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의 정치문화전통은 한마디로 "바른 통치자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을 토대로 한 절대주의, 권위주의적 정치문화"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전통에서 백성들은 통치자에 대하여 도덕적 완전성을 기대하게 되고 통치자가 도덕적 흠결을 보이면 강한 저항을 보여왔다.
이상에서 살펴본 조선조의 정치문화전통은 해방 이후 새로운 국가 창설과정에서 체제수용과 관련하여 많은 영향을 미쳤다.
북한 사회에서 소련 점령군에 의하여 소비에트식 일당 지배의 절대주의 전제정치가 도입될 때 북한주민들은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유교적 덕목을 대신하는 맑스-레닌주의 이념이 새로운 시대의 절대진리라고 소개될 때 북한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이를 수용했으며 1당 지배의 전제 정치제도 왕조 시대의 절대주의 전체주의 정치체제에 친숙한 북한 주민에는 친숙한 북한 주민에는 생소하지 않은 체제여서 그대로 순응하였다.
유교적 덕목을 맑스-레닌주의 이념으로 바꾸는 결정은 통치자가 하는 것이지 일반 시민이 개입할 일이 아니란 생각이 지배했다.
반대로 남한 사회에 미군에 의하여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도입될 때에는 많은 저항에 부딪혔었다. 가치의 상대성에 기초한 다원주의 질서에 대하여 한국민은 친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시민들의 참여로 운영하는 체제인데 국민대다수가 시민으로서 자각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쉽게 독재자가 전제정을 펼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여 주었으며 그래서 민주주의 정치의 파행적 운영이 지속되었다.
(이상우, [북한정치입문: 김정일 정권의 특성과 작동원리], 나남출판, 2000. 35쪽.)
[질문] (1) 1945년 무렵의 대중들은 일제 36년이 지난 이후이다. 그 대중들은 대다수가 교육을 받지 못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문화의 축적은 교육 받은 이들만의 몫이고, 교육받지 못한 이들은 대다수가 시류적이다. 그때까지 축적된 상황 한계적 틀거리 속이다.
그러면, 교육 받지 못한 대중들은 조선조의 기억을 더 가질까 일제 36년의 기억을 가질까? 일제 36년의 상징적 크기를 말하기 위해서, 1945년 무렵에 조선조를 기억할 수 있는 연령층은 36년 위로 10세 정도를 더할 때, 1900년생보다는 최소한 위여야만 한다. 그러나, 이 수준에서는 기초적 기억만을 가진다고 봐야 된다.
일제 36년 이후에 존재한 대중들이 지식인들처럼 수십년 이전의 문화를 바로 유지할 수 있다는 가정은 납득 자체가 어렵다.
(2) 탈근대철학으로 유교 정치철학을 해석하는 것은 함재봉교수님이 잘 하는 바로 알고 있지만, 이것은 오늘날에 있어서 유교의 경전들의 번역서들을 읽고, 서구 정치 사상을 동시에 읽어본 사람들에겐 가능할 수 있고 가능해야만 하는 지적 소양일 수 있다.
성균관대 이기동교수는 [도올논어 바로 읽기]에서 도올김용옥의 유학이 일본식 유학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전통의 유교는 공맹사상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지적 성과는 바로 이승만대통령의 기독교와 유교를 종합하려는 건국정신의 해석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곽말약은 공자의 윤리적 총체성론을 마르크스주의와 인위적으로 다리놓기를 시도해보았지만, 이것은 마르크스 이전의 독일 근대 사상가 모두에게 다 적용되는 사례이지 마르크스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굳이 한다면 좌파 사상과 연결 안되리란 법이 없지만, 주체사상의 사상적 기원은 레닌주의는 '순자'계보의 일본 유학이나 '묵자'스타일의 독재정치 논리에 결속되고 조선조와는 철저하게 무관하다.
(3) 북한 정치 어구 중에서 '반봉건'이란 언사가 있다. 이는 북한의 종교에 대한 억압과 비슷한 것으로, 공산당의 권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차원의 전통에 대한 사고방식을 말한다. 북한은 조선조와 닮아지는 것을 의식적으로 줄곧 반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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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전제 정치 체제가 다른 공산 국가들의 전제 체제와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친인척은 권력 핵심이 배척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정권을 '김일성 왕조'라고도 부른다. 왕조시대의 왕족 지배구조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과거 소련이나 중국등의 공산정권에서는 집권자와 투쟁을 함께 해온 동지나 이념을 같이하는 전우들로 구성된 파벌이 권력의 핵심을 장악함으로써 체제의 안정을 유지했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에서처럼 가족, 친족 인척들로 파벌들을 만든 예는 없다.
