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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 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 처럼
나의 이 빛깔과 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 춘수 시 ‘꽃’모두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 김 춘수 ‘꽃을 위한 서시’모두
(문학예술 1957.7)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 김 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모두
* 김춘수 시선집 / 현대문학, 2004
1의 1
바다가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은 한려수도(閑麗水道)에서 불어오고
느릅나무 어린 잎들이
가늘게 몸을 흔들곤 하였다.
날이 저물자
내 늑골(肋骨)과 늑골(肋骨) 사이
홈을 파고
거머리가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베고니아의
붉고 붉은 꽃잎이 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시 또 아침이 오고
바다가 또 한 번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뚝 뚝 뚝, 천(阡)의 사과알이
하늘로 깊숙이 떨어지고 있었다.
가을이 가고 또 밤이 와서
잠자는 내 어깨 위
그해의 새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둠의 한쪽이 조금 열리고
개동백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나는
내리는 그
희디흰 눈발을 보고 있었다.
1의 2
삼월(三月)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南)쪽 바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삼월(三月)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1의 3
벽(壁)이 걸어오고 있었다.
늙은 홰나무가 걸어오고 있었다.
한밤에 눈을 뜨고 보면
호주(濠洲) 선교사(宣敎師)네 집
회랑(廻廊)의 벽(壁)에 걸린 청동시계(靑銅時計)가
겨울도 다 갔는데
검고 긴 망또를 입고 걸어오고 있었다.
내 곁에는
바다가 잠을 자고 있었다.
잠자는 바다를 보면
바다는 또 제 품에
숭어새끼를 한 마리 잠재우고 있었다.
다시 또 잠을 자기 위하여 나는
검고 긴
한밤의 망또 속으로 들어가곤 하였다.
바다를 품에 안고
한 마리 숭어새끼와 함께 나는
다시 또 잠이 들곤 하였다.
호주(濠洲) 선교사(宣敎師)네 집에는
호주(濠洲)에서 가지고 온 해와 바람이
따로 또 있었다.
탱자나무 울 사이로
겨울에 죽두화가 피어 있었다.
주(主)님 생일(生日)날 밤에는
눈이 내리고
내 눈썹과 눈썹 사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나비가 날고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1의 4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있던 자리에
군함(軍艦)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본 물새는
죽어 있었다.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
한결 어른이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없는 해안선(海岸線)을
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1의 5
아침에 내린
복동(福童)이의 눈과 수동(壽童)이의 눈은
두 마리의 금송아지가 되어
하늘로 갔다가
해 질 무렵
저희 아버지의 외발 달구지에 실려
금간 쇠방울 소리를 내며
돌아오곤 하였다.
한밤에 내린
복동(福童)이의 눈과 수동(壽童)이의 눈은 또
잠자는 내 닫힌 눈꺼풀을
더운 물로 적시고 또 적시다가
동이 트기 전
저희 아버지의 외발 달구지에 실려
금간 쇠방울 소리를 내며
돌아가곤 하였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아침을 뭉개고
바다를 뭉개고 있었다.
먼저 핀 산다화(山茶花) 한 송이가
시들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서넛 둘러앉아
불을 지피고 있었다.
아이들의 목덜미에도 불 속으로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1의 6
모과(木瓜)나무 그늘로
느린 햇발의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지는 석양(夕陽)을 받은
적은 비탈 위
구기자(枸杞子) 몇 알이 올리브빛으로 타고 있었다.
금붕어의 지느러미를 쉬게 하는
어항(魚缸)에는 크낙한 바다가
저물고 있었다.
Vou 하고 뱃고동이 두 번 울었다.
모과(木瓜)나무 그늘로
느린 햇발의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장난감 분수(噴水)의 물보라가
솟았다간
하얗게 쓰러지곤 하였다.
1의 7
새장에는 새똥 냄새도 오히려 향긋한
저녁이 오고 있었다.
잡혀온 산새의 눈은
꿈을 꾸고 있었다.
눈 속에서 눈을 먹고 겨울에 익는 열매
붉은 열매,
봄은 한 잎 두 잎 벚꽃이 지고 있었다.
입에 바람개비를 물고 한 아이가
비 개인 해안통(海岸通)을 달리고 있었다.
한 계집아이는 고운 목소리로
산토끼 토끼야를 부르면서
잡목림(雜木林) 너머 보리밭 위에 깔린
노을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1의 8
내 손바닥에 고인 바다,
그때의 어리디어린 바다는 밤이었다.
새끼 무수리가 처음의 깃을 치고 있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동안
바다는 많이 자라서
허리까지 가슴까지 내 살을 적시고
내 살에 테 굵은 얼룩을 지우곤 하였다.
바다에 젖은
바다의 새하얀 모래톱을 달릴 때
즐겁고도 슬픈 빛나는 노래를
나는 혼자서만 부르고 있었다.
여름이 다한 어느 날이던가 나는
커다란 해바라기가 한 송이
다 자란 바다의 가장 살찐 곳에 떨어져
점점점 바다를 덮는 것을 보았다.
1의 9
팔다리가 뽑힌 게가 한 마리
길게 파인 수렁을 가고 있었다.
길게 파인 수렁의 개나리꽃 그늘을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가고 있었다.
등에 업힌 듯한 그
두 개의 눈이 한없이 무겁게만 보였다.
1의 10
은종이의 천사(天使)는
울고 있었다.
누가 코밑수염을 달아 주었기 때문이다.
제가 우는 눈물의 무게로
한쪽 어깨가 조금 기울고 있었다.
조금 기운 천사(天使)의
어깨 너머로
얼룩암소가 아이를 낳고 있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얼룩암소도 새벽까지 울고 있었다.
