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어사*에 와서 소리의 서책(書冊)을 보았습니다 홑지느러미 가름끈이 아름다운 소리책입니다 책등의 아가미로 숨 쉬는 책입니다 물고기 등뼈가 분류한 소리집(集)의 한국십진분류는 700 언어편이지만 다시 미세 뼈 가 분류한 숫자는799, '비와 물고기의 소리편'입니다 비 새는 곳이 만어사와 내 몸뿐 아니라 저 가을도 그러해서 산길 골라 왔습니다 지금 읽지 않는다면 비늘 떨구며 시나브로 사라질 소리입니다 지금 소리의 앞뒤를 따라가면 내 몸에 송홧가루 필사본 책 한 권 채워집니다 누군가 이곳에서 그가 가진 짓소리를 다 게워놓았습니다 청맹과니조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다 읽고 갔습니다 여늬 소리는 고노골적으로 바위 품에 미기체(尾鰭體)로 파고드는 중입니다 거무틱틱하고 시꺼멓고 울긋불긋하고 풍화중인 바위는 소리가 마뜩잖은지 쪽수를 힘겹게 넘깁니다 신음하거나 헐떡이고 한숨 쉬며 비명 지르다가 훌쩍이면서 울부짖다가 다시 흐느끼고 마침내 울거나 속삭이며 아우성치고 투덜대는 소리가 결국 넓고 좁고 검고 누렇고 작고 둥글고 넓적하게 바위로 굳어져서 내 불평불만을 깔고 일몰 속에 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능화판 호접장 소리책 한 권이 만들어졌습니다 나 역시 오늘 가진 소리 죄다 꺼집어내어 만어사 책방에 보시하였습니다
주) * 『삼국유사』, 「어산불영」편에 , 만어사는 고려 때 창건햇는데 승려 보림이 명종에 고하길 만어산 만어사는 북천축 가락국의 佛影불영과 비교할 만하다고 했다. 만어산 연못에 용이 살고 때때로 강가로부터 구름이 일어나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그 구름 가운데 소리가 나며, 서북쪽 반석에는 항상 물이 고여 있어 부처가 가사를 씻던 곳이다. 일연이 직접 보니 산중의 돌에서 2/3가 다 금옥의 소리를 내었다.
[내간체를 얻다], 문학동네,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