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886호
기타 담배로 만든 단 한 편의 시
― 제영에게
박정대
간밤의 비에 앞마당 풀들이 자라 아침 나절 김매기하다 보니 우체부 아저씨 반갑게 인사를 하며 작은 소포 하나를 건네네
내용품명을 보니 기타 담배라고 적혀 있고 보낸 분은 강원도 춘천시 춘천로 257, 2층 달아실출판사
아, 제영이가 보낸 거로구나
순간, 옛날 문인들이 모여들던 서울 명동거리의 다방 같았던, 달맞이꽃 피어나는 다락방 같았던 제영의 문장수선소가 떠올랐던 게야
그런데 도대체 기타 담배는 뭘까
기타로 만든 담배일까, 담배로 만든 기타일까
나는 마냥 궁금해하며 여전히 소포를 뜯지 않네
끝내 뜯어보지 않을 거야, 내가 기타도 음악도 담배도 없는 절망에 다다르기 전까진 절대 뜯어보지 않을 거야
저 소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이미 나는 알고 있지
그곳엔 비바람 몰아치던 무수한 날들의 사랑과 번민과 연기처럼 날아간 푸른 욕망들
기타 담배로 만들어진 시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불꽃의 시
- 2023년 5월 19일, 이절에서 박정대
***
보헴 시가 No.6는 보헤미안 박정대의 담배입니다. HASTA LA VICTORIA SIEMPRE: 붉은색 체 게베라 지포 라이터가 형의 라이터이듯이 말입니다.
박정대 형의 시집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민음사, 2001)를 처음 읽었을 때, 그때의 두근거림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합니다. 음악 같은 햇살, 음악 같은 빗줄기, 음악 같은 는개.... 그런 날이면 여전히 격렬비열도의 파도가 출렁입니다.
그런 날이면 보헴 시가 한 개비와 커피 한 잔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의 형을 떠올리곤 합니다. 편의점을 들러 보헴 시간 No. 6를 한 보루 사거 우체국으로 갑니다. 작은 박스에 담배를 담고 포장한 다음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적습니다. 달아실 문장수선소에서 일하는 문장수선공이 오랑캐의 계절, 이절에 사는, 아직 오지 않은 삼절과 사절의 시를 살고 있는 보헤미안 시인에게.
그러고 나면 이절에서 형의 답신이 옵니다.
-이절의 오후는 평화스럽다 못해 괴이하고 달콤하게 고독하다.
-나는 이 박스를 뜯지 않을 거야.
다음달에도 음악 같은 햇살 혹은 음악 같은 비가 내릴 테지요. 그런 날 있을 테지요.
2023. 5. 22.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