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는 흙수저 출신이기에 천(賤)한일을 많이했다 !!
논어(論語) 제9편 자한(子罕) 6장 大宰 問於子貢曰 夫子 聖者與 何其多能也. 子貢曰 固天縱之將聖 又多能也. 子 聞之曰 大宰知我乎. 吾少也賤 故多能鄙事. 君子多乎哉 不多也. 窂曰 子云吾不試故 藝. 중국 고대 춘추시대(春秋時代) 오(吳)나라 통치자 태재(大宰)가 공자(孔子)의 제자인 자공(子貢)에게 물었다.
“공자(孔子)께서는 참으로 성인(聖人)이십니까?” 성인(聖人)이라서 그런지 어찌 모든 것에 능(能)할 수 있을까?” 하고 묻자,
공자(孔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대답하기를 “하늘이 선생님을 높여 성인(聖人)이 되도록 하고 있으며, 선생님 자신도 다재다능(多才多能)하십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런 대화를 전해 듣고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태재(大宰)가 나에 대하여 자공(子貢)의 말을 들은 것으로 나를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자공(子貢)이 말한 것과는 다르다. 나는 성인(聖人)이 아니다. 어려서 가난하고 천(賤)한 출신이므로 먹고 살기 위해 여러 가지 천(賤)한 잡일을 하다 보니 이것저것 많이 알게 되었을 뿐이다.
군자(君子)라고 해서 다 능(能)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군자(君子)는 다 능(能)하지 않은 법이다.!”
공자(孔子)의 제자 자장(子張)도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제가 관리(官吏)에 등용(登用)되지 않았으니 오히려 재주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라고 덧붙여 말했다.
▶위의 논어(論語)의 내용을 다시 설명하자면 태재(大宰)라는 오(吳)나라 통치자가 공자(孔子)가 박식(博識)한 것을 궁금히 여겨, 혹시 하늘이 낸 성인(聖人)이 아닌가 하고 물었다.
중국 송(宋)나라 때의 유학자(儒學者)인 주자(朱子)는 공자(孔子)를 성인(聖人)이라 단언(斷言)하지 않고 “성인(聖人)에 가까운(殆) 사람”으로 표현하였다. ※태(殆)-거의 가까운
반면에 전한(前漢)의 학자인 공안국(孔安國)은 공자(孔子)는 대성인(大聖人)이라고 말하였다. 역사속의 대학자들도 이렇게 보는 것이 다르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은 공자(孔子)가 재주가 많은 이유를 하늘이 낸 성인(聖人)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공자(孔子) 본인(本人)의 주장은 달랐다.
공자는 자기가 재주 많은 이유는 어렸을 때 가난하여, 먹고사느라 할 수 없이 이것저것 잡일을 많이 배우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고 변명(辨明)하고 있다. 이것은 겸손(謙遜)이다.
【공자가 자신을 스스로 “천(賤)한 사람”이라 한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공자를 말할 때 “야합(野合)”으로 태어난 사람이라 한다. 야합(野合)은 글자대로 “들에서 남녀가 비윤리적으로 몸을 섞음”을 뜻한다. 공자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은 70세에 딸만 9명을 두었다. 아들이 하나있었는데 절름발이에다가 정신 불구자였다. 숙량흘(叔梁紇)은 정상적인 아들을 원했다. 16세의 처녀이며 무당인 안징재(颜徵在)와 결혼한 것이다. 이름이 결혼이지 아무 절차도 없이 70세노인이 16세 처녀를 다리고 와 그냥 밤에 잠자리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야합(野合)이라 하였다. 야합(野合)은 글자대로 들판에서 아무 절차 없이 짐승처럼 적당히 접촉을 뜻한다. 주로 정치권에서 잘못한 것을 “야합(野合)”이란 말을 잘 쓴다.】
공자가 예(禮)에 밝은 것도 공자 어머니가 무당(巫堂)인 것에 원인을 두는 학자도 있다. 공자(孔子) 시절에는 무당의 모든 행위가 예(禮)속에서 이루어졌다.
한술 더 떠 공자(孔子)는 말하길 군자(君子)는 재주가 많을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공자(孔子)의 생각은 군자(君子)는 인간의 근본(根本)에 힘 쓸 것이지 TV 신문등 세상에 이름을 날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런 말은 공자가 자신과 겸손(謙遜)을 가지고 대답한 말인데, 그 가운데 주목할 구절(句節)은
“젊었을 때 천(賤)했으므로 제대로 사회적 지위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서민들이 하는 여러 가지 일을 닥치는 대로 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예능(藝能) 기술(技術)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위의 논어(論語)의 이 장(章) 핵심은 아래의 문장이다. 少也賤, 故多能鄙事(소야천, 고다능비사) 내가 젊었을 때 미천(微賤)하였기에 여러 가지 험한 일을 많이 하여 그 과정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이것저것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자는 자신이 다재다능한 이유를 불우한 환경에서 찾고 있다. ※미천(微賤)-신분이나 사회적 지위 따위가 하찮고 천하다.
얼마 전 어떤 글에서 읽은 내용이다. 【전시장(展示場) 디스플레이(display)를 위해 남학생 알바를 구했다. 벽에다가 전시품을 걸 못을 박는 일이었다. 벽이 부드러워 못 박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 학생이 사다리를 잡아주고 알바 학생이 올라가서 못을 박는다. 벽이 부드럽지 만 그래도 힘을 좀 주어 망치질을 해야 못을 박을 수 있었다. 몇 차례 망치질을 하더니 “손가락이 아프고 힘들다”며 장갑을 달라고 했다.
면장갑 낀 손으로 망치질을 하면 망치자루 잡은 장갑낀 손이 더 미끄럽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 때 손에다 침을 퇴퇴하는 것은 손바닥의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목장갑을 끼고 어설픈 망치질을 두드리다 보니 못이 박히기는커녕 빗맞아 튀어 달아났다.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닌데 결국 그 알바는 못을 박지 못했다.】
아주 대수롭잖은 일이지만 알바 학생을 통해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는 나이 많기 때문에 “우리 때에는----” 소리를 필자의 자식 며느리나 다른 젊은이들에게 절대로 안하기를 필자 스스로 훈련하고 있다. “우리 때와 지금 젊은이들은 시대 환경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다”
다만 이 글을 쓰는 것은 지금 우리 젊은이들의 한 면이 이러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너무 편하고 풍요롭게”키우는 것이 자식의 장래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볼 때다.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 인생으로 태어나서 “자기일은 스스로 해 나가야” 태어난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자식의 시험문제를 부모가 풀어 주고 고등학생 자식에게 수십억원의 주식을 사서 주고-- 제자식에게 제 부모가 하는 짓이야 법을 위반하는 일이 아닌 바에야 남이 뭐라고 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키우는 것(養)과 교육(敎育)은 다르다. 키우는 것은 옷을 입히고 먹이고 잠을 잘 자게 하는 것이다. 교육은 한마디로 말할 수 없고 이 글에서 다 할 수 없지만 “사람다움”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敎育)이다.
지금 우리나라 공장이나 농촌에 힘든 육체적 일자리는 대부분 외국 노동자들이 하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은 왜 육체노동을 그리도 기피하게 됐을까?
2500년전 “나는 젊었을 때 가난하고 천했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험한 일도 닥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공자의 말을 새겨봐야 할 때다. 그래서 논어(論語)를 읽는다 !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