(중략)
북한정권이 권력 핵심에 친인척을 배치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김일성 자신이 국내에 강한 조직적 배경을 가지지 못한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59-60쪽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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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세습제와 인척정치 요소는 과거 반공교재에 김일성왕조론의 핵심 요소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반공교재는 다른 한편으로 북한정권의 성립사에서는 '북한=오랑캐'론을 유지합니다. 이점은 기억하고 계신지요?
2. 친인척 배치 요소를 포인트로 조선조와 비교한다면, 그렇다면 '광의'의 차원에서의 요소이며 사실묘사 측면이 아니라는 지적이 가능함은 인정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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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인, 1당 지배의 전제주의 국가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지배 엘리트가 곧 국가 지배세력이다. 레닌주의 국가의 특성 중 하나가 엘리트주의인데 북한의 경우 일반 레닌주의 국가보다 엘리트주의는 한 단계 더 높였다고 보면 된다. (52쪽)
"공산 주의 사회는 곧 사회를 수령의 혁명 사상으로 일색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실현된다. ....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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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조선왕조가 이랬던가요? 진심으로 묻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권위주의적 지배력이 없어서 맨날 사림들에 왕이 들볶인 게 맞습니다. 오히려, 이것에 가장 흡사한 이미지는 일본 장군 아래에 다 꼼짝 못하게 되는 일본 사회입니다. 닌자 거북이들로 층층이 나눠지는 계층 카스트 사회입니다. 조선왕조의 원리와 현실은 전혀 이렇지 않았습니다.
'조선조=북한'론은 조선조에 대한 완벽한 무지가 만든 환상입니다. 또, '건국세력=조선조 문인'론을 만들어서 박대통령의 반일반공사상을 해체하려는 의지의 우파들이 만든, 학술적으로 앞뒤가 안맞는 허구 논리입니다.
[개인질문] 1. 근대 국민 국가는 '적'을 기준으로 강해집니다. 일제 36년과 다른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가 '반일'을 만들었고 공산당으로부터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측면에서 '반공'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반일'을 깨면서 국가 없이 헤매던 과거를 지워 버리자 공산당에 대한 저항감이 사라져 버리고, 국가의 질서가 허물어졌다는 논리가 가능합니다.
'위험사회'의 저자 '벡'부터 미국의 정통 보수주의자 헌팅턴까지 현재에 번역되어 나오는 서구 지성들이 동의하는 요소를 기준으로 볼 때, '반일반공'에서 '반일'의 요소를 부당하게 떼어내고 과거 역사의 재구성을 통한 우파의 역사의 기억의 요소를 잊혀지게 하는 것은, 근대 국민 국가 대한민국의 사회질서를 침식시켰다는 판단이 가능합니다.
근대 국민 국가는 '적'을 기준으로 강해진다는 것은 단합심을 만드는 문화의 형성에서 가능합니다. 그러나, 일본봉건제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단합심을 만드는 문화의 형성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조선조가 절대전제군주체제라고 단정짓고 전세계적 불량국가와 등치 시킬만큼, 그리고 대한민국의 애국심의 한요소를 차지하는 반일의 기둥을 제거하고서 문화까지 소거하는 '문약이론'을 유행시키는 차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조선조가 잘난 체제이거나 영원히 긍정적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북한과 체제 대결을 통해서 자유 세계의 우위를 과시하던 목소리의 엑기스를 지워 버리고, 일본의 무사 정신 알라뷰를 외치는 일부 우파 목소리와 닮아 있는 듯 해서 안타깝습니다. 물론 교수님이 체제 대결로서의 상황을 잊어버린다는 측면은 아닙니다. 과거의 반공교재에서 김일성 왕조론은 체제 대결 마인드 속에서 나온, 봉건체제로서 최악의 부정 이미지 차원으로서 지적한 것입니다. 조선조와 실제로 닮아서 그러한 게 아닙니다.
2. 실제로 레닌주의에서 당원의 가치를 아무리 비슷하게 때려봐도, 공맹사상의 선비론이 아니라 순자사상의 선비론에 해당됩니다. 순자사상의 윤곽은 번역서 한권만 봐도 아실 것입니다. 북한 공산당의 주류는 소련 공산당에서 배웠으되, 결코 적지 않은 부분만큼 일본공산당에서 배웠음이 맞습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김일성을 '신'으로 떠받드는 식의 업적을 <천황주의>라고 봐야 되는 게 맞는 게 아닐까요? 천황가치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일부 우파들의 시도들을, 그럼으로써 비판하는 게 박대통령의 반일반공정신에 이어지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