그해 겨울은 눈이
그 언저리에만 오고 있었다.
1의 11
울지 말자,
산다화(山茶花)가 바다로 지고 있었다.
꽃잎 하나로 바다는 가리워지고
바다는 비로소
밝은 날의 제 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발가벗은 바다를 바라보면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설청(雪晴)의 하늘 깊이
울지 말자,
산다화(山茶花)가 바다로 지고 있었다.
1의 12
겨울이 다 가도록 운동장(運動場)의
짧고 실한 장의자(長椅子)의 다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겨울이 다 가도록
아이들의 목덜미는 모두
눈에 덮인 가파른 비탈이었다.
산토끼의 바보,
무르팍에 피를 조금 흘리고 그때
너는 거짓말처럼 죽어 있었다.
봄이 와서
바람은 또 한번 한려수도(閑麗水道)에서 불어오고
겨울에 죽은 네 무르팍의 피를
바다가 씻어 주고 있었다.
산토끼의 바보,
너는 죽어 바다로 가서
밝은 날 햇살 퍼지는
내 조그마한 눈웃음이 되고 있었다.
1의 13
봄은 가고
그득히 비어 있던 풀밭 위 여름,
네 잎 토끼풀 하나,
상수리나무 잎들의
바다가 조금씩 채우고 있었다.
언제나 거기서부터 먼저
느린 햇발의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탱자나무 울이 있었고
탱자나무 가시에 찔린
서(西)녘 하늘이 내 옆구리에
아프디아픈 새발톱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 김 춘수 ‘*처용단장(處容斷章)‘1~13’까지
시집 <타령조(打令調).기타(其他), 문화출판사, 1969> * 처용이 노래한 짧막 한 시.
저무는 하늘
동짓달 서리 묻은 하늘을
아내의 신발 신고
저승으로 가는 까마귀
까마귀는
남포동 어디선가 그만
까욱하고 한번만 울어 버린다
오륙도를 바라고 아이들은
돌팔매질을 한다.
저무는 바다.
돌 하나 멀리멀리
아내의 머리 위 떨어지거라.
- 김 춘수 시 ‘이중섭4’ 모두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맨드라미 나팔꽃 봉숭아 같은 것
철마다 피곤
소리없이 져 버렸다.
차운 한겨울에도
외롭게 햇살은
靑石(청석) 섬돌 위에서
낮잠을 졸다 갔다.
할일없이 歲月(세월)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 김 춘수 시 ‘不在(부재)‘모두
[꽃의 素描소묘(金春洙詩集김춘수시집)]1977. 三中堂삼중당.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金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린 나의 新婦여,
- 김 춘수 시‘꽃을 위한 序詩’모두
* 김춘수 시선집 / 미래사, 2004
나의 하나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詩人)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女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여리디 여린
순결(純潔)이다.
삼월(三月)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 김 춘수 시 ‘나의 하느님‘모두
누군가가 죽어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수 없는 눈
반만 뜬채
이 저녁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 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가나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 김 춘수 시 ‘가을 저녁의 시‘모두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었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 감 춘수 시 ‘降雨(강우)‘모두
* 거울 속의 천사/민음사/2001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 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
부서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30보 상공으로 튀었다.
두부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 세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은
감시의 1만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 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 스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음악에도 없고 세계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의 모래 사장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 쥐고
왜 열 세 살 난 한국의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까?
죽어갔을까, 악마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한국의 열 세 살은 잡히는 것 하나도 없는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네가 한 행동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동포의 가슴에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기억의 분憤한 강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투쟁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부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의 양심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사람은
불면의 밤, 왜 모든 기억을 나에게 강요하는가,
나는 스물 두 살이었다.
대학생이었다.
일본 동경 세다가야서 감방에 불령선인으로 수감되어 있었다.
어느날, 내 목구멍에서
창자를 비비 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머니, 난 살고 싶어요!>
난생 처음 들어 보는 그 소리는 까마득한 어디서,
내 것이 아니면서, 내 것이면서......
나는 콘크리이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고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누가 나를 우롱하였을까,
나의 치욕은 살고 싶다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내던진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욕에서 역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의 수목들에서보다 치욕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소녀의 뜨거운 피 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미지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 밤의 불면의 담담한 꽃을 피웠다.
인간은 쓰러지고 또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또 쓰러질 것이다.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악마의 총탄에 딸을 잃은 부다페스트의 양친과 함께
인간은 존재의 깊이에서 전율하며 통곡할 것이다.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 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내던진 네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욕에서 역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의 수목들에서보다
치욕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네 뜨거운 핏 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미지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에 불면의 염염炎炎한 꽃을 피운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 김 춘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모두
** 김 춘수의 시를 읽다보면 ‘왜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 하는 독백을 자주 듣게 된다. 무의미와 의미를 끝없이 선회하는게 인간의 숙명 이지만 그의 시집 곳곳에는 이런 원초적인 독백이 수없이 반복되듯 되뇌곤 한다. 그의 일인칭적 묘사주의는 때로 난해함에 빠지게도 하지만,, 전 시를 통하여 수없이 음절도 해체하고 문법마저 깨부셔, 언어의 세계에 한계를 깨닳고 이후로 무의미의 시세계 에서 의미의 시세계로,, 인간 그 자체로의 시 세계로 회귀 한다. 시는 현실이고, 삶 그 자체이며 사람을 떠날 수 없음을,, 상대성(개인)을 인정함이 진정한 ‘존재’의 시작 임을 그도 인정했기 때문이리라,
꽃은 존재 하지만, 내가 그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됨을, 이제는 모두가 안다.