀 왔으며, 그 우울증으로 잠을 못 이루는 불면증으로 이어지고 심리적인 불안감으로 그 악순환은 나를 점점 압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달 전 서점에 가서 몇 시간을 보내면서 책 한 권을 샀습니다. ‘우울한 생활 극복하기’(어니 라슨, 카라 A. 매컨 지음 / 한정아 옮김)라는 책인데 며칠 읽다가 팽개쳐 두었다가 다시 찾아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도 정말 그 우울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도 하고, 그 기쁨을 잃어버리게 하는 얘기를 쓰다보면 무언가 새로운 희망이 솟을 것 같아서 오늘도 그 생각들 중에서 몇 가지를 올려놓습니다.
‘기쁨 파괴 요인’들 20가지는 감정, 행동, 태도, 사고방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된 것들입니다. 이러한 복합작용은 우울한 생활 증후군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생활유형을 잘 보여주고 있답니다.
◎ 인생에는 내가 지금 누리는 것보다 더 많은 행복과 기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하루 종일 집에 처박혀 있거나 밤마다 바닥이 없는 우울의 늪에 빠져들고 있어서 삶에 기쁨이나 행복이 들어갈 자리가 없이 허무만이 가득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행복한 것을 찾아서 언제나 방황하고 있답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습니다.
◎ 나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 : 나는 근본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쇠사슬에 묶여서 있고 싶지 않은 곳에 붙잡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 나는 내 존재 의미를 내 자신이 아닌 바깥에서 찾는다. :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찾는 것도 결국 자신의 내면에서 찾기 보다는 밖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서는 찾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 나는 스스로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다. : 기쁨을 파괴하는 요인 중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소외시키며 ‘스따’(스스로 왕따가 되는 것)가 되려고 합니다. 아무도 나와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나는 내 판단을 믿지 못한다. :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내 판단이 옳은 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회의에 빠져들고 있는 것입니다.
◎ 나는 이중인격자라는 생각이 든다. :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억지로 웃기도 하고, 바리사이처럼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 스스로 다중 인격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 나는 운이 없는 사람이다. : 세상을 사는데 행운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행운이 내게서는 멀리 떠나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운동경기를 관전할 때에는 가슴이 조마조마 하기도 하지만 ‘나는 운이 없는 사람이라서 내가 보면 질 것’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답니다.
◎ 나는 인생이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 인생을 치열한 전쟁의 연속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전쟁 중에는 심각하고 긴장하여야 하기 때문에 잠시도 평화가 없는 것입니다.
◎ 나는 늘 시간이 없다. : 왜 그렇게 바쁜지 정말 정신이 없습니다. 조용히 명상을 하거나 봉사를 하거나, 묵상을 하거나 하는 시간도 내기 힘듭니다. 언제나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분주하게 살았으면서도 한 일은 또한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옭죄고 있습니다.
◎ 나는 자신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 지금까지 한 모든 것들은 내가 잘못해서 생긴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든 일을 잘하고, 가정에서도 잘 살고, 돈도 잘 벌고, 능력이 많은데 나는 정말 하는 일마나 잘 못하였고, 그 모든 것은 자신의 무능과 잘못된 의견으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나는 볼품없는 외모가 수치스럽다. : 자신의 외모는 순전히 자신의 책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중학교 때 ‘큰 바위의 얼굴’이라는 동화에서 내 외모가 누구를 닮고 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내가 정말 주님의 제자라면 사람들이 내게서 주님을 볼 것입니다.
◎ 내 인생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 언제나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외롭게 합니다. 그리고 잘못하였든 잘 하였든 내가 뿌린 씨앗은 내가 거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 나는 모든 상황에서 불행의 그림자를 느끼고 우울해한다. : 지난날을 보면 앞날을 예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불행하였고 앞으로도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 나는 사람들 속에서 잘 어울릴 때에만 마음이 편안하다. : 스스로 왕따가 되어서 소외감을 가진 채 세상을 살다 보니까 사람들 속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고 살았고, 그래서 불안하답니다. 사람들이 나를 불편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편안하게 대해주지 않아서 언제나 마음이 편안하지 않답니다.
◎ 나는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만한 힘이 없다. : 이제 나이도 먹고, 기운도 없고, 의욕도 없어져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만한 힘도 없고, 용기도 없고,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그런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 나는 변화를 추구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생각한다. : 기대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때 사람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하고, 젊은 혈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겁이 납니다.
◎. 나는 살면서 어느 누구와도 진정으로 가까워 본 적이 없다. : 진정으로 사랑하고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서 점점 더 외로워지는 것입니다.
◎ 나는 늘 다른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내가 배운 학식과 능력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나는 또 다시 실패할까 봐 두려워서 감히 무슨 일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 더 이상 실패의 쓴맛을 보지 않으려고 작정하였기 때문에 일을 아예 포기하고 시작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 나는 더 이상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하느님은 더 이상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런 모든 일을 통해서 점점 근심하고 마음이 물러져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쁨을 파괴하는 이러한 증상들을 떨쳐 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정말 유약한 내가 되어서 다시 우울증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다시는 밤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22,1-7 주님의 천사는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 요한에게 1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나와, 2 도성의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이쪽저쪽에는 열두 번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다달이 열매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 3 그곳에는 더 이상 하느님의 저주를 받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도성 안에는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가 있어,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4 그분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는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입니다. 5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6 그 천사가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확실하고 참된 말씀이다. 주님, 곧 예언자들에게 영을 내려 주시는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당신 천사를 보내신 것이다. 7 보라, 내가 곧 간다.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행복하다.”
축일11월 26일 성 레오나르도 (Leonard)
신분 : 신부, 증거자, 저술가 활동 지역 : 포르토 마우리치오(Porto Maurizio) 활동 연도 : 1676-1751년 같은 이름 : 레너드, 레오나드, 레오나르두스, 레오나르드
이탈리아의 포르토 마우리치오에서 도메니코 카사노바(Domenico Casanova)라는 선장의 아들로 태어난 성 레오나르두스(Leonardus, 또는 레오나르도)는 파올로 지롤라모 카사노바(Paolo Girolamo Casanova)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13세 때 로마에 있는 예수회 대학에 들어갔다. 함께 생활하던 아고스티노(Agostino) 삼촌은 성실한 학생이었던 그가 의사가 되기를 강력히 희망하였다. 그러나 그는 삼촌의 기대와는 달리 1697년에 폰티첼리(Ponticelli)에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삼촌과는 의절하고 말았다. 수도명으로 레오나르두스를 선택한 그는 로마의 성 보나벤투라 대학에서 공부하고 1703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1709년에 피렌체(Firenze)의 산 프란체스코 델 몬테 수도원으로 갔고, 그때부터 토스카나(Toscana) 전역을 다니며 설교를 하여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산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가 인콘트로(Incontro) 근교에 수도자를 위한 은둔소를 지었으며, 로마 지역의 선교단을 지휘하면서 6년을 생활하였다. 1736년 그는 산 보나벤투라(San Bonaventura)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지만, 다음 해에 그 직책을 사임하고 다시 선교 길에 올라 열정적인 설교로 거대한 청중을 불러 모으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십자가의 길에 대한 열렬한 신심가이자 전파자였다. 또한 성체와 성심 그리고 마리아 신심은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잠시 영국 왕위의 주창자인 제임스 3세 국왕의 아내 마리아 클레멘티나 소비에스카(Maria Clementina Sobieska)의 영적 지도자로 일하다가,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의 명을 받고 코르시카(Corsica)로 가서 설교하고 평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코르시카인들이 그를 선교사로 보기보다는 섬을 통치했던 제노바(Genova) 사람들의 정치적 도구로 보았기 때문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1751년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로마의 산 보나벤투라 수도원으로 돌아왔는데, 도착하던 날 밤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수도원 성당 중앙제대에 모셔졌다. 43년 동안 열렬한 선교사로 활동했던 그는 1796년 6월 19일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67년 6월 29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본당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레오나르도 (Leonard)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